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결과로 그는 평생을 억울함과 울화와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했다. 자기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부모를 떠날 때만 해도몰랐던 것이다. 아니, 그는 평생을 몰랐다. 자기가 얼마나 작은 손해에도 예민하고 속이 좁은 사람인지. 자신은 부모를 떠날 만큼 용기가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저 충동일 뿐이었다. 떠나고 싶은 충동, 그는 그가 누릴 수 있는 인생을 그녀가 빼앗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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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조부는 그녀에게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공기에 매운 기운이 퍼져 있었다. 그녀가 앞으로도 밥먹듯이 경험할 순간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가 화를 내고, 그 의중을 살펴야 하는순간.
- 새 밥을 해왔십니다. 반찬이랑 드시라요..
그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었다. 그녀도 같이숟가락을 들었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밥을 먹으며 그녀는 처음으로 체념이라는 걸배웠다. 발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아팠지만 그걸 남편에게 말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피가 배어든 버선발을 뻔히 보고서도 아프냐고 단 한 번도 묻지 않는 사람에게 무슨 기대를 할 수 있을까. 어쩌다밥을 쏟았는지, 복구네 아이가 무슨 짓을 했길래 그랬는지 물어주기를 바란다는 건 욕심이었다. 장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별다른 말과행동이 없었던 사람이니까. 남편은 나의 고통에 관심이 없어. 그녀는생각했다. 일말의 관심조차 없어. 그런데 왜 그랬을까. 왜 내가 군인들에게 잡혀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말했던 걸까. 그것이 그녀 평생의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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