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로스트 1 : 텅 빈 남자 - 시즌 1 닥터 프로스트 1
이종범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은 별세한 곤 사토시 감독의 애니메이션<파프리카>(소설 원작)의 오프닝 부분의 한 장면이다. 자신이 막지못한 살인의 순간에 대한 트라우마가 계속해서 꿈에 나타나는 형사는 한 여자에게서 명함을 건네받는다. 그것은, 꿈을 통해서 트라우마를 치료해주는 '파프리카' 의 명함이다. 이 환상적이고 기묘한 애니메이션의 '파프리카'와 같은 인물이 여기 또 '프로스트' 로 탄생했다. 

 

 


중학교 때 일로 기억한다. 친구 한명과 함께 연락도 없이(그때는 핸드폰을 갖고 다니지도 않았으니) 다른 친구의 집에 놀러간 적이 있다. 그저 벨을 두드리고 문을 두드리고 친구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 밖에 생각하고 할 수 밖에 없던 나와는 달리 그 친구는 잠시 후 현관 문 아래에 있는 우유함(?)을 열어보더니, '운동화가 있는걸 보니 슬리퍼라도 신고 급하게 나간 것 같다' 라고 얘기했다. 어떻게 정황들을 보고 그렇게 빠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하며 내게는 그 당시 적잖은 충격!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니었지만,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어린나이에 참 신기하기도 했었나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그 이후로 추리소설을 꿰차거나 한 것까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분명 추리소설 혹은 추리만화는 그 독서량과 상관없이, 그러니깐 아무리 작은 부분일 지라도 학창시절에 한 요소를 이루는 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안읽어도, 주위에서 친구들을 통해서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추리'와 '심리'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별 생각없이 본다면 이것을 쉽게 떼어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분명 맞닿은 거리가 있다. 추리를 하는 것 또한 심리를 파악하는 것이 포함될 때가 있고, 심리를 통해서 추리를 하는 것 또한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하게 보지않고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이것들을 구분한다면 이것들은 분명한 차이점을 가진다. 추리는 물질적 증거혹은 정황증거(알리바이 등)를 통해서야만 인정받을 수 있고, 감춰진 '행동'을 찾아내는 일이지만, 심리는 (물질적 증거가 뒷받침 된다면 더 극적으로 가능하겠지만 어쨌든) 그 내담자의 행동이 없다고 해도 그가 말하고 느끼는 것을 살펴봄으로써 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추리는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행해지는 경우가 대부분 이지만, 심리는 한 인간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고 나름대로 이렇게 분리할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이것도 말에 따라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적확하고 전문적인 해석은 말 그대로 '전문가'들의 일이라고 제쳐두면, 다시 혼란에 빠지기 쉽상이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한마디로 '만화 논문' 이랄까. 

 

 

그럼 이 만화책은 대체 뭔가? 이 만화책은 분명 두가지 요소를 다 함께 가지고 있다. 심리 라는 것은 자칫 섣불리 전문적으로 접근했다가는 굉장히 루즈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화를 그리기 위해서 심리학을 전공한 작가가 '실제 심리학과는 인간의 뇌에 관한 이해부터 시작하여 신비롭기보다는 딱딱한, 과학시간 같은 느낌의 수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에 덧붙여 '학년이 올라가고 개론서를 넘어면 왜 그런 내용들이 필요한지를 이해하게 되기 때문에 전공을 바꾼 학생들은 알 수 없는 재미가 기다리고 있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마치 이 책은, 그 딱딱한 과정을 지나서야만 만날 수 있는 심리학의 '재미'를 보여주는 만화이기도 한 동시에, 누군가가 이 만화를 통해서 전문적인 심리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이전에 만나는 즐거운 흥미붙이기 과정, 즉 '딱딱한, 과학시간 같은 과정'을 '말랑말랑한 미술시간' 처럼 쉽게 맛볼 수 있는 형식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래, 이 만화는 '심리학에 대한 시식'과 같다! (시식코너에서 먹는 음식맛이 비할 수 없이 인상적이란 것은 다들 공감 하지 않는가?)

 

1952년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 고든 엑스너는 자신의 가장 유명했던 논문을 이렇게 시작했다. '이 지구상에 사람들이 60억 명 있다면 그들의 심리상태와 기질, 성격은 전부 달라서 전부 60억 가지의 심리와 성격, 기질이 있는 것이다' 라고. 하지만 고든 엑스너는 죽기 직전에 남긴 마지막 논문에서 말을 바꿔 이렇게 끝맺었다. '그건 사실, '한 사람' 에 대한 60억 가지 표현일 뿐이다.'

 

우리는 인간이 모두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인간은 누구나 똑같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심리학이라는 것 또한 존재할 수 있고, 심리학이란 학문 또한 계속해서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초반에 실린 이 인용구에서 우선 정신이 퍼뜩 든다. 모두가 다른 듯, 다른 표현을 쓰지만, 결국 한 길로 통한다는 것!

 


바에 들어온 커플 중 여자는 벽지의 문양을 보고 가면을 보았다고 했고, 나는 대략 악마나 사람과 같은 형상을 보았다. 그리고 그 '전문적인 테스트'에 쫄아버린 나는, 중간중간 이렇게 본편의 요소들을 세부적으로 설명한 페이지에서 이 문양이 만화에 의해서 '수정'되었음을 알고서 안심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만나는 심리학 지식들의 재미도 쏠쏠하다. 분량도 부담없고 말이다.

 

 

'Mirror'라는 바 안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백발의 젊은 남자는 손님으로 온 커플 중 여자가 사라지자 남자에게 조언을 던진다. 여자가 사라지기전까지 그녀가 보냈던 무의식중의 수많은 신호들을 말이다. 추리적인 요소들로 시작하는 이 만화속에서 그가 바로 주인공인 '프로스트 교수' 다. 그는 곧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임상심리학자이자 용강대 문과대학의 학과장인 천상원 교수에 의해서 용강대학교 심리학과 정교수로 스카웃되지만 우선은 그의 바텐더 이력때문에 상담실에서 일하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심리학의 인식처럼, 한가한 그곳에 바텐더에서 조언을 던져주었던 남자가 다시 찾아온다. 겉으로 보기엔 모자란 것 없어보이지만 내면은 그렇지 않은 '자기애성 성격장애' 를 가진 그 남자의 심리를 파헤치고 그것을 치료하는것이 '닥터 프로스트'의 첫 임무다!

 

굴뚝청소를 하고 내려온 두 아이 중 얼굴이 더러운 아이와 깨끗한 아이가 있다. 이 둘중에 누가 먼저 얼굴을 씻을까 라는 질문을 본 적이 있지 않은가? 탈무드에 언급되는 유명한 일화다. '상대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 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프로스트 교수의 지론 중 하나인듯 싶다. 그래서 그는 내담자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그의 가택에 '무담침입'을 시도하고, 그것을 통해서 내담자가 언제, 어떻게, 어떤 잘못된 거울을 들여다봄으로써 지금의 마음을 형성했고, 그로인해서 계속해서 어떤 거울을 찾으며 방황하는지 들려준다.

 

'모든 공간은 머무는 사람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보여준다'

내 방을 돌아보게 해준 촌철살인의 한마디

 

 

자칫 딱딱해 질 수 있는 한편의 상담사례가 극적구조를 통해서 만화로 탄생했다. 이 만화는 추리와 심리의 경계에 있다. 내담자의 안에 있는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표면적으로는 (작가의 고백대로) 많은 부분이 추리의 과정을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동시에 전문적 심리학적인 측면의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돋보이는 점은, 그것을 대사나 지문을 통해서 '한꺼번에 열거'하는 형식이 아닌, 이야기 중간중간에 적절히 배치해놓음으로써 독자가 자연스럽게 심리학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를 지루함 없이 따라가게 할 수 있게 한 데에 있다. (좀 더 정확한 설명이 필요한 것은 중간중간 한페이지 분량으로 요약되어 있는데 이 또한 딱딱하지 않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내담자의 심리에 솔직히 많은 공감은 되지 않는다. 그는 나보다 너무 많은 것들을 갖고 있으니깐(돈, 차, 집 기타 등등.. OTL.. ) 하지만 고백하건데 화장실 거울을 통해서 (허경환 버젼의) '이정도 생겼으면 ~ ... ' 하는 생각을 한번쯤 가져본 (평범하다고 우기고 싶은) 1인으로써 '나르시시즘'은 10g쯤 공감은 한다. 사실 돈이 많든 적든 이정도의 '나르시시즘'은 공감할 수 있지 않겠는가?(솔직해지자!) 사실 생각해보면, 별 문제없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과거도 어느부분엔가 뒤틀려서 지금 우리가 결핍한 어떠한 것을 구성할지도 모를 일이고 말이다. 실제로 우리가 정상 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위험하고 오만한 우리의 인식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깐.

 

방어와 회피가 무너지고 내담자가 마음을 여는 과정에서 우리는 백프로 같지않더라도 대부분은 조금이라도 겪을 그런 강요와 요구로 만들어진 자신의 모습을, 많은것들이 결핍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사회적인 측면에서 나와 많은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 상담자의 과거 '관계를 형성하는 슬픈 패턴'은 누구에라도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었다. 그것을 맞닥뜨리는 프로스트 교수의 치료는 사실 굉장히 사회성이 포함된 문제들을 불가피하게 그의 소임인 심리학 분야가 해결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최선을 다해 치료하는 셈이다. 사회적 혹은 고질적 문제가 어느정도 베이스가 되는 만큼 우리 또한 완벽하게 다르다고 할 수 없으니 우리에게 무엇이 결핍되었고 우리 스스로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찾아주는 프로스트의 이야기는 그래서 매력적이다. 제때에 감정을 나누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해서 타인에게 그것을 찾으려고 안달하는 내담자의 모습이 우리와 완전히 동떨어지는 것은 아닌, 혹은 멀리 떨어저 있지 않은 주변인들의 모습은 아닐까.


왜곡된 과거로 인해서 리얼리즘에 입각한 이야기와 조금은 독특한 (속을 알수 없어 답답해 보일만한 표정의) - 회의적인 캐릭터(프로스트 박사)는 어쩌면 심리학에 대한 어떤 신비함없이 접근하는 인물의 모습을 적절하게 표현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특히나 책의 뒤에 수록된 '부록' 에서 보여지는 프로스트 교수의 내면에 대한 맛뵈기는 어딘가 부정적이고(심지어 졸려보이는) 캐릭터에 대한 근거를 언뜻 짐작하게 해준다는 면에서 보면, 이후의 펼쳐질 내담자들의 상담사례 뿐만이 아니라 '프로스트 그 자신의 심리'에 대해서도 무척 궁금해지게끔 만든다. 프로스트 박사의 내면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짧은 부록과, 그 실명에 대한 SD의 네컷 만화는 충분히 그 부록으로써의 역할 이상을 한다.

 

내용에서 언급하는 성질(상담자에 대한 심리적 퍼즐)들을 컷구성에까지

적용하며 그것들을 좀 더 뚜렷하게 받아들이게 연출한 부분들


이 만화를 통해서 심리학이 뭔지 정확히 알았다는, 알려는 성급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심리학에 대한 흥미를 줄 수 있는 만화이지, 어줍잖게 심리학을 배웠다고 말할 수 있는 만화는 아니다. 그럼에도 작가는 가장 서두에서 '우리는 돈, 건강, 집의 구조, 교육, 심지어 배우자의 선택 까지도 전문가에게 맡기고 있는데,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우리의 정신-마음은 그동안 우리에게서 얼마나 홀대 받았는가. 정신과 라고 한다면 마치 미친사람들만 가는 것으로 생각하듯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자.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고, 상식으로 생각했던 모습들이 과연 얼마나 실제적으로 존재하는가? 이것은 거의 '반쯤' 미쳤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다. 그렇다면 거기서 우리는 무균실에 있는 것처럼 '정상'일까? 그렇다면 '정상'의 기준은 뭘까? 어떤 정신이든, 마음이든, 심리든 일정이상의 오염은 있다. 다만 그것이 일상을, 삶을 좌우하느냐 아니냐가 문제일 따름이다. 마음이 아프면 당연히 '마음에 맞는 병원'에 가야 한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만화는 그 이야기를 '이야기'로써 '재미'로 풀고 있다.


인간은 거의 비슷하다는 것도 심리학자들의 편의를 위해 그런것일수도있겠지만 이유야 어쨌든 각각의 인간에게 매번 다른 방식으로 치료를 한다면 그것은 학문에 의거한 치료가 아닌 그저 만남의 하나일뿐 일 것이다. 수많은 병이 있지만 결국 분류될 수 있고 많은사람들을 만나도 그것이 어떤 고유한 그룹으로 묶여질수도 있듯이 말이다. 프로스트의 말대로라면 인간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본능적으로 찾고 채워가려고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만화를 만나고자 함은. 만난 것은 무엇을 채우기 위해서 였겠는가.

 

조교인 윤성아의 안내와 실제 책 사이에 꽂혀있는 닥터 프로스트의 명함.

이 충돌이 주는 기묘한 느낌이 내 뒷통수를 쳤다. 머스트 해브 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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