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The Complete Maus 합본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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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슈피겔만의 『쥐The Complete Maus(권희섭, 권희종 옮김/아름드리미디어)』는 유태인 대학살을 다룬 장편 만화로 부제는 “한 생존자의 이야기”다. 작가의 부모님이 아우슈비츠 생존자로 책은 부모님과 자신의 관계를 보여주는 자전적 이야기와 부모님의 생존담을 전한다. 작가는 유태인을 쥐로, 다른 등장인물들도 동물로 묘사한다. 잡지에 연재되던 『쥐 1』이 1986년 단행본으로 출간되는데 8년이 걸렸고, 그로부터 6년 후인 1991년에 『쥐 2』가 출간된다. 합본판은 발간 20주년을 기념해 2010년에 나오게 된다. 슈피겔만은 창작 예술가이자 만화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역사가이며 영상 예술 학교에서 “만화사”를 강의한다.(p.314) 또한 그는 만화라는 대중문화를 예술적 표현 양식의 하나로 끌어올린 ‘그래픽 노블’의 창시자가 되었으며 『쥐』는 1992년 만화책으로는 유일하게 퓰리처상을 수상한다. 스콧 맥클라우드의 『만화의 이해』 부록(p.246)에서 역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쥐』는 만화를 하나의 정점에 달하게 했고, 새 지평을 열도록 문을 열어주었다는 극찬을 받아 마땅한 자타가 공인하는 걸작이다.”

아들 아티는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과 어머니 아냐의 삶, 그들이 겪었던 전쟁에 대해 쓰고 싶어한다. 부자 관계는 소원한 편이었지만 그는 아버지 얘기를 듣기 위해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쥐는 아버지의 회상 속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결혼 후 행복했던 시간은 잠시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징병통지서를 받은 아버지는 어머니, 어렸던 형과 헤어져 입대하게 된다. 전쟁 포로가 된 블라덱이 내뱉는 “난 죽지 않을 거야. 여기 있지도 않겠어! 난 인간 대접을 받고 싶다구!”(p.60)라는 말은 그를 지탱하는 주요 동기다. 블라덱의 고객이자 재단사였던 일체키씨에게 우연히 도움을 받고 목숨을 구하지만 도움을 준 그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다행히 그들의 아들은 살지만 블라덱의 큰아들, 아타가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던 형 리슈는 살아남지 못한다. 죽음은 자기 그림자처럼 가까웠고 예측가능성이란 없는 시간이다. “독일놈들에게 유태인 소수를 넘겨주면 나머지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유태인 경찰, 독일인이 아닌 유태인 경찰에게 아냐의 조부모님은 이끌려 희생당한다. 또한 작가는 단 두 지면을 할애해 스타디움 선별작업 당시 딸을 위해 담을 넘고 죽음의 편에 기꺼이 섰던 블란덱의 아버지를 그린다. 오래전부터 되풀이 들어왔던 이야기의 실재를 보여준다.

책 속의 책 “지옥 혹성의 죄수-하나의 일화”는 살아남은 자의 고통이 어떻게 서서히 삶을 망가뜨렸는지, 고통의 대물림을 압축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하는 장면 회상으로 1부가 끝날 때 아티는 아버지가 어머니 아냐의 노트를 태워버렸다는 사실에 분노를 참지 못한다. 너무 많은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브란덱의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 했던 무수한 선택의 연장선에 있다. “나는 항상 아꼈지···만약을 위해 말이다!”(p.69)에서도 생존 본능이 그의 성격으로 고착되었음을 보여주지만 전쟁 이후 현재를 갉아먹는 불화의 단초가 된다. 2부에서는 『쥐1』이 성공해 조명 받던 당시 작가의 심정도 드러난다. “제가 바라는 건···사면입니다. 아니···아니에요···제가 원하는 건···제 어머니라구요.”(p.206), “인생은 늘 산 사람편이죠. 그래서 무슨 이유인지 희생자들은 비난을 받습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이 최선의 인간은 아니었듯이 죽은 사람들도 최선은 아니었죠. 무작위였으니까요!”(p.209)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명징하다. 브란덱과 아냐의 행적은 전쟁 종식과 이후 재회로 계속된다.

흑백의 빽빽한 그림, 진하고 거친 질감이 “한 생존자의 이야기”라는 무거운 주제를 더 심연으로 끌어내릴것 같았다. 가슴 아프고 잔혹한 장면은 속수무책으로 독자를 괴롭히지 않을까 두려움도 있었다. 아타는 책 속에서 현실이 만화로 하기엔 너무 복잡하다며 누락과 왜곡을 고민한다. 아타의 아내는 “그냥 솔직하게만 그려요.”(p.180)라고 답하는데 『쥐』는 이를 충실히 따른다. 책은 감정이 개입될 여지 없이 객관적인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 의인화와 상징은 독자를 좀더 가까이 초청하고 어느새 숨을 죽이며 실제 일어났던 전장, 숨죽여야 했던 날카로운 공간에 함께 세운다. 『쥐』는 후반에 실린 작품해설까지도 또 하나의 작품 역할을 한다. “소호에 있는 천정이 높은 아트 슈피겔만의 저택 다락에는 한쪽 벽 전체가 전쟁 전의 폴란드와 유태인 대학살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는 책자로 가득 쌓여 있다”(p.314)는 설명으로 짐작할수 있듯 여러 곳에서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드러낸다. 그림 칸의 배열과 시점의 변화를 반영한 원근법 적용 등 다양한 시도는 알고 읽으면 더 감탄을 부른다.

형식적으로 최초의 그래픽노블로 획을 그었다면 내용적으로, 주제에 있어 반드시 쓰여져야 할 이야기다. 일정한 시기에 갇힐 수 없으며 계속 반복해서 다루어져야 할 아픔이다. 이 책의 빼어난 점은 과거와 현재,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 전쟁과 전쟁 이후, 상처와 치유가능성 등 대응하는 두 개 축이 이루는 균형에 있다. 아버지 블라덱의 과거 회상을 통해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페이지를 정독하게 하는 일과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세대 갈등, 부자간 감정의 마찰과 애틋함은 또다른 결로 생생하게 닿는다. 놀랍게도 유머까지 만나게된다. 읽고 나면 먹먹함에 질문을 던지게 되는 지점, 안타까운 면면들이 여전히 남는다. 정답이 없을지언정 충분히 묻고 숙고하고 경청할 때마다 시공간을 초월해 그들은 기억될 것이다. 여전히 이기심이 촉발한 참혹한 전쟁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 『쥐』는 결코 과거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읽어야 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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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파친코 1~2 세트 - 전2권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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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진의 『파친코(문학사상,2018)』는 격동하는 한국 근현대사에 맨몸으로 맞서며 사라지고 만 사람들과 살아남은 사람들을 기록한다. 작가는 “일본에서 살아가는 조선인들의 삶 대부분이 경시당하고 부인당하고 지워진다는 이야기를 글로 써야한다”(p.384)는 믿음이 확고했기에 30년에 걸쳐 소설을 완성해낸다. “일본에 사는 외국인 거주자”라는 의미를 지닌 용어 ‘자이니치(재일동포)’는 속지주의를 택하는 미국의 재미교포와는 다른 조건을 부여한다. “문제는 일본에서 태어난 조선인은 일본이 고향이고 일본어가 모국어인데, 왜 자신이 외국인 취급을 받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p.392,2권) 소설은 떨칠 수 없는 인생의 굴레와 옥죄는 고통에 맞서는 인물들을 담아낸다. 유년 시절 가족 이민으로 뉴욕에 정착한 이민진은 한국 이름을 고수하며 2004년 단편소설을 발표하고 2008년 첫 장편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Free Food for Millionaires”을 발표, 여러 상을 수상한다. “파친코”는 올해 웹 드라마로 방영되면서 주목을 끌고 재출간되는 등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p.11, 1권) 여운을 남기는 도전적 선언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기형이 있지만 “분별있는 부모”(p.13)밑에서 자란 덕분에 훈이는 양진을 아내로 맞을 수 있었다. 그들의 유일한 자녀 선자는 정상으로 태어나 부모를 기쁘게 하지만 딸에게 애틋했던 아버지는 일찍 병사한다. 아기때부터 엎혀 드나들던 남포동 시장에 이제는 홀로 장보기를 도맡아야 하는 선자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새로온 생선 중매상 고한수를 만난다. 이삭을 만나기 6개월 전이다. 이미 결혼한 고한수의 아이를 가지고 그의 제안은 거절한 채 선자는 이삭을 받아들이고 함께 이삭의 형, 요셉이 있는 일본으로 향한다. 선자는 이삭이 투옥된 지 일주일 후 처음 장사를 시작한다. 어려서부터 익히 들어온 여성, 또는 모성으로서의 마땅한 삶, 희생이자 고생이라고 일컬어지는 길로 들어선다.

요셉은 일본이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이 자신과 무슨 상관인가 싶다. 그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모든 애국자나 일본을 위해서 싸우는 재수 없는 조선인 개자식이나 다들 먹고 살려고 애쓰는 만 명의 동포 중 하나일 뿐이다. 결국 굶주림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p.267)고 되뇌인다. 선자의 두 아들 노아와 모자수 역시 나름의 싸움에서 예외일 수 없다. 의연하고 차분하고 영리했던 큰 아들, “엄마가 걱정할 게 없네.”(p.277)라고 말할 수 있었던 노아는 모든 규칙을 지키고 최고가 되면 “적대적인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p.282, 2권) 믿었다. 아들의 마지막 선택 앞에서 “그런 잔인한 이상”을 방기했다고 어머니는 자책한다. 모자수와 그 아들 솔로몬의 선택까지 확인하고 나면 소설의 첫 문장을 다시 읽게 된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다. 부산 영도의 훈이와 양진부터 그의 딸 선자, 선자의 아들 노아와 모자수,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까지 4대에 걸친 가족사가 펼쳐진다. 그들과 관계하는 인물들의 서사도 등장과 맺음마다 고유한 의미와 흔적을 선명히 남긴다. 선악을 떠나서 캐릭터는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그들의 입장에 이입해 보고 고통과 어려움에 공감하며 실패와 좌절, 실수나 후회에 가슴 아파하게 된다. 이는 작가가 지난한 취재를 꼼꼼히 다지고 탄탄하게 서사와 배경을 구축한 덕분일 것이다. 묘사와 대화의 균형, 간결한 문체, 담백한 서술, 속도감 있는 진행은 가독성을 높이고 몰입케한다. 반면 다양한 측면의 나열식 정보 전달이 오히려 주요 사건과 인물에 한껏 침잠하는 데는 저해요소가 아니었나 아쉬웠다.

<파친코>가 아니었다면 자이니치와 그들이 겪어온 시간에 여전히 무감각했을지도 모른다. 아픈 역사를 망각과 몰이해에서 빛으로 끌어오고 목도케 하는 작품이며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해당하는 보편적 질문이 도처에 흩어져있다. 다분히 현대적인 시대극이기에 등장인물들의 명멸은 분량과 관계없이 무게를 간직한다. 작가는 1권 고향(1910~1949)의 제사에 찰스 디킨스를, 2권 조국(1953~1989)의 제사로는 박완서의 문장을 선택한다. 『파친코』는 고향을 떠나 조국을 그리며 불모의 삶일지언정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라는 도전에 응전해온, 여전히 진행중일지도 모르는 인생들에게 바치는 찬가로 읽힌다. 이제 영상으로 만나볼 차례다. 아껴둔 선물이 가슴 뛰게 한다.

책 속에서>

선자는 인생을 살면서 두 남자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 사랑을 다시 받을 수 있으리라고는 이제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가끔씩 선자는 자신이 언젠가는 쓸모없어질 튼튼한 농장의 가축이 된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런 날이 오기 전에, 자신이 떠나고 없어도 아이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준비해주어야 했다.(p.330, 1권)

이 나라는 변하지 않아. 나 같은 조선인들은 이 나라를 떠날 수도 없어. 우리가 어디로 가겠어? 고국으로 돌아간 조선인들도 달라진 게 없어. 서울에서는 나 같은 사람들을 일본인 새끼라고 불러. 일본에서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아무리 근사하게 차려입어도 더러운 조선인 소리를 듣고. 대체 우리 보고 어떡하라는 거야?(p.220,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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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힘 (프레더릭 레이턴 에디션) - 최상의 리듬을 찾는 내 안의 새로운 변화 그림의 힘 시리즈 1
김선현 지음 / 세계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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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현의 『그림의 힘(세계사)』이 리커버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2015년, 곁에 두고 바라보기만 해도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그림을 소개하며 “최상의 리듬을 찾는 내 안의 새로운 변화” 와 “합격을 부르는 최적의 효과”로 시리즈를 선보였다. 또한 “어린이를 위한 그림의 힘”까지 연령대를 넓혀 어린이 독자들이 예술에 다가서는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초판 출간 이후 이번 개정판에서는 지난 25년 동안 임상 연구 현장에서 가장 효과가 좋았던 명화 가운데 78점을 엄선해 소개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작가의 그림을 표지 전면에 가득 채워 소개하는 작가 에디션의 시작은 프레더릭 레이턴의 <타오르는 6월>로 표지 가득 싱그러움이 넘친다. 알리는 말에서 저자는 “책장을 덮은 채 가까이만 두어도 휴식과 함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힌트를 준다. 책은 “삶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고 또 가장 향상시키고픈 다섯 가지 영역”(p.6)으로 “일, 사람 관계, 부와 재물, 시간관리, 나 자신”을 선택하고 주제별로 도움받을 수 있는 명화를 소개한다.

“저는 그림의 힘을 믿습니다.” 목차에 앞서 실린 짧은 문장은 저자가 20년 넘게 이어진 현장 경험으로부터 얻은 확신이다. 주제마다 어려움과 고민, 갈등과 욕구를 부르는 상황들이 있는데 저자는 이를 간결하게 정리하고 맞춤 그림을 제공한다. 임상 사례들도 풍성해서 독자가 쉽게 이입하고 공감하게 된다.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많은 이가 좋아하는 그림입니다. 감각적으로는 청량감을, 정서적으로는 사랑의 설렘을 일깨워주기 때문입니다.”(p.139)라는 문장은 페이지 하단에 자리하고 있다. 물론 소제목 아래 작가와 작품명이 있지만 그럼에도 짧은 시간 상상하고 기대하게 된다. 과연 다음 페이지에 어떤 그림이 있을까 설레는 순간이 반복될 때마다 책의 진행과 구성에도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장 조프루아의 <교실, 공부하는 아이들>은 폴로이드 올포트의 ‘사회적 촉진’과 연결했을 때 시선을 붙잡는 이유에 공감하게 된다. 저자는 “남들이 열심히 하고 있는 압도적인 풍경 자체가 의욕의 원천이 될 수 있기 때문”(p.48)이라고 심리를 설명한다. 이 여름 공부하느라 후덜덜, 후줄근할 두 딸에게 이 그림을 추천했다. 보거라, 능률이 높아지리라! 하는 마음으로. 나 역시 “책들아, 다 덤벼라!”하고 기운을 낼 수 있었다.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는 엄마에게 선물 받았던 그림이다. 아장아장한 딸 둘과 씨름이 일상이던 오래 전 우리 딸들 같다고 보내주셔서 벽 한 켠에 걸었었다. “벽에 걸어놓을 그림은 사람의 영혼을 맑게 씻어주는 환희의 선물이 되어야 하고 즐겁고 유쾌하고 예쁜 것이어야 한다.”(p.87) 저자는 ‘르누아르의 명쾌한 모토’를 전한다.

『그림의 힘』,프레더릭 레이턴 에디션은 저자의 권유처럼 ‘지금’ 필요한 작품을 마음껏 감상하게 한다. 한 작품도 놓치기 아까워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밑줄과 눈맞춤을 이어갔지만 더 오래, 더 자주 눈길을 빼앗는 작품에 하염없이 머물러도 좋다. 감상에 최적하도록 전문 보정 과정인 '프린트디렉션'을 거쳐 최상의 상태로 리뉴얼한 이미지를 사용했다는 설명대로 선명한 작품들이 책 속 미술관 탐방처럼 빛을 발한다. 텍스트는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독자가 느낄 감정의 여백을 넉넉히 확보한다. 에세이를 쓰고 싶은 그림들이 말을 거는 것 같다. 혹시 개정판 2권도 나오지 않을까 기다려진다. 인간이 거쳐 갈 생의 모든 순간을 인정하고 수용하고 낙관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그림의 힘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출판사 도서제공/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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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T, 처음 만나는 세계 - 메타버스, 블록체인, 암호화폐로 펼쳐지는 새로운 예술의 장 서울대학교미술관×시공아트 현대 미술 ing 시리즈 1
심상용 외 지음 / 시공아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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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T, 처음 만나는 세계(시공아트)』는 대한민국 현대 미술계의 뜨겁고 새로운 주제로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현대미술 ing시리즈”를 여는 책으로 심상용, 디사이퍼, 캐슬린 김, 이민하, 김성혜, 정현이 공저했다. 2021년 이루어진 크리스티 뉴욕 지사의 경매는 현재 생존 작가들의 작품 경매가 가운데 세 번째로 높은 낙찰가를 기록하고 NFT미술은 바로 뜨거운 이슈가 된다. 이 책은 NFT의 기술적 이해와 “NFT가 미술(예술)에 접목되면서 비롯된 현상들의 짧은 역사,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성찰”(p.9)을 나눈다. 들어가는 말에서 주 저자이자 서울대학교미술관 관장 심상용은 NFT 미술 현상이 우리에게 도래할 장밋빛 미래일지 스쳐가는 태풍일지 판단을 보류한다. 또한 독자가 취할 가장 현명한 태도를 제안하며 적확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불현듯 “어서와, 방탄은 처음이지?” 하며 역사를 시작했던 9년 전의 소년들이 떠오르면서 “어서와, NFT는 처음이지?”가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따라가본다.

『NFT, 처음 만나는 세계(시공아트)』는 총 6장에서 여섯 개의 주제를 저자별로 살핀다. 1장은 블록체인에 대해 연구하는 ‘디사이퍼’ 네 저자가 “NFT와 현대 미술”을 다룬다. NFT시장에서알아야 할 근간 기술 블록체인은 쓰기 전용 구조의 데이터베이스와 비슷해 데이터를 수정하거나 삭제하지 못한다. 이는 데이터의 위조와 변조를 방지할 수 있어 디지털 자산을 구현하고 거래하기에 적합한 플랫폼이다.(P.18) 1장은 가장 대표적인 블록체인인 이더리움과 NFT시장과 프로젝트를 설명한다. 책 제목을 부연하는 “메타버스, 블록체인, 암호화폐로 펼쳐지는 새로운 예술의 장”에 포함된 각 요소를 정리해준다. 특히 오픈씨를 통해 내 작품을 NFT로 발행 및 거래하는 과정은 예술과 일상이 얼마나 가깝고 실현가능한지 직관적으로 이해시킨다.

2장 “역사와 현장:NFT 미술의 출발부터 현재까지”에서는 비플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마이크 윈켈만의 <매일:첫 5000일> 경매 현장을 소환한다. “제프 쿤스, 데이비드 호크니에 이어 생존 작가 작품 중 가장 높은 낙찰가 3위를 차지했”(P.74)던 이 순간은 책 전체를 통해 반복해 등장하고 의미를 열거하며 질문을 던진다. 최종 낙찰자인 메타고반의 변론과 데이비드 호크니의 ‘거품’이라는 반론은 팽팽한 긴장을 일으킨다. 4장 “NFT 미술의 시장가치”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가 디지털로의 대전환이라는 혁명적 변화를 반강제적으로 마주하게”(P.164)되었던 배경이었음을 말한다. 5장 “예술, 기술, 존재”는 원본과 복제의 의미를 탐색하고 메타버스에 입장하거나 실제 전시장에서도 디지털 디바이스를 사용하는 전시 관람의 달라진 개념을 숙고하게 한다. “오로지 모방만 된 상태, 따라서 보증서로서의 NFT는 작품의 표피를 복제할 뿐 작품이 생성되는 과정의 심리적 갈등, 연금술적 작용, 우연의 발견, 변덕, 실망과 환희와 같이 켜켜이 쌓인 정동의 순간들을 복제할 수는 없다.”(p.197)

6장, “NFT, 기게스의 반지”는 주 저자 심상용이 대체 불가 토큰인 NFT가 단시간만에 예술 관련 가장 뜨거운 주제로 부각된 현실을 진단한다. NFT 미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검토할 때 비플의 <매일: 첫 5000일>이라는 작품은 다시 소환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최신의 정보를 제공받고 그로 인해 우려하거나 기대하게 될 것이다. 저자들은 치우침 없이 새로운 예술의 장, 단점을 소개하고 미래에 실현가능한 장을 내다보았다. 6장은 단독으로 읽어도 상당히 매력적인 논리와 근거, 사유의 진행, 인문학적 통찰을 보여준다. 속도감 있는 문장이 주저 없이 미심쩍음의 속내를 들춘다. 이 장을 따로 떼어내서 반복해서 읽고 싶은 이유는 애매모호함이라고는 던져버린 강력하게 질주하는 문장 때문이다. 물론 ‘나는 반대요’도 허용한다. 서울대학교미술관과 시공아트가 시작한 “작은 모험”(p.10)이 어떤 결과물들을 앞으로 선보이게 될지 "현대 미술 ing 시리즈“의 다음 저서를 기다리게 된다. 현대 미술 입문자와 향유자 모두에게 훌륭한 지적 안내자가 될 것이다.

전통적 매체 예술의 한계를 뛰어넘고, 장르 간 경계를 무너뜨리며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구현할 수 있는 디지털 매체, 이를 펼칠 메타버스라는 초월적 가상 공간, 그리고 NFT라는 증명 수단 또는 새롭게 규정된 예술의 개념은 예술 창작자들에게 물감을 담아 밖으로 나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 준 투브가 개발되었을 때, 그리고 카메라가 개발되었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문을 열어 주었다.(P.118)

예술가나 구매자 모두 스스로 자신들이 ‘회색의 인간’임을 부지런히 증명하는 중이다. 시인들은 매스 미디어의 조명 아래 잠시 우상이 되었다가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의 파티 초대객 목록에 끼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화가와 조각가는 매력적인 계약의 당사자가 되는 것으로 크게 만족한다. 악마의 유혹은 영혼 없는 시인과 기도하지 않는 화가, 수익성을 예찬하는 감상자의 양산으로 이어진다. 예술은 산화되고 예술가는 빠르게 증발되는 중이다. 예술가 없는 예술의 다음 단계는 인공 지능으로 대체된 예술일 것이다. 지금 뱅크시와 ‘인스펙티브 프로토콜’의 주장 사이의 차이가 무의미하듯, 머지않아 인간의 예술과 인공 지능의 예술 사이의 차이도 문제 될 게 없는 날이 도래할 것이다. 중심은 이미 텅 비어 가는 중이다.(p.228)



<서평단/출판사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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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혁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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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소송Der Prozess,1925(권혁준 옮김/문학동네)』은 프란츠 카프카의 “고독 3부작”으로 불리는 세 편의 장편 소설(『실종자(아메리카)』, 『소송』, 『성』) 중 한 작품이다. 카프카의 벗 막스 브로트는 유고를 불태워 달라고 했던 카프카의 유언을 따르지 않고 작가 사후에 모두 출간한다. 출간할 첫 책으로 브로트가 선택한 작품은 『소송』(1925)이었고 『성』과 『실종자』가 뒤를 잇는다. 역자는 카프카의 잠언에서 “우리의 책임과는 상관없이 인간이 처해 있는 상태가 유죄의 상태”라고 인용한다. “카프카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겪는 경험은 필연적인 좌절의 경험이고, 이는 인간의 불완전한 실존에 기인하는 것”(p.345)이라고 설명한다. 독일의 저명한 작가, 평론가, 학자들이 꼽은 '20세기 10대 소설', 독일어소설 열 작품에 카프카의 “소송”이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에 이어 두 번째로 이름을 올린다. 이현우는 토마스 만의 소설 세 편과 카프카의 소설 두 편(소송, 성)이 포함된 게 눈길을 끈다며 두 작가가 20세기 독일문학의 절반인 셈이라고 덧붙힌다.(로쟈의 저공비행 인용) 『소송』이 장들의 순서 등 작가의 의도가 일부 변형된 ‘브로트 판’이 아닌 카프카 원고 그대로 편집된 ‘패슬리 판’ 번역본이라는 점은 재독을 더 기대하게 한다.

“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모략한 것이 틀림없다. 그가 무슨 특별한 나쁜 짓을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체포되었기 때문이다.”(p.9) 첫 문장은 은행의 간부로 근무하고 있는 주인공 요제프 K가 갑자기 체포되는 장면이다. “엄연히 법치국가에 살고 있”(p.13)는 K가 서른번째 생일날 아침에 당한 일에 분개하자 감시인은 오히려 “당신은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일 줄을 모르는군”(p.15)하고 비난한다. 착오의 가능성도 차단한다. “법에 쓰여 있듯이 죄에 이끌려서 감시인들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오. 그것이 법이라는 거요. 거기에 무슨 착오가 있겠소?”(p.15) 감독관은 그에게 절망시키려는게 아니다, 당신은 체포되었을 뿐이고 그것이 전부라고 말한다. 또한 이 체포는 K의 일상생활을 구속하거나 방해하지 않는 체포다. 한 통의 전화는 K가 심리를 받기위해 출두해야 한다는 통보다. 특정 장소에 도착 후 심리가 열리는 방을 찾아내고, 들어가고, 맞닥뜨리는 일들은 또 다른 차원으로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을 연출한다. 책을 덮은 후에도 이미지는 잔상으로 남고 “기이한 것은 언제나 아름답고, 기이한 것은 모두 아름다우며, 사실 기이한 것만이 아름답다.”던 앙드레 브르통의 주장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억울함을 밝히고 부당함을 호소하고 싶은 K. 그는 자기만의 고유한 역사를 쌓아온 보통의 시민으로써 받아 마땅한 권리를 되찾고 자유를 누리고 싶다. 문제는 해결하라고 있는 것이니 스스로를 구원키 위한 방도를 최대한 모색한다. K가 우연히 또는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모호한 정체성을 드러내며 출현했다 사라지곤 한다. “그는 적어도 자신과 관련된 사안에 있어서만큼은 당장 법원 전체를 때려 부술 수 있을 만큼 여전히 자유로운 상태에 있지 않은가? 이 정도의 자신감도 가질 수 없단 말인가?”(p.78)라는 기세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시도한다. K가 통과하고 맞게 되는 경험은 과도하고 비틀려있다. 그렇기에 바로잡겠다는 마음은 더 확고해진다. 하지만 치밀하고 현란한 카프카적 묘사를 따라갈 때 K의 시도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형국일 뿐이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앞으로 얼마나 걸릴지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는 소송 전체인 것이다. K의 인생행로에 갑자기 이 무슨 장애물이 닥친 것인가! 지금 이런 상황에서 은행 일을 하고 있어야 하는가?(중략) 은행 업무는 소송과 연관되어 있고 소송에 부수적으로 동반되는, 그리고 법원이 인정한 일종의 고문 같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은행에서는 그의 업무를 평가할 때 그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줄까? 아무도, 그리고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p.164) 이쯤 되면 늪이 맞다. 그런데 늪은 책이 아닌 현실에도 즐비하다. 늪, 빗물웅덩이, 돌부리, 걸림돌들은.

마지막 두 장은 “대성당에서”와 “종말”이다. 무죄를 주장하는 K에게 신부는 “그건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죄 있는 사람들이 늘 그런 식으로 말하지요.”(p.264)라며 K가 법원과 관련해 자신을 기만하고 있다 지적한다. 이어 “법의 서문에는 그런 기만에 대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p.267)로 시작하는 비유담이 재등장한다. 1915년 따로 출간되었고 카프카가 가장 소중하게 여겼다는(p.168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은행나무) 『법 앞에서』다. 하지만 여기서는 신부와 K의 대화를 통해 다양한 시선과 해석을 보여준다. 카프카는 첫 장과 마지막 장을 거의 동시에 완성한 후 중간 부분을 집필했다고 한다. 마지막 장, 어느덧 일 년이 지났다. 그동안 고군분투했던 시간은 하나의 결말을 맺는다. -“개 같군!” 그가 말했다. 그가 죽은 후에도 치욕은 살아남을 것 같았다.“(p.287)- 이 쓸쓸한 마지막은 작가 자신이기도하고 인류 대표이기도 한 K,가 의도하고 구했던 것을 내어주지 않고 구원과도 멀다. 앞에서 변호사의 방법이라는게 ”의뢰인이 세상사를 다 잊고 소송이 끝날 때까지 이런 잘못된 길로 질질 끌려다니기를 스스로 바라게 만드는 것“이고 결국 의뢰인은 더 이상 의뢰인이 아니라 ”변호사의 개“(p.242)가 된다고 했다. 마지막 은유는 ”인생의 베일“에서 월터가 죽기 직전에 했던 말 ”죽은 건 개였다.“(p.269, 인생의 베일/서미싯 몸/민음사)에 닿는다. 역시 쓸쓸했던 죽음이다.

어울리지 않게도 “학교종”이라는 오래된 동요가 떠오른다. 이 짧은 가사 실현이 그토록 어렵나? 어렵다. 학교종이 울릴면 모이고 이때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시는 세상. 단순하고 친절하고 자명한 세계, 우리는 예측 가능한 약속된 세계를 추구하지만 책에서 이는 찾아볼 수 없다. 종이 울리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문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 권유보다는 협박에 가까운 강제, 무엇보다도 우리를 기다리는 게 그곳에 있어야 할 선생님은 아니다. 법, 법원도 상급법원도 아니다. 한 사람일지 전체일지도 알 수 없다. 미지인 채로 커튼 막은 내려온다. 기요틴의 칼날처럼 속도감 있는 막이다.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나. 반복되는 일상, 살아있는 한 살아내야 하는, 업적도 공로도 표창도 없이 때론 죄의식 달래는 삶. 미약할 지언정 ‘이게 말이 돼?’ 외치며 한계없이 대치하고 투쟁할 때 확인케되는 부조리한 인간 조건을 닮았다. 이를 믿기 어려울만큼 빼어나게 펼쳐보이고 직면시킨다는 점이 카프카, 특히 “소송”의 매력이다.

헤세는 “이 특이한 작가의 첫 소설은 그가 죽고 2년이 지난 다음 작가의 의지를 거스르며 나왔다.”고 1925년 9월 ‘베를린 일간지’에 쓴다. 그는 “독자는 꿈결처럼 비현실적인 세계의 분위기 속으로 끌려들어가, 뒤엉킨 꿈의 실타래로 짜이는 구조물 속으로 함께 짜여 들어가고, 제대로 깨어나지 못한 상태로 자신이 환상적인 꿈 세계의 이미지 속에서 지상과 지옥과 하늘을 보고 경험하고 있음을 막연히 예감한다.”며 마지막에 덧붙인다. “이 작가는 도이치 언어의 감추어진 대가이자 왕이다.”라고.(p.30,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헤르만 헤세/안인희/김영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기에 이만한 도끼가 또 있을까. 재독을 마치며 다시 펼 날을 기다린다. 부분적으로 선택한 장면을 충분히 시간을 들여 곱씹어 읽어도 좋겠다. 날개를 단 것처럼 스쳐 읽고 다시 돌아와 사진을 찍듯 멈춰 읽거나 하나의 페이지에 하루를 고정하며 읽고 싶기도 하다. 어쩌면 숨을 참고 읽어볼지도 모르는데 먼저 어울리는 장면을 추린 후 시도하겠다. 다시 읽기 위해 일부러 떠나있을지도 모른다. 만일 매일 읽는다면 화창한 태양 아래 꽃향기 가득한 날이 지속되더라도 마음의 페이지는 모노톤으로 고정될 것이다. 흐림, 흐림, 흐림으로 일관할 내적 날씨를 견딜만하다면, 그 틈새의 빛, 찬란함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여긴다면 카프카의 “소송”읽기는 빼앗기지 않을 온전한 기쁨으로 독자 곁에 머물 것이다.

책 속에서>

도대체 너는 이번 소송에서 지고 싶은 거야? 그게 무얼 뜻하는지 알기나 해? 그건 네가 간단히 지워져버린다는 뜻이야.(p.119)

다른 한편으로, 이들의 지위는 결코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므로 그들에게 부당한 행동을 한다든가 그 지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법원의 서열과 직급 체계는 끝이 없어서 그 세계에 정통한 사람들조차 제대로 가늠하기 어렵다. 그런데 법정에서의 재판 과정은 일반적으로 하급 관리들에게도 비밀이며,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이 다루는 사건의 향후 추이를 완전히 파악할 수가 없고, 따라서 재판 사건은 대부분 그것이 어디서 온 것인지도 모른 채 그들의 시야에 나타났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계속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런즉 개별적인 소송 단계들, 최종적인 결정, 그리고 그런 결정의 근거들을 연구해서 얻을 수 있는 교훈 같은 것이 하급 관리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p.146)

(중략) 변호사의 방법이라는 것은 의뢰인이 세상사를 다 잊고 소송이 끝날 때까지 이런 잘못된 길로 질질 끌려다니기를 스스로 바라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더 이상 의뢰인이 아니라 변호사의 개였다.(p.242)

"나는 다만 그에 관한 여러 의견을 들려줄 뿐입니다. 당신이 그런 의견들에 너무 신경을 쓸 필요는 없어요. 글은 불변하는 것이고, 해석들은 종종 글에 대한 절망의 표현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경우 심지어 문지기야말로 기만을 당한 자라는 의견까지 있어요.“(p.273)

누굴까? 친구일까? 좋은 사람일까? 관련된 사람일까? 도와주려는 사람일까? 한 사람일까? 아니면 전체일까? 아직 도움이 가능한 것일까? 생각해내지 못한 반대 변론이라도 있는 걸까? 틀림없이 그런 것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확고부동한 논리라 하더라도 살려고 하는 사람을 당하지는 못하는 법이다. 그가 한 번도 보지 못한 판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가 아직 이르지 못한 상급 법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는 두 손을 쳐들고 손가락을 쫙 펼쳤다.(p.287)


천번째 서평/감사

[서평]프란츠 카프카의 『소송』 권혁준 옮김/..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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