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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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 애니 배로스

2차 대전이 끝나고 런던에서 작가로 명성을 얻고 있는 줄리엣 애슈턴에게 한 장의 편지가 도착한다. 건지 섬의 도시 애덤스에게서 온 편지다. 그가 읽고 있는 찰스 램의 『엘리아 수필 선집』의 표지 안쪽에 있는 이름과 주소를 보고 편지를 보낸다고 한다. 건지 섬은 전쟁을 겪고 서점에서 책을 구하기가 어러운 상황이고, 다른 책들을 구하고 싶은데 런던의 서점 주소를 알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이 편지로 인해 서로 연락을 주고받게 되면서, 줄리엣은 건지의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에 대한 이야기와 이 문학회가 탄생하게 된 스토리를 듣게 된다. 이 문학회 회원 한 사람 한 사람과 편지를 나누면서 독일군 점령기 동안의 삶과 이 북클럽의 중심이었던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줄리엣은 이들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건지 섬을 방문한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에 점령되었던 채널제도는 프랑스 노르망디 가까이에 있는 섬이다. 윌리엄공이 영국 왕이 되면서 노르망디와 함께 영국 땅이 되었던 곳으로 헨리 6세 때 프랑스에 반환하면서 채널제도는 그대로 영국령으로 남아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 제도 안에 있는 저지 섬은 ‘빅톨 위고’가 오랫동안 머물며 작업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건지도 이 채널 제도에 속해 있는 섬이다.

독일군에 점령을 당한 후 식량 수탈과 통행금지 등으로 건지 섬 사람들은 어려운 시간을 보낸다. 굶주리던 사람들이 비밀리에 돼지고기 파티를 벌였고 통행금지시간에 귀가 도중 독일군에게 발각된다. 돼지고기 파티를 은폐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북클럽을 만든다. 이름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이렇게 모인 북클럽에서 그들은 난생처음 책을 읽고 토론을 시작한다. 이랗게 함께 공동체를 형성하며 어려운 시기를 넘어간다. 그들이 줄리엣에게 보낸 편지에는 하나같이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애정과 그 책으로 인해 받았던 위안들, 그리고 삶의 변화에 대해 고백하고 있다. 내가 주목하게 된 것은 그들이 대부분 한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고 그 책에서 보화와 같은 것을 캐내고 있다는 것이다. 찰스 램의 『엘리아 수필 선집』과 『세네카 서간집』이 그렇다.

특별히 줄리엣의 『엘리아 수필 선집』이 건지 섬의 도시의 손에 들려지게 되고 두 사람이 만나게 되는 과정은 짜릿하다.
중고 책을 구입하면 가끔 책 표지 안쪽에 적혀 있는 사적인 내용들을 만날 때가 있다. 사랑고백, 생일 축하, 감사의 내용, 여행 중에 읽고 감상을 기록해 놓은 내용 등. 어떤 내용은 반복해서 읽게 되는 멋진 감상도 있다.

줄리엣은 자신의 책이 도시에게 이르게 된 것에 대해

˝아마도 책들은 저마다 일종의 은밀한 귀소본능이 있어서 자기한테 어울리는 독자를 찾아가는 모양이에요.˝
라고 말한다.
줄리엣의 말에 공감한다.
가끔 어떻게 지금 이런 책을 읽게 되었을까 하고 감탄하게 되는 때가 있다.

찰스 램의 다른 책을 궁금해 하는 도시에게 줄리엣이 한 말에도 독서가라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책 속의 작은 것 하나가 관심을 끌고, 그 작은 것이 다른 책으로 이어지고, 거기서 발견한 또 하나의 단편으로 다시 새로운 책을 찾는 거죠, 실로 기하급수적인 진행이랄까요, 여기에 가시적이 한계도 없고, 순수한 즐거움 외에는 다른 목적도 없어요,」 22p

가슴이 뛰는 말이다. 그렇게 책상 주변에 책이 쌓이고 있지만…….
사실은 이 말 때문에 이 책에 훅 빠져 들었던 것 같다.
이 문학회 회원인 애번 램지에게 ⟪셰익스피어 선집⟫이, 조 부커에게 ⟪세네카 서간집⟫이 그 어려운 시절을 견딜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말한다. 윌 시스비는 토머스 칼라일의 ⟪과거와 현재⟫를 읽으며 북클럽이 아니었다면 모르고 살았을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제가 고른 책은 ⟪셰익스피어 선집⟫이었습니다.……제가 보기에 그는 말을 아낄수록 더 많은 아름다움을 창조해내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찬탄하는 문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밝은 날이 다했으니 이제 어둠을 맞이하리라.’ 바로 이겁니다. 독일군이 상륙하던 날에도 이 문장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들을 실은 비행기가 연달아 오고 부두에도 배가 쏟아져 들어오는 걸 바라보던 그때 말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빌어먹을 놈들, 빌어먹을 놈들’하고 속으로 되뇌는 것뿐이었습니다. ‘밝은 날이 다했으니 이제 어둠을 맞이하리라’라는 문장을 떠올릴 수 있었다면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고 밖으로 나가 상황에 맞설 준비를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심장이 신발 아래로 가라앉듯 축 처져 있을게 아니라요.」
99~100p

그 전에는 책 곁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어려운 책을 만나 무작정 반복해 읽으면서 그 뜻을 알게 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어서도 그랬겠지만 그 한 권의 한 문장 한 문장을 반복해서 읽었던 것이 그들의 독서의 힘을 길러주는 방법이 되었던 것이다. 이 한 권의 책은 그들의 삶을 바꾸었다고 모두가 같은 이야기를 한다. 독서가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문학회에서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저는 문학회 모임을 무척 아낍니다. 점령기 시절을 견딜 힘을 그곳에서 얻었으니까요. 모임에서 안 몇몇 책도 괜찮은 것 같았지만 저는 늘 세네카에게만 충실했습니다. 마치 그가 저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어요. 특유의 재치 있고 신랄한 말투로요. 오직 저에게만 말하는 듯했지요. 세네카의 편지들 덕에 저는 훗날 겪어야 한 모든 일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도 문학회 모임은 빠지지 않고 나갑니다. 모두 세네카라면 진저리를 치고 저더러 제발 다른 걸 읽으라고 애원하지만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144p

이 북클럽을 만들고 사람들을 독려했던 엘리자베스는 독일군 크리스티안 헨리와 사랑하게 된다. 도시도 헨리와 우정을 쌓게 된다. 이 관계가 발각되어 헨리는 유럽의 다른 전장으로 보내지고, 가던 중 어뢰공격에 배가 침몰해서 죽는다. 엘리자베스는 이 섬에 강제노동으로 끌려온 소년을 숨겨주다가 연행되어 수용소로 보내진다. 딸 킷을 남기고…….

1942년 채널제도로 수많은 강제노동자들이 끌려오는데 헐벗고 잠 잘 곳도 없고 굶주린 상태에서 노동을 했다. 섬 전체가 그들의 수용소인 것이다. 그들을 ‘토트 노동자’라고 부른다.
‘토트 노동자’를 검색했다. ‘토트 노동자’는 건설노동을 위해 유럽에서 독일군에게 끌려온 포로들이다.
독일의 아우토반은 바이마르 공국 때 일부 건설되었으나 부분적이었다. 이것을 독일 히틀러 통치 때 확대해서 지금의 아우토반을 만든 사람이 ‘프리츠 토트’다. 2차 대전시 탄약부장관으로 전시산업을 이끌며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의 해안방어선을 건설한다. 이때 러시아 등 유럽에서 포로들이 강제노동을 위해 끌려왔다. 이 혹독한 노동을 시키면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지 않고 비인간적인 대우를 하는 것이 아이히만의 의도였다고 한다.

이 책을 쓴 메리 앤 섀퍼는 1980년 건지 섬에서 악천후로 공항에 갇히게 되면서, 공항 서점에서 건지 섬의 독일군 점령기에 관한 책들을 읽고 20년 후에 이 소설을 쓰게 된다. 이 소설은 편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오히려 이러한 구성이 이야기를 더 흥미롭게 한다. 줄리엣의 로맨스도 있다. 그녀의 사랑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궁금해 하면서 읽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다가온 것은 건지 섬 사람들의 독일군 점령기의 삶과 북클럽이다. 그리고 사람 사이를 이어준 책들과 상처를 치유하고 있는 인간애이다.
사실, ‘로맨스는 별책부록’이다.

북클럽,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관심 있게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모임에서 읽고 있는 책은 무엇이고,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 토론을 위한 발제는 어떻게 하는지, 책의 난이도도 궁금하다.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책을 읽으면서 삶이 어떻게 변했는가이다. 사람들과 만나서 하는 이야기의 주제가 달라졌다든지, 책에서 다른 책을 소개 받고 있다든지, 나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든지, 세상을 읽는 능력이 생겼다든지…….


※ 이 책은 2018년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스토리 중 많은 부분이 생략되었지만 건지 섬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이솔라가 건지 섬은 배를 타고 들어와야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고 했던 바닷가를 향해있는 마을과 해안 절벽의 모습이 그림 같았다. 영상보다는 텍스트를 편해 하지만 이번 영화는 그림같은 풍경이 상상력을 북돋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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