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만화 구두 세트 - 전4권
박윤영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들어가며...

 

인간을 정신적, 신체적으로 유지시켜주는 '사랑' 이라는 개념을 인류가 처음 정립하기도 전에 이미 사랑은 흔한 이야기였을 테고, 지금도 흔한 이야기이며, 앞으로도 흔한 이야기일 것이다. 문학, 음악, 영화 그 어느것에서든 '사랑 이야기' 를 빼놓을 순 없다. 반복에 대해 금방 싫증을 내는 인간이 어떻게, 사랑에 대해 이토록 꾸준하고, 끊임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걸까. 근원적인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필연적인 이유는 단순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여전히, 끊임없이, 쭉, 다시 또 사랑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멀리 떨어질 순 있을지언정, 결코 삶과 분리될 수 없는 그 소중한 감정이, 바로 '사랑' 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 했었거나, 하고 있거나, 앞으로 하게 될 것, 그리고 그래야만 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 이니깐

 

사랑을 원하지 않은 사람은, 그 감정을 모르는 사람뿐 아닐까. 한번 그 감정을 넘어온 삶은 다시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미뤄둔다고는 하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사랑'. 난 그렇게 생각한다. 사랑에 대한 두려움조차도 결국은, 이전보다 덜 아프고 좀 더 안정적인 사랑을 원할 뿐 아닐까.

 

 

 

내가 좀 더 사랑하면 되지. 뭐, 가끔씩은 훨씬 많이?

그렇다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잖아.

 

 

 

예술가에게는 muse로 일컬어 질만큼,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창조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 창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자본주의 시대에, 누군가는 사랑을 이야기 하기 위해 상업 속으로 뛰어들어 사람들과 만나고, 누군가는 상업속에서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사랑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중에서 어떤 것들은 사랑받고 인정 받는 작품이 되는 반면에, 어떤 것은 별볼일 없는 작품으로 치부된다. 물론 그것을 구분하는 것은, 언뜻 보기엔 '재미'다. 어느것이든, '재미'없이는 선전하기 힘들다. 평가와는 또 별개로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인지하든 아니든, 그 재미보다 더 우리에게 오래도록 남는 소통의 과정은 바로 '공감' 이 아닐까. 사랑은 모든 것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소용돌이다. 어떤 행동또한 내면에서의 태풍이 밖으로 튀어나온 것일 뿐이다.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바로 그 '사랑의 감정'에 우리가 공감 하느냐 아니냐.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것을 기억하느냐 아니냐가 된다.

 

 

"사실 난... 잊은 것도 아니고 정리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뎌진 것도 아니고 그때의 기억을 그대로 토막낸 채 묻어뒀던 거다. 스스로를 치유할 자신이 없어서... 피가 철철 흐르는 모양 그대로... 내 안 가장 깊숙한 곳에 묻어뒀던 거다. 그리고 그 애를 잊는 대신 그 상처를 묻어뒀단 사실을 잊고 살았다." (16)

 

 

'사랑'에 대해 이토록 생생하게 현실적이면서도,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공감을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흔하진 않은 것 같다. 이 만화가 그다지 특별하다고 말할 순 없을지도 모르지만,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남여를 불문하고(아무래도 여자들이 더) 이들의 '사랑의 감정' 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을 것이란 사실 이다. 박윤영 작가가, 사람을 위해 사랑을 이야기 하는지, 사랑을 이야기 하기 위해 사람과 만나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작가가 가진 감정없이 우리의 감정을 설득시킬 수 없지 않겠는가 하는 것 뿐.

 

 

 

 

 

 

 

 

이 이야기는... 

 

 

 

 

 

보다 보니 계속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좋아지고, 그래서, 그 짝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는 출장에서 예쁘게 꾸미고 싶어하는 여자, 지후. 잡지에서 우연히 본 '좋아하는 사람에게 예쁘게 보이려면 2cm 더 높은 구두를 신어라' 고 하는 기사를 읽고는, 현관에서의 단 한순간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시작된다.

 

 

 

 

 

 

그녀가 좋아하는 태수는 그의 직장 상사이자, 이제는 사랑을 기대하지 않는 남자다. 마치 친절한 바람둥이 같게도 보여지는 그는 (자세히 언급 되진 않지만) 더이상 사랑에 모든 것을 쏟아낼 자신이 없어하는 남자다. 처음엔 사랑한번 못해본 여자처럼 순수하고 조금은 바보같기도 한 지후의 마음을 확인하고, 그에 따른 호감으로 접근했다가, 서서히 지후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그를 오랜 시간동안 짝사랑 하고 있던 같은 직장의 임주임 과, 뒤늦게서야 지후의 사랑을 깨닫고 다시 그녀 앞에 나타난 지후의 첫사랑 연호. 이 넷 사이에 펼쳐지는 미묘하고 복잡한, 아프고도 달콤한 사랑이야기가 바로 이 <여자만화 구두> 다.

 

1권 말미에 수록되어있는 짧은 글인 <여자와 구두, 네버엔딩 스토리> 에서 보면 구두에 대한 여자의 입장은 참 복잡하면서도 단순하다. 표면적으로는 남성에게 좀 더 예뻐보이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면서, 반면에 좋아하는 남성에게 '연락처'와 같은 장치로써 예전부터 상징되어 왔던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또 구두를 통해 남여가 이어지는 이야기가 전세계 500여 종이나 있다고 하니, 구두란 것은 단순히 미적인 차원을 넘어, 어떤 브릿지와 같은 셈이다. 마지막 부분에, 구두와 사람의 조합을 '짝'으로 표현하는 것에서 '사랑은 한 사람만으로 완전해질 수 없다'는 의미를 찾는 것을 통해서 구두와 사랑의 상관 관계를 한번 더 짚고 넘어갈 수 있다.

 

 

 

아무도 안 만나고 관심도 없고

진짜 말라 비틀어졌다고.

 

 

지후에게 구두란, 좋아하는 사람앞에서 자신을 더 내어 주는 것이다. 특히나 꾸미는데 서툰 지후가, 더 높은 힐을 신는 것은, 약간이라도 더 큰 고통을 감내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예쁜 모습을 보이기 위함이다. 그러니깐 그것은 자신이 양보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늘리고, 그렇게 덜어낸 자신안에 사랑을 채워가길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후에게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후의 마음은 복잡하다. 태수와 점점 가까워지면서도, 과거에 오랫동안 사랑하면서도, 결국 그 상대방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는 괴로움으로 많은 것들이 두렵기만 하다. 자신이 또 그때처럼 상처받는건 아닐지, 또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그리고 거기엔 첫사랑이었던 연호와, 태수와 친하게 지내는 임주임의 존재가 지후를 더 혼란스럽고 답답하게 만든다.

  

아픈 과거때문에 많은 것들이 조심스럽고, 두려운 지후가 그럼에도 보고싶어서 밤중에 택시를 잡아 찾아갈 정도로 자신의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것때문에 또 두려워하는 나날들 속에서 무척이나 섬세하게 그려지는 '감정'은 깊은 공감과 몰입을 자아낸다. 더불어, 반대에 입장에 놓여있거나 혹은 비슷한 심리를 가진 인물들인 연호, 임주임, 태수와 같은 주연 캐릭터의 심리를 통해서, 그리고 지후의 절친한 친구인 수영과 같은 조연 캐릭터를 통해서 사랑에 관한 더욱더 많은 감정들을 이야기 함으로써, 다양한 감정을 체험하고, 돌아보게끔 해준다.

 

특히, 2권과 4권에 실린 외전 중, 2권 끝에 실린 외전1 '지후와 연호, 그 전의 이야기' 는 지후가 첫사랑인 연호와 만나고 헤어지면서, 현재의 지후가 되기까지 얼마만큼의 슬픔과 혼란을 겪고서야 비로소 지금만큼 될 수 있었는지 굉장히 섬세하게 그려낸 부분이다. 그동안 결국 스스로 버텨왔어야 하는 감정의 부분에 있어서 이 부분의 묘사는 어쩌면, 이 만화에 있어 가장 높은 감정의 밀도를 보여주는 부분일지도 모른다고 본다.

 

난. 누군가를 그토록 좋아하는 일을.

그 마음을 놓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주변인들의 도움과 그들 자신의 사랑과 지혜 덕분에 앞서 말한 것처럼, 어쩌면 결말이 놀랍지 않을수도 있다. 독자가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 바로 이 만화의 결말일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이 책은 특별하다. 페이지는 쉽게 넘어가지만, 문득 문득 그 행동을 길게 멈추게 하는 부분들이 적지 않다. 그 사이사이에서 나는 지나온 시간들을 쉼없이 돌아보고 또 돌아봤으니깐. (내가 남자이기에 공감의 방향이 같진 않겠지만 말이다.)

 

구두는 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깐, 좋아하는 이성에게 잘 보이기위한 구두가 - 그 마음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어, 다시금 다른 '구두의 모습 - 사랑의 감정' 으로 그녀에게 도착할 것이다.

 

 

 

 

 

 

<여자만화 구두>를 대하는 남자의 태도

 

 

다시 또 누굴 그렇게 좋아할 수 있고,

또 안좋아할 수 있다는게... 반복하니까 우습잖아.. 

그냥, 누굴 좋아하는 거 내가 만든 환상 같은게 아닐까

 

 

여자만화를 남자가 봐야하는 이유는 어렵지 않다. 바로 이것을 보고 여자가 '공감'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충해서는, 여자들의 심리와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 이해라는 어려운 과정을 넘어보는 시도는 일련의 '노력' 들이 필요하다. 필요한 수 많은 노력들 중에 만화책 한권 읽는 그 노력이 어렵다고 할 사람은 없을 터.

 

 

이 책을 읽을 적잖은 남자들은 어쩌면, 사랑할 그때에 항상 최선을 다해왔던 똑똑한 남자가 아니라면야, 이 만화속 어딘가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알았던 그녀들의 수많은 감정들. 어쩌면 단순함에도, 바보처럼 알지 못했던 감정들과 함께.

 

적어도 나 때문에 싫은 걸 참지 말고, 억지로 하거나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사실, 제목에서부터 밝혔 듯, 대놓고 여자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건 맞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그러지 말아야 할' 남자의 모습과, '그래야 할' 남자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만약 양쪽 어딘가에 속해있다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양쪽도 아니라면, 싼 값에 자신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 지 배우는 셈이다) 어쩌면, 이런 부분이 여성판타지적 인 것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이 만화가 '이런 남자가 되라' 라고 말하진 않는다. 다만 '이런 남자라면' 여자들은 이렇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긍정, 부정의 결과를 낳기도 하고, 그에 따라 자신도 행복하거나 아플 수 있다.' 란 것을 지후를 비롯한 여러 캐릭터들을 통해서 직접적, 혹은 반사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자신을 돌아보거나, 하다못해 여자의 감성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데는 매우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이 심리학 책이나 여자에 대한 연구는 아니기 때문에 그럴 목적으로 볼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다만 그런 점도 있다는 것 임을 말하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결국, 모두의 사랑 이야기

 

 

 

어떻게 보면 참 신기하다. 분명히 다른 시간, 다른 공간, 다른 환경, 다른 사람과, 다른 모양의 사랑을 했을텐데, 한 가지 이야기에 공감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의 외부의 모습이 아니라, 그 안의 어떤 감정이기 때문인 것 아닐까. 나는 남자인데다가, <여자만화 구두>에 나오는 것과 판박이처럼 똑같은 경험도 아니면서도, 그 감정의 모양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곳에서, 나를 돌아봤고, 어떤 곳에서 누군가를 돌아봤다. 사실, 이 만화를 읽는 시간 내내 살아온 모든 시간을 돌아보고, 살아갈 어떤 시간을 기대해 본게 맞다. 그것은 분명 내가 아니라도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이 만화가 내게 준 감정에 대한 '공감'의 힘은 무척 강력하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애써 '남여' 혹은 '여남'을 구분하지 않아도 가능하다.

 

아직 아픈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여자가, 사랑을 믿지 않는 남자와 만나, 정말로 사랑이 사랑스러워 지기까지의 서러움과 눈물, 기쁨과 낭만의 나날을 보내는 한달여의 짧은 과정,

그러니깐, 연애에 있어 우리가 가장 아름답고 선명하게 기억하는 그런 부분들, 아직 서투르고 어설프고 알아가지만, 그만큼, 상대의 모든 것을 간직하고픈 시간들이 유리처럼 반짝거리며 이 책 안에 녹아들어 있다.

 

저 사람과 함께라면 내 과거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순간이 오게 될 거라는 

 

 

옛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아파하고, 그리고 또 새 사랑으로 가슴 설레어 하는 지후의 모습에서, 그것이 여자든 남자든, 자신이 품고있는 지난날의 열병을 조금이라도 이해받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마음을 향해 또 설레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만화를 많이 읽는 편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감히 말하자면, 이 <여자만화 구두>는 내가 지금껏 만화를 읽고선, '조금이라도 더 일찍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준 최초의 만화가 아닐까 싶다.

 

 

나는 이제 운명 같은 건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세상 어딘가엔 꼭. 반드시. 반드시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도 결국은 서로 사랑하게 될 그런 두 사람이.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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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쓸데없이 길게 늘어놓은 얘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이 만화를 보는 순간, 그 누구라도,

사랑, 연애, 결혼, 구분없이 무언가는 하나 하고 싶어 근질이 날것이다.

그러니까 다 필요없고, 아니 딱 필요한건, 고만 전전긍긍 하고,

 

 

 

 

이 만화를 덮는 순간, 누가 말려도, 절로 그러고 싶어질 테니!

 

사실 이 <여자만화 구두>는 정말로.. '본격, 연애 권장 만화'

(이미 하고 있는 분은... 범사에 감사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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