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서재 - 최재천 교수와 함께 떠나는 꿈과 지식의 탐험 우리 시대 아이콘의 서재 1
최재천 지음 / 명진출판사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처음 본 이 <과학자의 서재>제목에 대한 느낌은 언뜻 보기에, (아주 창피할만큼 단순하게도) '과학분야에 국한된 책 소개가 주된 주제가 아닐까' 하는 편견아닌 편견. 책을 읽기 시작하다 보니, 그것도 참 쓸데업는 기후에 불과했던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일단 서재라는 책의 제목에서 조금 떨어져 보자. 실제로, '책을 추천하는 책'은 참 많기도 할 것이다. 내가 알고있거나, 혹은 갖고 있는 책만해도 벌써 몇권은 되니, 내가 모르는 세상에 그 많은 책들 중 '책을 소개하는 책'들이 오죽하겠는가. 물론 이 책의 말미엔 저자인 최재천이 소개하는 몇권의 책이 언급되기도 하고, 이런저런 책들도 직,간접적으로 언급되긴 한다. 하지만 그렇게 이 책을 소개하는 것은 어불성설인듯 싶다. 이 책은, 책을, 그리고 자연을 사랑했던 한 소년이 특별한 과학자로 성장해가는 성장담이다.

 

누가 보면 궁색한 과거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책 과 사람을 동일시 하는 것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본 것은 군대 훈련소 때다. 생소한 모든 것, 내일, 혹은 잠시 후도 알 수 없는 순간순간, 그동안 해왔던 많은 것들, 정확히는 거의 대부분의 것들이 통제되고 금지되고, 남은 것은, 하기 싫거나, 할줄 모르는 것들만을 남겨두었던 그때다. 아마 훈련소 입소식이 아니었을까. '이들과 함께 과연, 더 큰 소리를 낼 수는 있는걸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계속해서 예행연습을 하면서 소위 말하는 '군기'가 바짝 들어갔던 그때는, 실제 입소식 때 주먹을 쥔 손에 너무 힘이들어가서 파르르 떨릴 정도였다. 헌데, 그것을 기억나게 하는 것은 그때 훈련소대 대대장이 해줬던 짧은 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충 기억하기론 '다들 책을 읽을 텐데, 한 사람이 살아가는 역사는 한권의 책과 같다는 것, 즉 여러분 주변에 있는 전우들 이나 조교들 혹은 간부들 모두가 하나의 책과 같으니 많은 것들을 주의깊게 지켜보고 배우라' 는 말이었던 듯 싶다. 많은 시간이 지난 이야기라 내가 어떤 말을 빼고, 어떤 말을 더했는지는 모르겠지만,(아마 그나마 좋은 축에 속하는 기억으로 간직하니, 미화했을 확률은 많겠다) 그때의 훈련소가 얼마나 부조리 했든, 군생활이 어땠든 간에 상관없이 나는 그 말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다. 왜냐하면, 어쨌든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니깐.

 

자, 우리가 들고있는, 종이로 되있는 종이책, 혹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태블릿PC 나 스마트폰 등으로 보는 E-BOOK 이 갖고 있는 책의 개념을 잠시만 내려놓자.

 

 

한권의 책으로 분한 그의 삶을 따라가보자!

 

 

마치 가까운 아이들에게 설명해주듯, 따뜻하고 부드럽고, 솔직한 그의 입담은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사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기도 하거니와, 딱딱하지 않게 설명해주는 옛날이야기와 같은 그의 이야기는, 책을 손에서 놓기 힘들게 한다. 또한, 성인 독자뿐만 아니라 청소년 독자또한 고려한 듯한 (보통의 소설보다) 좀 더 넉넉한 줄간격은 편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기본적으로 독서는 내가 즐겁기 때문에 하지만, 때로는 곤욕이 될 때도 있는 반면에, 한 과학자의 삶을 '들어보는' 이 책은 마음 편하기만 하다. 그가 고향인 강릉에서 느꼈던 어릴적의 '편안함' 과 '그리움'만은 못할지라도 말이다.

 

지금과는 다르게 중학교부터 시험을 봐서 들어가던 시절, 대다수가 이제 동등하게 대졸이고, 그래서 자격증에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지금 세대와는 다르게, 공부를 잘하고, 일류대를 나오는 것이 곧 최고의 성공이라고 일컬어졌던 그 시대에 육군 간부의 아들로 태어난 저자는, 그때의 어머니의 교육열과 (시대가 변해도 교육열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 듯 하니 가타부타 긴말 할 필요는 없겠다.) 아버지의 발령으로 인한 이유로 서울로 전학오게 된다. 중학교부터 시험 성적으로 결정할 수 있고, 또 그것이 대학입시와 이어져 있기에, 저자는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과외도 잠깐 받아가며 공부를 하게 된다. 공부는 썩 잘하는 편이었지만, 본디 자연에서 노는 것을 좋아해서, 초,중,고등학생 동안그는 방학때마다 강릉에 내려가 자연을 벗삼아 놀았고, 서울에 있을 때도 남산에 올라가서 친구와 함께 시를 쓰며 놀기도 했단다.

 

하지만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그가 그렇게 강릉에 내려가지 못하고, 서울에서 공부하는 동안의 남는 시간에 읽었던 책들이다. 물론 무슨 책을 읽었느냐는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얼마나 책을 사랑했었는지는 중요한 사실 같다. 온갖 다양한 것들이 담겨있는 '백과사전'에 엄청난 흥미를 느끼고 접했던 그의 책과의 인연은 '동화전집'으로 이어진다. 그것들이 그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더 풍부하게 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않게 짐작이 가능하다. 나아가, 자연과 한데 어울리길 좋아했던 그는, 그런 감수성 때문인지, 중학교 때 충동적으로 친구따라 참가한 백일장에서 시(詩)를 통해 장원을 하게 되면서 시인을 꿈꾸게 되기도 하고, 고등학교때는 미술선생님에게 스카웃되서 미술반에 들기도 한다. 그리고 '노오벨상수상전집' 을 통해, 어렴풋하게 과학과의 만남을 시도한다...

 

간략하게 설명하려고 했는데, 어느새 이야기가 길게 풀어져 버렸다. 어쨌든 중요한 요는, 소싯적부터 '자연을 벗삼아' 놀며 시 와,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를 좋아하며, 그러니깐, 기성세대가 본다면 소위 그냥 '놀기 좋아하는' 아이였던 그가 처음부터 과학자의 꿈을 꾸게 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내가 위에 설명한, 그가 기술한 삶의 반정도 되는 대학입시 무렵까지 그는 시, 소설, 미술, 등 꽤 다른 분야에서 많은 고민들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꿈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의 모습과 언뜻 닮기도 하면서도, 또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있다.

 

그런데,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그의 방황은 계속된다. 전공분야는 있었지만, 거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뿐더러, 그 계열에서 그가 자신의 진로를 명확히 결정하고 그 길로 나아가는 데에, 여전히 많은 고민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그의 길을 인도해준 것은 '한권의 책' 이었다. 그것은 바로 <우연과 필연>이라는 책이고, 그 일화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 책은 내게 생물학이 그저 흰 가운을 입고 세포나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인간 본성을 파헤치고 철학을 논할 수 있는 학문이란 걸 알려줬다. 그 책은 내게 생물학에 몸바쳐도 된다는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다" 155p

 

내가 그의 삶의 태도 에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나는 무엇을 할 사람'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태도다. 그것이 어떤 확고한 삶에 대한 의지와 자세로 이어지고, 나아가 그렇게 살아간다면 멋진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삶은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의 제약에 이끌리기도 하지만, 어쩌면 자신이 꿈꾸던 것이 다른 모습으로 발현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을 '시인이 될 사람' 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지금 과학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그때의 감수성, 언젠가의 철학적 사고, 인간에 대한 따뜻함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차가운 증명과 무한실험'에 그치는 과학자가 아닌, 감성 풍부하고 철학적이고, 마음 따뜻한 과학자가 된 것이다.

 

그가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많은 갈림길에서 선택을 해야했고, 그런 순간순간들은 책이 길을 가르쳐준, 혹은 책을 통해서 바뀌게된 태도가 많이 눈에 띤다. 하지만 내게 더 강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그가 어떤 구불구불하고 불확실한 길을 걸으면서 방황하고 또 방황하며, 머뭇거리다가도 달리고 마는, 마침내 자신의 길을 찾는 과정이었다. 지금의 내가 그런 길 위에 서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렇게 자신만의 삶을 찾은 저자의 모습이 무척이나 멋졌다. '최재천 이라는 책'을 읽어보니, 정말로 과학과 사회, 인간에 대한 종합적인 통찰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의 다른 저서도 얼른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 정도다.

 

 

 

지금 만약, 원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다고 해도 그것이 '실패'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어쩌면 거기서, 우리가 꿈꿔오던 꿈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거기에는 어떤 '각성'이 필요하고, 또한 그 각성이 그저 자신에 대한 '위로'로 여겨지면 안될 것이다. 길을 찾는데 책이 전부는 아니지만, 또 책이 아닌것도 아니다. 어떤 한권의 책을 '잘' 만나는 것은 가장 저렴한 대가를 통해 삶을 바꾸는 일이 아니겠는가!?

 

저자인 최재천이 풀어놓는 아주 솔직한 삶의 애환과 방황을 통해서, 삶에 대해 조금은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꿈을 찾으며 방황하던 그의 나날, 그리고 선택의 연속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인생을 바꾼 요소요소에 있는 몇권의 책들, 그리고 그가 추천해준 몇권의 책들을 꼭 한번 읽어봐야 겠다. (신문에서 서평을 쓰기도 했던 그의 경력대로, 소개하는 책에 대한 이야기 또한 아주 재미나다) 읽다보면 언젠가는, 내게도 그런 책들이 있겠지. 어쩌면, 한권의 책들에서 느꼈던 작은 울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과 더불어 책과 같은 사람, 어느 하나에도 소홀함이 없어야겠다. 치열하게 읽고, 치열하게 방황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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