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퍼니! - 디즈니.픽사 합작 20주년 아트 컬렉션
존 라세터 지음, 강진호 옮김 / 인간희극 / 2016년 3월
평점 :
품절


픽사 스토리룸의 원안 스케치들이 실린 디즈니&픽사의 아트북. 그 감성의 디테일이 어떻게 단순하게 시작되는지 보여줄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황선길 지음 / 범우사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어릴적, 애니메이션을 보며 꿈꾸지 않은 이가 얼마나 될까? 유아기 때부터 일정한 나이까지, 사람을 대신한 교육과 여가에 대해서 (옛날엔 '만화영화'란 말이 더 통용되었던) '애니메이션'은 시대가 변해도 그 활용도와 파급력이 작지가 않다. 현대의 바뀐 문화에 따라 게임, 영화 등 애니메이션을 대체하는 것들이 늘어만 가고 있기도 하지만, 여전히 애니메이션은 그 고유한 영역으로써, 그리고 그 외에 광고나 기타 영상효과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나리오, 나아가 스토리보드를 그리기 까지의 과정을 담아놓은 책이다. (물론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또한 포함되어 있다) 제목은 애니메이션 시나리오지만,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애니메이션의 기원과 정의, 개념에 대해서 먼저 짚고 넘어간다. 1/3이 조금 못미치는 분량에서, 저자는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독자에게 설명한다. 그리고 간과하기 쉽지만, 어쩌면 대단히 중요한 영화와의 차이점을 계속해서 짚어준다. 애니메이션은 그 동적인 부분에서 실사영화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선 애니메이션이 갖추어야 할 요소들이 분명한 것이다. 애니메이션이 애니메이션으 존재하기 위해서 말이다.

 

저자는 애니메이션의 특성에 대해서 크게 이렇게 요약한다. '생략', '과장', '왜곡' 하지만 이것은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하고, 필요한 부분을 영상으로 묘사해야한다고 한다. 물론 영화와 애니메이션은 나란히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공유했고, 실제로도 기술적으로 크로스오버 되기도 하며, 많은 특성들을 서로 차용하기도한다. 애니메이션 같은 영화도 많이 나와있고, 영화와 같은 애니메이션도 많이 나와있다. 더군다나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영화또한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생각해보면, 그동안 나를 즐겁게 했던 만화나 애니메이션들은 대부분 (특히 대상 연령층이 낮아질수록) 위에서 언급했던 특성들, '생략', '과장', '왜곡' 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잘 활용했었던걸 상기할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은 초기에 아동용으로 많이 제작된게 사실이다. 그래서 개연성이 크게 필요없는 개그, 유머러스한 작품들이 많았다. 당연히 시나리오의 중요성 또한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넓은 산업을 바라본, (아마 이것은 디즈니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러니깐 극장에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오는 어른들에게도 재밌는 만화를 보여주기 위해서 시나리오는 더욱 중요해졌다. 또한 초기에 시나리오만을 갖고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것에 대해 정확한 표현이나 감정이 부족함을 느끼고는, 시나리오에 그림을 포함시키던 것이 점차 늘어나 현재의 스토리보드 형태로 발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점차로 영화에도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은 시나리오에 대해서 앞서 언급한 애니메이션의 특징인 '생략', '과장', '왜곡'을 중심으로 영화와의 차이점을 비교해가며 설명한다. 기획에서부터, 시나리오의 조건, 그리고 실제적인 쓰기에 대한 것이나 캐릭터, 대사까지. 기초부터 폭넓게 접근하지만, 시나리오만 놓고 본다면 조금 아쉬운건 사실이다. 영화와 차이점을 갖고 있긴하지만, 기본적으로 관객을 '재미있게' 해야하는 동적인 영상매체로써, 영화는 시나리오 하나만으로도 엄청나게 두꺼운 책들이 나와있는데, 이 책에서 할애한 분량은 조금 외소하다랄까. 핵심은 짚어주고 있지만, 그것들을 세밀하게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해서는 압축된 감이 없지않아 있다. 애니메이션의 이해에서부터 특성, 시나리오 작법, 그리고 스토리보드, 부록으로 시나리오까지 일부가 수록되기까지, 폭넓게 접근함으로써 초보자에겐 좋은 개괄서가 되겠지만 전문적으로 약간은 아쉽다.

 

어쨌든, 개인 기록용으로 정리한 것들을 약간 덧붙여 본다면,

 

- 시나리오의 영상묘사는 1차는 영상으로 표현하다가 2차는 대사로, 더 부족한건 3차로 음악, 음향효과를 사용해야 한다.

- 시나리오 작가는 언제나 영상으로 표현하다가 최종적으로 막히면 대사의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또한 영상으로 표현한 것을 대사로 중복시키지 않는다. 시나리오 작가는 대사와 대사 사이에 많은 그림이 있다고 생각하고 숨은 그림을 찾아내야 한다. 설명보다는 간략하게. 

- 영상변화의 요소로는

 > 1. 형태의 변화

 > 2. 색채의 변화

 > 3. 사운드의 변화

 > 4. 시간의 변화

 > 5. 스토리의 변화 (과거, 현재, 미래의 이동 등) 이 있다.

- 작품의 흡인력은 등장인물의 성격, 외모를 얼만큼 뚜렷하게 묘사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인물은 외형보다는 성격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 시나리오 지문은 등장인물의 표정, 동작, 배경, 소도구묘사, 카메라 워킹을 서술한 부분이다.

- 모든 대사는 보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대사다. 주제와 연관돼 있어야 하고, 정확히 전달할 수 있도록 잘 선택해야 한다.

- 없어도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는 캐릭터는 등장시키지 말아야 한다.

- 성격의 변화는 필연적인 내적, 외적 변화에서 와야하며, 우연의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 스토리보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프닝, 내용전달보다 우선 보게끔 하는 요소가 중요하다. 

 

이 책이 애니메이션에 대해, 시나리오에 대해, 스토르보드에 대해 각각의 전문성은 아쉽지만, 한데 묶은 개괄서로는 그 역할을 다한다고 본다. 특히나 소싯적에 정말로 감동깊게 봤던 <흙꼭두장군>이 예시로 나온것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저자가 그 애니메이션에 제작에 참여했었다)

 

어쨌거나,

 

일본을 비롯한 국외에서 애니메이션은 여전히 영상장르의 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현재 한국은 아동용 애니메이션의 대박(뽀로로와 같은) 을 빼면 사실, 성인 애니메이션은 깊은 침체기를 맞고 있다. 최근의 <돼지의 왕>같은 작품들은 나름 괜찮은 성적을 거둔것으로 알고있지만, 천만관객시대를 여전히 잘 이끌고 있는 영화와 비교해보면 너무나 외소한 모습이다. 언젠가는 우리도 애니메이션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대접받는 날이 (다시) 오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명 화가들의 반란, 민화]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무명화가들의 반란, 민화 정병모 교수의 민화읽기 1
정병모 지음 / 다할미디어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문화에는 항상 주류와 비주류가 있다. 대중의 이목과 관심을 끌며 호흥받는 것을 주류, 대중에게 외면받고 특정 층에서만 호흥받는 것을 비주류 라고 한다면, 우리네 삶은 항상 주류와 가까이 가려고 애쓴다. 이 주류란 무엇인가, 길고 지난한 교육과 자본의 산물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미술교육과 좋은 화구들을 통해 그려진 많은 그림들이 우리가 알고있고, 만나려 하는 미술의 모습이다. 이것은 책, 영화, 음악 어느것에도 통용되는 것들이다. 대중은 항상, 우리 대중이 만들지 않은, 소수의 전문가들이 만든 작품들에 열광하고 탐닉한다. 실질적으로 그들보다 더 많은 이들의 대중이 '스스로' 이야기와 작품을 만듦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것들은, 앞서말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육과 좋은 환경에서 실제로 높은 퀄리티의 작품들이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또 반면에 그런 것들에 길들여진 인식이, 그런 형식의 것들을 높은 퀄리티라고 인지하기 때문은 아닐까? 길가에 핀 꽃 한송이에 관심을 기울이기 보다, 산천에 핀 수놓은 꽃들을 더욱 아름답다고 인지하기가 쉽듯이 말이다. 또한, 보통의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여러 작품들과 다르게 소위 배운 이들이 만드는 희소성에도 가치를 부여할 것이다.  

문학작품과 음악에 한해서는 왜인지 이런 예는 무의미할 것 같기도 하다. 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채색을 하는 것은 거의 성장과정에서의 본능적인 한 코스와 같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짓는것과 음악을 만드는 일은 그에 비해선 소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라서도 말이다. (이것은 표면에서 비롯된 상대성을 이야기한다) 

 어쨌든, 모든 인간이 예술적 기질을 가질수는 있지만, 모든 이들이 예술작품을 만들려고 하거나, 만들지는 않는다. 또한 많든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역사에 남거나, 어떤 다수의 사람들에게 보여지거나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항상 우리의 인식과 생활을 지배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먼, 기성화가, 기성작가, 기성감독, 기성가수 들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대중문화라고 일컬어 지기도 하는 것들. 미술관에 가서 유명한 한장의 그림에는 온갖 정성과 정신력을 쏟아부음에도, 실제로 많은 이름없는 화가들이 그린 그림들은 실제로 접하기도 힘들고, 그럴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이, (비난, 비판의 의도가 없는) 현실이다.  

물론, 대중들이 스스로 문화를 창조하고 만드는 일이 이제 낯선 일은 아니다. 이 민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글, 만화, 영상, 음악 등 많은 분야에서 지금은 인터넷이란 창구를 통해 접하고, 또 생산해간다. 이런 각각의 부분에 두터운 매니아 층이 있음도 사실이다. 사실 소수가 많든 문화에 반하는 문화는 항상 있어왔겠지만, 그 표현의 공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헌데,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것의 존재와는 별개로 그 수많은 것들을 얼마나 대중들이 기억하고 인식하느냐다. 매니아나 인지도가 얼마나 늘어나든, 결국 수많은 대중들을 움직이는 것은 주류 문화니깐 말이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민화에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것은 곧, 지금껏 있어왔지만, 그 수만큼 조망받고 인정받지 못했던 숱한 문화에 대한 관심의 일환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항상, 쉽게 접할 수 있었던 대표 미술들이 아닌, 음지 아니, 평지에서 그려지던 자유 분방한 민화를 담는다. 김홍도나 신윤복등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만을 접하기 쉽고, 그보다 더 다빈치나, 고흐, 렘브란트가 그린 그림들만 접하기 쉬운 우리의 미술세계를 벗어나, 마치 액자(틀)를 거부하고, 그 틀 바깥에서 끝없는 자유와 불규칙을 즐겼을 민화들을 말이다. 

집안의 재정 상태와 신분, 환경, 그에 따른 정형화되고 집단적인 교육은 의도하든 아니든 어떤 틀을 만들었을 것이다. 구체적이고 치밀한 묘사나, 비율과 배치, 혹은 원근법이나 투시법 등 방법적인 접근부터, 좋은 작품의 기준이라는 것 까지, 그들이 정한 틀 안에서 그것들의 수준이 결정되기도 했을 것이다. 굳이 이 틀을 나쁜것이라 부를 필요도 없고, 그렇지도 않다. 분명, 좋은 교육이나 환경은, 그만큼의 학습을 거두지 않고서는 따라할 수 없는 예술적 경지에 다다랐다. 하지만 문관이 있으면 무관이 있듯, 유무형의 틀 밖에서 그려졌던 많은 그림들도 충분히 우리의 관심을 받을 가치가 있다. 서양에서는 환경과 상관없이 비교적 다양한 화가들이 알려진 반면에, 실제로 우리에게 대중적으로 알려진 우리화가 들은 그 수가 손꼽을 만 하기 때문이다. (물론 민화는 그 특성상 작가를 알기가 거의 어려워 보인다. 이 책 또한 화가가 아닌 그림을 다룬다) 

틀 바깥, 그러니깐 좋은 교육과 환경에서 그려지지 않은, 그림들 '민화'의 가장 큰 특징을 작가는 '자유로움'으로 꼽는다. 신분에 의해 사상과 활동의 제약이 많이 따랐을 화가, 혹은 사대부 들과 다르게 먹고사는 보편적인 모습을 제외하면, 그들은 어떤 사상과 활동의 제약을 받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책거리를 그리지 않았다고 해서 귀향을 갈 일도 없었을 것이다. 방안에서 주경야독 해야만 하는 이들과 다르게 일상에서 항상 자연과 부대끼며, 상대적으로 제약이 없었을 그들은 자신들의 상상력을 발휘하는데 거리낌이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처음 책을 펼치자 마자, 민화가 보여주는,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생소한 그림과, 그 안에서 느껴지는 상상력은 가히 '충격'으로 느껴졌다. 수많은 시간이 지난 민화가 대담함은 물론이거니와, 이토록 놀라운 상상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풍속화', '수묵화' 등을 우리 옛 조상들의 상징과 같이 생각해온 내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무지와 무관심이 참 컸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될 정도로 말이다.  

자연을 담은 민화들은, 그 형태와 배치, 비율등이 기존의 통념을 벗어난다. 보이는 그대로, 혹은 '보여져야 할' 그대로의 모습을 벗어나, 그들은 자신들이 본 것과, 상상한것, 혹은 그렇게 그려보고 싶은 것에 대해 거침없는 그림들을 표현해낸다. 문자도와 같은 경우는, 그 형태와 상상력또한 놀랍거니와, 실제로도 주술적 성향을 띄었다고 하니, 마치 이우혁의 '치우천왕기'에서 문자를 하나의 주술적 무기로 사용했던 것이 절로 떠올랐다. 까치호랑이 그림은, 두려움의 대상을 풍자와 해학으로 극복하는 민중들의 의식또한 엿볼 수 있었다. 용에 관한 그림은 신화 혹은, 유행과 연결되있는 모습들도 보여준다. 

여러 민화들을 만나는 동안, 그 시대를 살았던 평범한 백성들의 삶과 애환, 나아가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어떤 미신과 신앙을 더듬어 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지배층이 그린 그림들과의 비교를 통해 민화가 어떻게 틀에서 벗어나 있는지 더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길상과 벽사를 위한 것임이 아닌 풍자와 해학을 위한 목적까지 엿봄으로써 고통받는 민초들이 삶을 견디는 모습을 상상해볼 수 도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사상과 상상력이 만들어낸 그림, 한편 한편의 민화를 통해, 가늠할 수 없는 가치를 알아보고, 그 시대의 문화의 흐름, (즉 사상이나 문화, 도구의 유입) 뿐만 아니라 생활의 변화에 따른 (극단적으론 전쟁과 같은) 인식과 관심사, 그리고 그에 따른 작품의 변화 또한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민화에 대해서 우리나라보다 실제로 해외에서 더 알아보는 가치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말이다. 이런 민화들이 적잖이 해외에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의 아쉬움이자, 아픔이기도 했다.

 

<닭과 모란>, <신구도> 에서 보여주는, 그간의 인식을 깨버리는 대담하교 자유로운 표현과 상상력에서부터 시작하여, 불로장생/유토피아를 상징하는 <십장생도>같은 그림으로 마무리되는 이 책의 여정은, 민화에 대한 작가의 애착, 나아가 민화에서 뻗어나간 이런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대범함이 존재하고 또 인정받는 세상에 대한 작가의 염원을 이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작게는 민화의 생명이 꺼지지 않고 우리 후손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과, 크게는 이런, 자유로운 정신이 끊임없이 우리의 세계의 곳곳에 또 존재하기를 바라는 염원 이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기억속의 색]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리 기억 속의 색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권장도서
미셸 파스투로 지음, 최정수 옮김 / 안그라픽스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색이란 것은 적어도, 아니 정말로 우리 일상과는 때어놓을 수 없는 요소가 아닐까. 불을 끄고 컴컴한 곳에 있다면 오로지 형태만을 감지하겠지만, 자연빛이든 인공빛이든 그 아래에 있는 한, 우리는 늘 매일같이, 아니 어쩌면 항상 색을 만나고, 색과 함께한다. 하다못해 우리의 머릿결, 눈동자, 우리의 살갗에도 '색'이라는 것이 존재하니깐 말이다. 

이렇게 보편적으로 항상 우리와 만나는 것이기 때문인지, 혹은 항상 어떤 일정한 형태 속에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인지, 색은 우리에게 너무 가까워서 그것에 대해 특별하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이 흥미로웠다. 옷을 고르거나, 무언가를 살때도 색은 분명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무지해왔기 때문이다. 색이 갖는 어떤 일정한 상징에 대해 개괄적으로, 어렴풋하게 알고있는 것 이상으로 색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항상 색을 선택하고, 색에 감탄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지나쳤던 수많은 색들을 생각하며.. 

기억에서 색의 문제에 대해 편파적이 되는 것은 비교적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 88 

하지만 이런 내 기대와 다르게 이 책은 색에 대한 개괄서는 아니다. 이 책을 고르려는 이들은, 이 책의 제목 <우리 기억 속의 색> 에 조금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색에 관한 개론이나 연구서보다는 기억속의 색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란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저자인 미셸 파스투로의 기억을 중심으로 색을 더듬어가는 '에세이'다. 다만, 우리네 삶의 요소요소들을 따뜻하게 다뤄보는 여타의 에세이들과는 조금 다른, '색'에 관한 에세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다른 에세이와 같이 쉽게 읽히지만, (저자의 직업과 관련한) 역사적, 과학적으로 접근한 색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러니 어떤 치밀한 분석적 방법으로의 색의 접근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조금은 고개를 갸우뚱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색에 관한 연구보다, '기억 속의 색' 그러니깐, 사람과 색의 관계를 다각적으로 다룬다. 

이런 형식 때문일까, 처음에는 예상과 달라 다소 당황했다. 색에 관한 어떤.. 과학적인 접근만을 예상해온 내게, 미셸 파스투로는 너무 쉽게 색에 관해 이야기 했다. 그는 자신의 기억, 혹은 누군가의 기억속의 색을 이야기 하면서도, 그 기억의 불확실성에 대해서 솔직히 고백하고 인정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색에 관련한 자신의 강렬한 경험을 토대로 풀어나가기 시작하는 이야기는, 온화하고, 때로는 세심하다. 또 틈틈히 깊이있고, 무엇보다도 개인적 인식이 만나는 색과 더불어, 충분히 역사적,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개인이 만나게 되는 색에 대한 경험, 기쁨, 두려움, 미신, 그리고 그 개인 주변의 인물들의 색에 대한 선입견이 끼치는 영향, 시대의 변화와 색에 대한 인식의 변화, 나아가 사회가 생산하는 색에 대한 정의, 개념의 변화, 적용, 대륙별 색에 대한 접근 태도.. 그리고 색에 대한 선택에 관한 문제를 다각도로 풀어나간다. 그것도 아주 꽤 잘 읽히게끔 풀어나간다.  

단어는 색에 무한한 힘을 행사한다. 색과 관련된 단어들은 그 색에 특별한 색조를 부여하며, 그 색을 학문이나 산업 분야의 색견본들보다 훨씬 더 몽환적인 색으로 만든다. 우리들 각자도 시인의 상상력과 화가의 감수성을 결합해 새로운 색을 창조할 수 있다. - 294

그래서 오히려 전문적인 지식이나 분석을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분명 저자인 미셸 파스투로가 오랫동안 연구해온 색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지만, 정리된 개념이라고 하긴 힘들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녀의 이야기 속에 색에 관한 개인적, 사회적, 과학적, 역사적 담론이 충분히 녹아있다. 에세이 형식속에 녹아든 전문적 지식들은 너무 자연스럽게 그녀의 고백과 연결되어 있어 실제로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가버리는 것이다. 다만, 이런 쉽게 읽히는 내용이기에 전문적 지식도 쉽게 간과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 조금은 주의할 점이랄까. 

책날개에 적힌 아래 글이 이것들을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기에 적어본다. 

미셸 파스투로가 60여 년을 사는 동안 보아온 색들에 관해 이야기 한다. 때로는 세심하게, 때로는 몽상적으로, 그러나 언제나 주의 깊게 증언한다. 그는 인간들의 '색에 관한 변덕'을, 색들에 관한 선호를, 시대와 나라, 개인에 따른 색에 관한 미신을, 색들에 관한 기피를 이야기 한다. 어린시절의 느낌들, 소소한 즐거움, 색에 대해 느낀 반감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늘 경쾌하고 정확하게 색의 복잡한 유희들을 해독해내며 결코 싫증을 내지 않는다. 그의 책 덕분에 우리는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색을 생각하게 된다. (라 캥젠 리테레르) 

생각해보니 색에 대한 굉장히 종합적인 접근을 꾀한 이야기들을 읽었다. 특히 어째서 우리가 선호하거나 꺼려하는 색이, 시대별, 지역별로 다른지, 색에 관해서 우리의 시각이 우선하는지 혹은 의식과 정의가 우선하는지 등등.. 워낙 종합적이고 다양한 이야기를 했고, 또 그것이 전문적이 지식이라 길게 풀어놓기는 그렇지만, 확실히, 복잡하고 많은 이야기들을 쉽게 접한 기분이 든다. 아마 진짜로 내가 색에 관한 개론서를 접했다면 머리터지게 책을 읽어야만 했을 것이다. 다만 이야기 했듯이, 전문적인 접근(사실 과학적이라고 하기보단 용어적, 언어적으로 전문적이었던 적이 있다)을 너무 가볍게 스치고 지나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천천히 기억속의, 일상속의 색을 음미하며 읽다보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리라 생각한다. (단, 색에 대한 선호도와 기준또한 개인, 국가마다 차이는 있는지라 우리나라의 실정과는 조금 다른 부분들도 더러 있다. 우리나란 최근까지도 약국에서 여전히 녹색 십자가를 쓴다던가, 하는 것들?)

어쨌든, 부담스럽지 않게, 색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정의하고 생각하는, 그저 심미적, 상징적 색의 의미를 넘어, 몽환적인 동시에 정교한 색의 세계를.  

나에게 색은 살아 움직이는 존재, (......) 우주의 진정한 주민이다. 선은 지나가기만, 화폭을 가로질러 이동하기만 할 뿐이다. 선은 그저 통과만 할 뿐이다. - 177 (이브 클랭의 말 인용)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진 철학의 풍경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진철학의 풍경들
진동선 글.사진 / 문예중앙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카메라가 출현한 이래, 기술의 발달로 점점 그 보급이 확대되어 핸드폰의 카메라도, 카메라의 범주에 넣는다면 거의 1인 1카메라 시대에 도달한 지금, 사진을 찍는 행위는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분명, 카메라의 보급은 사진이라는 매체가 일반인들도 '예술'의 영역에 다가설 수 있는 가능성을 넓혀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 싶다. 차곡차곡 쌓이는 터치가 아닌, 프레임 수백만장 쌓이는 영화필름이 아닌, 단 한순간의 손짓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진이라는 매체는, 분명 가장 보편화된, 그리고 큰 파급력과 필요성을 지닌 예술적, 기록적 재료임이 분명하다고 생각된다.  

DSLR의 보급은 '장비로써의' 전문가와의 차이를 거의 없게 만들었다. 사실상 전문가가 사용하는 물감과 붓을 쥐어준 것이나 다름없고, 35mm (영화용)필름카메라나 RED ONE(추노, 국가대표 등을 촬영한 디지털 영상 카메라) 같은 카메라를 쥐어준 것이나 다름 없다. 게다가 이제 DSLR로도 영화촬영이 가능한 시대다. 렌즈군과 기타 장비가 보편화되진 않았다고 해도, 기본적인 렌즈군으로도 심도를 조절하는 것이 가능한 DSLR 같은 경우는 전문가의 흉내를 내기 딱 좋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가 그들을 전문가로 부르진 않는다. DSLR 의 보급은, 기술적인 사진의 수준이 향상되는 길을 좀더 넓혀놨지만, 그렇다고 기술적 수준의 향상이, 질적, 미적으로 향상된 사진이라고 단언할 수 없는 것처럼. 가능성이 조금 향상되었다고 해서 그 길이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이 된 것은 아니다. 솔직히 사진의 미덕중에 '우연'이라는 요소가 다른 매체보다 두드러지긴 하지만, 그것을 무기로 전문가가 될 수는 없듯이 말이다. 

결국, 장비가 다가 아니다..라는 진부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놨다. 하지만, 솔직히 좋은 장비들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때로는 그 차이가 클 때도 있고, 미묘할 때도 있다. 사실 장비의 가치에 대한 허상, 허울 같은 얘기는, 필요성과 투자비용을 고려한 차이가 아니겠는가. 만약 동급 수준의 예술가들이 (사실 이런 가정은 터무니없긴 하지만) 큰 차이의 장비를 사용한다면, 결과 또한 다르지 않겠는가? 좀 바보같은 예이지만, 결국 하고싶은 얘기는, 더 좋은 장비는, 그 장비를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그만큼의 가치를 발휘한다는 당연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고가의 장비를 사용해서 잘찍는 사람과 못찍는 사람은 나뉠 수 있지만, 출중한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저가의 장비를 쓰던 고가의 장비를 쓰던 분명 다른이들보다 뛰어난, 제 실력만큼 결과가 나오는 법이니깐. 

카메라 매커니즘의 이해는 사실 좋은 실력이 아니라, 일반적인 실력을 쌓기위한 코스일 뿐이다. 결국 좋은 실력, 좋은 사진을 위해서는 매커니즘을 뛰어넘는 자신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사진철학의 풍경들>의 저자 진동선이 전하는 이야기다. 

"사진은 인접 시각매체들과 달리 이중의 모습으로 태어났다. 이성적이면서도 감각적이고, 사실적이면서도 추상적이고,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이다. 영원히 변함없을 양면성이다. (35p)  

저자인 진동선이 전하는 이야기는 사실 사진의 매커니즘, 혹은 기술적 스킬의 향상과는 직접적인 큰 관계가 없다고 보기에 무방할 정도다. 없다고 말하진 않지만, 그만큼 언급을 삼가한다. 아니, 그런 기술적 설명이 끼어들 틈이 없다. 기껏해야 빛, 어둠, 프레임, 구도 정도? 하지만 사진작가인 그에게 사진의 매커니즘, 스킬에 대한 지식을 의심할 정도로 심심한 독자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런 이야기는 살짝 뒤로 감쳐놨을 지라도 일련의 사유들 사이에서의 카메라 및 사진과 관련한 역사, 일화 등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많진 않다. 배경설명에 필요할때 언급하는 경우니깐). 분명한 것은, 이미 그것을 뛰어넘은 사진가가 하는, '결과물로서의 우수한 사진' 이 아닌, 피사체에 대한 인지부터, 찍는다는 행위에 대한 사유, 그리고 다시 또 인화된 사진을 바라보는 법에 이르기까지의 긴 호흡이 담겨있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는 매커니즘이 가진 규칙과 틀을 넘어서는, '정말로' 좋은 사진을 만들기위한 방법들을 '철학'을 통해서 매우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사진은 만연한 사회적 실천이고 유희다. 철학이 없어도, 미학이 없어도, 진리를 구하지 않아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 무언가를 찾고 간구하고 묻는다면 진리의 문 앞에 선 것이다." (234p) 

개인적으로는 사실, 저자의 사유에  푹 빠져서 페이지를 넘기느라 (실은 그냥 내 실력이 이정도이기에) 크게 인지하거나 신경쓰고 읽지는 않았지만, 순서를 보면, /인식의 풍경/ 사유의 풍경/ 표현의 풍경/ 감상의 풍경/ 마음의 풍경 에 이르른다. 크게 보자면, 어떤 사물을, 어떻게 인지할 것이지에 대한 판단에서 부터, 결과물이 된 사진을 넘어, 가장 이상적인 사진을 꿈꾸기 위한 사유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으로 보여진다. 분명 저자 또한 어느 행위의 단계에서 기본적으로 어떤 사유가 필요함을 구분하기 위해서 이런 순서를 정해놨을 테지만, 사실 그 순서라는 것이 '전원을 켜려면 / 전원 스위치를 돌려라' 처럼 A를 하기 위해 B라는 사유를 해야한다는 것이 '반드시'는 아니기에, 사진이라는 것의 시작과 끝에 전반적으로 모두 닿아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그의 철학적 지식을 보면, 그동안 그가 스스로에게, 또 사진을 향해 던졌을 질문들의 질량이 어마어마 했었을 것이란게 자명해보인다. 일반적으로 유명한 철학자부터, 사진작가부터, 조금은 알려지지 않은, 철학자까지, 현재의 그를 존재케하는 사진에 관한 온갖 철학들이, 그저 허투루 나온것이 아님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온갖 철학자와 사진작가의 말과 행동이 인용되고, 그에 따른 그의 생각들이 합쳐지며 사진에 관한 철학이 하나씩 만들어질때마다 저자의 통찰력에 놀랄 따름이다. 게다가 물론 아주 어려운 개념들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타의 철학자, 사진작가들의 이론이나 사유들, 그리고 저자 자신의 사유들을 심플한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본다고 하는 것은 감각의 작용이다. 모든 사진가들이 항상 어떻게 보는 것이 좋은지 갈등한다. 그러면서 이 갈등은 궁극적으로 사진이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알게된다. 갈등을 해결해줄 구세주가 사진이 아니라 철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130p) 

실제로 공간에 존재하는 것을 필요로 하는 사진이기에 필수적인 '인식'에서부터 저자는 미술과 미학, 철학, 문학, 인문에 이르기까지 사진에 관한 사유가 과연 거기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까 싶은 부분까지 사진을 위한 철학으로 차용한다. 오히려 사진을 위한 말들 보다는, 존재에 대한, 인식에 대한, 시간에 대한 사유처럼 으레 사람들에게 사진과는 바로 연결되지 않았을법한 철학적 개념들도 모두 이곳에서 사진철학으로 탄생한다. 사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셔터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인식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사유하는 것이라고 말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지배해온 그림의 영역을 벗어나, 가장 닮은 '재현' 의 영역의 탄생은 어쩌면 회화보다 더 복잡한 사유를 필요로 했던 것일까?  

"사진은 피사체를 발견하면서부터 시작하는 '발견된' 오브제 미학이다. 창조된 오브제 미학이 아니다."(62p)

작가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상투적으로 칭찬하진 않는다. 겸허히 돌아본다. 얕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애정과 확신, 의지는 어디에서건 느껴진다. 기록의 도구로써, 진실의 대변자이기도 한 반면에, 오히려 더 큰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처지로 전락하기도 했던 사진,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해 '빚진' 사진 등 이런저런 사진의 한계성을 스스로 인정하지만, 더불어 그 한계의 극복 가능성과, 또 그 한계의 이면이 지닌 다른 매체와 차별화된 가능성을 이야기 한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사진, 혹은 사진을 찍는 행위에 대한 깊은 반성과 성찰, 그리고 꺾이지 않는 의지가 서로 한데 뒤엉켜 각 순서의 말미엔 결국 한가지씩 사유를 내놓는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사진을 통해서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법, 사진을 통해서 세상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법, 사진을 통해서 세상을 사랑하는 법."(328p) 

이책은 마치 에세이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사진을 중심으로한 철학적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곧 삶과 연관되어 있기도 일쑤고, 문체 또한 부담없이 읽기 좋게 되어있다. 사진을 바라보는 전방위 적인 태도는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어떤 태도와 비견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정교하고 끈질기다. 어쩌면, 너무 단(맛이 나는) 약이다. 그래서 오히려 에세이 같은 분야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나에게) 가장 큰 문제(?)는, 두가지였다. 첫번째는, '앞으로,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에는 전과 다른 어떤 중압감이 실릴 것이고' 두번째는 '더이상 사진에 대한 어떤 사유를 하더라도 이 책에서 읽고 느낀것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과 같은 걱정 아닌 걱정 이랄까. 물론 나는 이 책의 내용 또한 결국 망각속으로 던져버릴테지만, 작가가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서 부딪혔던,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넓고 깊은 사유의 느낌은 쉬이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사진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예술과, 삶과 많은 부분이 닮아 있었다. 어쩌면 실재와 가장 '닮은' 매체의 특징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갖가지 사유들은, 서로 떨어져 있지만 맞닿는 지점이 많았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그만큼 (표현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모호한 문제들도 있었고, 그만큼 계속해서 밀고나간 사유이기도 할 것이다.  

사진을 찍는 행위가, 자신의 일이 되지 않는 이상, 한장의 사진을 찍는데 이와 같은 사유들을 할 수 있을까? 여기서 읽은 한가지만 곰곰히 생각해봐도 다행일거다. 취미로 하는 사진찍는 행위가 이와 같은 사유를 하는 것은 여전히 쉬운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조금이라도 달라지지 않을까. 앞으로 또다시,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이 움직이기 전 그러니깐,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는, 그 "찰나의 순간"이 지닌 가치가. 

"보고 새기고 마주하고 돌아보는 모든 것들은 전적으로 사진가의 몫이다. 때문에 한 장의 사진은 사진가의 모든 것이다. 지나온 삶의 시선이면서 그 순간 세상과 호흡했던 생의 감정, 세상을 바라본 거울과 창이다. (328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