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의 메시지, 완전히 이해할수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수 있다는 ...
내가 아이들과 남편,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믿음이다.

you can love completely without understanding completely.










영화가 출발하는 물리적 지점은 밀양과 청도의 갈림길에 있는 국도였는데, 신애는 자신의 고장 난 차가 어디에 멈추어 있는지 카센터를 하는 종찬에게 설명할 수 없었다. 후반에 신애는 "밀양은 어떤곳이에요?"라고 묻고 종찬은 "사람 사는 데가 뭐 다 똑같죠. 라고 대답한다. 보편타당한 진리가 숨 쉬는 곳, 우리가 사는 땅 어디든 밀양(密陽)‘이 내려앉는다. 우리 사회 사각지대에서 햇볕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래도 찾는 자에게는 많이, 찾으려 하지 않는 자에게도 보통 품어 들 것이라 믿고 싶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신애에게 종찬식의 사랑 또한 신의 사랑 못지않게 따스하지 않은가.
신은 변장을 잘하고 나타난다지. 어느 해 3월 소향아트센터에서 본프랑스 뮤지컬 ‘레미제라블‘ 중, 장 발장의 절창이 생각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신의 얼굴이 보이지." 사람을 사랑할 일이다.
- P78

흐르는 것은 강물만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인연과 관습, 정석이라고 믿었던 어떤 조류이기도 하다. 우리는 강물에 모든 걸 맡기고함구한다. 그리고 흘려보낸다. 니체의 철학처럼 우리의 삶은 영원회귀를 꿈꾸며 노먼의 내레이션처럼 다시 강물로 모여들 것을 알기에..
세월을 타고 흐르는 유장한 강물처럼 서늘한 흐름이 몸을 훑고 대안에서 미세한 떨림을 전한다.
마지막 목회에서 아버지는 "완전히 이해할 순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다."고 설교한다. 이 말은 길게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이어질 가족 간의 설명할 수 없는 애증에 대한 진언(盡言)이다. 나아가한 사람의 예술가를 향한 헌사, 범신론적인 대자연에 대한 태도이기도 하다. 삶과 예술과 자연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 저 너머의 세계에서 우리를 부르며 미소 짓는다.
- P104

씨름 결승전에서 막판 뒤집기는 영화가 동구의 손을 번쩍 들어 주는 장면이다. 그냥 웃고 말아, 뭐 그리 심각해?‘ 라고 던져 주는 것.
같은 가벼운 반전이 결정적인 웃음을 불러낸다. 예상을 조금은 비껴가 잔뜩 무장하고 있지만 누군가 풀어 주기를 기대하는 관객의 겨드랑이를 불시에 습격하는 것이다. 진정한 코미디는 어떤 면에서 우리 마음 깊이 울고 싶은 곳을 건드린다. 행복해 뵈지 않는 가정환경,
성장기의 고민, 자기 정체성에 대한 남모르는 고통을 안고 혼자서도씩씩하게 헤쳐 나가는 동구의 분투에 응원을 보내게 된다. 뒤집기한 판으로 바꾸고 싶은 것들! 생각 뒤집기, 마음 뒤집기, 세상 뒤집기. 그리고 성장! 영화가 꿈꾸는 것이지 않을까.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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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9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9 1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