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면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서로 싸우는라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이지."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페르망탱이 내게 침을 뱉지 않았어도 내가 그 고통 속에 몸을 던졌을까. 나의 참여는 단지 날아온침의 궤적과만 관련 있었을 뿐,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단다. - P136
2년 만에 다시 쓰는 이 일기에서 내가 우선 주목하고싶은 건 바로 그 눈물이다. 오늘 아침 난 실제로 내 몸 안의 눈물을전부 다 쏟아버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있을 수 없는 살육의기간 동안 내 정신이 축적해온 눈물을 모조리 쏟아버린 것이다눈물은 자아의 배설이다. 그 엄청난 양이란! 우리는 울면서 오줌눌 때보다 훨씬 더 시원하게 자신을 비운다. 맑은 호수에 몸을 던지는 것보다도 더 깨끗이 자신을 청소한다. 그 정화의 과정이 모두 끝나고 나면 종착역에 정신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눈물로 표현된 정신은 비로소 몸과도 좋은 관계를 회복할 수있다. 내 몸도 오늘 밤엔 잠을 잘 잘 것이다. 안도의 울음을 실컷울었으니, 이제 끝났다. 사실 이미 몇 달 전에 다 끝난 것이었지만, 확실히 마침표를 찍기 위해선 이러한 의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끝났다. 그가 훈장을 준 건 바로 그래서다. 내 레지스탕스의 끝, 눈물에 영광 있으라! - P140
시험 준비를 다시 시작했다. 지적 노동을 할 때 느끼게 되는 몸의 감각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책들의 고요한 떨림, 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종이의 결, 종이의 섬유 위에서 펜이 사각거리는 소리, 풀의 자극적인 향, 잉크의 광택, 꼼짝 않고 있는 몸의 무게, 너무 오랫동안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탓에 저린 발끝, 그 바람에 일어서려다가 뒤뚱거리며 가방에 부딪치기도 한다. 계속 앉아만 있을 순 없다. 몸을 흔들어대며 펀치를 날리기도 한다. 좌우에서 스트레이트를 퍼붓고, 훅, 어퍼컷, 연타, 라운드(이젠 확실히 왼쪽 주먹이 완전하게 펴지지 않는다. 그러나 훅이나 어퍼컷은 여전히 칠수 있다). 머리로는 복싱의 리듬에 맞춰 시구를 암송한다. 수세기에 걸쳐 다듬어진 문장들을 머리가 깨질 정도로 외는 동안 팔은춤추고, 주먹은 때리고, 땀은 흐른다. 세탁통에서 퍼낸 차가운 물몸에 물을 끼얹어봐, 몸을 말려, 옷을 다시 입어, 공부를 시작해, 공부를 시작하라고, 그리하여 또다시 부동의 자세. 문장들 위를 날아다니는 듯한 그 느낌! 순례하는 매는 인쇄된 책이라는 너른 들판위를 탐색 중이다. 귀한 사상들이여, 그대는 내 먹이요 내 풀밭, 어서 몸을 숨겨보시게 내가 가서 그대를 먹어치우고 소화까지 시켜버릴 테니! 빌어먹을, 지금 무슨 소릴 지껄이고 있는 거지? 오늘 저녁엔 여기서 멈추자, 눈꺼풀이 모래처럼 무거워지고 펜은 자꾸만빗나간다. 잠을 자자, 대지 위에 몸을 눕히고 잠을 자자꾸나. - P141
1954년 1월 28일 목요일30세 3개월 18일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이 꿈, 새벽 5시에 불안이 잠을 깨웠다. 아니, 불안이라는 녀석이 내가 잠에서 깨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난 다시 잠이 들긴 했지만, 불안이 곧 또다시 날 잠에서 끌어낼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집게로 신생아의머리를 끄집어낼 때처럼 내 가슴팍을 붙든 채로, 아, 이번엔 안 돼! 싫어! 안 돼! 민첩하게 가슴을 뒤틀어 집게를 피한 덕에 내 몸은불안에서 벗어났다. 그러고 나선 돌고래처럼 편안히 잠에 빠져들었다. 이번엔 성격이, 아니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잠이었다. 편안함 자체가 되어버린 잠, 불안이 도저히 해코지할 수 없는 피난처, 모든 걸 다 포함하는 잠, 내 몸이 몽테뉴의 수상록』 속으로 풍덩빠져든 것이다! 그렇게 자고 나서 깨어나자마자 난 얼른 메모를 남겼다. 『수상록』의 물 흐르듯 유연한 깊이 속으로, 그 책의 종이 속으로, 몽테뉴라는 사람 속으로 도망쳤었다고.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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