지난 가을 다녀온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올해 다시금 이곳에 풀어놓는다.. 지난해에 적었던 글을 다듬으며, 가급적이면 5.18 민주화운동의 기간 안에 올리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6월이 되기전에 이곳에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올해는 또 언제 갈 수 있을까...

 

 광주는 내게, 아무 연고도 없는 지역이다. 하지만 무언가에 이끌린 것인지 그곳은, 언젠가는 꼭 한번 가고 싶었던 곳 이자, 가야만 하는 곳 이었다. 마치 미뤄놓은 숙제같기도 했던 이곳. 결과적으로 광주에서 3일간을 지내면서 나는 5.18 민주묘지와 자유공원 (그리고 반 즉흥적으로 비엔날레)을 다녀왔다. 아마도 여행전에 접했던 것으로 기억하는 영화 <오월애>와 소설 <꽃의나라>를 종종 떠올리곤 했다.

 

 



대학 때 무슨 근거로 시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인터넷상에서만 큰소리를 쳐대는소위 '키보드 워리어'를 주제로 작품을 만들었던 적이 있다. (물론 과제이지만, 분야 특성상 작품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작품에 나는 5.18민주화운동 때의 영상자료(영화 '꽃잎'에서 사용됐던) 들을 사용했다. 아마도 의도는, 실제로 앞에 서지도 못하면서 안에서만 부르짖는 이들을 비판하고 싶었던 것일 것.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나 또한 민주주의나 정치에 대해 그만큼의 관심도, 행동도 없었으면서, 그저 자신이 온라인상에서 악성덧글 따위를 쓴 적 없다는 알량한 자부심으로 그런 작품을 만들었던 것 같다. (작품수준이야 뭐 형편없었지만) 어쨌든, 그때 나는 5.18 민주화운동과 본격적인.. 나름의 인연을 맺게 되었던 것 같다.

 

 

 


 - 그때당시 작품을 준비하며 스캔했던 한 광주민주화혁명 관련 사진첩의 한장면.(어떤 책인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아서 저작권 표시를 보류, 확인되는 대로 게제 예정) 화염방사기를 등에 맨 계엄군의 모습이 확연히 눈에 띈다. 광주 MBC 사옥 화재사건도 으레 시민군이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있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다.

 

한창훈 작가의 소설 <꽃의 나라>에서도 시민군이 왜곡보도를 하는 방송국을 불태우려다 그만두었는데 반대편 군인들이 있는 곳에서부터 화재가 발생한 장면처럼 말이다. 또한 문화해설사분의 말대로, 그때의 방송국은 셔터들이 굳게 닫힌 상태에서 과연 시민군이 쉽게 화재를 일으킬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 사진과같이 당시 화염방사기를 둘러멘 군인도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군인들이 화재를 일으켰을수도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본다. -

 

 

 

어쨌든 그 즈음, 그 작품과 관련해서 과 동기 형은 내게 그런말을 했었다. '너는 광주에 한번 가봐야겠다' 고. 나 또한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과제를 하기 위해서였는지, 혹은 과제를 했기 때문인진 정확치 않다. 그럼에도, 그때의 그 말, 그때의 생각을 여태껏 간직하고 잊기를 반복하다 이제서야 드디어 광주를 다녀왔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일순간에 타올랐다 꺼진 관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광주에 대하여 박학다식하게 아는것도 아니다. 살면서 무언가 툭하고 뇌리에 들어와, 가슴에 남았다가 또 어느샌가 모르게 사라지듯, 광주 또한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나또한 말로만, 그것도 간혹 정의를 외쳤을 뿐이다. 촛불문화제 현장에서는 채증용 카메라를 물대포인줄 알고 벌벌 떨며 뒤로 물러섰던 겁쟁이다. 하지만 그 언젠가의 내가 광주를 떠올렸던 것 또한 분명하다. 다른 이들과 내가 느끼는 광주가 무엇이 다를쏘냐 생각도 들지만, 또한 앞으로도 광주를 떠올리는 시간보다 잊고지내는 시간이 더 길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광주를 시간의 저편에 박제시키지 않으려 애쓰고 싶었다. 실제로 5.18 사적지를 밟아보는 것이 보잘것 없는 행위일지라도, 그것은 적어도 내게는, 큰 의미의 움직임이었다.

 

 

 

 

 

[국립 5.18 민주묘지]



5.18 민주묘지로 가는 버스는 두대정도가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배차간격도 좋지 않다. 여튼 도착한 민주묘지 입구.. 드디어 이곳에 오게되었다는 안도감과, 뜻모를 기대감이 솟았다.

 

 


워낙 큰 곳이라, 차량이 통과하고 안내소가 있는곳을 지나서도 주차장 지나서 십분가량은 걸어간 것 같다. 물론 평일 대낮.. 한산했다. 햇볕이 어깨 위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민주주의는 저 건너편에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주차장을 지나 '민주의 문'을 통해 들어가면, 묘지는 물론 그와 관련된 여러 추모 건물들도 양쪽으로 서있다. 시간상 햇볕이 강한데다가 자료들을 모아놓은 전시관이 눈에 띄어 일단은 그쪽으로 들어가서 민주화혁명에 대해서 복기한 후 묘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5.18 민주묘지를 다녀 온 후 다음날 자유공원을 갔었는데, 자유공원에서 민주묘지에 다녀온 것을 이야기 하며 거기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들을 군데군데 포함시켰다. 또한, 약간의 시일이 지난 것들이라 약간의 기억의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큰 맥락으로만 이해해 주시길)

 

  



"추모와 계승은 역사적 진실을 확인하고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전시관 안은 좀 시원했다. 역사의식을 갖고 찾아갔으면서 이렇게 일신의 안위를 찾는것이 조금 안이하게도 느껴졌지만, 덥다고 얼른 보고 오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이곳 광주를 오기전에도 큰 맥락은 알고있던데다 <오월애>라는 영화를 보며 <꽃잎>, <꿈의 나라>, <화려한 휴가>까지 재감상한 것과 더불어 한창훈 작가의 <꽃의 나라> 연재까지 보고 왔지만, 안에 들어가서 5.18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복기한다면, 묘지를 둘러보는 시간이 더욱 값질것이라 생각했다.

 

우리나라가 재밌는 점이 한두가진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여기 광주에도 상식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일이 진행중이었다. 이 문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아시아 문화전당을 위한 도청별관 철거문제 말이다. 시민군의 마지막 항전지이자, 도청 가운데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것이라고 짐작되고, 실제로도 가장 많은 시체가 나왔던 도청 별관을 철거하고 그곳에 아시아 문화전당을 세운다니. 여기 전시장에 두분이 계셨는데, 철거문제에 대해서 어쩌다 두번을 각각 따로 물어봤더니, 조금씩 이야기가 달랐다. 결과적으론 '부분철거'가 맞는 것 이었다. 사적지를 보존하는 일은 외국에서도 상식적인 일이고, 부서지고 허물어진 것을 복구하느라 수많은 돈이 들어가는데, 이런 5.18민주화운동에서 그러니깐 우리나라 민주화 역사에서 큰 의미를 지닌 건물을 손댈 생각을 하다니.. 이런 발상을 뭐라 설명해야 할지. 지역발전이 그렇게나 중요한 것인지. 설령 그것들이 그 어떤 금전적 이익이나 국제적 명성을 가져온다고 해도, 잃어버릴 민주화 정신과 비견할 수 있을까. 이 과거의 치부를 허물어뜨림으로써 그것들의 기억이 훼손되는 일은 결국, 우리는 그 뼈아픈 역사를 잃어버리는게 될 것이다. 이것은 조선총독부 건물과 같은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를 잊는다면, 돌아오는 것은 반복 뿐이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은, 인간의 본성과 흐름이 큰 변화가 없을 뿐 아니라, 과거의 치부들을 너무 쉽게 잊는다는 뜻은 아닐까.

 

김태일 감독의 독립 다큐멘터리 <오월애>에서의 인터뷰를 보면, 그때 시민군에 참전했던 사람 조차도 도청 별관의 철거는 문제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광주시 전체가 5.18의 정신이 깃든 곳이지 도청 별관에만 그것이 국한되진 않는다는 것.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관념적으론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며 자신이 겪지 않은 일에 대해 무관심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6.25 전쟁 발발 년도도, 통일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 보지 않는 세대가 도래하는 시대에, 사라져가는 사적지는 우리의 기억, 민주주의를 위해 그들이 흘린 피에 대한 망각을 부채질할 뿐이다. 모든 사적지는 가능한 보존되는 동시에, 광주 전체가 민주화의 정신이 깃든 곳이란 생각을 해야하지 않을까.

 

 

 



전쟁 이후, 죄없는 사람들에게 유례없이 쏟아졌을 총알들...

 

전시장에는 그때의 증거들 및 여러 인터랙티브 영상과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때 군인들이, 또 시민군들이 사용했을.. 총알들. 누군가를 죽이거나, 살기위해 몸부림쳤던 날카로운 흔적들이다. 이것들에 스러져간 무고한 시민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가슴이 먹먹해지나. <꽃의 나라>에서 주인공을 스쳐갔던 총알, <오월애>에서 다리를 절으셨던 아저씨를 관통했던 총알의 모습이었다.

 

5.18 때 최초로 희생된 시민은 총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자유공원에서 안내해주시던 문화해설사분의 설명에 의하면, 군인들의 명령과 제지를 알아듣지 못한 농아가(차에 타란 것을 알아듣지 못했고, 어찌하여 자신이 농아라는 것을 밝혔음에도 되려 더 큰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 맞은 후, 시름시름 앓다가 하루 혹은 이틀 후에 숨을 거뒀다고 한다. 영화<화려한 휴가>에서도 등장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죽을만큼 맞았다는 것....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이다...

 

 

 


아무 죄 없는 주검 위의 태극기는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삽시간에 넘쳐났을 시체들. 그들을 모두 수용할 관도 부족해서 그저 태극기나 천따위로 덮어둔 시체도 많았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이들에게 몽둥이가 날아왔고, 총알이 날아왔다. 태극기 아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매일 같이 했을 군인들은 자국의 시민들을 몽둥이와 대검, 그리고 총으로 무참히 짓밟을 것을 예측했을까. 국민을 지키지 않는, 오히려 국민을 살해하는 군대가 태극기에 대고 하는 국기에 대한 경례는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도청의 태극기는 그런 군대를 내려다보며 제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태극기에 남아있는 시체들의 혈흔은 곧 그 아무 죄없는 시체들을 감싸며 피눈물을 흘린 것이다.

 

자유공원에서의 문화해설사 분에 말에 의한다면, 더운 날에 제대로 안치되지 못한 시체들이 부패하여 관에서 핏물이 흘러나오고 관이 터졌다고 한다. 그때 당시 시체를 차가운 곳에 안치할 여건이 되지 못하였고, 그럴 공간도 없었을 것이다. 관조차 없어서 천이나 비닐로 덮어두어야만 했던 시체가 많았으니깐. 실제로 이 전시장에는 그때 시체들을 덮었던 비닐도 전시되어 있다.

 



 

당신은 광주를 기억하는가?

 

 이 전시공간에 기록되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말 중에서, 한 외신기자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들이 죽어야 할 어떤 이유도 없다." 라고 했던..

 

 


 

많은 이들이 봤을 유명한 사진이다. 장례를 치를 가족이 없어 이 조그마한 아이가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들고있어야만 했던.. 자유공원의 문화해설사분의 말에 의하면, 실제 이분은 이 사진으로 인해 좋은 것 보다는 안좋은 것들이 많았다고 한다. 진정성 없는, 혹은 일회성과 흥미위주의 관심과 취재로 그 상처를 후벼판게 아닐까... 그렇다면 기억하고 추모하는 방법 또한 무턱대고 경솔한 마음으로 할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광주는 결코 그들이 원하던 대로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서로에게 오랫동안 총칼을 들이댔지만, 이때처럼 무자비했을까. <오월애>에서 인터뷰한 광주 시민들이나, <꽃의나라>에서 대사들을 보아도 동란때도 이렇게 잔인하진 않았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믿을수도 없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우리의 과거다.

 

자유공원의 문화해설사 분의 말에 의하면, 도청에서의 마지막 항전 때 시민군은, 군인들이 정문으로 올 것이라 예측하고 정문에 성인들을 배치하고 후문에 학생들을 배치했다고 한다. 하지만 군인들은 후문을 집중으로 공격해 들어왔고, 그로인해 학생들이 많은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병원에서 헌혈하고 나온 여학생이 십수발의 총알을 맞고 사망하거나, 임산모가 머리에 총상을 입어 즉사하거나, 아기를 살리려다 계엄군의 총에 맞아 사망한 엄마, 관을 구하러 광주를 나가던 버스가 계엄군에 무자비하게 진압된 일, 같은 계엄군 간의 오인사격에 대한 화풀이로 멱을 감던 아이들이 있던 곳에 총격을 한 점 등 사진에 언급된 것 외에도 수많은, 어처구니 없는 비극들이 존재한 곳이 그때의 광주였다.

 

김영삼 정부에 이르러 이 광주민주화운동이 그나마 인정받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도 김영삼 정부가 제대로 나서서 그런것도 아니다. 처음엔 역사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늬앙스의 어물쩡한 조치에서, 여러곳에서 비난이 빗발치자, 전/노 전(前) 대통령들의 구속과 더불어 지금의 이런 보존자료들이 하나둘씩 생기고 복원되게 되었던 것이다. 그전까지 이 광주의 희생자들의 가족들은 변변찮은 묘지에다 제대로 참배도 하지 못하는 처지였다. 심지어 이 민주묘지가 지어지기 전, 구묘지가 있을 때는 국가에서 돈을 쥐어주고 시체를 매수하거나 강탈하며 희생자의 수를 줄이려 했었다고 한다. 자신의 자식, 부모, 친구, 형제 들이 아무 죄도 없이 살해되고, 불구가 되고, 혹은 실종되었는데, 십수년이 지나도록 묘지에 제사한번 제대로 못지내고 여러 오명을 뒤집어 썼었던 것이다... 그때의 한이 과연 죽어선들 사라질 수 있을까..



 

나가는 길목엔 포스트잇을 적어서 넣어두는 투명한 긴 통이 있었다. 수많은 포스트잇들에 각자의 의견, 바람들이 적혀진 채로 그 안에 있었다. 어줍잖은 짧은 글을 적고 나왔다. 할말이 막혀서 겨우 토해냈다... 후에 마지막으로 약 20분 가량 되는 영상을 본 후 이곳을 나왔다.

 

자유공원의 문화해설사 분에게 이 얘기를 해드렸더니, 전 정권때까지는 이것들이 투명한 아크릴 통이 아닌, 더 개방적으로 전시되었다고 한다. (아마 벽에 붙였던가 그랬다고 했던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정권이 교체되고, 현정부에 대한 비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서, 이것들이 모두 아크릴통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을 통과하기 전, 기도를 하고, 예를 올렸다. 향로에는 계속해서 향이 피워져 있었을 것이다. 이 추념문을 지나가는 것은 어떤 결의를 다지게 했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내가 너무 극성떠는 것 같기도 했지만, 어쨌든 착잡하면서도 경건한 마음은 분명했다. 다시금 그들을 떠올렸다. <오월애>에서 보았던 그 가슴 아픈 장면들을 직접 확인해야 했으니깐.

 



어딘지 낯이 익은 모습이다. <오월애>에서 주먹밥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줬던 아주머니들이 생각났고, 그 당시의 그 사진이 떠올랐다. <꽃의나라>에서 주인공이 먹던 주먹밥이 떠올랐다. 정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내 가족, 내 친구들을 지키고, 내 한 목숨지키기 위해 역설적으로 또 목숨을 바쳐야만 했던 그때. 모든 상가들이 문을 닫고, 사람들이 집을 비워도 도둑질이나 강도사건도 없었다는 그 때.. 광주에서 그때를 살아왔던 사람들은 아직도 그때의 연대를 아름답게 기억했다. 아무리 당연한 이야기를 하려해도 (설령 독도는 우리땅이다 란 말을 해도)반대하고 역성을 지르는 사람이 있는 이 시대에, 정말로 모두가 '한마음'이 되었던 그 시절, 그곳... 그런 아름다운 연대가 앞으로는 꽤나 쉽지 않으리라는 비관적인 생각이 든다.. 2008년도만큼만 모인다면 대성공이 아닐까..

 



사진에 다 담지도 못했던, 엄청난 숫자의 묘지들

 

나는 이것들을 가능한 천천히 둘러보고 싶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담아가고 싶었다. 좀 더 성의있게 그들을 기억하는 이들중 한명이 되고 싶었다.

 

<오월애>에서 내가 울컥했던 장면중의 하나는, 어느 묘지 앞에 있던 웨딩드레스 입은 여성의 영정 사진이었다. 그 웨딩사진을 걸어놓을 정도의 신혼부부가 겪은 그 슬픔. 그 장면은,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쌓여있던 아픔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것을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얄팍한 호기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5.18 묘지를 생각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은 그 장면이었다.

 

물론 내가 기억했던 영화 <오월애>속 모습과 실제의 모습은 달랐다. 영화에서 내가 기억하는 부분은 이렇게 새로 이장되고 꾸며진게 아닌, 구묘역 이었으니깐. (이때 당시에는 그걸 인지하지 못했다) 어쨌든, 마치 관광처럼 뒷짐지고 이곳을 스윽 하고 지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럴 생각으로 왔던 곳도 아니었다. 해 지기전에 이동해야 했기에 욕심만큼 오래 있지는 못했지만 꽤 긴 시간을 이 묘지를 걸어다니며 뒤에 적힌 묘비 글을 하나하나 읽었다.

 

묘지 배치가, 높이로는 크게 세부분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맨 아래에는 그 열흘의 기간동안 희생된 분들이 안장되어 있었고, 위쪽에는 그당시 투옥되거나 부상을 입고선 후에 돌아가신 분들의 묘지가 있었다. 사진의 반대편, 그러니깐 입구의 정면에서 보았을 때 오른쪽에는 신원이 확인되지 못한 무명열사의 묘도 따로 묶어서 배치되있었다.

 

 

 


"나는 이 병든 역사를 위해 갑니다"

 

묘비를 하나하나 지나면서 읽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발걸음이 무거워질 때가 많았다. 가장 답답하게 했던것은 고등학생들이나 중학생, 혹은 초등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의 묘지였고, 가장 가슴 저리게 만들었던 것은 자식을 보낸 부모들의 글이었다. 부모를 보낸 자식들의 마음또한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겠냐만은, 자식을 보낸 부모들의 심정은 정말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오지 않는 자식을 오랜시간 기다리다, 이제 내가 너의 곁으로 가야할 것 같다는 한 부모의 글을 보고 새삼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 다는 말이 어떤 말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정말로 눈물겹게 아름다운 이들도 있었고, 너무나 부끄럽게 만들어지는 글도 있었다. 웨딩드레스 입은 아내의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놓아야만 했던 남편은 묘비 뒤에 이렇게 글을 써 놓았다.

 

"여보, 당신은 천사였소.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그리고 누군가의 묘비 뒤엔 이렇게 쓰여있었다.

 

"나는 이 병든 역사를 위해 갑니다."

 

자유공원에서의 문화해설사분의 말에 의하면 이 청년의 아버지가 광주에서 있다가 이런 움직임 때문에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은 그곳으로 향하려 했고, 그것을 막는 아버지에게 아들은 위와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 청년과, 아버지의 심정을... 내가 감히 헤아릴 순 없을 것이다...

 

그래고 끝끝내 나는, 내가 '지금 이 병든 역사의 현장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만 했다...

 

 



어쩌면, 민주주의란 저위에 있는 동그란 돌과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서로가 마주보고, 단단하게 결합해서 그것을 지키려하지 않는다면, 뒷짐지고 방관한다면, 언젠가 틈이 벌어져 우리 머리위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사실상 작금의 시대는 민주주의라 하기도, 아니라 하기도 미묘한 시대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지금은 무척이나 '세련된' 독재가 이뤄지고 있는 시대라 생각한다. 군사독재의 시절을 넘어, 군복을 벗고, 정장을 입은 독재정치 말이다. 하지만 이또한 이 나라의 국민들의 잘못된 선택의 결과란 것도 부정할 수 없음이 답답할 따름이다..


 

 

 

 

 

[5.18 자유공원]


김대중 컨벤션센터역에서 내려 역무원들에게 5.18 자유공원 가는 길을 물었다. 안내책자와 인터넷 검색을 통해 대략적인 경로는 알고 있었기에 지하철역까지는 무리없이 내렸지만, 아무래도 초행길이라 조금 막막한 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무원들은 이 자유공원에 대해서 잘 모르는 듯 싶었다. 적지않은 시간동안 이 자유공원 가는길을 서로 찾으며 시간을 보냈다. 결국 그 역에서 근무하는 분들중에서 약간 직급이 높으신 분에게 '기념공원을 말하는게 아니냐, 거기라면 여기가 아닐것이다' 라는 말을 듣고선, 내가 약간 울컥한 기분으로 '여기에 있다구요!' 라고 말해버렸다. 왜 광주사람들, 더욱이 여기 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이 역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사적지(5.18 자유공원)의 존재와 위치에 대해서 이렇게 무관심한지, 순간 격한 감정이 몰려왔던 것이다. 광주 사람들조차 이것들을 잊어간다면 대체 누가 기억해줄 것인가.. 아마 이전날 다른 곳에서도 이런 사적지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무지한 사람들을 보고서 답답했었던것 같다. 이때 약간 흥분해서 그렇게 얘기한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럼 자유공원은 대체 어디있었나? 역에서 도보 직선코스로 약 15분 가량, 버스 1~2 정거장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김대중 컨벤션센터와 한 블럭, 신호등 하나 차이의 거리에 있던 5.18 자유공원. 정면에는 전시관이 있고 좌측에는 상무대 영창/법정을 복원한 곳이 있었다. 사람들의 무관심한 인식만큼이나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듯 했다. 실제로 이곳에서 상시로 근무하는 인원도 굉장히 적어 보였다. 웬일인지 김대중 컨벤션센터 주변부터 이 자유공원 안까지 경찰병력(전경)들이 많이 있었다. 우선은 정면에 보이는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민주묘지와 민주묘지 내에 있는 전시관에 비한다면 이곳의 규모나 전시물품은 꽤 협소했다. 특히나 그곳들을 이미 둘러본 후여서 그랬는지 관람에는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치는 않았다. 사실 내겐 상무대 영창/법정을 복원한 곳이 더 가보고 싶었다. 언젠가 한번, 책과 티비에서 본 후로 이곳또한 광주에 와서 꼭 들러보고 싶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자유공원 원형보존 하라' 라는 현수막이 있는 것, 관리가 깔끔하게 되지 않는 점등을 미뤄보면, 이곳에도 무언가 개발에 대한 계획이 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지만, 깜빡하고 물어보질 못했다..

 

좌측에 있는 상무대 복원현장에 들어가기 전 안내소를 찾았다. 일단은 안내소 안으로 들어가서 문화해설사 분의 설명을 듣게 되었는데, 거기엔 경찰간부로 보이는 분이 한분 앉아계셨다. 왠지 모르게 영 탐탁치 않았지만 일단은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문화해설사분에게 대략적인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설명을 듣고, 여행에 관한, 경찰 병력에 관한 이야기를 짧게 나눴다. 알고보니 경찰 배치의 원인(!)은 김대중 컨벤션센터에 현 대통령이 와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전/의경 들이 (지방에서까지 올라와서) 이 김대중 컨벤션센터에서부터 자유공원까지 와있던 것이었다. 솔직히 속으로 '아, 참 xx같은 타이밍에 맞춰왔구나' 싶었다.

 

얼마 후 경찰 간부가 호출되어 나가서, 야외로 나가 본격적인 안내를 받으려 했지만 점심시간이 다 되어 애매한 시간이었다. 해설사 분께 괜찮다는 밥집 명함을 하나 받아들고 점심을 먹으러 다녀왔다. 후에, 해설사분과 입구에서부터 천천히 안내받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엔 그저 듣는쪽이 되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질문을들 던지기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다.

 


원래는 현재 아파트가 들어선 지역에 있던 것들을 이곳으로 옮겨서 복원시킨 이곳, 실제 이곳에 시민들이 잡혀와서 영창에 들어가기까지 약 4시간이 소요됬다고 한다.


두들겨 맞고 차에 실려와, 내린후에 또 이렇게 두들겨 맞은 것이다. 실제 도보로 몇분 거리의 공간을 사진에서 보는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수시간이 걸렸다는 것은, 그 시간동안 얼마만큼의 폭행이 가해질 수 있었는지 충분히 짐작케 했다. 처음에 들어간 곳은, 끌고온 시민들을 조사한 곳 이었다. 건물과 인형으로 복원해놓은 현장에 가까이 가면 인터랙티브 사운드가 재생되는 방식이어서, 바깥에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 그곳을 둘러보고 나왔다.

 


다음은 영창과 식당, 목욕탕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날도 햇볕은 눈이부셨다. 

 


영창의 모습이다. 실제 그때의 나무바닥과 새로 복원하며 설치한 나무바닥이 이어졌다고 한다. 안쪽의 무광택의 부분은 그때 당시의 바닥이라고 한다. 이 수용소에 적정인원의 몇배가 수용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고, 구타 또한 계속되었다고 한다. 아마 영화 <오월애>에서 시민군에 참가했던 한분이 앉아서 담배를 태우며 돌아보던 곳이 이곳이었으리라 짐작된다. <꽃의 나라>에서 주인공의 친구였던 인호가 군인들에게 잡혔다가 도망쳤던 부분도 떠올랐다.


고문하는 장면을 재현해놓은 식당의 모습이다. 지독한 구타가 행해지는 마당에 당연히 밥이나 제대로 먹였겠는가. 문화해설사 분의 설명에 따르면, 붙잡혀온 시민들에게는 아주 극소량의 식사만을 제공해서, 굶주려 있던 시기에 군인들이 잠시 담배피러 간 사이, 붙잡혀온 한 시민이 쓰레기통에서 군인들이 먹고 버린 밥을 주워먹다가 걸려 배가 터지도록 밥을 먹은후에 물구나무를 서서 소위, 몸의 모든 구멍으로 먹은 것들을 쏟아내야 했다고 한다. 당사자는 그때 차라리 죽여줬으면 하는 심정이었다고 한다...



목욕탕 내부의 모습. 그 많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초단위' 였다고 한다. 훈련소 시절에 10분? 혹은 5분 가량의 시간에 목욕을 한적은 있지만, 이것은 그것과 당연히 비교할 것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당시 사람이 회상하길, 더운날, 비좁은 곳에서 그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다가 이렇게 잠깐이라도 몸을 적시고 밖에 나가 몸에 햇볕을 쬐일 수 있는 순간이야말로 살아있음을 느꼈다고 한다...

 

이곳들을 지나며, 문화해설사 분의 말을 들을수록.. 나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 하는 내게, 문화해설사 분은 그들 또한 일종의 피해자임을 이야기 해주셨다. 그리고 대화는 법정에 가서 이어지게 되었다.




무자비하게 폭행한 시민들을 잡아와 재판같지도 않은 재판을 치렀던 법정. 이곳에서 (없는)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법정 밖 (혹은 바로 옆에서) 구타를 당한후에 다시 자신의 죄를 인정해야만 했다고 한다. 그런 재판같지 않은 재판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이슬로 사라지거나, 오랜 시간을 투옥되어야 했던 것이다...

 

아무 죄없는 무고한 이들이 너무도 억울한 재판을 받아가며 일방적인 죄를 강요받았을 장소에서, 나는 문화해설사 분과 앉아서 용서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바깥을 걸으며 했던 이야기를 이곳에서 이어하기도 하고, 민주묘지에 갔던 이야기를 나누며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방문자 안내에 소극적이 되어버린 민주묘지, '님을 위한 행진곡'도 부르지 못하게 하고 '방아타령'을 부르려 했던(이쯤되면 기가막혀 말문이 나오지 않을 정도다.) 5.18 추모행사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나는 그때의 그 군인들을 용서하지 못한다고 얘기했다. 그 군인들 또한, 전경들이 시위대들에게 일정라인이 밀리면 부대복귀해서 구타를 당하듯, 뒤로 밀리고 후퇴하는 순간 엄청난 폭력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일설에 의하면 진압작전이 있기 몇달전부터 실제를 방불케하는 진압훈련으로 항상 피떡이 되었다고도 한다. 폭력과 야만에 찌든 그들도 결국은 피해자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피해자였다고 할 지언정 그들은 동시에 가해자라는 딱지를 떼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고 해도, 그들이 지은 참혹한 구타와 만행은 결코 되돌리거나, 이해될 수 없는 것이기에 나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용서해서는 안된다고 얘기했다. 사과하지 않은 이들을 용서할순 없는 것이다. 최소한의 용서 또한 죄지은 자가 진심으로 참회하고 사과했을때 가능한 것이니깐. 그런 내게, 오히려 그 분은 여지껏 그 죄책감으로 고통에 살고있는 이들에 대해 이야기 하며, 그들을 용서해야 함을 이야기 조용히 이야기 해주셨다.

 

타지인인 내가 그들을 용서하지 못하는데, 정작 그 시간을 살아온 광주시민이 그들을 이해하고 용서하려 한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나로서는 쉬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아마 삼십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그들은, '왜' 라는 이유가 빠진 그때에 대해서, 나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수많은 생각들을 했을 것이다. 이쪽 자유공원으로 오기전에는 민주묘지에서 관람객들에게 해설을 했었다고 하는 그 문화해설사분은, 그 당시의 실제 피해자에서부터, 아무 연고도 없는데 와락 눈물을 터뜨린 교사, 그리고 양심의 가책을 느낌으로써 추념문에도 들어서지 못하고 주변을 돌고 돌았던 계엄군 출신의 누군가를 만났었으니깐.

 

사실 내가 무어라고 그들을 용서하고 말고를 할 것인가. 용서의 여부는 어차피 내 권한이 아닐터. 다만 내가, 우리가 반드시 해야할 분명한 것은, 이 피맺힌 과거,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린 이 과거, 그들이 흘린 피와 눈물을 기억하는 일이다.

 

텅빈 법정을 지키는 모형들 뒤, 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광주에 대해 그 어느때보다 깊은 생각,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문화해설사 분과 내가 앉아있는 그 공간 속 무거운 공기가 돌고 돌았다. 하지만 그것은 부담스럽지 않은, 진정 뜻깊은 시간이었다.

 


 

용서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시기상조일 것이다.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수두룩 하고, 여전히 피해자들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계엄군이 사망자의 수를 줄이기 위해 야산등지에 암매장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실종자들의 행적도 여전히 많은 수가 오리무중의 상태다. 더불어 광주민주화운동은 아직도 집단발포명령자가 밝혀지지 않은 신기한 코미디다. 위에서 가장 큰 죄를 지은, 그 모든 비극의 '주최자'는 여전히 잘살고 있고, 심심하면 나와서 한마디 하는 뻔뻔함을 가지게끔 놔두는 이 나라는 참으로 신기한 나라가 분명하다. 어쩌면 <꽃의나라>의 표현대로 '이상한 나라' 다.

 

영화<오월애>에서 인터뷰 했던, 총을 맞은 후 많은 수술 끝에 현재 다리를 절며 꽃집을 운영하는 아저씨는 예전에 수술을 한후, 비가오면 바깥에 평상을 놔달라고 했다고 한다. 거기에 누워 비를 맞으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몸에서 끓어오르는 수많은 울분과 슬픔을 그는 그렇게 씻어내야만 했을 것이다. 아직도 그들을 폭도로 매도하는 이들, 그리고 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시대에 살아가면서도 잊고 지내는 우리들의 무관심이 그들을 더욱 서럽게 만들고 있는 것 아닐까.'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는 인정하기 싫지만, 역사적으로 인정될 수 밖에 없는 말처럼, 우리는 그들이 흘린 피를 먹고 자란 이 대한민국에 살고있다.

 

 

다녀온지 적잖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 글을 적는동안 몇번을 울컥거렸다. 어쩌면 물리적 총알은 이미 우리에 앞서 80년 5월의 광주시민들이 모두 맞아주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빚진 것이다. 지금도 그 후유증과 고통에 시달리며 그 오랜 시간을 견뎌왔음에도 자살을 선택하고, 먼저 떠나보낸 가족과 친구들로 인해 괴로워하는 그 광주시민들이 지금 우리가 사는 이만큼의 시대를 열어준 것이다. 그뿐인가, 서울 한복판, 버스 위에서 물대포를 맞아가며 태극기를 흔들던 청년에게, 진압부대의 폭력에 머리가 다쳐 피가 흥건한 붕대를 매고 있으면서도 환하게 웃을 수 있던 소녀에게 빚진 것이다. 앞으로는 더이상 빚지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이 미천한, '기억'밖에 없으니깐..

 

언제쯤, 그들에 의해 쥐어진 자유로 그들을 매도하는 이들이 사라질 수 있을까...

언제쯤, 그들이 끝내 놓지 않았던 자유의 숭고함을 가슴에 깊게 새기며 온전히 계승할 수 있을까. 

 

자유와 민주주의를 빚진 이땅의 모든 이들이, 그들을 잊지 않기를..

 


언젠가는,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민주 세상이 마침내 오고야 말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가 적어도, 80년 5월 그날을, 광주에서 정의와 민주주의를 외치던 그들을,

그리고 미워해야 할 그 많은 것들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내가 믿는 것은 미움이다. 미움의 힘이다. 우리가 이렇게 앓고 있는 이유는 사랑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보다, 미워할 것을 분명하게 미워하지 않아서 생긴 게 더 많기 때문이다." - 한창훈 <꽃의나라>中

 

기억하자. 우리가 지금 누리는 이만큼의 자유, 민주주의는 그때 그들이 스러지며 흘렸던 피와 눈물 위에 세워졌음을.. 사는게 팍팍해서 잠시 잊는다해도,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더듬어가고, 읽고, 찾고, 보며, 다시 기억하자. 내가 잊으면 네가 이야기 해주기를, 네가 잊으면 내가 이야기 해줄 수 있게...

 

 

 

 

최정운 (교수)저, <오월의 사회과학>

덧, 이제 6월에는, 얼마전에 지인에게 선물받은 이 책을 읽어보려고 한다.

그들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나서 한껏 더 성숙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아직도 읽을 책들이 너무나 많고, 알아야 할 것들도 많다. 그리고 들려줘야할 누군가도 많다.... 그리고 아래는 내가 알고있는, 5.18 혹은 80년대의 사회모습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낸 소설/만화들이다.

 

 

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원더보이>

 공선옥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강풀 <26년> 세트 

 최규석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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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프로스트 1 : 텅 빈 남자 - 시즌 1 닥터 프로스트 1
이종범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은 별세한 곤 사토시 감독의 애니메이션<파프리카>(소설 원작)의 오프닝 부분의 한 장면이다. 자신이 막지못한 살인의 순간에 대한 트라우마가 계속해서 꿈에 나타나는 형사는 한 여자에게서 명함을 건네받는다. 그것은, 꿈을 통해서 트라우마를 치료해주는 '파프리카' 의 명함이다. 이 환상적이고 기묘한 애니메이션의 '파프리카'와 같은 인물이 여기 또 '프로스트' 로 탄생했다. 

 

 


중학교 때 일로 기억한다. 친구 한명과 함께 연락도 없이(그때는 핸드폰을 갖고 다니지도 않았으니) 다른 친구의 집에 놀러간 적이 있다. 그저 벨을 두드리고 문을 두드리고 친구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 밖에 생각하고 할 수 밖에 없던 나와는 달리 그 친구는 잠시 후 현관 문 아래에 있는 우유함(?)을 열어보더니, '운동화가 있는걸 보니 슬리퍼라도 신고 급하게 나간 것 같다' 라고 얘기했다. 어떻게 정황들을 보고 그렇게 빠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하며 내게는 그 당시 적잖은 충격!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니었지만,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어린나이에 참 신기하기도 했었나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그 이후로 추리소설을 꿰차거나 한 것까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분명 추리소설 혹은 추리만화는 그 독서량과 상관없이, 그러니깐 아무리 작은 부분일 지라도 학창시절에 한 요소를 이루는 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안읽어도, 주위에서 친구들을 통해서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추리'와 '심리'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별 생각없이 본다면 이것을 쉽게 떼어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분명 맞닿은 거리가 있다. 추리를 하는 것 또한 심리를 파악하는 것이 포함될 때가 있고, 심리를 통해서 추리를 하는 것 또한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하게 보지않고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이것들을 구분한다면 이것들은 분명한 차이점을 가진다. 추리는 물질적 증거혹은 정황증거(알리바이 등)를 통해서야만 인정받을 수 있고, 감춰진 '행동'을 찾아내는 일이지만, 심리는 (물질적 증거가 뒷받침 된다면 더 극적으로 가능하겠지만 어쨌든) 그 내담자의 행동이 없다고 해도 그가 말하고 느끼는 것을 살펴봄으로써 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추리는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행해지는 경우가 대부분 이지만, 심리는 한 인간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고 나름대로 이렇게 분리할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이것도 말에 따라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적확하고 전문적인 해석은 말 그대로 '전문가'들의 일이라고 제쳐두면, 다시 혼란에 빠지기 쉽상이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한마디로 '만화 논문' 이랄까. 

 

 

그럼 이 만화책은 대체 뭔가? 이 만화책은 분명 두가지 요소를 다 함께 가지고 있다. 심리 라는 것은 자칫 섣불리 전문적으로 접근했다가는 굉장히 루즈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화를 그리기 위해서 심리학을 전공한 작가가 '실제 심리학과는 인간의 뇌에 관한 이해부터 시작하여 신비롭기보다는 딱딱한, 과학시간 같은 느낌의 수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에 덧붙여 '학년이 올라가고 개론서를 넘어면 왜 그런 내용들이 필요한지를 이해하게 되기 때문에 전공을 바꾼 학생들은 알 수 없는 재미가 기다리고 있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마치 이 책은, 그 딱딱한 과정을 지나서야만 만날 수 있는 심리학의 '재미'를 보여주는 만화이기도 한 동시에, 누군가가 이 만화를 통해서 전문적인 심리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이전에 만나는 즐거운 흥미붙이기 과정, 즉 '딱딱한, 과학시간 같은 과정'을 '말랑말랑한 미술시간' 처럼 쉽게 맛볼 수 있는 형식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래, 이 만화는 '심리학에 대한 시식'과 같다! (시식코너에서 먹는 음식맛이 비할 수 없이 인상적이란 것은 다들 공감 하지 않는가?)

 

1952년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 고든 엑스너는 자신의 가장 유명했던 논문을 이렇게 시작했다. '이 지구상에 사람들이 60억 명 있다면 그들의 심리상태와 기질, 성격은 전부 달라서 전부 60억 가지의 심리와 성격, 기질이 있는 것이다' 라고. 하지만 고든 엑스너는 죽기 직전에 남긴 마지막 논문에서 말을 바꿔 이렇게 끝맺었다. '그건 사실, '한 사람' 에 대한 60억 가지 표현일 뿐이다.'

 

우리는 인간이 모두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인간은 누구나 똑같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심리학이라는 것 또한 존재할 수 있고, 심리학이란 학문 또한 계속해서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초반에 실린 이 인용구에서 우선 정신이 퍼뜩 든다. 모두가 다른 듯, 다른 표현을 쓰지만, 결국 한 길로 통한다는 것!

 


바에 들어온 커플 중 여자는 벽지의 문양을 보고 가면을 보았다고 했고, 나는 대략 악마나 사람과 같은 형상을 보았다. 그리고 그 '전문적인 테스트'에 쫄아버린 나는, 중간중간 이렇게 본편의 요소들을 세부적으로 설명한 페이지에서 이 문양이 만화에 의해서 '수정'되었음을 알고서 안심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만나는 심리학 지식들의 재미도 쏠쏠하다. 분량도 부담없고 말이다.

 

 

'Mirror'라는 바 안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백발의 젊은 남자는 손님으로 온 커플 중 여자가 사라지자 남자에게 조언을 던진다. 여자가 사라지기전까지 그녀가 보냈던 무의식중의 수많은 신호들을 말이다. 추리적인 요소들로 시작하는 이 만화속에서 그가 바로 주인공인 '프로스트 교수' 다. 그는 곧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임상심리학자이자 용강대 문과대학의 학과장인 천상원 교수에 의해서 용강대학교 심리학과 정교수로 스카웃되지만 우선은 그의 바텐더 이력때문에 상담실에서 일하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심리학의 인식처럼, 한가한 그곳에 바텐더에서 조언을 던져주었던 남자가 다시 찾아온다. 겉으로 보기엔 모자란 것 없어보이지만 내면은 그렇지 않은 '자기애성 성격장애' 를 가진 그 남자의 심리를 파헤치고 그것을 치료하는것이 '닥터 프로스트'의 첫 임무다!

 

굴뚝청소를 하고 내려온 두 아이 중 얼굴이 더러운 아이와 깨끗한 아이가 있다. 이 둘중에 누가 먼저 얼굴을 씻을까 라는 질문을 본 적이 있지 않은가? 탈무드에 언급되는 유명한 일화다. '상대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 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프로스트 교수의 지론 중 하나인듯 싶다. 그래서 그는 내담자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그의 가택에 '무담침입'을 시도하고, 그것을 통해서 내담자가 언제, 어떻게, 어떤 잘못된 거울을 들여다봄으로써 지금의 마음을 형성했고, 그로인해서 계속해서 어떤 거울을 찾으며 방황하는지 들려준다.

 

'모든 공간은 머무는 사람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보여준다'

내 방을 돌아보게 해준 촌철살인의 한마디

 

 

자칫 딱딱해 질 수 있는 한편의 상담사례가 극적구조를 통해서 만화로 탄생했다. 이 만화는 추리와 심리의 경계에 있다. 내담자의 안에 있는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표면적으로는 (작가의 고백대로) 많은 부분이 추리의 과정을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동시에 전문적 심리학적인 측면의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돋보이는 점은, 그것을 대사나 지문을 통해서 '한꺼번에 열거'하는 형식이 아닌, 이야기 중간중간에 적절히 배치해놓음으로써 독자가 자연스럽게 심리학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를 지루함 없이 따라가게 할 수 있게 한 데에 있다. (좀 더 정확한 설명이 필요한 것은 중간중간 한페이지 분량으로 요약되어 있는데 이 또한 딱딱하지 않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내담자의 심리에 솔직히 많은 공감은 되지 않는다. 그는 나보다 너무 많은 것들을 갖고 있으니깐(돈, 차, 집 기타 등등.. OTL.. ) 하지만 고백하건데 화장실 거울을 통해서 (허경환 버젼의) '이정도 생겼으면 ~ ... ' 하는 생각을 한번쯤 가져본 (평범하다고 우기고 싶은) 1인으로써 '나르시시즘'은 10g쯤 공감은 한다. 사실 돈이 많든 적든 이정도의 '나르시시즘'은 공감할 수 있지 않겠는가?(솔직해지자!) 사실 생각해보면, 별 문제없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과거도 어느부분엔가 뒤틀려서 지금 우리가 결핍한 어떠한 것을 구성할지도 모를 일이고 말이다. 실제로 우리가 정상 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위험하고 오만한 우리의 인식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깐.

 

방어와 회피가 무너지고 내담자가 마음을 여는 과정에서 우리는 백프로 같지않더라도 대부분은 조금이라도 겪을 그런 강요와 요구로 만들어진 자신의 모습을, 많은것들이 결핍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사회적인 측면에서 나와 많은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 상담자의 과거 '관계를 형성하는 슬픈 패턴'은 누구에라도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었다. 그것을 맞닥뜨리는 프로스트 교수의 치료는 사실 굉장히 사회성이 포함된 문제들을 불가피하게 그의 소임인 심리학 분야가 해결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최선을 다해 치료하는 셈이다. 사회적 혹은 고질적 문제가 어느정도 베이스가 되는 만큼 우리 또한 완벽하게 다르다고 할 수 없으니 우리에게 무엇이 결핍되었고 우리 스스로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찾아주는 프로스트의 이야기는 그래서 매력적이다. 제때에 감정을 나누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해서 타인에게 그것을 찾으려고 안달하는 내담자의 모습이 우리와 완전히 동떨어지는 것은 아닌, 혹은 멀리 떨어저 있지 않은 주변인들의 모습은 아닐까.


왜곡된 과거로 인해서 리얼리즘에 입각한 이야기와 조금은 독특한 (속을 알수 없어 답답해 보일만한 표정의) - 회의적인 캐릭터(프로스트 박사)는 어쩌면 심리학에 대한 어떤 신비함없이 접근하는 인물의 모습을 적절하게 표현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특히나 책의 뒤에 수록된 '부록' 에서 보여지는 프로스트 교수의 내면에 대한 맛뵈기는 어딘가 부정적이고(심지어 졸려보이는) 캐릭터에 대한 근거를 언뜻 짐작하게 해준다는 면에서 보면, 이후의 펼쳐질 내담자들의 상담사례 뿐만이 아니라 '프로스트 그 자신의 심리'에 대해서도 무척 궁금해지게끔 만든다. 프로스트 박사의 내면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짧은 부록과, 그 실명에 대한 SD의 네컷 만화는 충분히 그 부록으로써의 역할 이상을 한다.

 

내용에서 언급하는 성질(상담자에 대한 심리적 퍼즐)들을 컷구성에까지

적용하며 그것들을 좀 더 뚜렷하게 받아들이게 연출한 부분들


이 만화를 통해서 심리학이 뭔지 정확히 알았다는, 알려는 성급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심리학에 대한 흥미를 줄 수 있는 만화이지, 어줍잖게 심리학을 배웠다고 말할 수 있는 만화는 아니다. 그럼에도 작가는 가장 서두에서 '우리는 돈, 건강, 집의 구조, 교육, 심지어 배우자의 선택 까지도 전문가에게 맡기고 있는데,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우리의 정신-마음은 그동안 우리에게서 얼마나 홀대 받았는가. 정신과 라고 한다면 마치 미친사람들만 가는 것으로 생각하듯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자.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고, 상식으로 생각했던 모습들이 과연 얼마나 실제적으로 존재하는가? 이것은 거의 '반쯤' 미쳤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다. 그렇다면 거기서 우리는 무균실에 있는 것처럼 '정상'일까? 그렇다면 '정상'의 기준은 뭘까? 어떤 정신이든, 마음이든, 심리든 일정이상의 오염은 있다. 다만 그것이 일상을, 삶을 좌우하느냐 아니냐가 문제일 따름이다. 마음이 아프면 당연히 '마음에 맞는 병원'에 가야 한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만화는 그 이야기를 '이야기'로써 '재미'로 풀고 있다.


인간은 거의 비슷하다는 것도 심리학자들의 편의를 위해 그런것일수도있겠지만 이유야 어쨌든 각각의 인간에게 매번 다른 방식으로 치료를 한다면 그것은 학문에 의거한 치료가 아닌 그저 만남의 하나일뿐 일 것이다. 수많은 병이 있지만 결국 분류될 수 있고 많은사람들을 만나도 그것이 어떤 고유한 그룹으로 묶여질수도 있듯이 말이다. 프로스트의 말대로라면 인간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본능적으로 찾고 채워가려고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만화를 만나고자 함은. 만난 것은 무엇을 채우기 위해서 였겠는가.

 

조교인 윤성아의 안내와 실제 책 사이에 꽂혀있는 닥터 프로스트의 명함.

이 충돌이 주는 기묘한 느낌이 내 뒷통수를 쳤다. 머스트 해브 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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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하라 - 박노자, 처음으로 말 걸다
박노자.지승호 지음 / 꾸리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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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좌파란 말이 매우 거북스럽다. 내가 아는 좌파란, 북한과 소련과 연결되어 있는 지점이며, 그것은 곧 공산주의를 통해 몰락한, 그리고 언젠가 몰락하리라 기대하고 있는 주체사상과 세습독재의 나라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니깐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뿐일까. 자세히 생각해보면 내가 그 좌파란 말을 거북스럽게 생각하는 이유는, (소위) 보수라고 칭하는 성향의 사람들이 현 정권, 집권당에 대한 반대를 비난하며 항상 빠지지 않는 수식어가 바로 좌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좌파가 마치 이 세상에서 반드시 사라져야할 불순물처럼 갖다대며 모든 의견들을 '빨강색'으로 통일시킨다. 내가 거기에 속으로 반박하는 논리는 간단하다. '나는 좌파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닥 관심도 없다 (이것은 당연히 자랑이 아닌 솔직한 내 생각일 뿐) 그저 현재의 정치와 사회가 잘못되어있다고 생각할 뿐이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기 위해 최소한 지금 너희들은 '최악'이라고 생각할 뿐이며, 그래서 최악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차선책인 진보를 선택한다. 그러니 나를 북한과 연결짓지 마라.' 나는 늘 북한군과 북한 노동당 그리고 북한주민을 나눠서 생각하려고 하지만, 그들이 항상 결부시키려고 하는 지점은 북한의 온갖 악폐습과 직접적 군사위협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전쟁전후의 세대나, 직후의 세대들에게 전쟁은 생각하기도 싫은 살육과 고통, 가난의 시대였을테니 사실상 보수세력과 보수언론들이 끊임없이 북한을 들먹이며 소위'물타기'를 시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네들이 본다면 우리처럼 북한에 대해서 '일정이상 옹호적인' 태도를 지닌 젊은 이들은, 휴전이 오래되고 전쟁을 겪어보지 못해서 안보의식이 형편없는, 걱정되는 젊은이들일 뿐이니깐. 하지만 정말 좌파란 이념은 정말 이제는 북한에서 조금 떨어뜨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먼저 언급되진 않지만, 우선 가장 시급한 문제는, 좌파의 단어를 보수들이 생각하는, 그래서 우리도 그것을 방어하며 역설적으로 인정하게 되어버리는 북한과의 고리를 끊을 필요가 있었다. 박노자는 좌파라는 말을 북한이나 소련 등 '왜곡된 형태의' 좌파, 실패한 사회주의 와 벗어나야 함을 역설한다. 그것은, 짧게는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고, 길게는 진정한 좌파는 그런 좁은 의미가 아님을 일깨워 준다. 그리고 그렇게 왜곡되고 잘못되어진 좌파, 사회주의 국가의 실패한 예에서, 무엇이 부족했고 무엇이 더 필요한지 이야기 한다. 이것만으로도 일단 수확이다. 좌파란 단어는, 이 나라의 보수들이 늘 그렇듯, 그런 왜곡되고 오용된 나라에서 찾을 것이 아니란 말이다. 설령 그 예에서 좌파의 성향이 포함되있긴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가 부르짖어야 할 좌파성향의 일부가 공유되는것일 뿐이지 그 형태와 지향점에서는 무척이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논리는 당연히 현재 한국사회에서 좌파=진보 라고 인식되는 많은 스타급 정치인과 방송인들을 다시금 살펴본다. 처음엔 특히나 그런 것들이 많이 불편하다. 앞서 서두에 언급한, 내가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이라고 선택하려하는 이들을 다 까고나면 도대체 나는 어쩌란 말인가. 나는 실현가능한 변화의 인물에 집중하고 있는데, 아무리봐도 가능성이 없어보이는 인물들에 기대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좀 더 읽다보면, 좀 더 생각하다보면, 좀 더 들여다 보면, 박노자는 (물론 자신의 생각에 따라 옳다면 그럴때도 있었지만) 그들을 부정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과 지향적인 지점에서 보았을 때 그들(진보의 대표적 정치인이나 언론, 방송인)의 현재 태도와 행보가 갖는 한계를 지적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박노자는 대통령이 바뀌면, 정권이 바뀌면 대부분의 문제들이 해결되리라 믿는 우리의 망상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나아가 박노자의 분석은, 한국 뿐만이 아니라 유럽에서의 정치성향, 유권자들의 성향의 근거를 분석하며 우리나라의 진보세력이 갖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유럽의 사례들과 비교한다. 그래서 우리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그것이 곧 진정한 좌파의 길임을 역설한다. 그의 꿈은 타협적인 진보도 아니고, 소위 '북한or소련'스러운 체제도 아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신자유주의 와 자본주의의 폐단이며, 그것을 근본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기득권의 보수를 찍는 것도, 타협적인 진보를 찍는 것도 아니였다. 박노자가 말하고자 함은, 마치 민주주의의 힘이 오로지 그것인 마냥 부상한 투표가 아닌 그것을 뛰어넘는 자발적 참여와 연대를 통한, 이 사회의 '개혁' 이다. 정치참여로는 결국 한계가 있으며, 지금껏 많은 문제들이 그것을 증명해왔다. 우리가 정말 열어야 할 지점은, 사회구조의 개혁이다. 결국 좌파들이 저지른 스스로의 여러 잘잘못과 환경적 요인들, 그리고 그에 따른 시민들의 조금 섣부른 외면으로 인해서, 지지 받는 보수와 지지받는 진보 양자 택일만이 계속해서 화두로 여겨지는 경우 우리의 미래는 여기서 더 나아질 수 없다는 게 박노자의 생각 아닐까.

 

솔직히, 좀 불편했다. 서두 및 중간에도 언급했지만, 내 정치적 성향과 일정부분 같지만 또  일정부분 다른 다르며, 내가 옹호하는 현상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시각도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대체 그래서 어쩌란 건지' 란 생각도 종종 들었다. 그럼에도 박노자의 이야기는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현재의 체제와 정치현실, 사회의 모순을 매우 날카롭게 풀어낸다. 특히나 어떤 특정 학문에 구애받지 않음으로써 당연히 한계를 긋지 않으며, 그로인해서 무척이나 확장된 시야를 갖고, 나아가 더 넓은 가능성을 심어준다.

 

아직 좌파가 무엇인지는 완벽히 정리가 되진 않는다. 어떻게 나아가려고 한다는 것인지도 완벽히 정리되진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점은, 이제는 더이상 '좌파'란 수식을 마치 실패와 전쟁의 색(色)처럼 불러대는 이들에게 주눅들지 않을 것이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틀린' 용어로 우리를 조롱함에도, 우리가 그 뜻이 추구하는 '진짜'를 알고 있는 한 의기소침해질 필요가 없다. '그래 나 좌파다!' 하고 떳떳하게 외치기 위해서 내게 남은 숙제는, 누군가 내게 왜 좌파를 지지하느냐 라고 말할 때 명확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좀 더 체계화된 정리이며, 내가 하나의 정말 잘 정의된 좌파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그 수많은 편견과, 의도적으로 왜곡된 색깔론에서 자유롭지는 않을 테지만, 세상은 항상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던 것들이 가능으로 바뀌었다고 얘기한 박노자 처럼,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왜곡된 사회주의를 넘어서서, 우리가 진정 꿈꿀 수 있는 - 진정한 좌파가 꿈꾸는 더 살기 좋은 세상을 꿈꾸고 싶다.

 

'좌,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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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만화 구두 세트 - 전4권
박윤영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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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인간을 정신적, 신체적으로 유지시켜주는 '사랑' 이라는 개념을 인류가 처음 정립하기도 전에 이미 사랑은 흔한 이야기였을 테고, 지금도 흔한 이야기이며, 앞으로도 흔한 이야기일 것이다. 문학, 음악, 영화 그 어느것에서든 '사랑 이야기' 를 빼놓을 순 없다. 반복에 대해 금방 싫증을 내는 인간이 어떻게, 사랑에 대해 이토록 꾸준하고, 끊임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걸까. 근원적인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필연적인 이유는 단순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여전히, 끊임없이, 쭉, 다시 또 사랑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멀리 떨어질 순 있을지언정, 결코 삶과 분리될 수 없는 그 소중한 감정이, 바로 '사랑' 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 했었거나, 하고 있거나, 앞으로 하게 될 것, 그리고 그래야만 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 이니깐

 

사랑을 원하지 않은 사람은, 그 감정을 모르는 사람뿐 아닐까. 한번 그 감정을 넘어온 삶은 다시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미뤄둔다고는 하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사랑'. 난 그렇게 생각한다. 사랑에 대한 두려움조차도 결국은, 이전보다 덜 아프고 좀 더 안정적인 사랑을 원할 뿐 아닐까.

 

 

 

내가 좀 더 사랑하면 되지. 뭐, 가끔씩은 훨씬 많이?

그렇다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잖아.

 

 

 

예술가에게는 muse로 일컬어 질만큼,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창조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 창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자본주의 시대에, 누군가는 사랑을 이야기 하기 위해 상업 속으로 뛰어들어 사람들과 만나고, 누군가는 상업속에서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사랑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중에서 어떤 것들은 사랑받고 인정 받는 작품이 되는 반면에, 어떤 것은 별볼일 없는 작품으로 치부된다. 물론 그것을 구분하는 것은, 언뜻 보기엔 '재미'다. 어느것이든, '재미'없이는 선전하기 힘들다. 평가와는 또 별개로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인지하든 아니든, 그 재미보다 더 우리에게 오래도록 남는 소통의 과정은 바로 '공감' 이 아닐까. 사랑은 모든 것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소용돌이다. 어떤 행동또한 내면에서의 태풍이 밖으로 튀어나온 것일 뿐이다.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바로 그 '사랑의 감정'에 우리가 공감 하느냐 아니냐.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것을 기억하느냐 아니냐가 된다.

 

 

"사실 난... 잊은 것도 아니고 정리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뎌진 것도 아니고 그때의 기억을 그대로 토막낸 채 묻어뒀던 거다. 스스로를 치유할 자신이 없어서... 피가 철철 흐르는 모양 그대로... 내 안 가장 깊숙한 곳에 묻어뒀던 거다. 그리고 그 애를 잊는 대신 그 상처를 묻어뒀단 사실을 잊고 살았다." (16)

 

 

'사랑'에 대해 이토록 생생하게 현실적이면서도,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공감을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흔하진 않은 것 같다. 이 만화가 그다지 특별하다고 말할 순 없을지도 모르지만,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남여를 불문하고(아무래도 여자들이 더) 이들의 '사랑의 감정' 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을 것이란 사실 이다. 박윤영 작가가, 사람을 위해 사랑을 이야기 하는지, 사랑을 이야기 하기 위해 사람과 만나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작가가 가진 감정없이 우리의 감정을 설득시킬 수 없지 않겠는가 하는 것 뿐.

 

 

 

 

 

 

 

 

이 이야기는... 

 

 

 

 

 

보다 보니 계속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좋아지고, 그래서, 그 짝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는 출장에서 예쁘게 꾸미고 싶어하는 여자, 지후. 잡지에서 우연히 본 '좋아하는 사람에게 예쁘게 보이려면 2cm 더 높은 구두를 신어라' 고 하는 기사를 읽고는, 현관에서의 단 한순간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시작된다.

 

 

 

 

 

 

그녀가 좋아하는 태수는 그의 직장 상사이자, 이제는 사랑을 기대하지 않는 남자다. 마치 친절한 바람둥이 같게도 보여지는 그는 (자세히 언급 되진 않지만) 더이상 사랑에 모든 것을 쏟아낼 자신이 없어하는 남자다. 처음엔 사랑한번 못해본 여자처럼 순수하고 조금은 바보같기도 한 지후의 마음을 확인하고, 그에 따른 호감으로 접근했다가, 서서히 지후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그를 오랜 시간동안 짝사랑 하고 있던 같은 직장의 임주임 과, 뒤늦게서야 지후의 사랑을 깨닫고 다시 그녀 앞에 나타난 지후의 첫사랑 연호. 이 넷 사이에 펼쳐지는 미묘하고 복잡한, 아프고도 달콤한 사랑이야기가 바로 이 <여자만화 구두> 다.

 

1권 말미에 수록되어있는 짧은 글인 <여자와 구두, 네버엔딩 스토리> 에서 보면 구두에 대한 여자의 입장은 참 복잡하면서도 단순하다. 표면적으로는 남성에게 좀 더 예뻐보이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면서, 반면에 좋아하는 남성에게 '연락처'와 같은 장치로써 예전부터 상징되어 왔던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또 구두를 통해 남여가 이어지는 이야기가 전세계 500여 종이나 있다고 하니, 구두란 것은 단순히 미적인 차원을 넘어, 어떤 브릿지와 같은 셈이다. 마지막 부분에, 구두와 사람의 조합을 '짝'으로 표현하는 것에서 '사랑은 한 사람만으로 완전해질 수 없다'는 의미를 찾는 것을 통해서 구두와 사랑의 상관 관계를 한번 더 짚고 넘어갈 수 있다.

 

 

 

아무도 안 만나고 관심도 없고

진짜 말라 비틀어졌다고.

 

 

지후에게 구두란, 좋아하는 사람앞에서 자신을 더 내어 주는 것이다. 특히나 꾸미는데 서툰 지후가, 더 높은 힐을 신는 것은, 약간이라도 더 큰 고통을 감내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예쁜 모습을 보이기 위함이다. 그러니깐 그것은 자신이 양보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늘리고, 그렇게 덜어낸 자신안에 사랑을 채워가길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후에게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후의 마음은 복잡하다. 태수와 점점 가까워지면서도, 과거에 오랫동안 사랑하면서도, 결국 그 상대방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는 괴로움으로 많은 것들이 두렵기만 하다. 자신이 또 그때처럼 상처받는건 아닐지, 또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그리고 거기엔 첫사랑이었던 연호와, 태수와 친하게 지내는 임주임의 존재가 지후를 더 혼란스럽고 답답하게 만든다.

  

아픈 과거때문에 많은 것들이 조심스럽고, 두려운 지후가 그럼에도 보고싶어서 밤중에 택시를 잡아 찾아갈 정도로 자신의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것때문에 또 두려워하는 나날들 속에서 무척이나 섬세하게 그려지는 '감정'은 깊은 공감과 몰입을 자아낸다. 더불어, 반대에 입장에 놓여있거나 혹은 비슷한 심리를 가진 인물들인 연호, 임주임, 태수와 같은 주연 캐릭터의 심리를 통해서, 그리고 지후의 절친한 친구인 수영과 같은 조연 캐릭터를 통해서 사랑에 관한 더욱더 많은 감정들을 이야기 함으로써, 다양한 감정을 체험하고, 돌아보게끔 해준다.

 

특히, 2권과 4권에 실린 외전 중, 2권 끝에 실린 외전1 '지후와 연호, 그 전의 이야기' 는 지후가 첫사랑인 연호와 만나고 헤어지면서, 현재의 지후가 되기까지 얼마만큼의 슬픔과 혼란을 겪고서야 비로소 지금만큼 될 수 있었는지 굉장히 섬세하게 그려낸 부분이다. 그동안 결국 스스로 버텨왔어야 하는 감정의 부분에 있어서 이 부분의 묘사는 어쩌면, 이 만화에 있어 가장 높은 감정의 밀도를 보여주는 부분일지도 모른다고 본다.

 

난. 누군가를 그토록 좋아하는 일을.

그 마음을 놓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주변인들의 도움과 그들 자신의 사랑과 지혜 덕분에 앞서 말한 것처럼, 어쩌면 결말이 놀랍지 않을수도 있다. 독자가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 바로 이 만화의 결말일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이 책은 특별하다. 페이지는 쉽게 넘어가지만, 문득 문득 그 행동을 길게 멈추게 하는 부분들이 적지 않다. 그 사이사이에서 나는 지나온 시간들을 쉼없이 돌아보고 또 돌아봤으니깐. (내가 남자이기에 공감의 방향이 같진 않겠지만 말이다.)

 

구두는 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깐, 좋아하는 이성에게 잘 보이기위한 구두가 - 그 마음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어, 다시금 다른 '구두의 모습 - 사랑의 감정' 으로 그녀에게 도착할 것이다.

 

 

 

 

 

 

<여자만화 구두>를 대하는 남자의 태도

 

 

다시 또 누굴 그렇게 좋아할 수 있고,

또 안좋아할 수 있다는게... 반복하니까 우습잖아.. 

그냥, 누굴 좋아하는 거 내가 만든 환상 같은게 아닐까

 

 

여자만화를 남자가 봐야하는 이유는 어렵지 않다. 바로 이것을 보고 여자가 '공감'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충해서는, 여자들의 심리와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 이해라는 어려운 과정을 넘어보는 시도는 일련의 '노력' 들이 필요하다. 필요한 수 많은 노력들 중에 만화책 한권 읽는 그 노력이 어렵다고 할 사람은 없을 터.

 

 

이 책을 읽을 적잖은 남자들은 어쩌면, 사랑할 그때에 항상 최선을 다해왔던 똑똑한 남자가 아니라면야, 이 만화속 어딘가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알았던 그녀들의 수많은 감정들. 어쩌면 단순함에도, 바보처럼 알지 못했던 감정들과 함께.

 

적어도 나 때문에 싫은 걸 참지 말고, 억지로 하거나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사실, 제목에서부터 밝혔 듯, 대놓고 여자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건 맞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그러지 말아야 할' 남자의 모습과, '그래야 할' 남자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만약 양쪽 어딘가에 속해있다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양쪽도 아니라면, 싼 값에 자신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 지 배우는 셈이다) 어쩌면, 이런 부분이 여성판타지적 인 것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이 만화가 '이런 남자가 되라' 라고 말하진 않는다. 다만 '이런 남자라면' 여자들은 이렇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긍정, 부정의 결과를 낳기도 하고, 그에 따라 자신도 행복하거나 아플 수 있다.' 란 것을 지후를 비롯한 여러 캐릭터들을 통해서 직접적, 혹은 반사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자신을 돌아보거나, 하다못해 여자의 감성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데는 매우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이 심리학 책이나 여자에 대한 연구는 아니기 때문에 그럴 목적으로 볼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다만 그런 점도 있다는 것 임을 말하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결국, 모두의 사랑 이야기

 

 

 

어떻게 보면 참 신기하다. 분명히 다른 시간, 다른 공간, 다른 환경, 다른 사람과, 다른 모양의 사랑을 했을텐데, 한 가지 이야기에 공감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의 외부의 모습이 아니라, 그 안의 어떤 감정이기 때문인 것 아닐까. 나는 남자인데다가, <여자만화 구두>에 나오는 것과 판박이처럼 똑같은 경험도 아니면서도, 그 감정의 모양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곳에서, 나를 돌아봤고, 어떤 곳에서 누군가를 돌아봤다. 사실, 이 만화를 읽는 시간 내내 살아온 모든 시간을 돌아보고, 살아갈 어떤 시간을 기대해 본게 맞다. 그것은 분명 내가 아니라도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이 만화가 내게 준 감정에 대한 '공감'의 힘은 무척 강력하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애써 '남여' 혹은 '여남'을 구분하지 않아도 가능하다.

 

아직 아픈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여자가, 사랑을 믿지 않는 남자와 만나, 정말로 사랑이 사랑스러워 지기까지의 서러움과 눈물, 기쁨과 낭만의 나날을 보내는 한달여의 짧은 과정,

그러니깐, 연애에 있어 우리가 가장 아름답고 선명하게 기억하는 그런 부분들, 아직 서투르고 어설프고 알아가지만, 그만큼, 상대의 모든 것을 간직하고픈 시간들이 유리처럼 반짝거리며 이 책 안에 녹아들어 있다.

 

저 사람과 함께라면 내 과거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순간이 오게 될 거라는 

 

 

옛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아파하고, 그리고 또 새 사랑으로 가슴 설레어 하는 지후의 모습에서, 그것이 여자든 남자든, 자신이 품고있는 지난날의 열병을 조금이라도 이해받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마음을 향해 또 설레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만화를 많이 읽는 편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감히 말하자면, 이 <여자만화 구두>는 내가 지금껏 만화를 읽고선, '조금이라도 더 일찍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준 최초의 만화가 아닐까 싶다.

 

 

나는 이제 운명 같은 건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세상 어딘가엔 꼭. 반드시. 반드시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도 결국은 서로 사랑하게 될 그런 두 사람이.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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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쓸데없이 길게 늘어놓은 얘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이 만화를 보는 순간, 그 누구라도,

사랑, 연애, 결혼, 구분없이 무언가는 하나 하고 싶어 근질이 날것이다.

그러니까 다 필요없고, 아니 딱 필요한건, 고만 전전긍긍 하고,

 

 

 

 

이 만화를 덮는 순간, 누가 말려도, 절로 그러고 싶어질 테니!

 

사실 이 <여자만화 구두>는 정말로.. '본격, 연애 권장 만화'

(이미 하고 있는 분은... 범사에 감사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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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서재 - 최재천 교수와 함께 떠나는 꿈과 지식의 탐험 우리 시대 아이콘의 서재 1
최재천 지음 / 명진출판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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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본 이 <과학자의 서재>제목에 대한 느낌은 언뜻 보기에, (아주 창피할만큼 단순하게도) '과학분야에 국한된 책 소개가 주된 주제가 아닐까' 하는 편견아닌 편견. 책을 읽기 시작하다 보니, 그것도 참 쓸데업는 기후에 불과했던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일단 서재라는 책의 제목에서 조금 떨어져 보자. 실제로, '책을 추천하는 책'은 참 많기도 할 것이다. 내가 알고있거나, 혹은 갖고 있는 책만해도 벌써 몇권은 되니, 내가 모르는 세상에 그 많은 책들 중 '책을 소개하는 책'들이 오죽하겠는가. 물론 이 책의 말미엔 저자인 최재천이 소개하는 몇권의 책이 언급되기도 하고, 이런저런 책들도 직,간접적으로 언급되긴 한다. 하지만 그렇게 이 책을 소개하는 것은 어불성설인듯 싶다. 이 책은, 책을, 그리고 자연을 사랑했던 한 소년이 특별한 과학자로 성장해가는 성장담이다.

 

누가 보면 궁색한 과거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책 과 사람을 동일시 하는 것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본 것은 군대 훈련소 때다. 생소한 모든 것, 내일, 혹은 잠시 후도 알 수 없는 순간순간, 그동안 해왔던 많은 것들, 정확히는 거의 대부분의 것들이 통제되고 금지되고, 남은 것은, 하기 싫거나, 할줄 모르는 것들만을 남겨두었던 그때다. 아마 훈련소 입소식이 아니었을까. '이들과 함께 과연, 더 큰 소리를 낼 수는 있는걸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계속해서 예행연습을 하면서 소위 말하는 '군기'가 바짝 들어갔던 그때는, 실제 입소식 때 주먹을 쥔 손에 너무 힘이들어가서 파르르 떨릴 정도였다. 헌데, 그것을 기억나게 하는 것은 그때 훈련소대 대대장이 해줬던 짧은 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충 기억하기론 '다들 책을 읽을 텐데, 한 사람이 살아가는 역사는 한권의 책과 같다는 것, 즉 여러분 주변에 있는 전우들 이나 조교들 혹은 간부들 모두가 하나의 책과 같으니 많은 것들을 주의깊게 지켜보고 배우라' 는 말이었던 듯 싶다. 많은 시간이 지난 이야기라 내가 어떤 말을 빼고, 어떤 말을 더했는지는 모르겠지만,(아마 그나마 좋은 축에 속하는 기억으로 간직하니, 미화했을 확률은 많겠다) 그때의 훈련소가 얼마나 부조리 했든, 군생활이 어땠든 간에 상관없이 나는 그 말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다. 왜냐하면, 어쨌든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니깐.

 

자, 우리가 들고있는, 종이로 되있는 종이책, 혹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태블릿PC 나 스마트폰 등으로 보는 E-BOOK 이 갖고 있는 책의 개념을 잠시만 내려놓자.

 

 

한권의 책으로 분한 그의 삶을 따라가보자!

 

 

마치 가까운 아이들에게 설명해주듯, 따뜻하고 부드럽고, 솔직한 그의 입담은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사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기도 하거니와, 딱딱하지 않게 설명해주는 옛날이야기와 같은 그의 이야기는, 책을 손에서 놓기 힘들게 한다. 또한, 성인 독자뿐만 아니라 청소년 독자또한 고려한 듯한 (보통의 소설보다) 좀 더 넉넉한 줄간격은 편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기본적으로 독서는 내가 즐겁기 때문에 하지만, 때로는 곤욕이 될 때도 있는 반면에, 한 과학자의 삶을 '들어보는' 이 책은 마음 편하기만 하다. 그가 고향인 강릉에서 느꼈던 어릴적의 '편안함' 과 '그리움'만은 못할지라도 말이다.

 

지금과는 다르게 중학교부터 시험을 봐서 들어가던 시절, 대다수가 이제 동등하게 대졸이고, 그래서 자격증에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지금 세대와는 다르게, 공부를 잘하고, 일류대를 나오는 것이 곧 최고의 성공이라고 일컬어졌던 그 시대에 육군 간부의 아들로 태어난 저자는, 그때의 어머니의 교육열과 (시대가 변해도 교육열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 듯 하니 가타부타 긴말 할 필요는 없겠다.) 아버지의 발령으로 인한 이유로 서울로 전학오게 된다. 중학교부터 시험 성적으로 결정할 수 있고, 또 그것이 대학입시와 이어져 있기에, 저자는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과외도 잠깐 받아가며 공부를 하게 된다. 공부는 썩 잘하는 편이었지만, 본디 자연에서 노는 것을 좋아해서, 초,중,고등학생 동안그는 방학때마다 강릉에 내려가 자연을 벗삼아 놀았고, 서울에 있을 때도 남산에 올라가서 친구와 함께 시를 쓰며 놀기도 했단다.

 

하지만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그가 그렇게 강릉에 내려가지 못하고, 서울에서 공부하는 동안의 남는 시간에 읽었던 책들이다. 물론 무슨 책을 읽었느냐는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얼마나 책을 사랑했었는지는 중요한 사실 같다. 온갖 다양한 것들이 담겨있는 '백과사전'에 엄청난 흥미를 느끼고 접했던 그의 책과의 인연은 '동화전집'으로 이어진다. 그것들이 그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더 풍부하게 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않게 짐작이 가능하다. 나아가, 자연과 한데 어울리길 좋아했던 그는, 그런 감수성 때문인지, 중학교 때 충동적으로 친구따라 참가한 백일장에서 시(詩)를 통해 장원을 하게 되면서 시인을 꿈꾸게 되기도 하고, 고등학교때는 미술선생님에게 스카웃되서 미술반에 들기도 한다. 그리고 '노오벨상수상전집' 을 통해, 어렴풋하게 과학과의 만남을 시도한다...

 

간략하게 설명하려고 했는데, 어느새 이야기가 길게 풀어져 버렸다. 어쨌든 중요한 요는, 소싯적부터 '자연을 벗삼아' 놀며 시 와,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를 좋아하며, 그러니깐, 기성세대가 본다면 소위 그냥 '놀기 좋아하는' 아이였던 그가 처음부터 과학자의 꿈을 꾸게 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내가 위에 설명한, 그가 기술한 삶의 반정도 되는 대학입시 무렵까지 그는 시, 소설, 미술, 등 꽤 다른 분야에서 많은 고민들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꿈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의 모습과 언뜻 닮기도 하면서도, 또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있다.

 

그런데,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그의 방황은 계속된다. 전공분야는 있었지만, 거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뿐더러, 그 계열에서 그가 자신의 진로를 명확히 결정하고 그 길로 나아가는 데에, 여전히 많은 고민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그의 길을 인도해준 것은 '한권의 책' 이었다. 그것은 바로 <우연과 필연>이라는 책이고, 그 일화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 책은 내게 생물학이 그저 흰 가운을 입고 세포나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인간 본성을 파헤치고 철학을 논할 수 있는 학문이란 걸 알려줬다. 그 책은 내게 생물학에 몸바쳐도 된다는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다" 155p

 

내가 그의 삶의 태도 에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나는 무엇을 할 사람'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태도다. 그것이 어떤 확고한 삶에 대한 의지와 자세로 이어지고, 나아가 그렇게 살아간다면 멋진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삶은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의 제약에 이끌리기도 하지만, 어쩌면 자신이 꿈꾸던 것이 다른 모습으로 발현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을 '시인이 될 사람' 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지금 과학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그때의 감수성, 언젠가의 철학적 사고, 인간에 대한 따뜻함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차가운 증명과 무한실험'에 그치는 과학자가 아닌, 감성 풍부하고 철학적이고, 마음 따뜻한 과학자가 된 것이다.

 

그가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많은 갈림길에서 선택을 해야했고, 그런 순간순간들은 책이 길을 가르쳐준, 혹은 책을 통해서 바뀌게된 태도가 많이 눈에 띤다. 하지만 내게 더 강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그가 어떤 구불구불하고 불확실한 길을 걸으면서 방황하고 또 방황하며, 머뭇거리다가도 달리고 마는, 마침내 자신의 길을 찾는 과정이었다. 지금의 내가 그런 길 위에 서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렇게 자신만의 삶을 찾은 저자의 모습이 무척이나 멋졌다. '최재천 이라는 책'을 읽어보니, 정말로 과학과 사회, 인간에 대한 종합적인 통찰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의 다른 저서도 얼른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 정도다.

 

 

 

지금 만약, 원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다고 해도 그것이 '실패'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어쩌면 거기서, 우리가 꿈꿔오던 꿈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거기에는 어떤 '각성'이 필요하고, 또한 그 각성이 그저 자신에 대한 '위로'로 여겨지면 안될 것이다. 길을 찾는데 책이 전부는 아니지만, 또 책이 아닌것도 아니다. 어떤 한권의 책을 '잘' 만나는 것은 가장 저렴한 대가를 통해 삶을 바꾸는 일이 아니겠는가!?

 

저자인 최재천이 풀어놓는 아주 솔직한 삶의 애환과 방황을 통해서, 삶에 대해 조금은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꿈을 찾으며 방황하던 그의 나날, 그리고 선택의 연속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인생을 바꾼 요소요소에 있는 몇권의 책들, 그리고 그가 추천해준 몇권의 책들을 꼭 한번 읽어봐야 겠다. (신문에서 서평을 쓰기도 했던 그의 경력대로, 소개하는 책에 대한 이야기 또한 아주 재미나다) 읽다보면 언젠가는, 내게도 그런 책들이 있겠지. 어쩌면, 한권의 책들에서 느꼈던 작은 울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과 더불어 책과 같은 사람, 어느 하나에도 소홀함이 없어야겠다. 치열하게 읽고, 치열하게 방황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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