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이현우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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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이현우 옮김, 문학동네) 1899, 2020』은 속수무책 무거운 바통을 독자에게 넘기고는 숨죽이게 만드는 작품이다. 역자 이현우는 열린 결말을 문학적 장치보다는 등장인물의 역량 부족에서 찾는다. 읽을수록 묘하게 겹쳐지는 실루엣을 어느 순간 발견하게 될 독자는 필시 위안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단번에 읽고 다시 읽게 하는, 나아가 무한 루프에 가두는 것이 어쩌면 단편 소설이 추구하는 미덕이 아닐까. 세계 최고의 극작가, 세계 최고의 단편 작가로 불리는 안톤 체호프(1860~1904)는 1000편에 이르는 단편 소설을 썼다. 나보코프는 이들 중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지금까지 쓰인 가장 위대한 단편소설이라고 꼽는다. 작가는 단편을 발표하기 시작한 초기부터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그가 활동한 시대는 ‘체호프 시대’라 불린다. 하비에르 사빌라의 일러스트를 더해 감상하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상상의 여지를 한 뼘 더 넓힌다.

이른 결혼으로 아직 마흔이 되지 않은 구로프는 아내를 비롯해 대부분의 여성을 저급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경험에서 비롯한 결론이었고 수차례 누적된 외도는 연애의 생리부터 시작과 종결에 드리운 감정의 고저까지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일상으로 지루하게 치부되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역시 빠르게 잊힐 또 하나의 추억을 보탰을 뿐이다. 휴양지 얄타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서로에게 점점 자연스러워 보인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이제 별칭이 아닌 이름으로 불린다. 그러나 둘만의 공간에서 안나 세르게예브나가 보인 반응은 남자에게 의외다. 그녀의 진지함은 그의 루틴을 깬다. 더 나은 삶을 찾고 싶었던, 제대로 살아보고 싶었던 스무 살의 안나는 결혼했고, 그때의 선택이 괴로웠고, 현재의 자신도 괴로울 뿐이다. 헤어질 시간 앞에서 구로프는 잊지 못할 거라고 진심을 전하는 그녀와 달리 가면 쓴 자신을 내버려 둔다. “진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자기 탓이 아니다. 그가 확신하며 ‘끝’이라 내렸던 결론. “하지만 정말로 끝나기까지는 아직도 얼마나 먼 길이 남은 것인가!”(p.47)라고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절정에 이르러 독자를 놓아버린다. 마치 롤러코스터의 꼭대기에서 숨죽인 채 동작 그만 하고 있는 형국이다. 끝나도 끝난 게 아닌 이 결말, 다른 결말을 주소서, 작가에게 부칠 수 없는 편지를 쓰고 싶기도 하고,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가장 복잡하고 힘겨운 일’(p.59)을 어쩔 거냐며 걱정이 앞선다. 소설은 훌훌 털고 책장을 덮지 못하게 하는 강렬한 몰입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옳고 그름, 도덕과 부도덕, 사랑이냐 그를 가장한 합리화냐, 이어지는 흑백 논리만으로는 결코 만족스런 결론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간결한 문장으로 전개되는 서사는 환상에 빚지는 일 없이 지극히 사실적이다. 그럼에도 현재를 채우는 균일한 일상에 틈을 내고 감각을 넘어 또 다른 차원을 알아차리게 하는 장면들은 깊은 아름다움을 간직한다. 또한 구로프만 특별히 공적인 삶과 비밀스런 삶이라는 두 가지 영역을 살아내고 있을까? 조건부 진실과 조건부 기만으로부터 탈출할 것을 꿈꾸는 자들이 여전히 얼마나 많을 것인지. 누구나 예외일 수 없는 보편적 갈망은 어쩌면 질문 보다는 공감을 취할 것이다. 성장은 비탈보다는 계단 오르기에 가깝다고 한다. 그로프와 안나가 의도하지 않았던 계단에 함께 오르게 되었으니 어떤 빛깔이 되었건 보이는 풍경은 달라지지 않을까. 백 년이 더 지난 고전이 고전(苦戰)하는 우리에게 말을 건다.

책 속에서>

이런 항구성에, 우리들 각자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 완전한 무관심 속에, 아마도 영원한 구원의 약속, 지상에서의 삶의 끊임없는 움직임과 완성을 향한 무한한 진보의 약속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중략) 구로프는 우리가 존재의 고결한 목적과 인간적 존엄을 잊은 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제외하면 이 세상 모든 것이 실상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생각했다.(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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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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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창비), 2022』는 퍼즐로 완성한 아버지의 초상, 딸이 부르는 사부곡이다. 작가는 1990년 첫 소설 『빨치산의 딸』을 펴낸 후 신춘문예 당선 및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고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32년 만에 나온 장편소설로 리얼리스트의 완벽한 귀환을 알린다. 정지아는 후기에서 “나의 비극은 내 부모가 빨치산이라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내 비극의 출발이었다.”(p.267)라고 말한다.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는 독자를 흠뻑 빠져들게 했는데 허구가 아닌 자전적 색채를 덧입자 감동은 배가된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남는 것은 예상할 수 있었던 깊은 여운과 예기치 못했던 ‘과제’다. 아이러니하게도 안도와 카타르시스, 그리고 약한 체증을 동시에 경험케 하는 책이다. 소설의 시간이 끝나면 비켜갈 수 없는 독자 개인의 시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p.7)라는 첫 문장이 강렬하다. 내 아버지로 말할 것 같으면, 하는 딸의 회상이 영정 속 빼뚜름한 아버지의 시선을 받으며 그려진다. 장례를 치르는 3일 동안 대학 강사인 딸 고아리는 속속들이 안다고 생각했던 아버지 고상욱의 또 다른 모습과 만난다. 사회주의자였고 전 빨치산, 합리주의자였던 아버지의 꼿꼿한 선택과 행동이 현실주의자인 딸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의 나됨은 내 선택이 아니었기에 그로 인한 원망도 세월만큼이나 쌓였던 딸.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못해 선 보증으로 거푸 빚을 떠안으면서도 필시 사정이 있었으리라 원망하지 않았던,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다는 아니었다.

아버지를 찾은 사람들이 내민 조각들은 노란 머리 염색하고 할아버지를 애달프게 그리는 소녀처럼 처음 보는 것들도 있었다. 하나뿐인 동생에게도 원수처럼 여겨졌으나 그 원망을 무심히 받아내다 그대로 떠났기에 더 마음 아픈 아버지지만 작은아버지의 ‘사정’처럼 비로소 알게 된 것들도 있었다. 아버지는 청춘의 빛나는 시선을 가진 소년이기도 했다. 처음부터 사시였던 게 아니었다. 질게 뻔한 전쟁에 젊은 목숨을 살리고자 따르는 청년을 만류하는 아버지도 있었다. 그런 싸움을 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뒤늦게 헤아리는 시간, 조금 더 일찍 알 수 없었기에 슬픈 시간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읽는다는 행위가 이토록 재미있는 일이었나 싶을 만큼 빠져들게 만든다. 또한 고상욱이라는 인물의 삶을 엿보며 해방 이후 70년의 혼란과 비극을 살피는 기록으로서의 가치도 지닌다. 아픔은 깊지만 마냥 어둡지 않았다. 이는 대화와 서술의 균형, 맛깔나는 사투리(때론 노래 같은), 유머의 일상화, 타고난 재치가 곳곳에 반짝이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도 공감하게 되는 진지한 사유는 독자를 머물게 한다. 작가는 아리의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아버지와 주변 인물들의 관계 맺는 법, 삶을 대하는 태도, 소중한 것을 묵묵히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놓치지 않는다.

내 부모님의 해방일지를 쓰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몇 해 전 이00 교수님의 자서전 쓰기 수업에 참여한 이후로 마음속 어느 구석엔가 가라앉아 있다. 혹여 흔들리기라도 하면 깔린 진흙이 금새 흙탕물로 일어날까 싶어 살금살금 걷고 있는 중이다. 소설은『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재미있었나? 그렇다면 이제 당신 차례요!’라고 독자를 환기시킨다. ‘저는 독자일 뿐이요!’라는 말은 궁색한 변명이다. 탓은 쉽고 감사는 어려웠던 날들, 오늘만 날인가 외면하던 순간들이 너무 늦었다고 아우성치기 전에 직시해야 할 것이다. 자유는 또는 해방은, 불편하게 옥죄는 굴레를 날 선 칼로 끊어낼 때가 아니라 이해함으로 화해할 때 목울음처럼 뜨겁게 안겨오는 게 아닐까. 한달음에 읽어내고 오래 붙잡힐 소설이 이 겨울을 따뜻하게 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다. 아버지에게는 아버지의 사정이, 나에게는 나의 사정이, 작은아버지에게는 작은아버지의 사정이. 어떤 사정은 자신밖에는 알지 못하고, 또 어떤 사정은 자기 자신조차 알지 못한다.(p.33)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빠. 그 뚜렷한 존재를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불렀다.(p.181)

사무치게,라는 표현은 내게는 과하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야말로 긴긴밤마다 그런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으리라.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야 겨우 깨닫는 못난 딸인 것이다.(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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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소크라테스 - 철학자의 탄생
아먼드 단거 지음, 장미성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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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소크라테스(Socrates In Love, 장미성 옮김, 글항아리),2022』는 고전학자 아먼드 단거가 복원해낸 젊은 시절의 소크라테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소크라테스를 소개한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방점은 사랑에 찍혀있고 이 사랑이 부제인 “철학자의 탄생 The Making of a Philosopher”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사랑에 빠진 소크라테스』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의 상징처럼 단단히 고착된 소크라테스의 이미지를 저자가 수집한 자료들을 도구 삼아 흔들어 대는 책이다. 뿌옇게 이는 먼지 틈새에서 저자는 교정해야 할 부분을 짚어내고 합리적 근거와 설득적 추론으로 오류를 바로잡고자 한다. 인류 최고의 철학자에 대해서 지금껏 베일에 가려져 있었지만 만일 이를 걷어내고 조명을 드리울 방법이 있다면 기꺼이 확인하고 싶을 것이다. 분명 호기심과 매혹으로 가득 찰 이 여정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서둘러 동참토록 이끌기 때문이다.

저자는 소크라테스 전기의 주된 출처인 플라톤과 크세노폰 뿐만 아니라 후대의 전기 작가들 역시 동일한 시각으로 소크라테스의 젊은 시절을 간과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소크라테스를 소크라테스로 만든 것이 무엇인지 밝히기 위해 이미 알려진 연대기와 여러 문헌을 참고해 중년기 이전 어린 시절까지 철학자의 삶을 재구성한다. 책은 지도와 연표를 첨부하고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구름>에서 그려진 과장되고 희화화된 소크라테스를 선보이며 시작한다. 저자는 플라톤이 자신이 사랑하는 스승의 삶과 활동에 대해 독자들이 취하기를 바랐던 어떤 시각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가정하며 희곡이건 저작들이건 그 안에 잠재해 있을지 모르는 “왜곡”을 넘어서고자 한다.(p.40) 키케로의 말처럼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하늘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린 철학자이기 때문이다.(p.41)

책은 소크라테스가 스승부터 동시대인들, 제자들과 맺었던 관계를 다각도로 살피며 아테네 전성기와 굴곡의 장면들을 보여준다. 주요하게 다루어지는 인물은 아르켈라오스, 알키비아데스, 아스파시아다. 아르켈라오스는 사모스의 철학자 멜리소스의 사상을 배우기 위한 교육적 목적으로 10대 소크라테스와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멘토와 함께 했던 이 방문에서 소크라테스는 당대 고귀한 지혜에 온전히 동의할 수 없다는 불편함을 가지고 돌아온다. 곧 “인간의 일상적 경험에 대한 절박한 질문에 답해줄 수 없다면 이런 종류의 철학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p.146)라는 질문들을 간직하게 된다. 소크라테스가 어려서부터 아꼈던 알키비아데스를 저자는 ‘젊은 소크라테스의 또 다른 자아’로 여겼으리라고 보는데 결국 '폭주하는 젊은이'에서 반역자가 되고 비극적 종말을 맞는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부정적 여론의 단초를 만든다. 아스파시아는 『향연』에 나오는 ‘디오티마’ 의 실제 모델로 본다. 책 속에서 “그녀 나이대의 여성 중 가장 특출나고, 유창하며, 문제적이었고, 아마도 모든 고전고대를 통틀어 가장 특별한 여성일 것이다.”(p.209)라는 어마어마한 찬사를 받으며 철학자의 탄생을 이끈 장본인으로 자리매김한다.

사실만 제대로 이해하기에도 나의 뇌는 용적이 부족한 형편인데 가능성의 영역까지 굳이 추론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도 부정할 수 없다. 동시에, 이 가정이 사실이라면, 소크라테스가 가엾은 처지로 물질적으로 어려웠던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했다는 주장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진다. 철학자로서의 삶을 시작하기 이전에 경험했던 숙련되고 헌신적인 군인을 비롯한 다양한 행동가적 시간도 필요해 보인다. 시민으로서 누렸던 정서들이, 그리고 아스파시아라는 사랑이 일으킨 변화나 크산티페라는 악명 높은 상징의 온건한 수정까지도 만족스럽다.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공인받지 못한 가설일지라도 말이다. 저자는 본문 이후 지금껏 다루었던 논의를 기반으로 ‘상상력을 동원한 재창조’라는 단서를 달면서 “소크라테스의 인생”이라는 15쪽 분량의 새로운 전기를 완성한다. 이제 독자는 플라톤에 의존하는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사랑의 현현 아스파시아로 인해 서양철학에 방향 전환을 가져온 소크라테스를 만나게 된다. 채워진 빈틈에 동의되는 폭은 각자 다르겠지만 대화편을 다시 읽을 때 또 하나의 지도, 또 다른 각주가 될 것이다.

책 속에서>

소크라테스의 젊은 시절에 관한 증거가 왜 중요한가? 그의 젊을 적 경험과 지인들과의 관계는 소크라테스가 중년의 어느 순간 서양철학의 방향을 결정한 철학 활동의 창시자로 변한 이유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의 웅변가이자 정치가인 키케로가 말했듯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하늘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렸다.’(p.41)

고전학자 메리 레프코위츠의 예리한 지적처럼 그 역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영웅적인 죽음이 그에게 불멸을 가져다줄 것이다. 어떤 그리스인도 파트로클로스와 헥토르, 아킬레우스의 이름이나 행동을 잊을 수 없다.(···) 소크라테스는 사형 집행을 스스로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일대기를 통제할 수 있었다.(p.132)

소크라테스 이전의 시인과 사상가도 윤리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그들과 다른 점은 그 자신을 개별자로부터 보편적 정의로 나아가게 만든 그 발견의 과정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런 중요한 생각의 진보가 없었다면 플라톤은 결코 그의 이데아 이론을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에 관한 작품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p.219, 메리 레프코위츠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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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 독점계약 번역 개정판
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 까치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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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김택현 옮김/까치)2015, What Is History(1961)』는 질문하고 치열하게 답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를 자극하고 깨어있게 만드는 E.H.카의 주요 저서다. 러시아 주재 외교관이기도 했던 카의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저작은 14권 분량의 소련사인 『소비에트 러시아의 역사』로 이 책은 “탁월한 역사적 업적”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69세였던 카가 1961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여섯 차례에 걸쳐 진행한 강연을 묶은 책이다. 강연의 이유를 제 2판을 위한 서문에서 “진보에 대한 모든 신념과 인류의 더 나은 진보에 대한 모든 전망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배제해버리는 오늘날의 회의주의와 절망의 조류가 엘리트 주의의 한 형태”(p.12)라 진단하고 이에 대항하기 위함임을 밝힌다. 전쟁과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던 20세기 전반기, 진영 간 갈등이 두드러졌던 냉전기를 몸소 경험했던 저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긴밀히 연결함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총 여섯 장으로 구성된 『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로 시작한다. 사실은 역사가가 허락할 때에만 이야기하며 어떤 사실에 발언권을 주고 순서나 전후관계를 결정하는 사람 역시 역사가(p.21)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여러 학자가 갖고 있는 견해를 소급해 그들이 놓치고 있는 면을 짚기도 한다. 결국 인간과 그의 환경의 관계를 역사가와 그의 연구주제의 관계와 동일하게 보고 “평등한 관계, 주고받는 관계”로 역사가는 자신의 해석에 맞추어 사실을 만들고 동시에 이와 반대로 사실에 맞추어 해석을 만드는 끊임없는 과정에 종사한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카의 유명한 명제인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2장 “사회와 개인”에서는 역사는 하나의 사회적 과정이며, 개인은 그 과정에 사회적인 존재로서 참여하므로 사회와 개인의 대립을 가정하는 일 자체가 우리의 사고를 혼란시키는 미끼일 뿐이라고 말한다.(p.79) 이를 위해 살펴보는 가정들과 역사 위인설 등 여러 사례는 무척 흥미롭다. 


3장 “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에서는 역사가를 역사적 사실의 수집가와 구별해주는 것을 일반화로 본다. 일반화의 진정한 핵심은 이를 통해 역사로부터 가르침을 얻고자 하는데 있다. 즉. 사건에서 얻은 교훈을 다른 사건들에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또한 현재에 비추어 과거를 배운다는 것을 의미한다.”(p.96)는 인상 깊은 주장은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해를 진전시키며 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미래를 조망하게끔 이끈다. 역사가와 자연과학자가 동일 선상에 있는 이유와 근거들을 제시하기도 한다. 4장 “역사에서의 인과관계”에서는 역사에서의 우연의 문제를 다루는데 저자의 선명한 주장을 볼 수 있다. 5장 “진보로서의 역사”를 넘어 마지막으로 “지평선의 확대”에서는 세계 중심의 이동을 확인한다. 그는 “나 자신으로 말하면, 나는 여전히 낙관론자이다.”라고 전하며 앞서 살폈던 이론가들의 동의하기 어려운 역사관을 소환하고 결론 내린다. 


부록으로 실린 제 ‘2판을 위한 노트’는 방대하고 꼼꼼하게 모은 자료철을 통해 세상에 나오지 못한 판본을 잠시 상상하게 만든다. ‘역사이론에 공헌한 가장 소중한 인물들 중 한 명’이라고 일컬어지는 카는 묻기를 멈추지 않은 학자였고 자신이 먼저 답하고자 한계를 두지 않고 시간의 밀도를 높였음을 알 수 있다. 오래 전 읽었을 때 지적 거인의 논리에 감탄해마지 않았는데 마치 초독 같은 재독을 했던 이번에는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었다. 강연이었던 만큼 더욱 자신의 뜻을 오해 없이 명확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는 두드러졌다. 즉, 논지를 요약하기 위해 거듭 서수를 사용하면서 사례를 대고 다양한 예시로 설명을 보충하기에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다만, 엄청난 분량의 인용이 미덕이자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걸림돌이기도 했다. 계속되는 인용이 매끄러운 자갈길을 걷는 느낌을 주었다. 돌 하나하나를 주워들고 들여다 보아야 할 것 같았지만 그러다가는 너무 지체되고 혹시 들어섰던 이 길이 애초에 어디를 향했었는지 놓칠 것 같아 일단은 계속 통과하는 여정이었다. 시대와 조류에 대한 이해를 더한다면 책은 다르게 다가올 것이고 이는 독자의 몫인 것 같다. 용이한 독서는 아닐지라도 『역사란 무엇인가』 읽기는 선택보다 필수에 가깝다. 곱씹어 반복해 읽을 필요도 있겠다. 그렇다면 나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나는 역사를 어떻게 정의내리고 시선을 거두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나? 역사의 범위와 초점을 조정했을 때 답은 달라질 것이고 정해진 정답 또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묻는 일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또렷한 자극으로서도 카의 저서는 멈추지 않고 미래를 변화시킬 것이다.

책 속에서>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p.46)

역사에서 배운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방적인 과정이 아니다.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또한 현재에 비추어 과거를 배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그 두 가지 모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진전시키는 데에 있다.(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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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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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김연수 옮김, 민음사),1974』는 조작과 거짓이 한 인간을 어떤 식으로 몰아가 끝내 추락시킬 수 있는지를 신랄하게 고발한다.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라는, 제목에 덧붙여진 부제는 주인공이 겪어낼 기승전결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견한다. 작가가 ‘모토’라 칭한 서두의 단서에는 구체적인 이름(빌트지)이 등장하는데 이 세 가지 전제조건을 통해서 작품을 읽어내고 통찰하고, 문제 해결은 다른 차원에 놓더라도 진실에 닿기를 요청한다. 언제나 동시대인의 문제와 현실 인식을 화두로 삼았던 하인리히 뵐은 “우리 눈에 비치는 현실이 폐허라면, 그것을 냉철히 응시하고 묘사하는 것이 작가의 의무다.”라며 모순과 부조리를 향해 목소리를 냈고 197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고 학교에서 교재로 읽히며 영화화되기도 했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그렇다면 지금 현실은 어떤가, 미래를 낙관하거나 가늠해 볼 때 하나의 씁쓸한 표본을 제시한다.

“그자들이 이 아가씨를 끝장내고 말 거야. 경찰이 안 그러면 <차이퉁>이 그럴 거예요. <차이퉁>이 그녀에 대한 흥미를 잃으면, 사람들이 그럴 거고요.”(p.45)라는 문장이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는 현실을 상기시킨다. 블룸을 알고 있는 블로르나 부부는 신문 1면을 장식한 그녀의 기사에 분노를 표하는 동시에 정확히 간파한다. 카타리나 블룸이 지키고, 이루어내고 싶었던 꿈과 희망은 물론 살아있는 자가 마땅히 보장받을 ‘시간’ 또한 빼앗긴 게 현실이다. 카니발 시즌, 댄스 파티에 참석했던 카타리나 블룸은 괴텐이라는 남자를 만난 이후 강도 용의자였던 그의 도주를 도운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던 중 언론에 완전히 노출된다. 경찰과 신문이 카타리나에게 가하는 태도와 행동과 말은 의도된 오류를 증폭시키는 일방향으로만 속도를 낸다. 이미 거의 모든 것을 잃은 그녀는 결국 한계에 이르고 만다. “내내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게 사실이 아닐 거야.’ 하고요. 그렇지만 난 잘 알고 있었어요. 그 모든 것이 사실이었다는 것을요.”(p.151) 누가 비상(飛上) 하고 싶었던 카타리나, 유년의 불행과 매정했던 편견에 굴복하지 않고 용기 내었던 그녀에게서 갑자기 날개를 빼앗고 끝내 추락하게 만들었나.

소설은 스물일곱 살의 이혼녀 카타리나 블룸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명예를 잃어버리는 과정에 만연했던 폭력과 속수무책으로 감당해야 했던 고통, 이 고통이 불러일으킨 폭력의 귀결까지 부조리한 연쇄 과정을 그린다.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로 사실만을 전달하는 듯 보이지만 단어는 본래의 의미를 쉽게 왜곡하고 필요에 맞게 변조하며(p.32), 오히려 직업인으로서 도우려는 선의였다 포장(p.114)하면서도 문제의식이라고는 없다. 말이 내포한 진실이 곧이곧대로 수용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차라리 침묵을 택하기도 한다.(p.120) 소설은 이처럼 언어를 목적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킬 때 일어나는 문제를 때론 위트 있게, 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미 작가는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53)>에서 반쪽 진리를 담은 주교의 어휘나 고위 장교들의 빈약한 어휘에 주목하며 침묵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했었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뵐이 독일의 죄의식을 작품으로 구현한 작가였으나 절망에 유쾌함을, 처절한 자기반성과 애교를, 신랄함과 장난기를 함께 묶은 작가였다고 평했다. 또한 그가 전 세계가 인정하는 작가가 되었으나, 언제까지나 여전히 약자들의 형제요, 그들 중 하나였다며 ‘보통사람’이라는 명칭을 추가한다.(작가의 얼굴,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문학동네 p.300) 카타리나 블룸이라는 이름을 대체할 때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전속력으로 질주해오는 이름들이, 사건들이 있기에 1974년 출간된 이 “소설” 또는 작가의 주장대로 “이야기”는 다분히 현재적이며 첨예한 쟁점으로 독자를 각성시킨다. 행동하는 지성이었던 하인리히 뵐의 작지만 강렬한 소설을 추천한다.

책 속에서>

이 순간에야 비로소 카타리나는 이틀 치 <차이퉁>을 핸드백에서 꺼내 보고, 국가가(이렇게 그녀는 표현했다.) 이런 오욕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해 주고 그녀의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지 물었다.(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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