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소설 읽는 노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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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읽는 노인(1989/정창 옮김/열린책들/2001』은 루이스 세풀베다(1949~2020)의 첫 작품으로 베스트셀러가 됨과 동시에 ‘티그레 후안상’을 수상했다. 그는 작가 최고의 환경소설로 일컬어지는 『연애 소설 읽는 노인』 권두에 열대우림을 지키고 브라질 소작농과 토착민의 인권보호를 위해 활동하다가 암살당한 환경운동가 치코 멘데스를 기린다. 태어난 곳 칠레로부터 망명 이후 작가는 여러 나라와 직업을 거치는데 “지칠 줄 모르는 여행가”이자 “행동하는 지성”(p.172)으로 역할한다. 역자는 그의 문학이 “기존의 라틴 아메리카 소설 문학이 추구해 온, 적어도 그들이 보여 주었던 모습에서 탈피하거나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p.173)고 전한다. 루이스 세풀베다는 특히 유럽에서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 중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후 가장 많이 읽힌다(p.173)고 하는데, 그를 읽고 난 독자는 아마도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동화부터 소설까지 뛰어난 가독성은 그의 문학에 편안히 다가서게 한다. 또한 깊은 울림으로 잊혀 지지 않는 여운을 남긴다는 점에서 다시 찾게 만드는 힘을 간직한다.

“하늘에는 당나귀 배처럼 불룩한 먹장구름이 무겁게 드리워 있고, 밀림을 휩싸고 도는 끈끈하고 칙칙한 공기가 금방이라도 들이닥칠 폭풍우를 예고하고 있었다. 이미 우기에 접어든 날씨였다.”(p.11) 소설의 첫문장은 앞으로 있을 불안한 여정을 암시한다. 마을 부락민들은 엘 이딜리오를 찾는 외지인이 거의 없음에도 1년에 두 번씩 들르는 치과의사를 기다린다.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 노인은 생리적 이유보다는 정신적으로 그의 방문이 더 각별하다. 육개월마다 한 번씩 노인의 독서취향에 맞는 두 권의 연애소설을 전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들은 나중에 노인이 난가리트사 강 앞에 있는 그의 오두막에서 고독을 달래며 읽고 또 읽게 될 텍스트였다.”(p.41) 하지만 노인의 소망은 잔혹하게 훼손된 시신이 카누에 실려 떠내려 오며 저지당한다. 누가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공격당한 자와 공격한 자의 실체를 밝히게 되면 처참한 번복을 막을 수 있을까, 엘 이딜리오의 유일한 공무원인 뚱보 읍장은 암살쾡이 추적단을 꾸리고 노인은 실질적인 리더가 되어 미지의 밀림을 향한다.

이기적이고 무분별한 인간은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환경파괴를 자행한다. 밀림의 주인인 동물도 원주민도 더 깊은 곳으로 끝없이 쫓기고 ‘양키’로 상징되는 권력은 폭력의 흔적을 남기고 돌이키기 어려운 상처를 입힌다. 노인이 밀림 생활을 배워가던 시절에도 지식과 경험이 쌓여갈지언정 “수아르족은 될 수 없었다”(p.60)고 고백한다. 수아르족의 특별한 의식들을 포함해서 밀림의 생태는 생생하면서도 놀라워서 작가가 어떻게 자료수집을 했을까 궁금할 정도다. 열린 감각, 깨어있는 의식으로 다가갔던 작가의 모든 여행과 정착의 흔적은 온전히 문학으로 구체화되었다. 암살쾡이로 인한 숨은 위협과 쫓는 과정은 읽는 내내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만든다. 해결해야 할 위협적인 존재, 적과의 결투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수긍하면서도 본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생명이 죽어가는 장면은 독자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다.

소설의 특별한 매력은 제목이기도 한 “연애 소설 읽는 노인”에게 있다. 유창하지 않기에 노인의 “읽기”는 더 정성과 애정이 깃든다. 노인이 책을 매개로 의사와, 신부와, 여선생과 만나게 되는 장면, 책을 구하기 위해 궁리하고 원숭이 포획이라든지 댓가를 지불하는 방식도 간절함의 크기를 짐작케 한다. 작년 이맘때였다. 2020년 4월 세풀베다의 사망소식을 기사로 접하고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꾸준히 신간소식을 들을 수 있었던 귀한 동시대 작가와의 돌연한 이별이 코로나 때문이라는 사실이 더 아이러니했다. 환경과 자연을 지키고 돌이키지 않으면 공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작가는 마지막까지 웅변한 것 같다. 하나의 작품으로 다채로운 질문과 즐거움, 경각심을 일깨우는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을 청소년과 성인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책 속에서>

노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을 읽었다. 그의 독서 방식은 간단치 않았다. 먼저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었고, 역시 그런 식으로 문장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이렇듯 그는 반복과 반복을 통해서 그 글에 형상화된 생각과 감정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음절과 단어와 문장을 차례대로 반복하는 노인의 책읽기 방식은 특히 자신의 마음에 드는 구절이나 장면이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도대체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깨달을때까지 마침내 그 구절의 필요성이 스스로 존중될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그러기에 그에게 책을 읽을 때 사용하는 돋보기나 틀니 다음으로 아끼는 물건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p.45)

그는 인디오들과 함께 생활하는 동안 자신이 가톨릭을 믿는 농부라는 사실을 훌훌 떨쳐 버렸다. 새로 이주해 온 개간자들이 정신 나간 사람으로 쳐다보았지만 원주민인 인디오들처럼 거의 벌거벗은 몸으로 돌아다녔다. 자유라는 말은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밀림에서 자신의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그사이 차츰 밀림의 세계에 눈을 뜬 그는 주인 없는 푸른 세계에 매료되어 마음속에 간직해 오던 증오심을 잊었다.(p.53)

다시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노인의 뇌리에는 어떤 결론이 스쳐가고 있었다. 맞아, 그 짐승은 스스로 죽음을 찾아 나섰던 거야. 그랬다. 짐승이 원하는 것은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인간이 베푸는 선물이나 적선에 의한 죽음이 아닌, 인간과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싸움을 벌인 뒤에 스스로 선택하는 그런 죽음이었다.

(중략)다시 말해서 뚱보의 떳떳지 못한 제안에 대해서 노인이 결론처럼 내린 대답은 단 한 가지였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읍장 같은 인간들이 선택할 수 없는 싸움이자 죽음이었다.

“좋소.” 이윽고 노인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담배와 성냥과 실탄은 남겨 두고 가시오.“(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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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칵 뒤집힌 현대 미술 - 세상을 뒤흔든 가장 혁신적인 예술 작품들
수지 호지 지음, 이지원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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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 호지(Susie Hodge)의 『발칵 뒤집힌 현대 미술(이지원옮김/마로니에북스)』은 표지부터 강렬하다. 이제 비로소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기대는 정답지를 주소서 내심 요청케한다. 서론에서 저자는 여러 이유로 “적잖은 당황과 좌절, 짜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작품들 앞에서 “미술은 언제, 그리고 왜 변했을까? 변해도 된다고 결정한 사람들은 누구이고, 어떤 일들이 그런 변화를 촉발했을까?”라고 독자를 대신해 질문한다. 책은 이 문제들을 탐구하기위해 “미술계를 강타하고 미술사의 경로를 바꾼 1850년대 이후 생산된 혁신적인 작품들”(p.6)을 자세히 살핀다. 중요한 여정의 안내자 수지 호지는 100여권의 예술 및 역사 관련서를 출간했고 강연과 워크숍, 방송 등을 통해 예술과 예술 감상의 문턱을 낮추는 데 힘쓰고 있는 영국 미술사학자다. 서론의 끝에서 저자는 작품이 좋은지 아닌지 “누가 결정하나?”묻는다. 이전에는 왕립 아카데미였지만 오늘날에는 ‘미술계’라고 답한다. 또한 ‘미술계’의 괄호 내 부연 설명에는 ‘관람객’이 포함되어있다. 일반 대중이 왕립 아카데미 역할에 일정 부분, 어쩌면 비중있게 기여하게 된 것이다.

책은 50점의 놀라운 현대미술 작품을 1850년부터 현재까지 다섯 개 구간으로 묶어 선보인다. 구간별 소제목은 전통의 타파(1850~1909), 전쟁의 참상(1910~1926), 갈등과 퇴조(1927~1955), 상업주의와 저항(1956~1989), 프레임 너머로(1990~현재)이다. 소제목마다 특징과 의의를 알려주고 예술 분야는 물론 세계사 주요 이슈를 연대기순으로 기록함으로 시공간적 배경을 연결할수 있다. 예술이 그 시점에 어떤 얼굴을 드러내거나 변화하는지, 작가들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 숨은 의미를 숙고하게 된다. 1910년부터인 “전쟁의 참상” 서두의 글은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사실주의,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신인상주의 등 19세기 중후반과 20세기 초에 발달한 새로운 미술 운동은 처음에는 평론가와 대중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러한 예기치 못한 미술 양식은 전통적으로 인정된 방식과 접근법에서 이탈한 것이었고 불경해 보였다. 하지만 그것들은 장차 올 것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p.50)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제법 친근한 에곤 실레나 칸딘스키의 이름이 보이지만 “미술을 재정의하다”는 제목에 꼭 들어맞는 마르셀 뒤샹도 발견할 수 있다. <샘>이 제기한 질문인 “무엇이 미술가를 만드는가? 그에게는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 미술이란 무엇인가?”(p.66)는 관객과 평단의 반응이 어느정도였는지 드러낸다. “작가는 물리적으로 작품을 제작할 필요가 없고 단지 아이디어만 생산하면 된다”는 뒤샹의 주장이 100여년이 지난 지금은 흡족히 수용되었을지도 모른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예술의 수도는 역사상 처음으로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간다.

『발칵 뒤집힌 현대 미술』은 혁신적인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작가의 의도와 함께 주요 어록도 전한다. 덕분에 난해하고 불편했던 작품은 조금씩 그 취지를 알릴 수 있게 된다. 관심 범주에 포함되건 아니건 귀기울일 때 발견하는 사실들은 경이롭다. 달리의 <기억의 지속>이 보여주는 상징들, ‘카망베르 같은 시공간’, “단단하건 무르건 무슨 차이가 있겠나! 시간만 정확히 알려준다면.“(p.91)과 같은 말을 전해듣는 일 말이다. 놀라운 여정의 마지막은 기념비적 라이브 퍼포먼스로 명장면을 만든 뱅크시로 마무리된다.

예술작품을 보고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 건 정답이 있다는 말이다. 가장 불안한 것 중 하나는 “혹시 오독을 한다면”하는 우려였는데 이는 예술 향유를 막고 스트레스 지수를 올린다. 내게 정답만을 달라 원했을때의 긴장을 임지영 선생님의 예술교육리더 클래스를 통해 천천히 해소하고 있다. 지금 이 책은 허용의 폭을 넓히는 또 하나의 디딤돌로 작용한다. 예술가들의 그 많은 시도, 쉽지 않았을 도전은 가능함의 범주로 다양한 낯설음을 끌어들인다. 예술을 재단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다가설 수 있는 만큼 가까이 간다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랑할 때 이해하게 되는지 이해할 때 사랑하게 되는지 선후를 명확히 하기는 어렵다. 작품과 관객이 맺는 일대일 관계에서 개인이 선택하는 감정은 힘이 있으며 예술은 무한히 새로 태어난다. “궁금한가? 해석본을 주마”에 근접한 책으로 난해를 이해로 전환시킬 단초가 될 것이다.

공격성이 부족한 작품은 결코 걸작이 되지 못한다./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p.86)

그들은 늘 시간이 상황을 바꿔준다고 말하지만, 실은 우리 스스로 그것을 바꿔야 한다./앤디 워홀(p.119)

나는 여전히 과학은 답을, 예술은 질문을 찾는다고 생각한다./마크 퀸(p.163)



<서평단/ 출판사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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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미술관 - 그림에 삶을 묻다
김건우 지음 / 어바웃어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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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우의 『인생미술관(어바웃어북), 2022』은 서양미술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화가들 스물 두명의 삶을 그들이 남긴 작품으로 따라가 보고 대화의 장을 마련한다. 저자는 작품 위주로 그림을 즐길 때 “파편화된 지식”으로 방향을 잃을 가능성이 있는데 비해, 화가의 삶을 중심축으로 두고 그림과 만날 때 총체적인 시각에서 작품을 바라볼 수 있다고 전한다. 달과 6펜스 사이에서 고뇌했던 화가의 실패와 성공에 온전히 다가갈 때 관객 또는 감상자는 “일방적인 감상의 차원을 넘어 그림과 대화할 수 있게 된다.”(p.6)고 저자는 말한다. 『인생미술관』의 특별함은 죽음을 알리는 글, ‘부고’로부터 삶을 회상해나간다는데 있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이미 거두어졌다는 사실 앞에서 삶과 예술을 복기하는 일은 기념이자 애도인 동시에 독자의 시간으로 시선을 돌리게끔 만든다.

『인생미술관』을 구성하는 네 개의 챕터는 “삶을 짓누르는 중력에 맞서”, “내 캔버스의 뮤즈는 ‘나’”, “어둠이 빛을 정의한다”, “달의 뒷모습”이다. 고흐부터 루벤스까지 스물 두 명의 화가는 네 개의 챕터에 나누어 배치되었는데 읽기 전에 독자가 먼저 연결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Gallery of Life 01", <삶의 여백을 채우는 법, 저항하며 앞으로 나아간다!>라는 각각 스물 두 개의 페이지가 인생 전시실로 입장하는 느낌을 준다. 화가의 생몰년을 확인하고 Obituary(사망기사)로 일대기 요약본을 본 후 삶과 작품을 잇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애석해하거나 감탄하거나 결국 예술의 바다에 빠지게 된다. 두 번째 챕터를 보고 나면 ‘자화상’이 이전과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미술사에서 자화상을 최초로 그린 화가 뒤러를 “자화상 개념도 없던 시기에 자화상을 그린 문제적 열세 살”이라는 위트 있는 소제목으로 소개한다. 그는 ‘브랜드’라는 개념도 최초로 미술에 도입한 화가로 자기 작품에 서명을 남겼다 한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의 면모는 화공이길 거부하고 예술가의 아우라를 뽐낸다.

모나리자가 다빈치의 또 다른 자화상이라는 영국 컴퓨터 그래픽 전문가 슈바르츠의 실험은 놀라움을 자아낸다. 모나리자가 다빈치? 모나리자라는 이름의 의미를 추적하기도 하나 방대한 분량을 남긴 천재의 노트에 정작 자신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으니 미스테리로 남을 수밖에. “웃음으로 저항하고, 웃음으로 세상을 바꾸다”의 오노레 도미에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미술사가 도미에를 평범한 삽화가가 아닌 완성된 화가로 인정하는 것은 현실을 날카롭게 투영해내는 특유의 시선 때문이다.”(p.246) 웃음, 유머, 소시민의 삶을 연결하는 화가의 긍정이 웅변적이다. 한스 홀바인이 포함되어 있어서 기뻤다. 도스토옙스키의 <백치>에서 미시킨 공작과 로고진이 함께 보던 ”무덤 속의 예수“가 하단에만 있지만 양면을 할애해서 담겼다. 철학하는 화가로 불린 푸생도 깊이 각인된다. “푸생은 그림을 ‘본다’는 기존의 감상법에서 한발 더 나아가 문학이나 논문처럼 ‘읽어야 한다’는 지론을 펼쳤다.”(p.365) 미술사를 통틀어 어떤 화가보다도 사색적이었다는 푸생의 그림은 낯익지만 화가에 대해서는 정작 잘 모르고 있었다. 그림도 읽어야 한다는 말에 읽기 강박자인 필자는 귀가 솔깃해진다. 마지막에는 작품 찾아보기와 인명 찾아보기까지 있어 곁에 두고 볼 때마다 도움 받을 수 있겠다.

미술관련서를 읽고 사고 모으고자하는 욕구가 누르면 튀어 오르고를 내내 반복해왔다. 가서 머물고 싶은 공간이라면 책이 있는 도서관을 제외하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다. 혼자가고 남편과 가고 유모차 밀고 가고 아이 손 끌고 갔고, 지금은 과제 덕분에 시간은 부족하고 할수 없이 전시실을 경보로 스쳤다. 숭례문학당의 예술교육리더과정 수업을 듣고 있는데 예교리가 ‘지금’을 통과하는 나에게는 비타민이고 에너지고 엔돌핀이다. 예술 향유자로서의 삶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확인은 설렘을 주고도 남는다. 『인생미술관』은 그런 때에 읽었기에 더 정성껏 감정이입하며 머무르게 된 면도 있다. 읽을 때는 좋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의 감동이 옅어질까 약간은 두렵다. 그 또한 죽음을 향해 가는 삶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니 그러면 또 다시 펴고 읽어보자. 누구든 『인생미술관』을 방문해 자신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신간서평단/출판사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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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원이 되고 싶어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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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여러 얼굴을 가진다. 애틋하고 소중한 동시에 외면하고 싶은 칩들이 산재해 박혀있을지도 모른다. 균형추는 좌우로 미끄러지곤 한다. 지나온 모든 순간을 가장 적절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포옹한 후 떠나보내거나 결연히 마주 손잡는 선택지 앞에 선다면, 하고 소설은 묻는다. 박상영의 『1차원이 되고싶어 (문학동네),2021』 는 2019년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으로 젊은 작가상 대상을, 2021년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신동엽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1차원이 되고 싶어”라는 제목은 간절함이 묻어난다. 화자는 외치고 있을까, 읊조리고 있을까. 무엇이 되었건 진심이 전해지고 덧붙히자면 자주 보던 “~하는 방법” 투의 제목이 아닌것도 마음에 든다. 의미를 생각하니 “단순하게 살자, 쫌!”, “나 좀 냅둬!”등 이미지가 이어지는데 그들이 사는 차원과 도달하고 싶은 차원을 탐색하는 여정에 지금 오른다.

소설은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 “과거로부터 온 편지”와 그 앞에 직면하는 주인공을 그린다. 과거와 현재는 교차하는 두 개의 축으로 독자는 시공간을 넘나들게 된다.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던 때, 특목고 입시학원을 다니던 중학교 2학년 소년은 더 나은 삶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라는 가언 명령과 환영받지 못할 사적인 감정 사이에서 아슬하게 견디고 있다. 자신 안에 자라는 애정은 감정에서 감각으로 욕구를 넓혀간다. “당시 나에게 가족이라는 것은 나를 속박하는 굴레에 불과했으며, 내가 가진 모든 욕망은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했다. 지금의 이 삶을 벗어나고 싶다.”(p.41) 라는 문제 해소책으로도 사용된다. 가족은 마음을 열고 합심하는 주체가 되지 못한다. 만족스럽지 않은 조건들이 일생일대 중요한 시기인 십대 인물들을 촘촘히 애워싸고 있다. “막 서른이 된 아빠는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방종하게 살아왔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으며 철들······기는커녕 또다른 의존의 대상을 찾게 되었다. 바로, 엄마였다.”(p.177)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봐도 그곳에서 또다른 어른아이들을 만날 뿐이다. 또한 과잉인줄 알아채지 못하는 편중된 가치를 ‘기준’ 삼고 강요하기에 폭력은 어느 관계에나 내제한다. “아빠는 없고, 엄마가 다단계 해서 먹고살고, 그것도 모자라 전교에서 제일 유명한 호모 새끼였어. 우리 학교 애들은 다 알아.”(p.202)

소설은 현실을 애둘러 표현하지도 미화하지도 않는다. 나와 윤도, 태리의 관계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돌아보면 그때가 좋았다고 하기에는 통증의 잔재가 많고 상처 받은 만큼, 때론 그 이상으로 상처주기도 한다. 죄의식은 그 시간을 벗어나 현재의 나에게 상처를 입힌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내딛는 걸음은 회복의 첫 걸음이라 생각된다. 작가는 “그 시절을 뛰어넘기 위해, 현재형의 공포를 과거의 한 시절로 남겨놓기 위해, 주먹을 쥐고 눈을 부릅떠야만 했다.”(p.408)고 쓴다. 음악, 영화, 만화, 미니홈피 등 시대적 장치들을 보는 즐거움과 곤혹스런 와중에도 위트있는 대사들은 가독성을 높인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은 쉽게 감정이입하고 작품과 독자의 간격을 좁혀준다. 2019년 젊은 작가상 수상 인터뷰에서 박상영은 작가로서의 퀴어 예술가, 이런 설정들이 모이는 지점이라서, 요즘은 그 이후를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면서 두번째 소설집에는 백 퍼센트 퀴어 소설만 들어갈 거 같고 그 이후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아마도 “그 이후”라 언급한 작품이 “1차원이 되고 싶어”인 듯하다. 다양한 서사나 미스테리, 추리물에 대한 호감도 언급했는데 그런 요소도 조화롭게 녹아있다.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처럼 간추릴 수는 없는 소설로 살아냈으므로 다행이다에 가깝다. 섬세하게 들여다본 솔직한 성장기가 읽는 이들의 마음에 닿고 위로하는 점은 소설의 강점인 듯하다. 감정을 묘사하는 문장들은 사랑이나 우정의 정의로 모아두고 싶을만큼 아름답기도 했다. 그럼에도 작품에 보내진 수많은 찬사 곁에 모호하네, 라고 덧붙힌다. 이또한 독자의 솔직한 감상이므로. 누군가는 차원이동 진입장벽을 어떤 강도로건 느낄 수 있겠고 누군가에게는 자동문같은 환대로 다가올 것이다.

나는 마치 미라처럼, 혹은 소금 기둥처럼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말라붙어가는 기분이었는데, 아이들은 저마다의 속도에 맞게 커가고 있었다. 나만 빼고 모두가 자신의 속도로 뻗어나가고 있었다.(p.200)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모조리 쏟아내 죄책감을 떨쳐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나는 언제나 침묵해버리는 사람이니까. 모든 것을 덮어버리고, 상처를 썩혀버리는 종류의 사람이니까. 그것이 내 삶을 좀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내 유일한 삶의 방식을 바꿀 수는 없었다.(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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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서 쓴 수기 창비세계문학 10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근식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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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도스또옙스끼의 『지하에서 쓴 수기,1864(김근식 옮김/창비/2012)』는 민감한 영혼의 내적 독백이자 항변을 기록한 소설로 이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발표될 작품들의 서곡에 견줄 수 있다.(“지하로부터의 수기” 이후 그의모든 작품은 합리주의에 대한 공박에 다름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p.197 로쟈의 러시아문학강의) 내면의 분열과 자유의지, 자기부인, 광기어린 추적, 조건없는 사랑과 용서, 구원의 가능성 등 여러 주제가 호흡을 고른다. 책을 쓸 당시 도스또옙스끼의 첫 번째 아내는 결핵으로 죽어가고 있었고 때문에 “고통과 열정은 모순적이면서도 이 작품을 지탱하고 있는 힘의 원천”이었다. 그는 현실과 창작이라는 이중 영역에서 고통의 한 가운데를 통과해 “서양문학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광인들의 형상들 중에서도 가장 관념적이면서 의미심장한 주인공”(이병훈, 광기 전복된 영혼의 세계 2016)인 지하생활자를 탄생시킨다. 이후 지하생활자는 극단을 달리며 치열하게 고민하는 인물들의 전조가 된다. 이 짧은 소설이 “도스또옙스끼적인 것의 결집체”라는 나보코프의 평가는 작가의 후기작으로 갈수록 재현, 변형, 확대 발전하며 풍성해지는 흔적을 만날 때마다 기억나게 될 것이다.

소설은 총 2부로 1부 <지하>에서는 화자인 지하생활자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기 견해를 밝힌다. 타자에게 보여지는 부분과 자신만이 알 수 있는 면을 교차하면서 옷감을 짜듯 자기 정체성을 풀어낸다. 선언적인 단문과 부연을 덧잇는 만연체를 왕래할 때 어떤 지점에서는 일정분량의 재독을 반복하게 된다. 자신은 “못된 인물”이라고 첫 문장을 떼었지만 이어 “나는 못된 인물은 고사하고, 아무것도 될 수 없었다.”고 힘을 뺀다. “사납거나 착해지거나, 비열하거나 고상해지지도 못했고, 영웅이나 벌레가 되지도 못했다.”(p.12)며 범위를 넓힌다. 화자는 신경이 둔한 사람이 부딪히는 “불가능의 벽”, 다른 말로 “돌벽”이면서 “자연법칙, 자연법칙의 결론, 수학”(p.23)을 철옹성이라고 부른다. “돌벽이란, 2×2=4다! 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평화의 담론처럼 들릴 것”(p.24)이라고 재차 부연한다. 자연법칙은 “수정궁”이자 “이상향”(p.45)에 닿고 19세기에 과학이 해낸 인간해부는 “욕구와 변덕의 공식들”(p.47)을 차단하는 가림막이라 진단한다.

그는 말한다. “인간의 욕구가 공식에 의해 조정되는 거라면 누가 그런 욕구를 충족하려 하겠는가?”, “자신의 소망과 의지와 욕구가 없는 인간이 피아노 건반이지, 진정 인간이란 말인가?”(p.48) 결국 “나의 개인적 견해지만, 오직 행복 하나만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좋든 나쁘든 간혹 무언가를 박살 낸다는 것 역시 기분 좋은 일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고통의 편에 서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행복의 편에 서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편을 드는 것은······나의 변덕스러움이다. 필요하다면 나는 마음 놓고 변덕을 부리고 싶다.”(p.60) 의식은 자신에게 채찍질할 때가 가끔 있고 그것이 삶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키기에 무념의 상태에 빠져 있는 것보다 낫다는 지하생활자는 2×2=4의 세계를 "죽음의 시작“(p.58)이라 명명하며 그 자리를 2×2=5라는 ”그에 못지않게 멋진 것“(p.59)으로 치환코자 한다. 화자는 자유의지 논쟁 끝에 1부 마지막을 수기의 효용에 할애한다.

소설의 2부는 <젖은 눈에 얽힌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20년 전 겪었던 두 사건을 회상한다. 동창들과의 모욕적이었던 일화와 우연히 만나게 된 리자 이야기다. 2부의 제사 네끄라소프의 장시 인용은 리자 일화를 요약한 것과 흡사하다. “이 얼굴에는 무언가 아량이 넓고 선해 보이는 것이 있으면서도, 기이하리만치 진지해 보이는 것이 있었다. 분명히 그런 점 때문에 이 아가씨는 손님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p.143) 리자는 2년 후 나올 “죄와 벌”의 소냐를 예표하는 것 같다. 센나야 광장과 병으로 스러져 가는 여인들 삶을 들어 지하생활자는 리자를 각성케 한다. 후에 리자는 지하생활자에게 수모를 당했음을 알아채지만 그를 포옹하고 눈물을 흘림으로 화자도 참회의 울음과 용서를 빌고 싶다는 변화를 감지케된다. 종잡을 수 없이 이어지던 자문자답은 종말에 이르러 결국 “그러니까 나는 여러분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살아 바깥으로 나온 셈이다.”(p.212)라고 고함으로 목소리를 쫓던 독자에게 이 일이 인간 보편의 문제임을 알린다. 나아가 자신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스스로에게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지상인지 지하인지, 태양 아래인지 비밀의 숲속인지 명칭은 여러 가지로 붙일 수 있겠다. 독자는 내가 이상해 보여? 당신도 만만치 않아, 결코 덜하지 않지, 라는 지하생활자의 음성을 듣게 될 텐데 이미 ‘나’에서 1인칭 복수 ‘우리’로 호칭은 달라져있다.

캐릭터의 성격특징이 과해 보였지만 후반에 이르러 그의 논리를 온전히 수용하고 동의하게 하는 역량은 역시 작가의 천재성을 다시금 확인시킨다. 구조적으로 2부 구성이 주장과 근거 또는 변론과 사례 제시처럼 안정감 있다는 점도 몰입을 높인다. 마지막 두 페이지는 압권! 도스또옙스끼는 겨울이 시작될 때 계절병처럼 꺼내는 작가다. 올해도 죄와 벌 한 번 읽어야 할 텐데(“형제들”은 엄두불가) 하는 생각이 도돌이표처럼 떠오르면 겨울이 왔다는 신호다. “지하에서 쓴 수기”는 첫 번째 독서였다. 만개한 개나리와 벚꽃 틈바구니에서 땅을 파고 들어가는 듯한 수기를 읽는 경험은 절구 공이(그렇다, 그 절구 공이가 맞다) 두 개가 부딪히는 듯 부자연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읽는 그 때가 바로 최적기”라는 새로운 좌우명을 쓰며 (그럴 일이 거의 없겠으나 상상으로라도)손가락 어는 추운 겨울 젖은 눈에 얽힌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리라 기약한다. 읽어보시라, 왜 이제야 읽었나 하는 묘한 쾌감이 있을 것이다.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느냐 하면, 여러분이 감히 천착해볼 엄두도 못 냈던 것을, 또는 반쯤 천착해보았던 것을, 그리고 비겁함을 분별력이라 하며 여러분이 자신을 기만하면서 자위해왔던 것을, 끝까지 파헤쳐서 그 속을 뒤집어보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여러분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살아 바깥으로 나온 셈이다. 자, 유심히 살펴보길 바란다! 사실 우리는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이 어디에 살아 있는지, 그것이 무엇이며 또 뭐라고 불리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책 없이 우리만 따로 내버려 둔다면 우리는 즉시 혼동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될 것이다.(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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