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1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 착수 미생 1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바둑에서는 두 집을 지어야 완생 이라고 한단다. 두집을 짓지 못한 것은, 완생이 아닌 미생. 즉 아직 완전히 살지 못한 것이라 한다. 사는게 사는게 아니라는 흔한 넋두리가 얼핏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살아있지만 제대로 살아있지 못한 것을 비유한 그 바둑의 순리를 생각해보며 나를 돌아보니 적잖이 뜨끔거린다. 삶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한 한 걸음이 한 수 한 수 바둑을 두듯 펼쳐지는 이야기는 어쩌면 특별한 환경, 특이한 과거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면 중요한 것은, 누군가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심정으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와 다르게 제대로 살겠다는, 흔하지만 중요한 그 마음가짐에서 부터.

 

 

1989년 세계 바둑대회의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녜웨이핑과, 우승후보로 거론되지도 않았던 조훈현의 결승에 대한 이야기로 미생은 시작된다. 미생은 하나의 직장인 만화에서 차별화됨은 물론이거니와, 삶 전반을 통찰력 깊게 바라보는 만화인 것. 그래서 어쩌면, 당연히 미생이라는 지점에서 부터 시작하는, 장그래의 시작은 결연하지만, 쉽지는 않다. 아직은 떠오르지도 못한 잠룡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자신을 누르고 있는 직장이라는, 세상이라는 수면위로 올라가 자태를 뽐낼 것인가. 펼쳐지는 그 한 수 한 수가 주옥같다. 그것은 장그래의 언행 뿐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하는 많은 이들의 모습에서 불쑥 드러난다.

 

 

어릴적 부터 바둑을 배워왔던 장그래는, 그 초반엔 마치 영재처럼 대접받지만, 언젠가부터 더이상 이길 수 없었고, 바둑이 자신의 평생의 업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만다. 그리고 지인에게 소개받은 두번째 직장은 종합상사. 자신에게는 오히려 그림자와 같은, 바둑이라는 수식어를 떼고서 백지의 상태로 부딪히는 승부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식 취업이 아닌, 인턴사원의 자격. 짧은 시간 직장 상사가 내리는 업무를 수행해야하며, 같은 인턴들과 함께 입사P.T를 준비하고, 또 한편으론 경쟁해야 하는 상황.

 

 

아직 적응하지 못한 채로 받아들이는 직장상사들의 소위 '갈굼' 또한 있긴 하지만, 그보다 아직 더 큰 문제는 동지이자 적인 동료 인턴들. 적당히 인상좋고,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으며, 그래서 함께 팀을 이룸에도 자신의 공을 더 부각시킬 수 있는 캐릭터로 보여지는 장그래는. 소위 '폭탄'으로 여겨지는데, 어쩌다보니 그는 그와 같은 '폭탄'으로 여겨지는 현장중심형 인턴과 한팀이 된다. 약간은 졸린 그 눈 처럼, 초반에는 끌려가는 듯한 장그래의 모습도, 서서히 바둑을 두던 때처럼, 상대방의 의중을 간파하고, 집중력을 끌어모으기 시작한다. 분명한 듯 때로는 흔들거리는 준비과정은 물론이고, 스릴과 긴장감과 있게 펼쳐진 입사 P.T는 장그래와 그의 동료들과의 중요한 시발점이자, 의미있는 한걸음이다. 준비과정 이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가장 첫번째 시험 관문과 같던 인턴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집을 짓기 시작하는 셈이다.

 

 

어떻게 보면, 바둑이 아닌, 직장생활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동안은 사실 바둑을 의식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장그래와 입사 동료, 그리고 사회라는 정글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이 행동 하나 하나가 마치 바둑과 같이 느껴진다. 특히 장그래가 온갖 시험에 부딪히고, 깨지고, 극복해나가는 것은, 그 자신이 바둑을 두던 때의 갈고 닦던 집중력과 통찰력 과 같은 바둑의 덕목들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바둑과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음에도, 여전히 그 단단한 힘들이 아래에서 그를 지탱하고 있던 것. 중간중간 계속해서 녜웨이핑과 조훈현의 대국을 중개하는 것과 그에 대한 전문가의 분석, 그리고 그것과 같이 나란히 성장해 가는 장그래의 모습은 직장인이든, 직장인이 아니든,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누군가와 이해관계로 얽히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주목할 수 밖에 없게끔 하나의 성장드라마로써의 역할에도 충실하다.

 

바둑에서 시작했지만, 바둑이 전면을 지배하지 않는, 하지만 끊임없이 바둑에서 길러질 수 있는 작은 덕목들이 직장, 사회 뿐만이 아니라 삶 전반에 펼쳐지는 모습은, 바둑을 모르는 이에게도 충분한 재미를, 바둑을 아는 이에겐 어마어마한 재미를...(줄것이라 본다.) 바둑을 모르면서도 참 재밌게 읽었다. 그럼에도, 바둑을 둘 줄 모른다는게 이렇게 후회스러웠던 때가 없던 것 같다. 바둑을 알면 얼마나 더 재밌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바둑을 모르는 독자들도 즐기고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장그래는, 그의 동료들은 어떻게 완생을 찾아갈까. 어쩌면 완생이 아니어도 좋을지도 모른다. 미완이지만, 그래서 흔들리고 때로는 퍼지지만 멈추지 않는 것이 생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언가 자신의 삶에 갈무리 할 수 있는 큰 의미를 깨달은 그 후를 완생이라 한다면, 장그래가 펼쳐나갈 완생의 모습과, 그 과정은 정말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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