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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 - 태어남의 불행에 대해
에밀 시오랑 지음, 전성자 옮김 / 챕터하우스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보통은 태어난 것, 살아있는 것을 좋게만 얘기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이 책의 작가 에밀 시오랑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좀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태어남을 재앙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작가가 밤낮으로 고뇌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죽음'.
그의 문장은 다음과 같은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부질없음, 공허함, 우울, 회의감, 불안, 두려움, 태어났다는 사실에 대한 강박관념, 소용없음,
무의미, 생에 대한 혐오, 무기력 등.
어쩐지 불투명 수채화가 떠오른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이것은 글쓴이에게 에너지가 되어 자아를 탐구하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남이 느끼기에 밝은 에너지는 아닐지라도 그에게는 어느 정도는 위안이 되는 그런 에너지인 셈이다.
단 하나의 진정한 불행, 그것은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그 불행은
공격성, 모든 것의 근원에 자리 자고 있는 확산과 분노의 원리, 그 근원을
뒤흔들었던 최악의 것을 향한 충동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p.19)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고 음울한 것만이 자신을 위로해줄 수 있다고 말하는 작가.
태어났다는 사실이 단 하나의 진정한 불행이라면 그걸 잊으면 좋겠지만 그건 참 쉽지가 않다.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그 사실만큼은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증거가 되니 말이다.
그리고 의식하지 않으려 할수록 거기에 사로잡혀 버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냥 현실의 흐름에 개인을 내맡기는 것뿐이다.
차라리 어떤 면에서는 이런 솔직함이 낫다고도 본다.
실제는 그렇지 않다고 느끼면서도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인생은 무조건 좋다고만 우겨대는 사람보다는.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면 이런 생각을 한다.
‘힘들어. 힘들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아. 괜찮은 때도 있어.’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건가?
그리고 스스로 제대로 생각해본 적 없이 남들 말에 따라 그런가? 하며 동조하는 사람보다는 차라리 작가가 낫다고도 여긴다.
적어도 글쓴이는 열심히 자신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라도 있지 않은가.
물론 세상에는 정말 감사하고 행복하고 만족해서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 또한 있다는 것도 당연히 알고 있다.
작가는 태어남의 불행, 태어남의 저주에 대해 망설임 없이 표현한다.
개인적으로는 어느 한쪽만 옳은 건 없으며 동전의 양면처럼 삶은 모든 면이 존재하고 어떤 해석도 가능하다고 보기에 책을 읽는 내내 큰 불편함이나 거부감은 없었던 것 같다.
작가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이런 시각도 있을 수 있구나, 라며 관조적인 관점에서 책을 읽어나갔다고나 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사실’이 있을 때, 그것을 어떤 ‘진실’로 받아들일 것이냐는 각자의 몫이 아닐까 하는 것.
탄생을 경이로움, 신기함, 놀라움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그것을 불행으로 해석한다고 해도 굳이 눈을 찌푸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는 개인에게 달린 문제니까 말이다.
빛을 예로 들어 보자.
빛은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고 무언가를 볼 때 도움이 되지만, 너무 강렬하고 밝으면 오히려 눈부셔 앞이 잘 안 보이기도 한다.
그림의 아름다움과 가치도 상대적이다.
세상에는 기괴하고 난해한 그림들이 찬사를 받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을 가진 경우도 많다.
날씨에 대한 해석도 마찬가지.
‘비가 내린다’는 단순 문장 하나만으로도 누군가는 우울하다고 느끼고 누군가는 비 내리는 게 좋아 기분 좋다고도 느낀다.
그러니 태어남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시각이 가능하리라.
그중 에밀 시오랑은 ‘불행’하다라고 기울었을 뿐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그의 글이 꽤 흥미롭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허무와 불안 가득한 문장 이면에는 긍정적 쓸모도 곳곳에 숨어 있다.
마치 밤하늘이 어두워야 별빛이 잘 보이는 것처럼.
하지만 생각 역시 습관이 될 수 있는 만큼 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이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려 있음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모욕을 당할 때마다, 복수하고 싶은 기분을 멀리하기 위해,
무덤 속에 조용히 누워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곤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면 이내 마음이 누그러지곤 했다. 우리의
시체를 너무 경멸할지 말 일이다. 때로는 그것도 우리에게
소용이 될 수가 있으니까. (p.111)
태어남이 하나의 파멸이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인정할 때, 삶은
마침내 견딜 만한 것이 되고, 마치 항복한 다음 날처럼 투항한 자의
홀가분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p.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