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이야기들
발터 벤야민 지음, 파울 클레 그림, 김정아 옮김 / 엘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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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발터 벤야민의 『고독의 이야기들』(파울 클레 그림, 김정아 옮김, 엘리, 2025, 344쪽 분량)은 노벨레 형식의 문학 작품집으로 꿈과 현실을 오가며 이야기 타래를 푼다. 노벨레는 단편 소설 양식이나 짧은 소설 장르를 지칭하는데 괴테는 여기에 ‘새로운’이라는 이탈리아어 의미를 가져와 ‘들어본 적 없는 사건’을 노벨레의 본래 개념으로 정리하였다. 이로써 독자는 언어 철학자이자 문예학자, 비평가로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을 비롯하여 기념비적인 저작들을 남겼던 발터 벤야민 세계로 진입하는 또 다른 길을 선사 받게 되었다. 주디스 버틀러에 따르면 <고독의 이야기들>은 그의 비평 작업을 어떻게 선행적으로 수행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벤야민의 애독자라면 말 그대로 선물이 될 만한 책이고, 아쉽게도 그렇지 못한 경우에도 발터 벤야민 입문서로 가치를 발할 것이다.


『고독의 이야기들』은 1부 <꿈과 몽상>, 2부 <여행>, 3부 <놀이와 교육론>까지 저자가 관심을 가져온 주제별로 새롭게 묶였다. 마흔두 편의 글 말미에는 집필 시기와 출처를 표기했는데 생전에는 발표되지 않은 글이 상당하다. 각 부에는 연관 테마를 다루는 책의 서평도 실려 있어서 독자는 저자의 다양한 글을 경험할 수 있다. 서평을 먼저 말하자면 ‘서평은 소개다’라는 기준에서 볼 때, 평을 읽은 후 궁금한 마음에 책을 검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프란츠 헤셀에 대하여 “그는 이 상황과 저 상황, 이 한 시간과 저 한 시간, 이 1분과 저1분, 이 단어와 저 단어를 분리하고 구별 짓는 문턱들을 어느 누구보다 예민하게 발바닥으로 감지한다.”(p.156)고 소개한다. 책의 형식과 내용을, 빼어난 점과 약점을 균형있게 또 논리적으로 조망하여 평의 진수, 평의 모범을 보여주기에 책에 실린 여섯 편의 글은 두고두고 탐독할 만하다. 예술론을 비롯한 주요 저작들을 더 늦지 않게 읽어야 할 동기를 부여한다.


저자가 구성하지 않고 추후에 발굴되고 신중하게 다루어진 글이어서일까, 한편 한편을 더욱 아껴가며 읽게 된다. 이 책을 선택하는 데는 파울 클레의 작품도 큰 몫을 하였다. 단상처럼 분량이 짧아도 한 번 읽고 가뿐하게 넘길 수 없는 글들은 클레의 그림으로 또 한 번 파장을 일으킨다. <너무나 가까운>은 그리움이라는 정서적 상태, 감정적 반응을 물리적으로 치환하고 층위를 달리한 끝에 ‘복된 그리움’에 닿는다. “이름 속에 형상 없이 깃든 그는 모든 형상의 피난처다.”(p.51) 이름은 이미 불멸의 명성이 되어 버린 게 아닐까 잠시 궁리한다. 이 글은 클레의 <한 쌍의 천사>와 함께이다. 거친 듯 부드러운 필선이 그대로 드러난 천사의 그림은 연약해 보이기도 강건해 보이기도 한다. 그들 사이에 충분히 그리워할 거리가 필요할지, 마음은 이미 일심동체일지 그림은 다시 상념을 보탠다.


2부는 여행을 이야기한다. “‘있을 곳 없는 사람이 집으로 삼는 시간’은 떠나올 때 두고 온 것이 아무것도 없는 여행자에게는 왕궁이 된다.”(p.170)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북유럽 바다>는 도시, 꽃, 바다를 차례로 지목한다. 그리고 <빛>을 호명하는데 어느 집에선가 들려오는 소리들이 이 밤을 “달력에 없는 어느 하루”로 바꾸어 놓는다고 작가는 말한다. “시간 창고 안에 들어가보면 사용되지 않은 하루하루가 쌓여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수천 년 전 지구가 얼려둔 나날이.”(p.175) 이어지는 문장을 따라가면서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독자는 시간 창고에 냉동 보관되어 있는 나날을, 시간의 뭉텅이 또는 부스러기를 상상하며 꼼꼼하게 다음 문장을 읽어야 하는데 여기서 멈춘다. 생각은 이미 어떤 날개를, 작위적인 날개이든 유치한 날개이든 만들어내고는 뜬금없이 날기 시작한다. 3부는 상상력이 더욱 빛난다. 수수께끼와 게임, 퀴즈 등 위트가 넘치는 글은 다시 한번 생각하기와 비틀어 생각하기, 한계 넘어 생각하기의 자유로움을 펼쳐낸다.


1부의 ‘몽상’ 편에서는 “두 번째 자아: 새해 전야 성찰을 위한 이야기”가 인상 깊다. 평균 4주에서 6주에 한 번 이사하는, 독신남 앞에 ‘군식구 없는’을 겹따옴표로 강조한 주인공 크람바허는 어쩔 수 없이 저자 자신을 투영한다. 1930년에서 33년경에 썼으리라 예측되는 글은 33년 히틀러가 수상으로 임명되며 바이마르 공화국이 막을 내리는 시기와 겹친다. 크람바허가 카이저파노라마를 통해 관람하는 장면은 이국의 풍경이 아니라 이루지 못한 소망들이다. 그는 기계장치를 통과해 ‘두 번째 자아’를 만나며 열두 개의 문장으로 한 해를 돌아본다. 성취보다는 상실과 아쉬움의 문장이다. 이에 더해 그는 외출조차 하지 않았고, 꿈에 침잠하지도 못했으며, 빈 잔을 떨구지 않은 몽상 상태였다. “그때 저 기회를 잡고 싶었는데”(p.44)라는 열두 번째 문장은 마치 미래를 예견한 듯하여 너무 마음이 아프다. 야만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국경을 넘을 기회를 잡지 못한 벤야민은 필생의 저작을 미완으로 남긴 채 더는 나아가지 못한다. 현실을 초월한 듯 신비로우면서도 현실 인식과 비판의 지점들을 아로새긴 지성의 이야기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책 속에서>

또 나는 방에서 소음 때문에 너무 고생을 했었다. 어젯밤 꿈이 그것을 잊지 않고 새겨두었다. 나는 지도 밖에 나와 있으면서 동시에 지도에 묘사되어 있는 풍경 안에 들어와 있었다. 풍경은 경악스럽도록 황량했다. 황량한 풍경이 바위투성이 황무지였는지 활자들 말고는 아무도 살지 않는 텅 빈 회색 바닥이었는지, 누가 물어보았다면 대답할 수 없었을 것이다. 활자들이 바닥 위를 구불구불 행진해 긴 산맥처럼 보였다. 그렇게 형성되어 있던 단어들은 서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 내가 귀 지도의 미로 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 머리 내지 몸으로 감지되었다. 하지만 그 지도는 동시에 지옥도이기도 했다.(p.93/17.일기)



벤야민은 최고의 이야기꾼인 프루스트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는 그리움에 상처투성이가 되어 침대에 쓰러졌다. 그가 그토록 그리워한 세계는 현실과 비슷하지만 일그러져 있는 세계, 현실의 진짜 얼굴인 초현실이 돌발 출현하는 세계였다.” 벤야민에 대해, 그리고 벤야민 본인의 픽션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p.335/편집자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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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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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체험하지 않은 것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줄도 체험 그대로 쓰지 않았다.’라는 말을 남겼다.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선두에 있는 가르시아 마르케스 역시 내 책에 쓰인 것 가운데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서 비롯되지 않은 것은 단 한 줄도 없다.’(p.161)라는 사뭇 비슷한 말을 했다. 중편 소설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조구호 옮김, 민음사, 2008, 1981, 161쪽 분량)는 실화를 재구성한 증언 문학으로 기사와 소설의 경계를 넘나든다.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좋은 소설의 두 가지 조건으로 꼽은 사실을 시적으로 변형하는 것과 세계를 구성하는 암호들을 풀어내 알리는 것’(p.161)은 마술적 사실주의의 정의와도 일치하다. 비현실적 변형과 과장의 틈바구니에 뿌리박힌 진실을 등장인물들이 그러하듯 독자 역시 외면하지 못한다.

 

실제 일어난 참담한 사건이 이야기의 중심을 지탱하기에 기록하기 위하여 작가는 상당한 공을 들이고 오랜 시간 기다렸다. 비로소 쓸 수 있었을 때 작가는 직접 화자로 등장함으로 예를 갖춘다. 화자는 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27년 전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을 추적한다. 배를 타야 접근 가능한 마을에 바야르도 산 로만이 신부감을 찾아 도착한건 결혼식 여섯 달 전이었다. 그는 앙헬라 비까리오를 우연히 본 순간 결혼하기로 마음먹는다. 결혼식은 공식적인 행사이자 마을 잔치가 되어 성대하게 치러지는데, 그 밤에 신랑은 순결하지 않다는 이유로 아내를 친정으로 되돌려 보낸다. 앙헬라 비까리오의 쌍둥이 오빠 빠블로 비까리오와 뻬드로 비까리오는 동생이 지목한 상대인 산띠아고 나사르를 죽이기 위해 곧바로 집을 나선다.

 

미남이고, 점잖고, 스물한 살 나이에 그 정도 재산을 가지고 있던 산띠아고 나사르는 어머니에게 인생의 전부였던 아들이었고 천성적으로 명랑하고 온화하며 솔직 담백’(p.14)한 성품이었다. 그는 쌍둥이 형제에게 살해당하고, 다시 한번 학살과도 같은 부검으로 훼손된다. “변호사가 그 살인은 명예를 지키기 위한 정당 행위였다고 주장하자 재판부는 양심적인 행위라고 받아들였고, 쌍둥이 형제는 최후 진술에서 똑같은 이유라면 천 번이라도 같은 행동을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p.64)고 화자는 기록한다. 명예가 걸린 문제라 양심에 따라 죽였다는 논리는 이전에 막을 수 있었던 기회들을 모두 상실한 채 실행된다. 예고되고 선포된 살인이었건만 스물 두 명이나 되는 사람’(p.67)은 모호하고도 무심한 핑계를 대며 개입하지 않는다.

 

나의 일이 아니기에, 본인이 모를 수 가 없을 것이기에 관여하지 않는다. 오지랖은 민폐라고 발을 빼는 순간 방관자의 자리에서 관람을 시작한다. 혹시라도 불편할 일을 애초에 만들지 않는다는 신조는 얼마나 익숙한가. 화자로 분한 작가는 사건을 복기하며 증언을 다각도로 비추고 수집한다. “이처럼 확실하게 예고된 죽음은 결코 없었다.”(p.67) 그럼에도 일어나버린 사건을 작가는 추적한다, 계속해서 숫자를 기입한다. 잠든 시간과 잠들지 못한 시간을, 깨어난 시간과 움직인 시간, 머문 시간과 머뭇거린 시간을, 날을 세우던 칼의 길이와 폭, 하기로 한 조치를 4분을 지체하고 다시 3분을 빼앗기는 등 사소한 일의 누적이 불러온 회복할 수 없는 상실을 쓴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숙명이 그에게 지정했던 위치와 임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로는 계속해서 살아갈 수가 없”(p.123)기에 그날을 불러내며, 사람들은 용기가 없었다고 뒤늦은 자백을 하고 당시와는 다른 목소리를 낸다. 전혀 몰랐다고 분명히 밝혔던 일들을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시인으로 바꾼다. 당사자가 이미 알고 있으리라 예측하고 기대했기 때문에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고 뒤늦은 고백을 한다. 그들 역시 비참한 삶으로 어쩌면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짧은 분량으로 치밀하게 전개되는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등장인물 모두를 생생하게, 때론 연극적으로 부각한다. 2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나 그날로부터 시계는 떨어져 나간 것이나 진배없다. 그들의 무의식은 산띠아고 나사르의 마지막 날에서 일초도 전진하지 않았음을 이미 안다. 씻어도 사라지지 않는 산띠아고 나사르의 냄새는 방관자들의 삶이 죽음과 일반이라는 상징으로 읽힌다. 열 한달 동안 잠들지 못했던 뻬드로 삐까리오의 불면증은 백년의 고독에서 레베까로 인한 전염성 불면증을 연상케 한다. 어떻게 대처해도 결국은 삶을 황폐화시켰던 불면증이다. 곳곳에 작가의 인장격인 마술적 사실주의 색채를 발견할 수 있는데 압권은 결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이미 목숨을 잃은 산띠아고 나사르의 참혹한 행진을 그려냄으로 웅변한다.

 

죽은 자의 장송행진곡은 산자들에게 호소하고, 그 호소는 시공간을 넘어 지금 여기에 사는 독자에게 닿는다. 또 다른 산띠아고 나사르는 없는지, 관망하던 자리에서 뒤늦게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은 없는지, 합리화로 가릴 수 없는 고통 앞에 굳어가는 심정 또한 환기한다. 소설은 불행한 우연과 책임을 회피하는 침묵을 기록하면서 동시에 해소되지 않는 질문도 남긴다. 산띠아고 나사르를 향한 앙헬라 비까리오의 일관된 입장이 그렇다. 어쩌면 그녀에게는 다른 누구여도 상관없지 않았을까. 폐쇄된 공간에 붙박힌 가부장 사회에서 착취의 대상이며 도구, 고뇌의 상징이 되어버린 한 여성이 필요로 했던 희생양이었을 수 있지만 새롭게 정체성을 구축해가는 그녀 역시 이 거대한 부조리극에서 책임을 피할 수 없겠다. 작가는 마술보다 믿기지 않는 현실을 무대에 올려 누구의 책임인지 묻는다. 시작부터 끝까지 치달아가는, 기록함으로 증언하고 질문하는 대가의 작품을 권한다.



책 속에서>


어느 날 새벽의 수탁 소리에 우리는 불현 듯 그 터무니없는 사건을 가능하게 했던 수많은 연쇄적 우연을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그렇게 하기로 한 것은 여러 가지 미스터리를 풀려는 열망 때문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숙명이 그에게 지정했던 위치와 임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로는 계속해서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것을 알지 못했다.(p.123)

 

무엇보다도 그는 문학에서도 허용되지 않던 수많은 우연이 인간의 삶에 작용하여 그처럼 확실하게 예고된 죽음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저질러졌다는 사실은 결코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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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로 읽는 서양 미술사
캘리 그로비에 지음, 김하니 옮김 / 아르카디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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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캘리 그로비에의 뱅크시로 읽는 서양 미술사(김하니 옮김, 아르카디아, 2025, 208쪽 분량)는 서양 미술의 최고봉, 인류 문화의 이정표와 같은 작품을 불러내 새로운 빛으로 조명한다. 그 빛은 뱅크시다. 뱅크시라는 램프를 통과한 걸작의 이미지는 강조되기도, 전복되기도 하지만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통쾌하고 후련하며 때론 감동적인 뱅크시의 인장은 계속해서 세상을 향해 말을 건다. 캘리 그로비에는 BBC Culture의 칼럼니스트이자 문화 안에서 길을 안내하는피처 작가이며 학술 저널의 공동 창립자다. 저자는 뱅크시가 지쳐버린 시대의 아이콘들이 점점 더 무의미해지는 상황으로부터 구해낸다고 평한다. 그는 뱅크시가 아주 작은 부분을 조작함으로 파괴적인 발언을 이끌어내고 작품의 근간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며, <뱅크시로 읽는 서양 미술사> 집필 이유를 현재가 과거를 만드는 역설의 미학’(p.11)에서 찾는다. ‘우리 시대의 가장 흥미로운 상상력을 감상할 수 있는 지도’(p.15)가 이제 눈앞에 놓였다.

 

책은 서양 미술사의 서두를 차지하는 기원전 15000년경 <라스코 동굴벽화>부터 시작한다. 미술사의 기념비적 유산과 뱅크시의 작품 마흔세 점을 교차 배치함으로 독자는 변화와 간극, 숨은 상징과 드러난 의미에 집중하게 된다. 한 페이지 분량의 글과 이를 집약하는 제목은 빼어난 평으로 독자를 연신 수긍하게 할 수도 있지만, 나만의 관점과 시선을 세워보고 점검하게도 만든다. 1503년 작 라파엘로의 <몬트의 십자가 처형>2006<세일은 오늘 끝난다>로 변화한다. 뱅크시의 작품은 오마주보다는 패러디에 가깝지만 익살과 풍자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를 넘어서 잠시 멈추는 시간, 성찰하는 시간을 보낼 자기만의 방으로 이끌어간다. 선뜻 위트가 과하다 할 수도 있으나 과연 그런가 다시 묻게 되고, 세상을 구원하신 구세주는 물신의 모양으로 그 자리를 대체하는 중이고 이미 빼앗았는지도 모른다. ‘터무니없이 유명한 작품’(p.65)이라 언급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과도한 착취와 끝없는 상품화로 인해 자신을 잃어버린 끝에 뱅크시를 통해 가면을 벗고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생기를 찾는다.

 

이 책의 장점은 우선 훌륭한 화집을 소장하는 즐거움, 크고 선명한 인쇄물로 작품을 간직할 수 있다는 점인데, 이는 가장 작은 장점이다. 무엇보다 서양 문화사의 주요 작품들을 시대와 함께 읽어내는 저자의 종횡무진 접근법은 글의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깊이 있고 풍성하다. 인용과 참고는 읽어야 할 또 다른 책을 안내하고 당시의 시대정신과 현재의 변화를 가늠하게 한다. 예술계 전반에 어린 빛과 그림자를 간파하며 정보와 견해와 주장을 고루 담은 가독성 좋은 문장을 읽는 기쁨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소리 없이 움직이며 폭발적 영향력을 끼치는 뱅크시의 작품으로 매듭짓는다.

 

20년 넘게 뱅크시의 작품을 추적하며 촬영해 온 영국 사진작가 마틴 불의 뱅크시 사진전 'Who is Banksy by Martin Bull'이 열리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직접 뱅크시를 만나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단 한 번이었다며 굉장한 재능을 가지고 있고 아이디어가 뛰어나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평범한 50대 남자다. 브리스톨에서 태어난.’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불필요할 것이다. 저자가 말했듯 그가 누구이든 간에 우리의 관심은 오직 그의 작품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p.15)에 있다. 예술 이면의 공과에 한 편으로 치우치지 않는, 위험을 뚫고 메시지를 전하는, 그럼으로써 절망 가운데 희망을 선사하는 작가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일 자체가 감사하고 축복임이 분명하다. 뱅크시의 작품을 아끼는 이들은 물론이고 특별한 예술 비평서를 기대하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책을 펼 때마다 매번 새로운 영감과 통찰을 만날 것이다.

 

 




책 속에서>

뱅크시는 자신이 개입한 작품을 결코 훼손하거나 비하하지 않는다. 이제는 지쳐버린 시대의 아이콘들을 점점 더 무의미해지는 상황으로부터 구해낼 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더 이상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원초적인 에너지와 날카로운 긴박감을 다시 불어넣는다. 뱅크시는 작품을 구원하는 구세주나 다름 없다.(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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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수록 아름다운 우리 그림 - 한국 전통회화 들여다보기
이소영 지음 / 미술문화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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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이소영의 『볼수록 아름다운 우리 그림-한국 전통회화 들여다보기(미술문화, 2025, 280쪽 분량)』는 우리 옛 그림과 생활용품의 멋과 운치를 한 권으로 소개한다. 이미 탁월했으나 감상자의 시선이 미치기 어려운 먼 곳에 있던 작품, 보았어도 알아차리기 어려웠을 작품의 먼지를 털어내고 조명을 비추어준다. 발품을 팔지 않아도 최고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은 직접 관람과는 비교할 수 없다 해도 감사한 일이다. 책으로 먼저 보고 찾아 나서도 될 테고 분명 자신도 모르게 원작 앞에 서 있는 나를 상상하게 될 것이다. 언제쯤이 될까 가늠하면서.


서문에서 저자는 취향대로 작품을 선택하고 소재의 상징성과 의미 정도만 간략하게 썼음을 밝힌다. 나머지는 감상자의 몫으로 남겼다는 집필 방향이 독자의 적극적 읽기를 격려하는 듯하다. 총 5부로 먼저 옛그림 속에서 동물과 식물을 재발견한다. 맨드라미와 수탉처럼 어울리지 않는 소재를 같이 그리는 이유가 소재가 가진 상징성 때문이라니 그림 안에 소망이 숨 쉬고 있다. 첫 작품은 신사임당의 8폭 병풍 <초충도> 중 <오이와 개구리>다. 다정하고 차분한 느낌이 여성적이라고 여겨질 수 있지만 “신사임당의 포도와 산수는 대가 안견에 견줄 만큼 절묘하다 평”(P.15)고 했던 기록은 그림을 다시 보게 한다.


2부는 식물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다. 역시 식물에도 소망을 담은 의미가 빼곡하다. 박병수의 12폭 병풍 <낙화화조도>를 볼 때 왜 이렇게 흐릿한가 싶다가 곧 인두화(또는 낙화)의 세계를 어렴풋이 가늠한다. 구김을 펴는 도구인 인두로 종이, 나무, 가죽 등을 지져서 그렸는데 이 정도로 섬세하다니 감탄이 나온다. 다리미질하던 옷도 태워 먹는 사람으로서 예술의 지경, 소망의 간곡함은 놀라움을 자아내고, 알고 나니 작품은 달리 보인다. 3부는 옛그림 하면 익숙하게 떠올리던 산수화다. 그러나 익숙이란 몽매에 가까운 정신의 익숙이었나, 작은 정보에 페이지 넘기던 손을 멈춘다. 조영석에 의하면 정선은 내금강과 외금강을 드나들면서 산수의 형세를 파악하였는데 그가 쓴 붓을 묻으면 무덤을 이룰 정도였다(p.125)고 하니 천재가 노력까지 하니 걸작을 남기는 건 당연한 것 같다. <금강전도>는 ‘장안사부터 비로봉까지 샅샅이 탐승한 것들을 한 화면에 부감한 듯 재구성한 것'(p.125)이라고 한다. 많은 화가에게 사랑받았던 소재인 임포가 등장하는 서옥도는 전기의 <매화초옥도>가 아닌 김수철의 <겨울 산수>가 담겼다.


4부의 생활용품 편에서는 보기만 해도 뿌듯한 ’책가도 병풍‘ 두 점이 실렸다. 옛사람의 현세구복 염원이 담겨있다는 책가도는 현대에 와서도 다채롭게 재해석되고 있다. 5부, ’옛 사람의 멋‘은 다양한 사람의 얼굴과 차림새를 볼 수 있다. 수를 헤아리며 작품을 소개한 책의 마지막인 60번째 그림은 ’군중으로 이루어진 글자‘, 이응노의 <반전평화>다. “이응노의 읽히지 않는 글씨를 프랑스에서는 ’기호‘라 하고 우리는 ’문자추상‘이라 명명했다.”(p.271)고 하는데, 문자추상은 붓으로 찍어내는 절규인양 소리없는 아우성을 멈추지 않는다. 어렵기 때문에 기원하는 마음이 더 뜨거워질 것이다. 예술로 떠나는 시간 여행은 선조들의 삶과 정신을 빠르고 분주한 4차 산업시대로 초청함으로 치열한 일상에 쉼과 여백을, 그리고 자성을 드리우게 만든다.


저자는 한 작품을 두 번 응시할 수 있게 구성하였다. 돋보기를 댄 듯 가까이 확대하여 먼저 보고, 멀리서 전체를 조망하듯 다시 보는 방식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박래현의 <달밤>도 흑색과 백색, 황색의 농담을 조절하여 표현한 두 마리 부엉이에 우선 초점을 맞춘다. 부엉이에 시선을 빼앗기고 다음 페이지를 열면 온전한 작품이 간직하고 있는 시공간이 드러난다. 배경으로 받쳐주는 큰 달과 세련된 색의 조화가 눈에 띈다. 좌우는 여백과 밀집이 균형을 이루고 부엉이의 노란 눈에서 두 번째 달을, 다시 세 번째 달을 발견하게 된다. 책은 요약한 단상을 상단에 배치하고, 이어지는 본문에 작가 설명과 함께 당시 화단의 특징을 알려주기도 한다. 옛 그림에서 사용하던 기법과 용어를 안내하고 상징의 의미를 해석해 줌으로 막연한 감상에 구체적인 길라잡이 역할을 해준다.


예술작품 감상에 기술적인 이해, 지식적인 접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저자도 감상자 몫의 여백을 넉넉히 남기고 있으나 장황하지 않으면서도 꼭 필요한 설명은 우리 옛그림의 지평을 확대하는 디딤돌로 작용한다. 후기에서 저자는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생활속에서 전통을 누리기를 소망한다는 저자의 목소리가 여운을 남긴다. <볼수록 아름다운 우리 그림>이라는 제목이 적확하다. 오래 볼수록 순수한 아름다움이 베어 나온다. 천천히 볼수록 투영된 작가의 삶과 시대가 말을 건다. 필요하고도 소장 가치 충분한 책으로 추천한다.


책 속에서>

이렇듯 우리 그림에는 작품의 작은 요소에도 큰 서사가 담겨 있다.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외모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옛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더 중요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수성노인의 장수와 박쥐의 오복은 당시 사람들의 여러 소망을 망라한 것이다.(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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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부르크 이야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8
고골리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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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와 <코>를 처음 읽었을 때의 놀라움이 여전히 생생하다. 이렇게 적나라한 이야기가 다 있구나 싶었다. 초등학생이 된 아이들의 잠자리 동화 격으로 읽어주던 작품 중에 루쉰의 <아큐정전>을 비롯해 고골의 <코>도 있었다. 실망스럽게도 아이들은 지루함과 두려움을 내비쳤고 시기상조라는 결론에 완독은 미래의 즐거움으로 남겨두었다. 고골 단편선을 몇 개 출판사로 보유하고 있는데 내가 가진 민음사판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도 <페테르부르크 이야기>로 표기가 수정되어 나오고 있다. 번역은 즐겁게 읽었던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의 저자 조주관이다. 니콜라이 고골의 『페테르부르크 이야기(조주관 옮김, 민음사, 2002, 372쪽 분량)』는 당시로서는 미래적 도시이며 가공의 도시로 치환할 수 있을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러시아식 ‘작은 인간’의 분투를 기록한다. 작은 인간은 러시아 관등 체계에서 대부분 9등관으로 대표되는, 주로 정서나 펜 깎기를 하는 하급 관리의 대명사로 드러나지 않는 소모적 일에 시간을 쏟는 러시아문학의 한 전형이다. 『페테르부르크 이야기』는 <코>와 <외투>, <광인 일기>, <초상화>, <네프스끼 거리> 등 다섯 편의 대표작을 담는다.


<코>는 이발사 이반 야꼬블레비치가 아침 식사 중에 칼로 자르던 빵에서 코를 발견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코를 발견할 뿐 아니라 이 코의 주인을 한눈에 알아차린다. 코 따위를 집안에 둘 수 없다고 다그치는 아내를 피해 들고나온 코를 처치하고자 애를 쓰나 이 또한 만만치 않다. 1장은 “하지만 여기서 사건은 완전히 안개 속에 묻혀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p.15)로 이반의 에피소드를 맺는다. 2장의 주인공은 코의 주인인 8등관 꼬발료프다. 코가 있어야 할 자리에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은 충격 그 자체다. 제법 잘생기고, 제법 관등에 만족하던 그는 우연히 5등관 신사가 되어 돌아다니는 자신의 코를 본다. 계급에서도 밀리는 코발료프가 당신은 사실 나의 코요, 라고 어렵사리 지적하는데, 코는 말한다. “당신은 실수하고 있소. 나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이오.”(p.22) 코의 변신과 부조리하기 그지없어 마치 꿈꾸는 듯한 상황극과도 같은 현실이라니. 코발료프는 절망하는데 다행히 코는 제자리로 돌아온다. 사라질 때처럼 시치미 뚝 떼고! 1부(장)와 2부의 결말은 ‘전혀 알 길이 없다’와 ‘전혀 알 길이 없었다’로 거의 동일하다. 3부에서 작가는 총평 격인 자신의 의견을 얹는다. 사건의 터무니없음과 그로 인한 궁금증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비현실 안에 내제하는 본질을 환기한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꿈과 일상을 넘나들며 자기 몫의 생을 버티는 사람들, 작은 인간들은 지금도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외투>는 만년 9급 문관 아까기 아까끼예비치가 주인공이다. 이름 짓기 곤란해 아버지의 이름을 따랐던 주인공이 이름 없이 생을 마치고 관리 유령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기까지의 굴곡사가 전개된다. 그는 한 벌의 외투를 원하나 그에게 모든 것이었던 외투는 꿈처럼 사라지고 만다. <광인 일기>는 9등관 포프리신의 일기로 일인칭 서술이다. 국장의 집 서재에서 펜을 깎는 일을 하는 포프리신은 국장을 매우 영리한 ‘국가적 인물’이라고 여기는데 우연히 만난 국장의 딸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는 국장 딸의 강아지 맷쥐가 하는 개들의 대화를 알아듣고 국장의 딸을 원하지만 이루지 못할 것이며, 그녀의 결혼 소식까지 알자 낙담한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이웃 개인 피젤을 만나러 가서는 “실은 댁의 강아지와 할 말이 있는데요.”(p.111)라고 이유를 밝힌다. 고통스러운 처지에 웃음이 끼어드는 장면은 곳곳에 등장한다. 그는 분노한다. “걸핏하면 시종무관 아니면 장군이라니, 이 세상은 더 나을 것이 없다. 시종무관이 아니면 장군이 모든 것을 차지하게 된다.”(p.120), "어쩌면 나는 백작이나 장군인데, 다만 9급 관리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아마 나 자신도 내가 어떤 인간인지 모르고 있을 거다.“(p.121) 사회 비판과 자기 인식, 실존적 질문이 혼재하다가 그의 일기는 서서히 결을 달리한다. 12월 8일 다음에 2000년 4월 43일, ‘며칠도 아니다, 날짜가 없는 날’ 등으로 이어지며 그는 자신을 스페인의 왕이라고 믿는다. 비참하게 갇힌 채 내뱉는 그의 말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초상화>에서 젊고 재능 있는 화가였던 차르뜨꼬프는 우연히 사온 초상화로 인해 삶이 송두리째 바뀐다. 그의 성정을 읽은 지도교수는 조심하라는 경고를 하였으나 ‘초상화’가 열어준 새로운 생활은 그에게 방아쇠 역할을 한다. 다만 그림 액자일 뿐인데 초상화가 쏘아보는 시선은 시트를 덮어씌우게 만든다. 그림과 대면하며 꿈을 꾸고, 꿈속의 꿈으로 거듭 들어가고 깨어나오는 장면은 상당히 생생해서 오싹한 기분이 든다. 쉽게 타협하고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탓에 차르뜨꼬프는 몰락하고 만다. 초상화의 연유를 밝히는 2부만으로도 단독 작품이라 해도 될 만큼 인간의 내면을 밀도 있게 포착한다. <네프스끼 거리>는 화가 삐스까료프와 삐로고프 중위 두 친구의 이야기다. 소설은 “뻬쩨르부르그에는 네프스끼 거리보다 더 나은 곳이 없다.”(p.227)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 단락을 “이 네프스끼 거리라는 건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로 시작하여 “그리고 악마가 모든 것들을 실제 모습으로 보여주기를 거부하고 램프의 불을 직접 켤 때, 네프스끼 거리는 더욱 심하게 사람들을 속인다.”(p.282)로 종결한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기 어렵게 되자 화가 삐스까료프는 꿈으로 도피하고 꿈에서 욕구를 충족한다. 하지만 꿈은 현실을 속이는 눈가리개에 불과했고 멸망을 부른다.


“그 웃음의 배후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눈물을 느낀다.”는 푸시킨의 말처럼 고골의 단편에서 맞닥뜨리는 풍자와 아이러니는 애처로움과 슬픔을 품고 있다. 작은 인간이라는 전형이 19세기 러시아에만 존재하였다고 볼 수 없다. 지금도 사람들은 뻬쩨르부르크만큼이나 휘황한 도시의 대로에서 또는 외진 골목에서 힘쓰고 버텨낸다. 일주일 사용 가능한 힘을 하루 단위로 분배하며 ‘오늘도 무사히’를 읊조린다. 의미에 연연하지 않고 태연자약하게 살아가는 소수의 인물을 제외하고, 생래적 조건의 한계를 넘기 어려운 고골의 대다수 인물은 힘에 부치는 대결 끝에 목숨을 잃거나 미치고 만다. 이 연장선상에 작가인 고골 자신도 고통당하고 생을 재촉하였다. “(중략) 한편으로 자신의 재능이 진지한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통받았습니다. 고골은 전형적인 속물들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최고 작가입니다. 문제는 그런 재능과 그가 생각한 작가의 소명이 충돌하는 데 있었습니다.”(p.111/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현암사) <죽은 혼> 2부의 원고를 두 번 불사르고 단식하다 죽음을 맞는 작가의 고통이 그의 등장인물들의 그것과 겹쳐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고골의 단편선 『페테르부르크 이야기』는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때론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거나 근거가 부족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어지는 속도감 있는 전개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겠다고 독자를 설득해 낸다. 시간 경과에 따른 <네프스끼 거리>의 변화를 기록할 때는 도스토옙스키가 『백야(1848년)』에서 “페테르부르크 전체가 나에게는 친구와 마찬가지”라며 감정을 이입하며 말을 걸던 장면을 연상케 한다. 때로 고독한 이들에게 장소는 그저 공간이 아니라 가능성이자 상징으로, 아려한 품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봄의 초입, 3월이다. 겨울이 완전히 떠나기 전에 정곡을 찌르는 시린 고전의 일독을 권한다.



책 속에서>

그렇긴 하지만 하나하나 따져본다면 전체적으로 이 사건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가 비현실적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 속에는 분명히 무엇인가 내포되어 있다. 누가 뭐라해도 이와 비슷한 사건들은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다. 드물긴 하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p.51, <코>)


시종무관 따위가 뭐냔 말이다. 사실 이건 관직에 불과할 뿐, 아무것도 아니다. 손으로 잡고 감촉을 느낄 수 있는 어떤 물건도 아니다. 사실 시종무관이라고 해서 이마에 눈알이 하나 더 박힌 것도 아니다. 또 코가 금으로 된 것도 아니고, 내 코도 모든 사람의 코와 같다. 시종무관도 코로 냄새는 맡을 테지만, 먹거나 재채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왜 이 모든 차이와 다양성이 있는지 여러 번 파악하고 싶었다. 나는 9급 관리다. 왜 9급 관리가 되었을까? 어쩌면 나는 백작이나 장군인데, 다만 9급 관리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아마 나 자신도 내가 어떤 인간인지 모르고 있을 거다.(p.121, <광인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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