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섬 비룡소의 그림동화 301
바버러 쿠니 글 그림, 이상희 옮김 / 비룡소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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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라 쿠니의 『나의 작은 섬(이상희 옮김/비룡소)2021』은 작가 자신이 가장 아낀다고 말했던 1988년 작품이다. 화가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던 바바라 쿠니는 어릴때부터 그림을 그렸고 대학에서 회화와 판화를 공부한 이후 평생 100여권의 책을 그렸다. “어른과 아이 모두를 감동시키는, 더 이상 아름답고 조화로운 그림책은 상상하기 어렵다”(출판사인용)는 평을 듣는 작가는 1959년 『챈티클리어와 여우』로, 1979년에 『달구지를 끌고』로 칼데콧 상을 두 번 수상했으며 『미스 럼피우스』는 전미도서상을 받는다. 표지는 푸른 빛이 감돈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곳 멀리 보이는 섬이 바로 제목인 『나의 작은 섬』이고 작품의 주요 무대일 것이다. 좌우로 책을 펼치면 바다의 시원한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작은 새를 안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소년에게서 소중한 것을 소개하는 듯한 자부심이 비친다. 앞 뒤면지는 동일한 지도로 채워져 있는데 “모기곶”, “손도끼만”, “숫양섬”, “할머니 언덕”, “할아버지 암초”등 독특한 지명은 소년의 작품은 아닐까 짐작케 한다. 타이틀 표지에서 작은 섬은 조금 더 다가와 중앙에 자리하고 제목 역시 가운데에서 시선을 붙잡으며 독자를 한 발 더 가까이 이끈다.

“처음에 그 섬은 그저 그랬어요.”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빠는 항구 마을을 떠나 외딴섬에서 샘을 파고 집을 지은 후 아내와 세 아이들과 암소를 데려온다. 이후 섬은 가족의 성을 따 “티베츠 섬”이라고 불린다. 시간이 흘러 남자아이 여섯, 여자아이 여섯, 모두 열 두명의 아이들은 부모님께 배우고 익히며 놀고 성장한다. 작고 어려서 도움이 안된다는 형들 이야기에 막내 마타이스는 엄마가 심은 언덕 위 사과나무 아래서 “나는 왜 작을까?” 생각하지만 곧 자라서 형들과 함께 삼촌 배의 선원으로 항해한다. 이후 선장이 되었지만 멋진 도시에서도 마타이스는 섬을 잊지 못하고 돌아갈 결심을 한다. 티베츠 섬에 다시 정착한 마타이스는 커서 멋진 선장이 되겠다는 손자, 꼬마 마타이스에게 말한다. “만 너머 바깥세상을 보는 건 좋은 일이지. 그러면 네 마음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알게 될 거야.”라고. 자신에게 허락된 마지막 순간까지 마타이스는 묵묵히 움직이고 사람들 마음 속에서 언제까지나 잘 사셨던 좋은 분으로 남는다.

바바라 쿠니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곳인 미국의 메인주를 배경이면서 동시에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삼아 마타이스 티베츠의 부모님으로부터 꼬마 마타이스까지 4대에 걸친 연대기를 완성한다. 집에서 가장 “작은 아이”였던 마타이스가 “티베츠 섬의 꿋꿋한 노인”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고유하면서도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가는 유산이 된다. 소중한 것을 잊지 않고 지켜냈던 마타이스의 선택들과 정직한 손의 수고는 매일의 감사와 만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잔잔하면서도 뭉클한 감동은 섬세하게 빛나는 그림을 통해 배가된다. 작가가 새들이 쉬는 바위나 묘목 곁의 홍합 껍질 처럼 아주 작은 것들까지, 그곳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는 딸, 바바라 포터의 후기를 읽고 나면 바위나 틈새 한 군데조차 허투루 볼 수 없다. 빼곡이 스친 붓을 따라가며 변주되는 바다 색처럼 초첨을 정해 감상하게 된다면 『나의 작은 섬』 읽기는 수없이 반복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지나온 역사의 한 페이지를 간직하는 기록물로써의 가치도 지닌다. 다만 역동적인 영상물에 익숙한 어린 독자에게는 자칫 비교적 많은 텍스트 분량과 평명적인 그림이 몰입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다르게 읽힐 책임은 분명하기에 그림책 대가의 기념비적인 마지막 작품이 전하는 감동을 놓치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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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와 인형 미운오리 그림동화 2
라리사 튤 지음, 레베카 그린 그림, 서현정 옮김 / 미운오리새끼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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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리사 튤의 『카프카와 인형Kafka and the Doll(레베카 그린 그림/미운오리새끼/2022)』은 프란츠 카프카(1883~1924)가 제목으로 등장하는 그림책이라는 점에서 먼저 주목을 끈다. ‘부조리하고 암울한’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 ‘카프카적인(Kafkaesque)’을 사전에 등재시킨 주인공으로 대표작인 “변신”이나 미완성 장편 “성”에서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유지한다. 아버지로 인한 상처, 출세와 결혼 등의 부담으로 힘겨웠던 카프카는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생을 마친 천재 문학가다. 그런 카프카에게 이토록 다정한 조합이 가능할까 놀라왔는데 “카프카와 인형”이 온전한 창작이 아닌 실화를 엮었다는 사실에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는 기분이다.

카프카와 도라는 베를린에 있는 공원을 산책하고 있다. 쓰고 있는 소설 결말과 도시락 먹을 장소를 생각하며 걷던 중 울고 있는 소녀를 만난다. 수지가 자기 인형 숩시를 잃어버리고 슬퍼한다는 사실에 카프카는 말을 건넨다. 인형들은 여행을 좋아하는데 숩시도 여행을 가서는 소녀에게 편지를 썼다며 “나는 인형들의 편지를 배달하는 우편배달부란다.”라고 덧붙힌다. 카프카는 숩시 대신 편지를 쓰고는 직접 수지에게 전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편지를 통해 둘은 상상 속 세계여행을 즐기지만 예정된 결말은 다가오고 만다.

책은 카프카와 소녀 수지, 도라와 수지가 나누는 대화체 문장으로 생생함을 더한다. 카프카가 대필한 숩시의 편지는 또다른 즐거움을 전한다. 카프카 곁을 지켰던 도라 디아만트 덕분에 알게 된 편지를 실제 찾지는 못했다고 한다. 작가가 써내려간 문장임에도 기념사진처럼 여행지에서 도착하는 편지가 어쩌면 카프카의 버킷리스트는 아니었을까 상상해본다. 동글동글한 그림체는 차분한 색감에도 경쾌하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모자를 쓰고 성큼성큼 걷는, 호리호리한 외모에 큰 귀가 눈에 띄는 카프카와 재회하는 시간은 책 속일지언정 소중하다. 그의 마지막 날들이 배려와 진심으로 채워졌으리라 안도하게 된다.

카프카와 이별한 후 성장한 수지는직접 여행길에 오른다. 가방에 꽂혀있는 책 『METAMORPHOSIS』, “변신” 한 권이 독자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카프카를 기억하고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올해 세 번째로 “변신”을 읽고, 얼마 전 이언 메큐언의 “바퀴벌레”를 만났는데 우연히 “카프카와 인형”까지 연결되어 의미있었다. 예견된 슬픔이 마음을 아프게 할지언정 주인공 소녀는 물론 독자에게 위로와 희망을 건네는 따뜻한 그림책이다.



(신간서평단/출판사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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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A Year of Quotes 시리즈 1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로라 대소 월스 엮음, 부희령 옮김 / 니케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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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The Daily Henry David Thoreau)로라 대소 월스 엮음, 부희령 옮김, 니케북스, 2020, 2022는 소로의 명문장을 365일간 매일 읽을 수 있도록 묶은 책이다. ‘세계 문학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책이라고 불리는 월든과 자신의 신념을 드러낸 시민불복종으로 유명한 소로는 에머슨과 함께 초월주의자이기도 했다. 미국 초월주의 사상의 전문가인 로라 대소 월스는 속도와 효율을 추구하는 21세기에 소로를 통해 멈추고 성찰할 것을 권한다. 소로의 여러 저서를 부분적으로나마 만날 수 있지만 인용문의 출처 대부분은 자신의 상상을 관찰한 글인 일기에서 가져왔음을 밝힌다. ‘옥수수와 풀과 대기를 기록하는 모든 자연의 필경사가 되기로 맹세했다(p.11)는 소로의 글은 무뎌진 마음을 벼리는, 그럼에도 부드럽기 그지없는 숫돌과 같다.

 

책은 날짜별로 매일의 문장을 싣고 있다. 새로운 달이 시작되는 글은 계절 중에서도 이 달이 어떠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매일 읽거나 쓸 분량은 많지 않고 오히려 간결한 편이다. 하지만 읽을수록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곱씹어 보게 하고, 어떤 묘사, 표현, 비유, 낱말에 감탄하게 만든다. 소로의 시선에 의지해서 보는 자연은 독자의 감각을 깨우고 일상적으로 흘려보냈던 대상은 발견에 가까워진다. “날씨가 어떻든, 밤과 낮의 어느 때든, 나는 짧은 틈에 불과한 시간조차 잘 쓰기를, 그리고 그것이 내 지팡이에 눈금으로 표시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과거와 미래라는 두 영원이 만나는 순간인 현재에 서 있기 위해, 그 눈금 위에 서 있기 위해.”(생활의 경제, 월든 1854)(p.29) 기꺼이 재독하겠다 싶은 월든의 문장임에도 선명히 기억나지 않는다. 문장의 재발견은 다시 책꽂이의 책을 꺼내고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아직 읽지 못한 저서의 인용문은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연이어 올린다. 번역서가 나와 있는지도 찾아보게 한다. 1800년대의 일기를 백 년이 더 지나 읽는 느낌은 또 다른 성찰의 고리를 만든다. 그때도 3월이 있었고, 시간이 흘렀고, 계절의 변화에 기뻐했던 누군가의 흔적은 급격한 동지의식을 부른다. “사소한 일에 정신이 팔리면 그 습관에 영원히 사로잡히게 된다고 나는 믿는다. 모든 생각이 사소함으로 물들게 된다. 우리의 지성에 자갈이 깔리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하면, 바퀴가 굴러갈 수 있는 토대가 무너지고 만다는 의미다.”(원칙 없는 삶 1863)(p.83)라는 33일자 문장이다. 사소한 일에 정신 많이 팔렸던 오늘, 스스로를 향해 되뇌인다. 그나마 미약한 지성에 자갈이 깔리고 싶지 않으면 그러지 말자, 결심도 한다. 이 책은 만듦새마저 완벽하다. 소로는 초록이어야 마땅하다. 초록을 기본으로 자연을 단순화한 표지 패턴, 면지부터 종이의 느낌, 글의 배치까지 마음에 든다. 당연히 필사집으로 활용해도 좋겠다. 나의 편애하는 소로를 조금씩 아껴가며 매일 만나보자.

 

 

책속에서>

숲속에서 망사 모양의 털사철난 잎사귀를 보았다. 매우 싱싱한 초록빛이다. 연녹색 다른 식물들도 있었다. 이제 막 돋아난 덕분인지 눈에 덮이거나 추위에 시달린 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쌓인 눈 아래에서 여름이 주먹을 꼭 쥐고 있다.(1852310일의 일기)(p.90)

 

산책할 때는 감각을 더 자유롭게 풀어 주어야 한다. 꽃과 돌, 별과 구름을 유심히 보는 것도 좋지 않다. 생각을 풀어놓듯 감각도 그냥 두어야 한다. 일부러 들여다보지 말고 그냥 보아야 한다. 잘 보려면 유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칼라일Carlyle은 말했지만, 나는 오히려 무심히 보라고 말하고 싶다. 들여다볼수록 잘 못 보게 된다. 나는 지나치게 주의를 집중하는 습관이 있어서 감각이 쉬지 못한다. 항상 긴장에 시달린다. 들여다보는 일에 집착하지 말라. 대상에게 다가가지 말고 그것이 다가오도록 하라. 유심히 보지 말고 눈이 산책할 수 있게 두어야 한다.

(1852913일의 일기)(p.293)




<출판사 도서제공/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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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편 윤동주를 새기다
윤동주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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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편 윤동주를 새기다(영진닷컴, 2022)는 시집이면서 필사집이고 동시에 감성가득한 시화집이다. 시리즈는 김소월 시인 편까지 갖춰져 있어 민족 시인들의 필독시를 만나보게 했다.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필사, 따라쓰다코너에서 기획의 방향성 내지는 활용법을 안내한다. 깊은 독서를 가능케 하는 필사의 효과, 폭넓은 생각으로 문제해결력은 물론 자기 치유까지 나아가게 하는 필사의 장점을 꼽는다. 무엇보다 책의 특징으로 독립운동의 얼이 담긴 필사임을 강조한다. 독립운동가 김구, 안중근, 윤봉길, 한용운의 서체로 시를 담고 있는데 기록이 남아 있는 글씨들을 모아 연구하여 현대의 디저털 폰트로 구현한 독립 서체”(p.7)를 말한다. 직접 필사할 수 있도록 마련된 페이지에 따라 써 볼 수 있도록 흐린 밑글씨를 제공하고 위에 덧입히며 범상치 않은 독립 서체를 경험해볼 수 있어 새롭다.

 

또 하나의 특징은 윤동주 시 연구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평론가 고석규(1932~1958)의 글을 윤동주의 정신적 소묘라는 제목으로 실었다는 점이다.[‘요절한 천재 평론가로 불리는 고석규는 윤동주 사후인 1953, 윤동주 시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비평 윤동주의 정신적 소묘를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2022, 김성대, 기사발췌)] 시간의 간극이 느껴지는 문체라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윤동주 시인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지점을 제공했으리라 기대된다. 책은 출생,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 옥사, 해방후 최초 발표된 쉽게 씌어진 시까지 4장으로 구성된다. 직전에 읽은 책이 안소영의 시인 동주라 등장하는 시의 배경과 상황이 연결되며 몰입을 높힌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로 시작되는 새로운 길에서 연희 전문학교 신입생으로 처음 맞는 봄, 앞으로에 대한 설렘이 물씬 느껴진다. 누상동 하숙집 아들 동규와 조선의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어했던 눈 감고 간다는 그의 노트에 있다가 후에나 세상에 나온 듯 4해방후 최초 발표에 묶였다.

 

윤동주를 새기다쉽게 쓰여진 시”, “별 헤는 밤”, “초한대”, “자화상”, 마음 아프기 그지없는 무서운 시간등 되풀이 읽게 되는 시들을 눈으로, 음성으로, 손으로 기억하기에 좋다. 때론 강렬하고 때론 부드러운 수채화 일러스트는 시를 앞서가지 않고 은은한 분위기를 더한다. 시화집의 매력일 것이다. 다만 각 장의 제목에 날짜는 있지만 개별적으로 시가 쓰여진 년도가 각각 기록되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또한 윤동주 시를 아끼는 독자로서 더 많은 시가 담겼으면 하는 욕심도 내본다. 서두에 과제로 받아들이지 마세요라는 말과 함께 시가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자는 권유가 필사집의 부담을 덜어주는 책으로 오늘은 이렇게 시인을 만나볼 것을 권한다. 시선이 닿는 곳에 두고 싶은 책이다.

 


쉽게 씌어진 시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 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1942.6.3.)

 




<출판사 도서제공/신간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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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동주 창비청소년문고 15
안소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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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영의 시인 동주(창비)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를 생생하게 기록하는 소설이다. 소설은 윤동주 서거 70주년인 2015년 출간되었고 그가 떠난지 올해로 77주기다. 책만 보는 바보, 다산의 아버님께, 갑신년의 세 친구등 역사속 실존 인물을 주로 그려온 작가는 이번에는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인을 불러낸다. 작가는 우리가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을 복원해 나가며 온전한 윤동주의 모습을 찾을 때 그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밝히면서 윤동주 시가 지닌 보편성의 힘을 환기한다. 시인은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 다양한 형태의 시집으로, 평전으로 여전히 독자 곁을 찾고 있다.

 

소설은 윤동주 시인이 “1938, 경성의 봄”, 연희전문학교 입학부터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음을 맞기까지의 8년간을 주로 다룬다. 조선어 교육을 폐지한다는 명령이 내려진 일제 강점기, 점령국의 언어를 국어로 칭하던 시기의 모국어 강의, “부디 잊지 말기 바랍니다.”(p.21)라는 맺는 말은 동주와 같은 공간의 벗들에게 새겨진다. 소설은 북간도 용정을 배경으로한 가족들과의 애틋한 일상, 또 한 명의 빛나는 청춘이었던 사촌 몽규와 우정을 쌓아간 친구들, 시작하는 계절처럼 발아하던 시와 문학에의 동경을 차분하게 그려낸다.

 

당시 문단의 분위기도 학생들의 시선을 통과해 비춘다. 식민 통치 30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일본의 지배를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퍼지고 이를 근거로 나름의 방향을 취할 때 동주와 몽규는 더 분노한다. 슬픔에 흠뻑 잠긴 분개다. 방학을 맞은 빈 강의실은 순수를 논하는 학생들의 열기로 뜨겁다. 전쟁의 기세는 더해가고 동주와 몽규는 일본 유학길을 선택하게 된다. 선택의 결말은 예상치 못할 만큼 빠르게 다가온다. “만 이십칠 년 이 개월이 채 못 되는 삶. 동주가 태어날 때부터 조국은 남의 나라 식민지였다. 아무런 근심 없이 한번 싱그럽게 웃어보지도 못했고, 어떤 일을 마음껏 좋아해 본 적도 없었다. 누군가를 연모하는 것도 주저되었다."(p.286)

 

시인 동주는 윤동주의 삶과 문학을 손에 닿을 듯 선명하게 그려보인다. 가재가 동주와 몽규였듯이 비교적 드러나지 않았던 송몽규를 담아낸 점도 의미있다. 영원한 청년으로 남은 윤동주에게 허락된 시간은 시처럼 축약된 채 빛처럼 짧아 ‘~했다면’, ‘~하지 않았다면과 같은 무익한 말들을 마냥 보태게 만든다. 소설은 동주의 시와 삶을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하며 엮는다. 애초에 아름다웠던 시는 작가 덕분에 소리와 질감, 미소와 향내 등 고유한 장면들로 풍성해진다. 그의 산책길이나 눈길이 머물던 별, 먼 나라의 시인을 그려내고 마지막 순간 다시 돌아와 조용히 인사한다.

 

말을 빼앗긴 시대에 우리말로 시를 씀으로 치열하게 사랑하고 저항했던 윤동주를, 그의 흔적을 기억하려한다. 애틋하게 아끼는 책 책만 보는 바보에 이어 시인 동주역시 많이 읽히기 바란다. 6년만에 두 번째 정독이지만 먹먹한 감동은 빛바래지 않고 별처럼 충만하다. 손으로 목소리로 눈으로 읽어야 할 윤동주의 시가 담겨 있고, 간결하고 밀도높은 문장으로 그의 자취를 따라갈 수 있는 책으로 초등 고학년 이상 모든 이에게 읽기를 권한다.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동주가 좋아했다고 하는, 저음에 겨울 바람 소리가 묻어난다던 표도르 샬라핀을 찾아 들어봐야겠다.




---책 속에서>

그런데 순수하다는 게 과연 무얼까? 순수다, 순수가 아니다 하는 게 선언한다고 되는 걸까? 순수를 염두에 두고 쓰면 순수한 작품이 나오고, 현실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으면 순수하지 않은 작품이 되고 마는 걸까?”

어떤 것을 쓰건 혼신의 힘을 다해 진실하게 그리면, 그리고 그 진심이 읽는 이에게 전해지면 순정하다, 순수하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의 내면에 치중하건, 그를 둘러싼 아픈 현실을 그려 내건······. 순수는 작가가 먼저 정해 놓은 작품의 성격이 아니라, 읽는 이의 가슴에서 비로소 느껴지는 것 아닐까?”(p.108)

 

한때 동주도 문인이라는 빛나고 아름다운 이름을 갈망한 적 있었다. 공들여 쓴 작품으로 세상과 문단의 눈길을 끌고도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이름이나 평가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고, 주변의 자연과 사물들도 그곳까지 데려가, 일렁이는 감성들을 충분히 무르익게 하고, 때로는 예리한 지성의 바늘로 톡 건드리기도 하면서, 마침내 정제되고 아름다운 우리말의 체에 걸러, 노트 위에 한 편의 시로 옮겨 적는 길고도 진실하고 순정한 시간. 그것이면 충분했다. 동주의 새로운 시는 절망의 어두운 그늘 속, 슬픔의 웅덩이 깊은 곳까지 닿아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시였다.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맑고 고요한 눈을 잃지 않은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이기도 했다.(p.156)

 

시를 남김없이 다 빼앗기고 일본 말로 뒤집히는 수모를 겪었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계셨던 것이다. 어머니는 동주의 가슴속에 마르지 않고 고요히 차올라 오는 시였다.(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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