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잡아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9
솔 벨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을 잡아라(김진준 옮김,문학동네,2022』는 솔 벨로의 초기작으로 1956년 출간되었다. 솔 벨로는 포크너와 헤밍웨이를 잇는 미국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이자 필립 로스와 함께 유대 문학 작가다. 『오기 마치의 모험』(1947), 『허조그』(1964), 『샘러 씨의 행성』(1970)으로 세 차례 전미도서상 수상 기록은 여전히 깨어지지 않았고 이후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솔 벨로는 현대인의 고립과 소외를 주로 다루었고 유려한 문체와 날카로운 언어 감각을 지닌 지성파 실존주의 작가로 평가받는다. 평론가들은 특히 『오늘을 잡아라』를 “작은 회색의 걸작”, “솔 벨로의 가장 큰 업적이자, 축복받은 소설”이라 칭한다. 원제목 “Seize the Day”는 라틴어로 카르페 디엠(Carpe diem)으로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가져왔다. 작품에서 제목은 긴장을 고조시키는 전개와 더불어 다양한 함의로 부각된다.

뉴욕의 글로리아나 호텔에 주인공 토미 윌헬름과 은퇴한 의사인 그의 아버지 애들러 박사는 각각 다른 방에 묵고 있다. 다른 삶을 살아왔고 여전히 다른 세계에 머무는 그들이다. 환자에게 하듯 자신을 대하는 아버지가 윌헬름에게는 큰 슬픔이다. “아버지는 알아차리지도 못하실까, 느끼지도 못하실까? 가족의식마저 잃어버리셨나? 윌헬름은 깊은 상처를 받았지만 공정한 시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p.20) 아버지로부터 받지 못하는 지지와 관심을 윌헬름은 템킨 박사에게서 구한다. 템킨 박사는 신뢰를 보장할 수 없는 여러 직함으로 윌헬름에게 그럴듯한 ‘오늘’지상주의를 설파한다. “할리우드로 가는 것은 크나큰 실수라는 결론을 내렸으면서도 결국 그곳으로 향했다.”(p.36)투의 일들이 세 번쯤 반복되다보니 정신 차리기 힘든 오늘이 되버렸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에게 적극적 거리두기 기조를 유지한다. 세대간, 부자간에 갈등과 트라우마, 관계 회복의 간절함만큼 높은 단절의 벽은 너무 익숙해 시공간을 초월한 인류 보편의 과제임이 다시 증명된다.

현재는 무수한 과거 순간의 총합이고 살아남았기에 가능한 시간이다. 즉, 과거와 생존의 결합이 현재고 이는 미래를 향하는 주춧돌이다. 평균만 찍어도, 실패만 없어도 성공이라 볼 수 있을까. 남루할지언정 무난한 하루, 사건 사고 없이 일몰을 맞고 내일이라는 출발선을 가지런히 할 수만 있다면 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최악의 오늘을 겨루는 콘테스트가 있어 자기만의 오늘을 무대 위에 진열한다면 비극의 색체 만연한 윌헬름의 ‘오늘’이야말로 그랑프리감이다. 과거 모든 실패의 결정적 장면이면서 동시에 빼도 박도 못할 동작 그만의 미래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심쩍었다. 내 그럴줄 알았기로서니 슬픈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인복 없는 것도 습관인가? 이는 트리거가 되어 이미 무너지고 있던 모래성을 주저앉힌다. 아버지마저도 자신에게 십자가를 지우지 말라며 분명히 선을 그으니 이토록 비정할 수가. 윌헬름의 ‘오늘’이 모래처럼 물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그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것들은 밀도 높은 살과 근육, 혈관과 세포에 틈을 낸다. 회한과 자책, 분노와 공포, 땀과 눈물이. 눈물 흘리다 소리내어 울다 결국 통곡한다. 스스로 달랜다, 달래진다. 다시 돌아가도 어제의 선택을 했겠지만 또 모를 일이다 내일은. 각성한 윌헬름이 해방되고 세 번째 이름을 가지게 될지도. 도처에 윌헬름들은 출몰한다.

『오늘을 잡아라』는 트루먼 쇼처럼 윌헬름의 하루를 생중계한다. 그의 고통, 어리석음, 위태로움이 속도감있는 문장으로 발사에 가깝게 그려진다.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윌헬름의 감정이 독자에게 생생하게 닿기에 안타까움을 더한다. 또한 거칠것없이 실랄하게 속내를 드러내니 안타까운 동시에 실소가 터진다. 현실밀착형 고민은 생의 주기 어디쯤에서 어떤 실수가 더 치명적인가를 재어보게도 만든다. 마흔이 넘은 윌헬름 안에 있는 어른아이는 결국 성장하게 될 것인지. 그럼에도 작가의 시선은 따뜻하다. 대낮 브로드웨이의 번쩍거리는 길 한가운데를 거쳐 또다른 공간을 허락한다. 남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비극을 이토록 경쾌하고 선명하게 남길수 있다니 놀랍다. 그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진다. 『오늘을 잡아라』는 솔 벨로 세계에 입성하는 첫 작품으로도 손색없을 것이다.

“(중략)그때는 정신적 보상을 추구할 뿐이지. 사람들을 ‘지금 여기’로 이끌어주면서. 현실 세계로. 지금 이 순간 말이야. 우리한테 과거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미래는 근심 걱정만 가득하고. 진짜는 현재뿐이야. ‘지금 여기’뿐이라고. 오늘을 잡아야지.”(p.97)

내심 이렇게 다짐했다. 저 사람들 앞에서는 울지 않겠다.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저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로 어린애처럼 울지 않는다. 안 돼! 안 돼! 그러나 흘리지 못한 눈물이 자꾸 치밀어 금방이라도 익사할 듯한 기분이었다.(p.1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방구석 뮤지컬 - 전율의 기억, 명작 뮤지컬 속 명언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서희의 『방구석 뮤지컬(리텍콘텐츠,2022)』 은 뮤지컬 입문자를 위한 안내서이자 애호가를 위한 컬렉션이다. 저자가 전작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과 “200가지 고민에 대한 마법의 명언”에서 힘과 위로가 되는 문장들을 간추렸다면 이번에는 뮤지컬이라는 종합예술이 대상이다. 지금 나의 처지가 뮤지컬 볼 땐가 싶다면 그 무의식에는 나도 격렬하게 보고 싶다가 감춰져 있을 수도 있다, 내가 그렇듯이 말이다. 그리고 꿈꾼 적 없다면 꿈꾸게 될 것이고 사랑했다면 더 사랑하게 해 줄 것이다. 책은 뮤지컬의 거의 모든 것, 줄거리는 물론 무대장치와 조명, 의상과 안무, 연출 등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부분을 설명한다. 인터넷 검색으로 수집하는 자료와 비교할 수 없는 정선된 내용은 오롯이 저자의 진심에서 비롯되고 이는 일대일 강좌처럼 친절하다.

『방구석 뮤지컬』은 다섯 가지 주제로 30편의 작품을 담고 있는데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유명 뮤지컬부터 낯선 제목까지 고루 망라하고 있다. 순서대로 주제를 생각하며 읽어나가도 되지만 이와 상관없이 제목만으로 더 궁금했던 또는 추억 돋는 작품을 먼저 펼쳐도 좋겠다. 작품 배경과 줄거리 소개로 시작해 몇 곡의 가사가, 특히 마지막에 ‘넘버’까지 실려 독자의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닥터 지바고”에서 ‘은은한 흰 조명은 관객을 인물들과 함께 눈밭에 서게 만들며, 섬세한 선율의 노래는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합니다.”(p.157)라는 설명이 설레게 한다. 원작을 어떻게 해석했을지, 끝없는 눈의 이미지가 영화와는 어떻게 다를지, 라라의 테마도 있다면 하고 하나의 작품은 궁금증과 선망을 낳고 버킷 리스트를 늘린다.

『방구석 뮤지컬』은 하나의 체험판이기도 하다. QR코드로 제공하는 대표 넘버를 감상하도록 구성해 설명을 들은 후 실시간 무대를 감상할 수 있다. 이 뮤지컬이 낯설더라도 아래 열광하는 댓글까지 읽다 보면 나도 이 대열에 합류해야 할 것 같은 열기를 전달받는다. 엄마가 사랑하는, 어린 우리를 극장에 데려가서 보여주셨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고 싶다. “오페라의 유령”과 “지킬 앤 하이드”도 아직 못 봤으니 마음이 급해진다.

개인적으로 잊지 못할 뮤지컬이라면 중학생 때 학교에서 단체관람으로 보았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다. 감수성 예민하던 시기에 받았던 충격과 혼란과 매력은 두 장짜리 LP 판을 사고 영어 가사를 외우고 잘 때마다 반복해서 꿈꾸는 폭풍 시기를 지나게 했다. 막달라 마리아의 청아한 고백과 겟세마네의 기도는 물론이고 고 추송웅의 유다에 놀라웠던 날들이었다.(유다가 멋져보여서 회개기도도 많이 했다는.) 『방구석 뮤지컬』은 저자의 간결한 총평 부분이 특히 인상 깊다. 여운을 간직한 채 독자 역시 자신만의 글을 보태고 싶어질 것이다. 효용이 많은 책으로 책 만으로도 공연 관람 동반서로도 추천한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되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그림자를 떨쳐내고 지나간 과거가 아닌, 살아있는 이들의 운명과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지나간 시간과 찾아올 미래 사이의 선명한 대비는 뮤지컬

<레베카>를 오래도록 뇌리에 남게 합니다.(p.310)



(출판사 도서 제공-서평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얼빈(문학동네)』은 최고의 문장가이자 작가들의 작가라 불리는 김훈이 올해 여름(2022년 8월)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출간 당시 작가는 대학시절 만난 두 권의 책이 인생에 미쳤던 지대한 영향을 밝혔는데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안중근의 “신문조서”다. 그로부터 2001년 동인문학상 수상작 “칼의 노래”가, 다시 훌쩍 시간이 흘러 “하얼빈”이 출간되었다. 작가는 “2021년에 나는 몸이 아팠고, 2022년 봄에 회복되었다. 몸을 추스르고 나서, 나는 여생의 시간을 생각했다.”고 전한다. 배우고 들었던 역사책 속 위인 안중근은 작가의 연필 끝에서 스스로 “몸과 총과 입으로 이미 다 말했고, 지금도 말하고 있”(p.306)음을 실현해낸다.

“도장을 찍어서 한 나라의 통치권을 스스로 넘긴다는 것은 보도 듣도 못한 일이었으나, 조선의 대신들은 국권을 포기하는 문서에 직함을 쓰고 도장을 찍었다. 도장의 힘은 작동되고 있었으나, 조약 체결을 공포한 후 분노하는 조선 민심의 폭발을 이토는 예상하지 못했다.”(p.17) 이토 히로부미는 기뻐서 스스로 따른다는 뜻의 ‘열복’이 “문명개화의 입구이고 동양 평화와 조선 독립의 기초”(p.84)라고 생각한다. 그는 조선의 열복을 요구한다.

스물 일곱 청년 안중근은 “지금 당장과 연결되지 않는 백 년 앞을 이해할 수 없”(p.24)다. 그는 집안의 장남이고 남편이자 아버지이며 세례 받은 신자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첫 아이를 안았을 때 산야에 시체가 쌓여가는데도 그 많은 목숨보다 자식의 목숨 하나가 유독 안쓰러운 이유를 자문할 뿐 답을 구하지 못한다. 빌렘 신부는 “악을 무찌른 자리에는 악이 남는다”(p.66)는 말을 도마 안중근에게 하지 않고, 동생 안정근은 형이 가려는 이유를 묻지 않는다. 안중근은 어쩔 수 없는 일을 자꾸 얘기하지 말 것을, 살아 있기 때문에 살길을 찾아가겠다고 당부한다.

안중근은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바를 “이토의 목숨을 죽여서 없앤다기 보다는, 이토가 살아서 이 세상을 휘젓고 돌아다니지 않도록 이토의 존재를 소거하는 것”(p.89)으로 본다. 그에게 푯대는 하나다. 제어하기 어려운 경우의 수, 실패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이를 완성시킨다. 형 집행 전 그는 빌렘 신부에게 하느님께 감사할 일들을 고한다. 도우심의 영역으로.

소설은 차례에 앞서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의 이동 경로”지도에 한 페이지를 할애한다. 안중근은 권총 한 자루로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데 성공한다. 절정에서 드러난 결과는 선명하지만 감당해야 할 여파는 가늠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안중근은 이토를 죽인 까닭이 그 이유를 세계에 발표하려는 수단이었음을 분명히 한다. 소설은 불안하고 격동하는 장면들에서 감정을 최대한 제한다. 특히 법정 장면에서 재판장 마나베의 질문에 답하는 우덕순, 안중근의 진술은 질문과 답변 간의 역동, 힘의 우위, 가두려는 틀을 떨치는 순전한 진실을 보여준다.

“북태평양과 바이칼이 하얼빈에서 연결되었고 철도는 하얼빈으로 모여서 하얼빈에서 흩어졌다. 하얼빈역에서는 옴과 감이 같았고 만남과 흩어짐이 같았다.”(p.137) 하얼빈에서 멈추지 않았다면 이미 죽고 죽임 당하던 이 땅에 훨씬 혹독한 날들이 기다렸을 것이다. 동양 평화라는 대의를 향한 의지가 결실했지만 촉박히 남은 시간을 정리하고 만다. 슬픔이 얼얼한 채 후기를 펴면 이는 더 짙어지기만 한다. 특히 “김아려의 생애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고, 김아려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기억이나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p.289)는 설명에서 그녀의 일생을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또한 ‘포수, 무직, 담배팔이’라는 부제의 후기에서 젊은 날의 소망을 이룬 작가의 여정에, 특히 한 문장 앞에서 감정이 북받친다. 김훈의 독자로써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다.

생 텍쥐페리는 “더 이상 추가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완벽함이 성취된다.”고 했는데 이에 속하는 글임은 물론이다. 작가 특유의 정교하고 간결한 문체, 되풀이 읽고 따라 쓰고 암송해야 할 것만 같은 그의 문장은 얼음냉수처럼 속을 달랜다. 동시에 깨끗이 태워 미련이라고는 남지 않을 만큼 뜨겁다. 그렇게 청년 안중근은 다시 독자 곁에 선다. 세계문학전집에 작품을 올린 문호들, 시간에 새긴듯한 작품들이 무수하지만 우리에게는 김훈이 있다. 축복이다.


우리는 강토를 모두 잃고 어디로 가려는가. 이번에 한 번 싸워서는 성공하지 못한다. 이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승패와 유불리를 돌아보지 말고 싸워야 한다.(p.91)

그러니, 그렇기 때문에, 이토를 죽여야 한다면 그 죽임의 목적은 살에 있지 않고, 이토의 작동을 멈추게 하려는 까닭을 말하려는 것에 있는데, 살하지 않고 말을 한다면 세상은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세상에 들리게 말을 하려면 살하고 나서 말하는 수밖에 없을 터인데, 말은 혼자서 주절거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대고 알아들으라고 하는 것일진대, 그렇게 살하고 나서 말했다 해서 말하려는 바가 이토의 세상에 들릴 것인지는 알기가 어려웠다.(p.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라미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2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포주의) 이스마일 카다레의 『피라미드(이창실 옮김, 문학동네)』는 활자가 영상으로 실시간 탈바꿈하는 소설이다. 분량이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는 끊임없이 공감각을 자극해 독자를 따가운 사막 한복판에 세운다. 작가는 1988년 당시 유럽에서 가장 고립되고 억압적인 공산주의 체제였던 고국 알바니아에서 집필을 시작했다. 1990년 프랑스로 망명한 후 1992년 파리에서 알바니아어와 프랑스어로 출간되었다. 레닌 찬양시를 쓰라는 강요를 거부하고 그에 저항하는 글을 썼던 카다레는 맨부커 인터내셔널상(2005년)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며 고립된 나라 출신의 세계적 작가가 된다. 실로 첫 소설(『죽은 군대의 장군』,1963)로 “그는 그의 조국 알바니아보다 유명하다”라는 찬사를 듣는다. 우리나라 유일한 국제문학상인 박경리문학상의 제 9회 수상자로 선정되어 내한하기도 했다. 카다레를 수식하는 많은 설명이 있지만 “카프카와 보르헤스의 뒤를 잇는 작가”라는 소개가 가장 인상깊다. 그들이 다뤘던 무력함과 고독의 끝간데 없음이 카다레에게서 어떻게 재현되는지 확인하는 일은 『피라미드』가 소중해지는 이유가 된다.

새 파라오 쿠푸가 처음부터 피라미드를 원한건 아니었다. 젊은 파라오의 암시에 대제사장을 비롯한 측근의 대신들은 아연실색하며 쿠푸의 마음을 돌리고자 한다. 피라미드는 위기의 시대에 구상되었으며 그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풍요, 즉 안락한 생활이었다. 안락한 생활의 여파로 독립심과 자유정신이 고조되자 이는 “권위 일반”, 특히 “파라오의 권위”에 반항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대한 탈출구, 백성들의 에너지를 소모시킬 방법, “요컨대 심신을 지치게 하고 파괴하는 동시에 철저히 무용한 무엇”, “백성들에게 무용한 만큼 국가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업”(p.15)을 생각해낸다. 여러 선택지 중에서 시간에 훼손되지 않을 기념비, 거대한 묘비이자 왕의 무덤인 피라미드가 조명된다. 파라오는 설득되고 과업이 시작된다.

소설은 파라오의 선포 이후 도취와 절망 사이에 휩쓸리는 사람들의 심리, 타자로부터 운명이 결정되는 개인의 몰개성, 고통과 무력감을 전한다. 의심과 자부심 가운데 피라미드의 돌 하나도 아직 다듬어지기 전 채찍 제조소들은 알아서 상품 생산 속도를 높인다. 피라미드 내부 설계를 맡은 그룹이 직면할 일, 결코 그들은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처럼 “비밀은 그 비밀의 열쇠를 쥔 사람과 함께 영원히 매장되어야 한다는 것.”(p.34)또한 공공연한 사실이다. 채취, 적재, 운반, 제 위치에 자리잡기까지 서수로 매겨진 돌들은 자기만의 고유한 내력을 새긴다. 돌 자체가 위협이라 피와 죽음은 일상이 된다. ‘태만의 돌’처럼 이름이 붙은 돌도 있고 돌이 모인 ‘단’이 하나의 기준점이 되니 개념정의도 추가된다. 새로운 권위의 명령으로 위에서부터 단의 번호를 매기게 되자 “어떻게 무에서 출발해 수를 센다지?”, “허공에 닻을 내리겠다는 거군!”(p.64) 혼란은 가중된다.

소설은 영원을 취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반추한다. 진정한 시간이란 ‘압축적’이어야 한다, 또는 ‘느슨해질 필요가 있다’(p.71)고 의견은 분분하다. 7장 “건축일지”는 특히 인상깊다. 돌이 초래한 죽음이 많을수록 부정적인 이름이, 이전 돌에 비교해 희생자가 적을 경우 천사라 할 만해 ‘착한 돌’이라는 별명이 붙는다. 기록으로 순간을 방부처리한다. 『피라미드』는 시간을 탐구하는 또 하나의 작품이며 이를 자신의 것으로 취하려는 권력에의 비틀린 갈구를 담는다. 책은 영원성의 상징 피라미드의 노화, 마모와 균열, 소멸을 향한 변화도 포착한다. 소설 후반에 이르자 인간이 직접적으로 돌의 자리를 대체한 피라미드를 등장시킨다. 14세기 중앙아시아 티무르 왕조가 쿠푸의 것과 흡사한 피라미드 만들고는 등장의 선후를 바꿔버린다. 마지막은 사진 속 투명한 유리 피라미드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세련되고 함축적인 결말은 오래된 전설을 현재진행형인 비극적 사건들과 나란히 놓는다. 환상적 허구를 현실에 잇댄다.

『피라미드』는 구조적으로 완결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전체 작품 틀 안에서 단어라는 돌을 어디에 놓을지를 모두 결정한 후 단순한 후속작업으로 타이핑이 따라오지 않았을까 상상케 만든다. 적확하고 유려하다. 드러난 주제는 선명한 반면 내포한 의미는 느슨하면서도 풍성하다. 참혹함이 일상으로 다시 유머마저 곁들여지는 진행은 감탄을 자아낸다. 차례의 소제목들은 모레먼지가 일 것처럼 건조하고 서사의 끝을 향해서 무심히 전진한다. 160여쪽 분량에서 다루는 시간은 인간의 영역을 가뿐히 초월해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데 속도감까지 느껴진다. 의도에 따라 시간이라는 열차는 양방향으로 가속하며 대답을 요구할 수 있다. 답해야 할 것이다. 모든 선택과 행위에 대해서.

소설은 피라미드라는 신비한 거대 건축물을 빗대어 서술하지만 역사소설은 아니다. 역자는 “형식면에서 그렇듯 내용 면에서도 켜켜이 다중의 의미를 감춘채 전체주의의 가혹함을 끈질기게 암시한다.”(p.167)고 짚는다. 동시에 피라미드는 개인이 자신의 삶에 초청하는 영광일수도, 영광에 이르지 못한 짐으로, 또 하나의 우상으로 읽힐 수 있다. 계속 책을 읽어오다 보니 나만의 독서기호가 만들어졌다. 『피라미드』는 개인적으로 또 하나의 기호를 추가시킨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지렁이가 기어가는 물결모양인데 “무서워서 덜덜 떨린다”로 해독할 수 있다. 여러 곳에서 새로운 기호는 꿈틀댔다. 깊이 침잠하며 질문케 하는 책, 이제 긴 여운을 뒤로하고 얼마전 출간된 『부서진 사월』로 만날 카다레를 기대한다.

책 속에서>

어떤 불가해한 도취감에 몸이 오그라들고 주먹이 꽉 쥐어졌다. 순식간에 피라미드가 그들 삶 속에 들어와 단 며칠도 안 되어 그들은 중얼대기 시작했다. “도대체 그거 없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 수 있었다지?”(p.20)

가까이에서, 특히 내부에서 바라보면 한 세대 한 세대는 저마다의 개성을 지니지만, 외부 관찰자의 눈-즉 조각상들에나 가능한 냉정한 시선-으로 보면 사막의 모래언덕들만큼이나 고만고만하다.(p.14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창비세계문학 42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혁준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란츠 카프카의 『성(권혁준 옮김, 창비, 1926)』은 “실종자”, “소송”과 함께 고독의 3부작이라 불리는 세 작품 중 마지막 미완성 장편이다. 또한 미완성임에도 "작가의 집필의도와 구상이 훼손되지 않은 작품"(p.447)으로 평가된다. 카프카는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 사회에서 성장하고 독문학과 법학을 공부했으며 어릴 때부터 작가를 꿈꿔 14년 동안 상해보험공사 직장생활과 글쓰기를 병행한다. 그는 1904년 「어느 투쟁의 기록」을 시작으로 「변신」 「유형지에서」 등의 단편과 『실종자』 『소송』 『성』등 장편을 비롯해 일기, 편지 등 많은 글을 남겼다. 헤르만 헤세는 1935년 바젤의 투고 글에서 “마침내 나오고 있는 아름다운 카프카 전집의 제3권은 소설 <성>이다. 약 10년 전에 막스 브로트가 작가의 유고에서 찾아낸 작품이다.”라며 “대부분의 독자들이 가장 좋아할 작품”이라고 덧붙인다. 또한 “저 두려운 <소송>”과는 다른, 차라리 “대작 동화라 할 만한 작품”(p.31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김영사)이라고 평한다. 시간을 거슬러 작품이 막 출간되던 순간의 황홀함이 전해진다. 또한 독일의 저명한 평론가, 학자들이 꼽은 “20세기 10대 독일 소설”에서 『소송』과 『성』은 두 번째와 아홉 번째 순서에 이름을 올린다.

“K가 도착한 때는 늦은 저녁이었다.”(p.7) 평이한 첫 문장은 이후 예측 불가능한 지점으로 독자를 데려갈 것이다. 초빙을 받고 마을에 도착한 토지측량사 K는 날이 밝고 나면 본격적으로 업무에 착수하거나 최소한 그를 위한 절차가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성에서 맡기려는 일을 파악하고 성에, 혹은 환경이 여의치 않을 경우 성 아래 마을에 머물기를 선택하고자 한다. 첫 날, 그는 성을 향해서 길을 나선다. 성의 외관을 살피고 방향을 감지하며 나아가지만 길은 성으로 이어지지 않고 의도를 갖고 주인공을 내치는 듯 거리를 좁히지 않는다.결국 도달하지 못한 채 성은 다시 멀어져간다. 책은 총 25장으로 16장을 제외하고 20장까지는 소제목이 있고 21장부터 마지막까지는 장 번호로만 표기하고 있다. 막스 브로트가 편집한 초판과 달리 비평판은 35년의 두 번째 판 이후 1982년 발간되었다.

K는 조력자여야 하나 훼방꾼과 진배없는 두 명의 조수를 만난다. 조수로 삼고 싶은 성의 심부름꾼 바르나바스를 통해 성에 도달코자 한다. 바르나바스는 안내자로 다가왔을까? 그는 곧 간파한다. 보이는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위장한 조력자는 “그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고 그의 힘을 파괴하는 데 일조했”(p.49)음을. 헤렌호프에서 만난 프리다는 훨씬 나아 보인다. 클람에게 가는 여정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인물이다. K는 그녀를 선택한다. K는 멈추지 않고 모색하며 전진한다. 입장을 밝히는데 주저함이 없다. 분노를 제어하기 어려운 순간에도 희생자인양 하기보다는 돌파하고자 한다. 허들 넘기에 초점을 맞추는 K, 주도면밀한 그임에도 접근을 허용치않는 공략은 전방위적이고 다차원적이다. 그는 결국 어디에 닿는가.

몇 년 전부터 재독이 시급한 작품들이 체증처럼 떠나지 않았다. 그 중 꼽히는 작품이 카프카의 『성』이었다. 『성』의 이미지와 주제, 힌트를 선명히 불러내는 또 다른 작품들을 만날 때마다 K가 성을 갈급해하듯 나 또한 조급증이 들었다. 카프카 전작읽기에 참여한 이유도 『성』 때문이었다. 오래 전 두 권짜리 문고본 깨알 글씨로 읽었던 『성』, 어떤 페이지들은 확고한 인상으로 그 후로도 오랫동안 기억에 박혀 있었다. 대표적인 세 장면과 재회하자 생각보다 지엽적이거나 스쳐 지나가는 장면임에 놀랍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반짝인다. 밑줄과 별을 그리고 몇 번을 다시 보태도 부족할, 나와 함께 나이 든 찰나이자 정신에 박제 돼버린 문장, 스러지지 않는 빛이다.

그 중 하나. “하지만 그를 직접 대면해본 적은 없어요. 그는 이곳에 내려올 수 없이 언제나 일에 파묻혀 지내거든요. 내가 들은 바로는 그의 사무실에는 차곡차곡 쌓인 서류 뭉치 기둥들이 사방벽을 가리며 가득 차 있는데, 그것들 모두 소르디니가 당장 처리중인 서류들이라는 거예요. 그 뭉치에서 서류들을 빼기도 하고 끼워넣기도 하는데 모든 일이 몹시 다급하게 이루어져 서류 뭉치 기둥들이 줄곧 무너진다고 해요. 기둥이 바닥으로 무너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는 것은 소르디니 사무실의 특징이 되었어요. 그런 점에서 소르디니는 진정한 일꾼이고, 하찮은 일에도 중요한 일을 대할 때와 똑같은 세심함을 기울이는 사람입니다.”(p.97) 이토록 환상적일수가! 나도 이렇게 일하고 싶다고 청년일 때 선망했다. 물론 지금은 다르다. 다정하면서도 차디찬 문체로 카프카는 진기한 장면과 상황을 만들어내고 각각의 이미지는 유기체처럼 연결된다. 물론 분리시키고 떼어내도 훼손당하지 않을 에너지를 갖는다. “기이한 것은 언제나 아름답고, 기이한 것은 모두 아름다우며, 사실 기이한 것만이 아름답다.”는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1924)”에 꼭 맞는 세계다.

카프카의 다른 작품들처럼 『성』 역시 모순과 부조리, 부조화의 일상성을 치밀하게 구현한다. 우리는 도달하려는 목적지를 구체화함으로 대상에 근접하고, 베일을 거두고 싶다. 하지만 드러내고자 할수록 숨는 이치. -그런데 관청은, 그 대신 관청은, 이렇게 함으로써 관청은, 대신 관청과는, 따라서 관청이, 그렇게 되면 관청은...(p.86)-하고 이어지는 서술은 집중할수록 모호함만을 배가시킨다. 그렇다면 귀 기울여 보자. 『성』 읽기는 독자에게 듣기이면서 동시에 보기다. 필요한 것은 어쩌면 시력보다 청력이다. 인물들이 자신의 감정과 논지를 마치 끝나지 않을 것처럼 풀어낼 때 독자는 최대한 집중해서 그 목소리를 쫓는다. 그 목소리가 불러일으키는 연상 작용까지 놓치지 않으려 의지를 곧추세우는 일이 『성』 읽기다. 상징과 은유, 장치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별개다. 독자의 기억에 정돈되어가는 프리다가 있다면 예레미아스와 함께 있는 프리다는 낯설면서도 수용가능하다. 이에 더해 페피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프리다는 또 다른 인물이다. 인물들은 시작과 끝을 가진 작품 안에서 유동적이고 변신을 거듭하며 여전히 고정되기를 거부한다. 이번에도 좌절은 익숙하다. 쓰는 사람도 있는데 읽기도 힘들다니, 정녕 너는 대리석이라는 말인가! 그래도 읽는 대리석 아니냐 편든다.

토지 측량 좀 하자고요, 토지 측량을 하려했을 뿐이고, 요청에 부응하려했을 뿐이고, 상식적이고 마땅한 최소한의 의무이자 권리를 원했을 뿐이다. 우리는 문제될 일이 없는 사항에 삐끗 잘못이 인지될 때 약간의 수고로 바로잡을 수 있다고 여긴다. 없었으면 더 좋았을, 그러나 직면케 되버린 사건이기에 성실하게 절차를 따라가다보면 ‘문제 해결’이라는 해피 엔딩과 만날 것이다. 나, 원래 침착한 사람이야!라는 증명까지 부가적으로 따라오면 좋으련만 한 순간 폭풍의 눈 안에 갇혀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 틈새로도 발을 내뻗을 수 없는 토네이도급 폭풍의 눈, 어쩌면 인생이라는 폭풍의 눈일까. 이런 일은 낯설지 않다. K의 비현실적인 고투가 우리 삶의 재현일 수 있고 수 많은 은유는 사소한 개인의 일상이 “평행이동”한 듯, 나아가 “합동”임이 증명되는 순간이 작품 안에서 연속된다. 이와 같은 확인이 『성』을 읽는 일, 성으로 향하는 K가 겪는 일, K의 시간을 함께 통과하는 독자가 경험을 나누고 무엇이 되었건 명명하고자 애쓰는 일이다. 『성』의 권위있는 해석들에 비교해 나의 해석은 부분집합으로 포함될지, 교집합에 방점을 둘지, 독립적인 서로소일지, 아니면 애초에 어긋난 오해, 잘못된 방향일수도 있겠다. ’명명하기‘는 그럼에도 중요하다. 그 후로 계속해서 다르게 읽힐 발견의 텍스트이기에 더 그렇다.

마크롤 가비에로(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나 조반니 드로고(타타르인의 사막), 요제프 K(소송)에게서도 확인했던 하나의 목표에 투신하는 인간상은 K와 동일한 결말을 맞는다. 카프카의 친구이자 유고를 세상에 내놓았던 막스 브로트에게 구두로 전했던 성의 결말(p.485)과 같다. 그 쓸쓸한 최후에 어떤 의미부여가 가능할까. 의미라는 단어에 해당하지 않는, 형식상 필요했던 그저 왜소한 온점만으로 기능하는가. 너무도 가차없었던 개고생 대(vs) 먼지처럼 녹아버리는, 쪼그라들며 흩어져버리는 죽음은 양적으로도 불균형 자체다. 아마도 구원의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모두에게 구원은 비밀하고 개별적으로 노크할 것이며 순간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비록 K만한 기개가 없을지라도 누구나 삶에서 최대한 분투한다. 그런 대결, 무익하고 쓸모없지만 그렇기에 아름다울 안간힘에 책은 미완의 노래를 부른다. 작가 자신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부른 노래, 시간을 뛰어넘어 바통은 이어지고 『성』은 지금껏 메아리치며 공명한다. 걸음에 힘이 실린다.

책 속에서>


(중략) 당신은 도대체 어떤 분일까요? 성에서 온 사람도 아니고, 이곳 마을 사람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무엇이기는 하죠. 이방인, 즉 깍두기 신세로 어딜 가나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 늘 신세를 끼치는 사람-왜, 하녀들이 숙소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만 했잖아요-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 게다가 우리의 가장 사랑스러운 귀염둥이 프리다를 꾀어내는 바람에 속절없이 이 아이를 당신 아내로 내줘야만 하게 만든 사람이죠. 기본적으로 이런 이유들로 당신을 비난하지는 않아요. 당신은 당신 나름대로 한 인간이니까요.(p.73)

그뿐만 아니라 성에 이르는 길은 몇 개나 있어요. 어떤 때는 이 길이 유행이어서 대부분의 관리들이 그 길로 달려가고, 어떤 때는 다른 길이 유행이어서 모두들 그 길로 몰려가요. 어떤 규칙에 따라 이런 식으로 길이 바뀌는지 아직 알아내지 못했어요. 이를테면 아침 여덟시에 모두가 어떤 길로 가다가 삼십분이 지나면 다른 길로 가고, 또 십분 뒤에는 세 번째 길로, 또 반시간 뒤에는 아마도 다시 첫 번째 길로 돌아가 그날 내내 그 길로 달리는 거죠. 하지만 매 순간 길이 바뀔 수도 있어요.(p.3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