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하라 - 박노자, 처음으로 말 걸다
박노자.지승호 지음 / 꾸리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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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좌파란 말이 매우 거북스럽다. 내가 아는 좌파란, 북한과 소련과 연결되어 있는 지점이며, 그것은 곧 공산주의를 통해 몰락한, 그리고 언젠가 몰락하리라 기대하고 있는 주체사상과 세습독재의 나라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니깐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뿐일까. 자세히 생각해보면 내가 그 좌파란 말을 거북스럽게 생각하는 이유는, (소위) 보수라고 칭하는 성향의 사람들이 현 정권, 집권당에 대한 반대를 비난하며 항상 빠지지 않는 수식어가 바로 좌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좌파가 마치 이 세상에서 반드시 사라져야할 불순물처럼 갖다대며 모든 의견들을 '빨강색'으로 통일시킨다. 내가 거기에 속으로 반박하는 논리는 간단하다. '나는 좌파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닥 관심도 없다 (이것은 당연히 자랑이 아닌 솔직한 내 생각일 뿐) 그저 현재의 정치와 사회가 잘못되어있다고 생각할 뿐이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기 위해 최소한 지금 너희들은 '최악'이라고 생각할 뿐이며, 그래서 최악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차선책인 진보를 선택한다. 그러니 나를 북한과 연결짓지 마라.' 나는 늘 북한군과 북한 노동당 그리고 북한주민을 나눠서 생각하려고 하지만, 그들이 항상 결부시키려고 하는 지점은 북한의 온갖 악폐습과 직접적 군사위협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전쟁전후의 세대나, 직후의 세대들에게 전쟁은 생각하기도 싫은 살육과 고통, 가난의 시대였을테니 사실상 보수세력과 보수언론들이 끊임없이 북한을 들먹이며 소위'물타기'를 시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네들이 본다면 우리처럼 북한에 대해서 '일정이상 옹호적인' 태도를 지닌 젊은 이들은, 휴전이 오래되고 전쟁을 겪어보지 못해서 안보의식이 형편없는, 걱정되는 젊은이들일 뿐이니깐. 하지만 정말 좌파란 이념은 정말 이제는 북한에서 조금 떨어뜨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먼저 언급되진 않지만, 우선 가장 시급한 문제는, 좌파의 단어를 보수들이 생각하는, 그래서 우리도 그것을 방어하며 역설적으로 인정하게 되어버리는 북한과의 고리를 끊을 필요가 있었다. 박노자는 좌파라는 말을 북한이나 소련 등 '왜곡된 형태의' 좌파, 실패한 사회주의 와 벗어나야 함을 역설한다. 그것은, 짧게는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고, 길게는 진정한 좌파는 그런 좁은 의미가 아님을 일깨워 준다. 그리고 그렇게 왜곡되고 잘못되어진 좌파, 사회주의 국가의 실패한 예에서, 무엇이 부족했고 무엇이 더 필요한지 이야기 한다. 이것만으로도 일단 수확이다. 좌파란 단어는, 이 나라의 보수들이 늘 그렇듯, 그런 왜곡되고 오용된 나라에서 찾을 것이 아니란 말이다. 설령 그 예에서 좌파의 성향이 포함되있긴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가 부르짖어야 할 좌파성향의 일부가 공유되는것일 뿐이지 그 형태와 지향점에서는 무척이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논리는 당연히 현재 한국사회에서 좌파=진보 라고 인식되는 많은 스타급 정치인과 방송인들을 다시금 살펴본다. 처음엔 특히나 그런 것들이 많이 불편하다. 앞서 서두에 언급한, 내가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이라고 선택하려하는 이들을 다 까고나면 도대체 나는 어쩌란 말인가. 나는 실현가능한 변화의 인물에 집중하고 있는데, 아무리봐도 가능성이 없어보이는 인물들에 기대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좀 더 읽다보면, 좀 더 생각하다보면, 좀 더 들여다 보면, 박노자는 (물론 자신의 생각에 따라 옳다면 그럴때도 있었지만) 그들을 부정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과 지향적인 지점에서 보았을 때 그들(진보의 대표적 정치인이나 언론, 방송인)의 현재 태도와 행보가 갖는 한계를 지적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박노자는 대통령이 바뀌면, 정권이 바뀌면 대부분의 문제들이 해결되리라 믿는 우리의 망상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나아가 박노자의 분석은, 한국 뿐만이 아니라 유럽에서의 정치성향, 유권자들의 성향의 근거를 분석하며 우리나라의 진보세력이 갖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유럽의 사례들과 비교한다. 그래서 우리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그것이 곧 진정한 좌파의 길임을 역설한다. 그의 꿈은 타협적인 진보도 아니고, 소위 '북한or소련'스러운 체제도 아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신자유주의 와 자본주의의 폐단이며, 그것을 근본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기득권의 보수를 찍는 것도, 타협적인 진보를 찍는 것도 아니였다. 박노자가 말하고자 함은, 마치 민주주의의 힘이 오로지 그것인 마냥 부상한 투표가 아닌 그것을 뛰어넘는 자발적 참여와 연대를 통한, 이 사회의 '개혁' 이다. 정치참여로는 결국 한계가 있으며, 지금껏 많은 문제들이 그것을 증명해왔다. 우리가 정말 열어야 할 지점은, 사회구조의 개혁이다. 결국 좌파들이 저지른 스스로의 여러 잘잘못과 환경적 요인들, 그리고 그에 따른 시민들의 조금 섣부른 외면으로 인해서, 지지 받는 보수와 지지받는 진보 양자 택일만이 계속해서 화두로 여겨지는 경우 우리의 미래는 여기서 더 나아질 수 없다는 게 박노자의 생각 아닐까.

 

솔직히, 좀 불편했다. 서두 및 중간에도 언급했지만, 내 정치적 성향과 일정부분 같지만 또  일정부분 다른 다르며, 내가 옹호하는 현상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시각도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대체 그래서 어쩌란 건지' 란 생각도 종종 들었다. 그럼에도 박노자의 이야기는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현재의 체제와 정치현실, 사회의 모순을 매우 날카롭게 풀어낸다. 특히나 어떤 특정 학문에 구애받지 않음으로써 당연히 한계를 긋지 않으며, 그로인해서 무척이나 확장된 시야를 갖고, 나아가 더 넓은 가능성을 심어준다.

 

아직 좌파가 무엇인지는 완벽히 정리가 되진 않는다. 어떻게 나아가려고 한다는 것인지도 완벽히 정리되진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점은, 이제는 더이상 '좌파'란 수식을 마치 실패와 전쟁의 색(色)처럼 불러대는 이들에게 주눅들지 않을 것이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틀린' 용어로 우리를 조롱함에도, 우리가 그 뜻이 추구하는 '진짜'를 알고 있는 한 의기소침해질 필요가 없다. '그래 나 좌파다!' 하고 떳떳하게 외치기 위해서 내게 남은 숙제는, 누군가 내게 왜 좌파를 지지하느냐 라고 말할 때 명확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좀 더 체계화된 정리이며, 내가 하나의 정말 잘 정의된 좌파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그 수많은 편견과, 의도적으로 왜곡된 색깔론에서 자유롭지는 않을 테지만, 세상은 항상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던 것들이 가능으로 바뀌었다고 얘기한 박노자 처럼,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왜곡된 사회주의를 넘어서서, 우리가 진정 꿈꿀 수 있는 - 진정한 좌파가 꿈꾸는 더 살기 좋은 세상을 꿈꾸고 싶다.

 

'좌,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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