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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눈물을 닦다 - 위로하는 그림 읽기, 치유하는 삶 읽기
조이한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7월
평점 :
개인적으로는 샤갈이나 모네의 그림을 좋아한다.
그러나 최근 인상 깊었던 작품은 제임스 휘슬러의 [검정과 금빛의 야상곡: 떨어지는 불꽃]이란 그림이다.
사실 불꽃놀이라고 하면 밤하늘을 수놓는 화려한 불빛들을 표현한 작품도 있겠지만, 왠지 모르게 제임스 휘슬러의 그림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되었다.
그야말로 까만 어둠 속에 떨어지는 금빛뿐이다.
그림 속의 금빛은 현실과 달리 ‘순간’을 영원으로 지속시키며 계속 반짝거린다.
그리고 그 반짝거림이 있게 한 것은 어둠이기에 그 어둠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언젠가는 그 그림이 전시된 곳에 가서 직접 눈으로 보는 것.
이것은 이루고 싶은 꿈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림, 눈물을 닦다』
이 책은 그림을 통해 마음을 위로하는 그림 심리 에세이다.
기존의 책 중 잘 알려진 명화를 소개하고 더불어 작가, 작가가 살았던 배경, 그림에 쓰인 기법을 소개한 책이 ‘스투디움’이라 한다면, 이 책은 직관적이고 주관적이며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저마다 느끼는 감정의 차이가 다른 ‘풍크툼’ 쪽에 중점을 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감동을 받은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른 이를 설득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은 다 웃는데 나 혼자 울음을 터뜨릴 수도 있다. 오직 내게만
섬광처럼 꽂혀 가슴을 흔들어 놓는 것, 뭔가에 찔린 상처처럼 아파 오는 것,
그것을 롤랑 바르트는 '풍크툼(punctum)'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p.20 에필로그 중에서)
작가는 그림의 한 장면을 두고 자신의 생각을 담아낸다.
더불어 작가가 읽었던 책의 내용을 적절하게 가미함으로써 그림과 책을 넘나드는 사고(思考)의 확장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얇은 천이 얼굴에 씌워진 채 연인이 키스하는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이란 작품이 있다.
작가는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내용을 소개하며 모든 사랑은 오해이지만 상상력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본다면 마그리트의 <연인>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불완전한 상대를 앞에 두고 서로를 완전하게 만드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p.83) 고 말하니 이런 의견은 처음 접해서 그런지 신선하고 흥미롭게 다가왔다.
사랑 외에도 슬픔, 상처, 소외, 자살, 외모 등에 관한 주제도 그림을 통해 다루고 있었는데 그림 하나로 이렇게 생각을 펼쳐나갈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이 책 속에서 기억에 남는 작품을 말해보라면 아나 멘디에타의 <신체적 특성>을 꼽고 싶다.
그런데 왜 하필 그 재료가 피여야만 했을까?
어쨌든 그 과정을 알지 못하는 내가 보기에 맨 마지막에 남겨진 자국은
죽어 가는 사람이 혼신을 다해 자신이 살이 있음을, 혹은 살아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보세요, 나는 살아 있어요. 나를 죽었다고
말하지 말아요. 나를 살려 주세요. (p.35)
이 작품은 동물의 피를 섞은 용액을 두 손바닥 가득 묻혀 벽에다 꾹 누른 뒤 아래로 주저앉으며 흘러내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보는 순간 붉은 아픔, 강렬한 외침이 마음에 파고들어 슬프고 고통스러웠다.
잊고 있었는데 뉴스로 접했던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이 오버랩 되었던 것이다.
컴컴하고 유독가스로 가득해 한 치 앞도 안 보였을 지하, 아마도 사람들은 벽면을 따라 손을 짚으며 출구를 찾아 길을 헤맸을 것이다.
뉴스에서 보여줬던 장면은 바로 검댕이, 재로 가득한 벽면에 사람들 손자국이 죽 이어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끝은 막다른 곳이었던 것이다. 어둠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막다른 벽으로 향한 사람들은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당시 그것은 어린 마음에 무척 충격이었다.
그 손자국만으로도 절망감, 공포, 좌절, 죽음의 순간들을 모두 느껴져 마음이 아파져왔고,
살고 싶다고 절규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러면서 어쩐지 알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지금 그림을 통해 무겁게 내려앉은 마음을 공감하고 공유하고 있는 것이라는 걸.
그림에서 어떤 감정이 흘러오기도 하지만 반대로 나의 것을 흘려보냄으로써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음을 말이다.
지치고 힘들었을 때, 우울할 때, 슬플 때 등.
사람마다 기분을 전환하는 방법은 각자 다르겠지만 때로는 그림을 통해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을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을 바라보다 보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분, 감동이 뒤섞여 마음이 충족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얻는다는 것! 참으로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