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지현

출판사 이야기꽃

 

 

 

 

1.
이지현 작가의 『문』은 글 없는 그림책이다.
소년이 벌레를 따라 꼭꼭 잠겨진 문을 열쇠로 열고 통과하게 되는데
그곳은 다른 세상과 연결된 문이다.
다른 모습, 다른 언어를 쓰는 존재들이 사는 곳이지만 다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맑은 날씨, 나무 아래서 벌어지는 피크닉.
맛있는 음식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그림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자 내가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다.
그림책을 보다가 이렇게 소풍 장면 혹은 모두 모여 식사하는 장면이 나오면
그 장면을 꼭 찍어두고는 한다.
책 너머로 즐거운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져오는 듯해서 왠지 기분이 좋다.

 


2.
어렸을 때부터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문을 열었을 때, 원하는 곳에 바로 도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상상만 해도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림책은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준다는 설정은 아니지만,
그것에 상관없이 내가 종종 하던 문에 관한 상상은 이러했다.)

 

그러면 먼 곳에 사는 친구도 금방 만날 수 있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야 하는 먼 약속 장소에도 금방 도착할 수 있으며,
한 번쯤 가보고 싶은 여행지도 얼마든지 다닐 수 있다.
 

여기서 잠깐, 누군가는 이 타이밍에 여행은 가는 과정도 하나의 즐거움이지
않겠냐고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중간중간 휴게소 가는 재미며, 가는 도중에도 군데군데 둘러보면 좋을 곳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고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일정 시간까지가 좋은 것이지
목적지가 너무 멀어 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면 설렘과 기대를 넘어 여행하기도 전에 기운이 다 빠진다.
무엇보다 날씨가 안 좋아 교통편이 지연되거나
이래저래 길이 막혀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되면 과정이고 뭐고 간에 빨리 도착하기만을 바라게 된다.
그리고 멀미까지 겹치면 내 몸인데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그런 기분!
어쨌든 이것은 개인 선택이다. 
일단 이러한 상상을 가능하게 해주는 문부터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만약 문이 있다는 가정하에,
개인적으로는 가는 과정을 단축시키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여행지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특히 이러한 문을 원하게 되는 또 하나의 경우가 있으니
바로 집에 돌아갈 때!!
이것은 꼭 여행지에서만의 일이 아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모든 경우, 이러한 문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눈이 오거나 비가 내리면 어쩐지 기다리는 버스는 더 안 오는 것만 같고,
지하철을 타더라도 많은 사람들 속에 끼어 있으면 왠지 더 지치는 법이다.
어휴, 꼭 내가 서 있는 곳만 자리가 나지 않는 이 불운은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피곤하고 지칠 때, 문 하나만 통과해 바로 집에 도착할 수 있다면
빨리 씻고 이불 속으로 쏙~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밤늦게 막차시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여러모로 기특한 문이 아닐 수 없다.

 


3.
그러면 또 악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문제긴 문제다.
그렇다면 문의 기능은, 원하는 곳 바로 근처까지만을 데려다주는 게 딱 좋을 듯하다.
어딘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면 직접적으로 그 안으로 연결되는 것은 안 되며,
그 근처 다른 곳 문에서 나와 이제 거기서 알아서 걸어 들어가게끔 하는 규칙이 있으면
어떨까.
예를 들면 은행이나 박물관 같은 곳도 근처 어딘가에서 문을 통해 나와서, 은행이나 박물관을 통하는 입구는 직접 알아서 들어가야 하고, 이것 역시도 정해진 시간 내에 알아서 이용할 것.
한마디로 금고 안을 바로 들어갈 수 없고, 한밤중에 박물관 전시품 보러 갈 수 없음!! 
같은 논리로 타인의 집에 함부로 침입할 수 없다.

 


4.
다른 곳으로 통하는 문.
이미 내 마음은 푸른 바다, 혹은 다른 나라의 아기자기한 골목이 예쁜 작은 동네로
건너가 산책을 즐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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