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김연수 옮김, 민음사),1974』는 조작과 거짓이 한 인간을 어떤 식으로 몰아가 끝내 추락시킬 수 있는지를 신랄하게 고발한다.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라는, 제목에 덧붙여진 부제는 주인공이 겪어낼 기승전결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견한다. 작가가 ‘모토’라 칭한 서두의 단서에는 구체적인 이름(빌트지)이 등장하는데 이 세 가지 전제조건을 통해서 작품을 읽어내고 통찰하고, 문제 해결은 다른 차원에 놓더라도 진실에 닿기를 요청한다. 언제나 동시대인의 문제와 현실 인식을 화두로 삼았던 하인리히 뵐은 “우리 눈에 비치는 현실이 폐허라면, 그것을 냉철히 응시하고 묘사하는 것이 작가의 의무다.”라며 모순과 부조리를 향해 목소리를 냈고 197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고 학교에서 교재로 읽히며 영화화되기도 했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그렇다면 지금 현실은 어떤가, 미래를 낙관하거나 가늠해 볼 때 하나의 씁쓸한 표본을 제시한다.

“그자들이 이 아가씨를 끝장내고 말 거야. 경찰이 안 그러면 <차이퉁>이 그럴 거예요. <차이퉁>이 그녀에 대한 흥미를 잃으면, 사람들이 그럴 거고요.”(p.45)라는 문장이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는 현실을 상기시킨다. 블룸을 알고 있는 블로르나 부부는 신문 1면을 장식한 그녀의 기사에 분노를 표하는 동시에 정확히 간파한다. 카타리나 블룸이 지키고, 이루어내고 싶었던 꿈과 희망은 물론 살아있는 자가 마땅히 보장받을 ‘시간’ 또한 빼앗긴 게 현실이다. 카니발 시즌, 댄스 파티에 참석했던 카타리나 블룸은 괴텐이라는 남자를 만난 이후 강도 용의자였던 그의 도주를 도운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던 중 언론에 완전히 노출된다. 경찰과 신문이 카타리나에게 가하는 태도와 행동과 말은 의도된 오류를 증폭시키는 일방향으로만 속도를 낸다. 이미 거의 모든 것을 잃은 그녀는 결국 한계에 이르고 만다. “내내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게 사실이 아닐 거야.’ 하고요. 그렇지만 난 잘 알고 있었어요. 그 모든 것이 사실이었다는 것을요.”(p.151) 누가 비상(飛上) 하고 싶었던 카타리나, 유년의 불행과 매정했던 편견에 굴복하지 않고 용기 내었던 그녀에게서 갑자기 날개를 빼앗고 끝내 추락하게 만들었나.

소설은 스물일곱 살의 이혼녀 카타리나 블룸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명예를 잃어버리는 과정에 만연했던 폭력과 속수무책으로 감당해야 했던 고통, 이 고통이 불러일으킨 폭력의 귀결까지 부조리한 연쇄 과정을 그린다.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로 사실만을 전달하는 듯 보이지만 단어는 본래의 의미를 쉽게 왜곡하고 필요에 맞게 변조하며(p.32), 오히려 직업인으로서 도우려는 선의였다 포장(p.114)하면서도 문제의식이라고는 없다. 말이 내포한 진실이 곧이곧대로 수용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차라리 침묵을 택하기도 한다.(p.120) 소설은 이처럼 언어를 목적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킬 때 일어나는 문제를 때론 위트 있게, 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미 작가는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53)>에서 반쪽 진리를 담은 주교의 어휘나 고위 장교들의 빈약한 어휘에 주목하며 침묵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했었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뵐이 독일의 죄의식을 작품으로 구현한 작가였으나 절망에 유쾌함을, 처절한 자기반성과 애교를, 신랄함과 장난기를 함께 묶은 작가였다고 평했다. 또한 그가 전 세계가 인정하는 작가가 되었으나, 언제까지나 여전히 약자들의 형제요, 그들 중 하나였다며 ‘보통사람’이라는 명칭을 추가한다.(작가의 얼굴,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문학동네 p.300) 카타리나 블룸이라는 이름을 대체할 때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전속력으로 질주해오는 이름들이, 사건들이 있기에 1974년 출간된 이 “소설” 또는 작가의 주장대로 “이야기”는 다분히 현재적이며 첨예한 쟁점으로 독자를 각성시킨다. 행동하는 지성이었던 하인리히 뵐의 작지만 강렬한 소설을 추천한다.

책 속에서>

이 순간에야 비로소 카타리나는 이틀 치 <차이퉁>을 핸드백에서 꺼내 보고, 국가가(이렇게 그녀는 표현했다.) 이런 오욕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해 주고 그녀의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지 물었다.(p.6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