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은 동일성에서 유사성, 도구로서의 언어에서 매체로서의 언어, 연속성에서 불연속성, 역사학에서 고고학, 상징에서 알레고리, 진보사관에서 메시아주의로의패러다임 전환을 추구했다. 다만 새로운 패러다임을 하나의 체계로설명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비평을 통해 그때그때 파편적으로 제시한다. 그 때문에 "벤야민의 사상을 체계화하고자 한다.
면, 그것은 그의 고유한 서술방식 - 메타포와 유희, 핵심을 찌르는 인용과 이미지, 사유 모티프의 변주 및 새로운 정의 - 을 제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파편화를 너무 강조해서는 안 된다. 벤야민이 추구한 것은 이론의 수미일관성도 아니지만,
심미적인 효과를 위한 글쓰기도 아니다. 도시산책자의 사유가 일견산만해 보인다고 해도 그것이 일체의 총체화 가능성을 부정하는연속성의 숭배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벤야민 글의 저류에는 시대의 위기 상황에 대한 역사철학적 성찰, 파국의 중단을 향한 정치적파토스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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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상태에서 돌연 누군가에게 한 대맞은 듯 급작스럽게 내쫓기기를, 시끄러운 소동, 음악소리 혹은 도와달라는 소리 따위에 화들짝 놀라 깨어나기를 바란다. 누가 참된 작가의 내면을 채우고 있는 경고음을 헤아릴 수 있었겠는가? ‘글을 쓴다는것은 그러한 경고음을 작동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경고음을 작동시키면 귀여운 오달리스크가 이것저것 마구 뒤섞여 있는 규방, 즉 우리 뇌의 상자 안에서 벌떡 일어나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을 거칠게 낚아채어깨에 두르고 눈에 띄지 않게 우리 앞을 빠져나가 사람들에게 도주한다.(『선집 1, 148쪽) - P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