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데구르르르
쿵, 데구르르르
지붕에 떨어진 감이 요란하게 굴러간다.

 


높은 사다리를 걸쳐봐도 도저히 가지에 손이 닿지 않았던 외할아버지 댁 감나무는
가끔 그렇게 감을 떨어뜨리며
우리를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비가 내리지 않아도
하늘에서는 파릇파릇한 감이 이따금 뚝뚝 떨어졌다.
아직 익지도 않은 감을 몇 개 내어주며 인사라도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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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시들이 있다는 걸 알지만

그냥 지나치기만 할 뿐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것도 그럴 것이 지하철역에서는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게 가장 먼저고, 

자신이 타야 할 지하철이 언제 도착하나 그것부터 신경 쓰게 되니까 말이다.

그러다 보니 그 밖의 것은 무심하기도 했고,

크게 관심이 없어서인가 시가 바로 앞에 있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소설 사이사이 시집을 읽게 되면서

시를 읽는 것도 좋구나 느껴본다.

덩달아 스크린도어의 시들도 눈에 들어오는 요즘이다.

예전에는 시에 별 관심이 없었고,

다른 장르의 책들 읽느라 시집 읽을 생각은 크게 안 했었는데

이제는 시도  참 매력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시를 잘 안다거나, 문학적으로 감상할 정도는 아니다.

그저 편안하게 내 역량만큼 느끼고 생각하고 공감하면서

시 읽는 재미를 늘려가는 중.

 

 

좋은 시 한 편, 

눈에 담고 마음에 담으니

그 여운이 책 한 권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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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지현

출판사 이야기꽃

 

 

 

 

1.
이지현 작가의 『문』은 글 없는 그림책이다.
소년이 벌레를 따라 꼭꼭 잠겨진 문을 열쇠로 열고 통과하게 되는데
그곳은 다른 세상과 연결된 문이다.
다른 모습, 다른 언어를 쓰는 존재들이 사는 곳이지만 다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맑은 날씨, 나무 아래서 벌어지는 피크닉.
맛있는 음식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그림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자 내가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다.
그림책을 보다가 이렇게 소풍 장면 혹은 모두 모여 식사하는 장면이 나오면
그 장면을 꼭 찍어두고는 한다.
책 너머로 즐거운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져오는 듯해서 왠지 기분이 좋다.

 


2.
어렸을 때부터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문을 열었을 때, 원하는 곳에 바로 도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상상만 해도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림책은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준다는 설정은 아니지만,
그것에 상관없이 내가 종종 하던 문에 관한 상상은 이러했다.)

 

그러면 먼 곳에 사는 친구도 금방 만날 수 있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야 하는 먼 약속 장소에도 금방 도착할 수 있으며,
한 번쯤 가보고 싶은 여행지도 얼마든지 다닐 수 있다.
 

여기서 잠깐, 누군가는 이 타이밍에 여행은 가는 과정도 하나의 즐거움이지
않겠냐고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중간중간 휴게소 가는 재미며, 가는 도중에도 군데군데 둘러보면 좋을 곳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고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일정 시간까지가 좋은 것이지
목적지가 너무 멀어 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면 설렘과 기대를 넘어 여행하기도 전에 기운이 다 빠진다.
무엇보다 날씨가 안 좋아 교통편이 지연되거나
이래저래 길이 막혀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되면 과정이고 뭐고 간에 빨리 도착하기만을 바라게 된다.
그리고 멀미까지 겹치면 내 몸인데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그런 기분!
어쨌든 이것은 개인 선택이다. 
일단 이러한 상상을 가능하게 해주는 문부터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만약 문이 있다는 가정하에,
개인적으로는 가는 과정을 단축시키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여행지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특히 이러한 문을 원하게 되는 또 하나의 경우가 있으니
바로 집에 돌아갈 때!!
이것은 꼭 여행지에서만의 일이 아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모든 경우, 이러한 문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눈이 오거나 비가 내리면 어쩐지 기다리는 버스는 더 안 오는 것만 같고,
지하철을 타더라도 많은 사람들 속에 끼어 있으면 왠지 더 지치는 법이다.
어휴, 꼭 내가 서 있는 곳만 자리가 나지 않는 이 불운은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피곤하고 지칠 때, 문 하나만 통과해 바로 집에 도착할 수 있다면
빨리 씻고 이불 속으로 쏙~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밤늦게 막차시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여러모로 기특한 문이 아닐 수 없다.

 


3.
그러면 또 악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문제긴 문제다.
그렇다면 문의 기능은, 원하는 곳 바로 근처까지만을 데려다주는 게 딱 좋을 듯하다.
어딘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면 직접적으로 그 안으로 연결되는 것은 안 되며,
그 근처 다른 곳 문에서 나와 이제 거기서 알아서 걸어 들어가게끔 하는 규칙이 있으면
어떨까.
예를 들면 은행이나 박물관 같은 곳도 근처 어딘가에서 문을 통해 나와서, 은행이나 박물관을 통하는 입구는 직접 알아서 들어가야 하고, 이것 역시도 정해진 시간 내에 알아서 이용할 것.
한마디로 금고 안을 바로 들어갈 수 없고, 한밤중에 박물관 전시품 보러 갈 수 없음!! 
같은 논리로 타인의 집에 함부로 침입할 수 없다.

 


4.
다른 곳으로 통하는 문.
이미 내 마음은 푸른 바다, 혹은 다른 나라의 아기자기한 골목이 예쁜 작은 동네로
건너가 산책을 즐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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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명확한 것이 좋았다.
모든 걸 흑과 백으로 가른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 가치관은 이것이라고 뚜렷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고
따라서 애매모호하게 답을 내리지 않는 것보다는 정확한 표현이 좋았다.
그러나 이런저런 인간관계를 겪다 보니 느낀 것이 있다.
모든 것은 상황에 따라 상대적일 수 있다는 점.
그러니 기본적인 중심은 갖고 있으되, 언제나 꼭 그것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좋은 것도 사람에 따라서는 나쁘게 해석될 수 있고
누군가 탐탁지 않아 하는 것도 결국은 그 사람에게 그런 것일 뿐
나머지 사람에게는 좋은 면으로 보일 수 있더라.

 


그리고 평소 지켜온 신념, 예를 들어
상대에 대한 배려라든가 양보 같은 것도 한결같이 지키는 것보다는
이기적인 사람, 무례한 사람에게는 굳이 해줄 필요가 없다는 결론도 얻었다.

 


오히려 그것을 당연하고 이용하려는 사람이 많아서
나중에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만 받을 뿐이라
단호해야 할 때는 단호해야 한다.
 


사람들이 흔히 하기 쉬운 실수가 있다. 바로 단정 짓기다.
여러 명이 어떤 한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다.
그걸 옆에서 들은 누군가는 그 사람을 직접 겪어보지도 않고 내게 이렇게 말하더라.
"그 사람은 조심해야 해. 나쁜 사람이야."
하지만 그렇게 완전히 판단하는 것은 섣부른 행동 아닐까.
오히려 그 여러 명이 못된 사람일지 누가 아느냐 말이다.
아니면 아는 사람들이라 못된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자신들의 기준에 맞지 않아서 이상하다느니 나쁘다느니,

있는 말 없는 말하는 건지 어떻게 아느냐 이 말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지인은 오히려 날 이상하게 바라봤다.
여러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데 당연히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는 거다.
내 대답은 이러했다.

 


"그럼 여러 명이 저보고 나쁘다고 욕하면, ㅇㅇ님은 이제부터 저를
나쁜 사람으로 보실 건가요? 저는 만약에 그 사람들이 ㅇㅇ님을 나쁘다고 욕해도
신경 안 쓸 건데요. 제가 겪은 ㅇㅇ님은 저한테는 좋은 분이라서요."

 

 

쉽게 말해,
남들이 당신을 둘러싸고 별별 말로 공격한다 해도
당신이 나쁜 사람이 아닌 것처럼.
대부분은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수다 같은 것이니까.

 

 

사람은 겪어보고 나서 말해도 늦지 않더라.
심지어 가까운 사람이 내린 평가라 하더라도.
그런데 이것은 양쪽 모두에 해당된다.
남에게 나쁜 사람이 나에게 나쁘라는 법은 없으며,
남에게 좋은 사람이 내게 좋은 사람이라는 법 없다.
그리고 나는 이 두 가지를 모두를 겪어봤다.
아무리 인기 많고 좋은 사람이라고 알려져도,

나랑 친한 사람이 "저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하더라도,
직접 깊은 대화 나눠보고 겪지 않으면 모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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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오직 두 사람>.
  이 소설은 아빠와 딸에 관한 이야기다. 삼 남매 중 둘째인 현주를 유독 예뻐하는 아빠는, 둘이서 여행도 가고, 영화나 전시를 보고 브런치를 먹으며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다. 처음에는 사이가 좋은 부녀 모습에 흐뭇하게 바라봤었다. 그러나 과하면 부족함만 못하다고 했던가. 아빠와 딸이 잘 지내는 것은 좋으나 부모의 애정이나 기대가 너무 크면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보내는 시간을 재미없고 시시하다고 느끼며 곧잘 실망하고는 한다. 그래서 결말은 늘 누군가와 사귀었다가 헤어지고 다시 아빠와의 관계로 돌아간다. 아빠의 기분을 살피고, 아버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맞춰주었던 그녀. 이런 패턴의 반복의 결과 그녀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아빠와의 관계뿐이다. 그녀라고 답답한 순간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벗어나지도 끊지도 못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에게 있어 아빠는, 만약 전 세계에서 희귀 언어, 그러니까 그 모국어로만 대화를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있다면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한 명과도 같은 존재였다. 

 

아빠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분명히 알았어요. 내 삶의 더 커다란 결락, 더 심각한 중독은 아빠였다는 것을. (...) 아빠하고는 달라요. 저에게는 아빠가 모국어예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냥 운명 같은 거예요. (p.38, <오직 두 사람>)

 


  관계란 게 그렇다. 같이 무언가를 하고 시간이 계속 누적되다 보면 그 관계는 무 자르듯 단번에 쳐낼 수도, 깔끔하게 정리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엔 간단해 보이는 관계더라도 자신에게만큼은 어렵고 혼란스러운 고민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가까운 사이도 그러한데 그것이 가족이라면 어떻겠는가. 타인이라면 어쩌면 인연을 끊어야 한다거나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는 조언을 꺼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 사람을 위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솔직히 터놓고 말해보자. 그런 말 역시 당사자가 아니니까 쉽게 할 수 있는 것이지, 어떤 문제든 정작 자신이 그 중심에 있게 된다면 그렇게 간단하게 여길 수 있을까. 물론 단호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사람도 많으며, 무엇이든 본인의 문제가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모순적이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사람은 자신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감정을 배제할 수 없는 데다가, 그 인생을 살아가고 감내하는 것 또한 자신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복잡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관계에 굴곡이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세상 누구보다 가까웠던 두 사람.
아빠가 돌아가신 후, 화자는 허전함을 느끼지만 자신의 삶을 묵묵히 나아가고자 한다.

 

저도 알아요.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삶이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요. 그런데 그게 막 그렇게 두렵지는 않아요. 그냥 좀 허전하고 쓸쓸할 것 같은 예감이에요. 희귀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가 된 탓이겠죠. (p.41, <오직 두 사람>)

 

 
  그 외의 소설, <아이를 찾습니다>, <인생의 원점>, <옥수수와 나>, <슈트>, <최은지와 박인수>, <신의 장난>은 읽은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개인의 인생은 ‘누군가와의 만남, 혹은 어떤 사건’을 중심으로 그 일이 있기 전과 후로 나뉠 수도 있겠다고.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때로 자신의 삶에 있어 기점 혹은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주말의 혼잡한 대형마트에서 어린 아들을 잃어버리고, 11년 만에 찾았다는 연락을 받은 부부 <아이를 찾습니다>.
-초등학생 이후 다시 만나게 된 인아. 그녀를 사랑하기에 그녀가 자신이 돌아갈 곳, 인생의 원점이라고 생각하는 서진 <인생의 원점>.
-그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미친 듯이 글을 쓸 수 있게 된 소설가 <옥수수와 나>.
-만나본 적 없는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뉴욕으로 간 지훈. 하지만 자신 외에 다른 남자도 탐정의 연락을 받아 그곳에 도착하고, 누가 진짜 아들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들에게 남겨진 건 유골함과 슈트 몇 벌인 상황 <슈트>.
-미혼인데 곧 출산을 한다며 애를 낳고도 회사를 다닐 수 있는지 묻는 직원 최은지와 그 일을 암 병동에 있는 친구 박인수에게 의견을 묻는 화자. 최은지의 비밀을 지켜주다가 오히려 다른 직원들과 아내한테 괜한 오해만 사게 되는 <최은지와 박인수>.
-신입 사원들이 거치는 연수의 한 과정인 줄로만 알았던 방 탈출 게임. 하지만 핸드폰도 맡기고 들어왔고, 인터폰은 먹통인 상태에서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게 되자 에서 점점 불안과 초조를 느끼는 사람들 <신의 장난>.

 


  일이 안 좋게 흘러간 경우 사람들은, 결과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며, 이럴 줄 알았다면 그때 그런 선택이나 행동은 하지 않았을 거라는 후회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래를 미리 알 수 있었던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작가는 이런 기이하고 아이러니한 상황들을 위트와 적절히 버무려 독자들에게 펼쳐 낸다. 그리하여 소설 속 인물들은 눈앞의 일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견뎌낸다. 나름의 합리화를 하거나 혹은 그다음에 무엇을 할지 생각해보며.
  희망은 바람 앞 촛불처럼 위태롭지만, 그들은 살아간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응급실을 나온 그는 의료기기 샘플이 들어 있는 가방을 들고 소독약 냄새가 진득하게 깔린 병실의 복도를 지나 구매 담당자의 사무실을 향해 힘차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 순간이 인생의 새로운 원점이라고 생각하면서. (p.109, <인생의 원점>)


그렇게 그들의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p.265, <신의 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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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2018-03-08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었더니 되려 할 말을 찾지 못하게 된 소설. 오직 두 사람의 서평을 이렇게 써주시다니... 기억이 새록새록햐집니다!

연두빛책갈피 2018-03-09 22:44   좋아요 0 | URL
저도 술술 읽히더라고요. 김영하님 책은 속도감 있게 읽히는 무언가가 있는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