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니콜라이 고골 지음, 이항재 옮김, 노에미 비야무사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노에미 비야무사 그림, 문학동네, 2011, 1841)』는 만년9급 문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이야기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리고 그 이후를 들려준다. 이름짓기 곤란해 아버지의 이름을 따랐던 주인공이 이름 없이 생을 마치고 관리 유령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기까지의 굴곡사이기도 하다. 매번 다른 출판사의 책으로 만나오다 세 번째 읽게 된 “외투”를 이번에는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문학동네 세계명작” 시리즈로 펼치자 스페인 일러스트레이터 노에미 비야무사의 삽화가 주는 또 다른 감흥은 무척 새롭다. 고골의 데뷔작인 우크라이나 창작 설화집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화』를 발표 후 10년 정도가 고골 창작의 전성기이고 이때 쓴 작품들이 고골 문학을 대표하게 된다.(p.110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 “외투”는 “이후 대부분의 러시아 단편소설의 모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러시아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우리 모두는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는 도스토옙스키의 말은 이를 잘 드러낸다.

만년 9급 문관인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국에서 존재감이라고는 없지만 조금도 변함없이 서류정서 하는 일을 한다. 그가 젊은 관리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는 데는 그 한결같음도 일조한다. 농담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심하거나 일을 방해할 때에야 “날 내버려둬요. 왜 날 모욕하는 거요?”라고 항변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당신의 형제요.”(p.14)라는 목소리를 발견하는 사람은 새로 들어온 젊은이 한 명뿐이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에게 정서하는 일은 다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애착의 대상이다. 의외로 일에 대한 집중이 흐트러지는 사건은 페테르부르크의 강력한 적인 북쪽의 한파로 일어나게 된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외투는 ‘실내복’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작가는 이 실내복 같은 외투가 재봉사 페트로비치 로부터 수선 불가라는 선고를 받고 새 외투로 대치되기까지의 역경 극복 과정을 정교하게 묘사한다. 목표달성의 기쁨도 잠시, 꿈꾸던 외투, 어쩌면 생의 비전을 누려볼 틈도 없이 외투뿐 아니라 생명까지 허무하게 빼앗기는 전개가 거칠고 차디찬 한파만큼이나 속도감 있게 강타한다.

러시아 문학에서 “작은 인간”이라고 불리는 인물들은 푸슈킨의 작품에서 출현하기 시작해 고골의 작품으로 이어져 “하나의 문학적 전형”이 되고 이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까지 등장한다고 이현우는 설명한다.(위 인용책 p.120) 작은 인간인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치열한 고군분투는 외투 가격 팔십 루블 중 사십 루블을 구하기 위한 일련의 행동에서, 경찰서장을 거쳐 ‘고관’을 찾아가 “적절한 질책”이라는 심한 대우를 감당한 후 “페테르부르크 기후의 친절한 도움”(p.58)이 더해지고 말 때까지 크레센도로 진행된다. 비루한 현실에서 약간은 과장되고 희화화된 인물들은 때론 역설적으로 독자를 실소케 한다. 고위층의 허위의식도 스스로를 속인 끝에 죄책감을 부르고 지독한 무덤 냄새를 내뿜는 관리 유령을 맞닥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소설은 자족하던 주인공이 맺는 관계를 부각시킨다. 국(局) 내,외부 에서 자의반 타의반 이어지는 소통은 인간 사회의 축소판 같다. 짧은 문장은 상당한 이미지와 상징을 내포하기에 단어 이면에 펼쳐지는 장면이 ‘광장’(p.46)만큼 끝간데없다. 고골이 그리는 인물들은 시공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현재적이며 생기가 넘친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물론 지위가 사람을 다르게 만들어버렸던 ‘고관’의 묘사는 심리학자처럼 내면을 정밀 조각하는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을 연상시킨다. 원래부터 없던 것 같은 인생이 가능하고, 어쩌면 비일비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의 부정할 수 없는 확인과 환상적 결말은 소설을 잊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다.

흥미로운 전개와 가독성 높은 문장은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키는데 옮긴이의 말은 이와 별개로 호기심을 유발한다. “각기 나름의 목소리와 표정을 지닌 듯한 고골 특유의 단어와 문장이 묘하게 뒤섞여 아름다운 교향곡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고골의 텍스트는 눈으로 읽을 때보다 소리 내어 읽을 때 더 맛이 난다.”(p.77)는 말에 무심히 ‘굳이 낭독을?’ 해온 필자로서도 진심으로 한번쯤 도전하고 싶어진다. 대표적으로 참고 참던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날 내버려둬요. 왜 날 모욕하는 거요?”(p.14)하던 목소리는 사실 책을 다 읽도록 환청처럼 귓가에 맴돈다. 이제 “외투”에 결코 뒤지지 않는 “코”를 비롯해 고골의 단편들을 다시 읽을 것이고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는 “검찰관”과 “죽은혼”은 올해는 넘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짧지만 강렬하고 여운은 긴, 아무리 다시 읽어도 매력이 줄지 않는 작품이기에 거듭 권하게 된다. 200여년이 다 되어가는 소설이 그렇다면 지금 당신에게 외투는, 페테르부르크는? 하고 묻는다. 여러 겹으로 의미를 덧입힐 수 있고 상상의 여지를 열어두기에 “외투”읽기는 보물캐기와 같을 것이다.

그 대신에 그는 앞으로 생길 외투를 늘 마음속에 그리며 정신적인 양식을 섭취했다. 이때부터 그는 존재 자체가 어쩐지 더 완전해진 것 같았고, 마치 결혼이라도 한 것 같았고, 어떤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 같았고, 혼자가 아니라 마음에 드는 어떤 인생의 반려가 그와 함께 인생길을 가기로 동의한 것 같았다. 이 인생의 반려는 다름 아닌, 두툼하게 솜을 두고 닳지 않는 튼튼한 안감을 댄 바로 그 외투였다.(p.33)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없는 페테르부르크는 마치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변함이 없었다. 어느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어느 누구이 애정도 받지 못하고 어느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 존재, 심지어 흔한 파리 한 마리도 놓치지 않고 핀에 꽂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자연관찰자의 주의조차 끌지 못한 존재가 사라지고 자취를 감춘 것이다. 동료 관리들의 조소를 묵묵히 견뎌낸 그 존재는 어떤 특별한 일도 없이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런 존재에게도, 비록 생이 끝나기 직전이었지만, 외투의 모습을 한 명랑한 손님이 갑자기 나타나 짧은 순간이나마 가련한 인생에 생기를 불어넣어주었다. 그러고 나서 황제나 세계의 지배자에게도 닥치기 마련인 불행이 잔인하게 그를 덮쳤다.(p.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네 마리 늑대 - 생태계를 복원한 자연의 마법사들
캐서린 바르 지음, 제니 데스몬드 그림, 김미선 옮김 / 상수리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캐서린 바르의 『열네 마리 늑대Fourteen Wolves: A Rewilding Story(제니 데스몬드 그림/상수리) 2022』는 “생태계를 복원한 자연의 마법사들”이라는 부제의 실화 그림책이다. 포식자인 늑대와 생태계 복원의 주인공이라는 명칭은 일면 부합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생태학을 공부하고 그린피스와 자연사박물관에서 활동해온 작가는 생태 파괴와 회복의 현장을 정확히 전달함으로 독자에게 이해는 물론 감동까지 선사한다. 조금 큰 판형의 표지 배경은 초록색 나무가 울창한 숲이다. 정 중앙에 자리한 늑대는 크기와 눈빛으로 압도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리저리 혼란하게 찍힌 발자국은 앞 면지를 채우는데 뒤 면지에서는 다시 살아난 숲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국립공원이 된 옐로스톤 공원은 수천 가지 다양한 야생동물의 보금자리로 생명력을 자랑했지만 “늑대가 사라진 후” 황무지처럼 변했던 곳이다. 인간이 여러 이유를 대며 늑대에게 총구를 겨눈 이후 연쇄 반응으로 일어나는 인과관계는 모두 “늑대가 사라지자”로 시작된다. 책은 늑대가 사라지면서 황량해지기 시작한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늑대를 다시 들여와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생태계 복원 프로젝트 중 하나로 꼽히게 된 드라마틱한 현장을 담는다. 1부 “고향으로 돌아오다”는 황폐한 곳에 이주시킨 늑대가 무리를 짓고 정착하고 본성에 충실할 수 있었을 때, 즉 더 이상 인간이 개입하거나 방해하지 않았을 때 변화를 위한 준비가 끝난다. 2부는 “새로운 옐로스톤”으로 생태복원 현장이 순차적이면서도 동시 발생하는 마법처럼 아름답게 그려진다. “늑대가 다시 돌아오자, 공원 안 모든 동물들과 생명체의 삶도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공원의 풍경도 놀랄 정도로 달라졌어요.”(p.27) 3부에서는 “자연이 돌아가는 원리”를 책을 90도로 돌렸을 때 위아래 한 화면으로 일목요연하게 전한다.

간결한 입말체 문장은 복잡해 보일 수 있는 생태계 복원 과정을 어린이도 쉽게 이해하도록 해준다. 익숙지 않은 동식물은 활자 크기에 변화를 주며 이름과 설명을 실어 도감을 보는 것처럼 살피고 찾아보게 만든다.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수채화는 국립공원 곳곳을 상상하고 간접 경험케 해준다. 열네 마리 늑대를 기록한 페이지에서도 독자는 한참을 머물게 될 것이다. 친화력 좋은 늑대들은 자기가축화하여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종 가운데 하나가 되어 인간의 반려동물로 살아가고 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야생 늑대 개체군은 슬프게도 끊임없이 멸종의 위협에 노출되고 있다.”(p.80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고 한다. 이 위협은 그들에게만 한정된 위협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또한 특별한 늑대 “브레닌”도 오랜만에 그리워한다. “철학자와 늑대”에서 활자로 생명을 얻은 마크 롤랜즈의 멋진 친구 브레닌 말이다. 『열네 마리 늑대』는 후루룩 넘겨볼 그림책은 아니다. 등장하는 모든 생명들에 오래 눈 맞춤 하고 귀 기울여야 할 것 같은, 그렇기에 소장 목록에 올려야 할 작품이다.


(출판사 도서제공/서평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핀두스, 네가 참 좋아 - 스페셜 에디션 핀두스의 아주 특별한 이야기
스벤 누르드크비스트 글.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벤 누르드크비스트의 『핀두스, 네가 참 좋아(2022)/풀빛』는 〈핀두스의 특별한 이야기〉시리즈의 20주년 기념 스페셜 에디션이다. 책은 국내 출간된 <핀두스의 특별한 이야기>시리즈 아홉 권 중에서 작가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이야기 다섯 편을 묶어냈다. 이것만으로도 독자는 가슴 뛰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핀두스의 특별한 이야기>는 한 작품도 안 읽은 사람은 있어도 한 작품만 읽을 수는 결코 없는 마성의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영화와 애니메이션, TV드라마 등 다양한 영상 매체로도 독자를 찾아오지만 책이 주는 물성과 읽을 때마다 달리 보이는 페이지 속 세상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게다가 식목일에 읽는 핀두스는 비단 위에 꽃을 더하는 격이었다.

작가의 선택을 받은 다섯 편은 , “핀두스의 새로운 놀이”, “여우를 위한 불꽃놀이”, “난 수탉이 필요 없어!”, “신나는 텐트 치기”로 이 중에서 “핀두스의 새로운 놀이”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이야기다. 다섯 작품이 한 권으로 모이니 책은 제법 묵직해졌다. 본문에 앞서 작가는 우리의 주인공 페트손 할아버지와 핀두스에 대한 정감 어린 소개로 문을 연다. “핀두스, 너 어디 있니?”는 페트손 할아버지와 아기 고양이 핀두스의 첫 만남을 “순간 밝고 따뜻한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어. 어느 여름날 아침 커튼을 걷을 때처럼.”(p.17)이라고 회상한다. 둘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이해하고 아끼는 표현, 우당탕탕 예기치 않은 사건 발생과 문제 해결, 이로 인해 얻는 지혜와 깨달음, 부정적인 감정에 직면했을 때 한 걸음씩 성장하는 법 등이 자연스레 녹아난 이야기는 독자를 흠뻑 빠져들게 만든다.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는 “신나는 텐트 치기”다. 이 작품이 포함되어서 기뻤다. 아이들도 나도 다 자라버린 후에 작년에야 알게 된 작품이라는 사실이 아까웠다. 그래서 초등 저학년과 중학년 학기 중, 또 방학 캠프에서 각각 다른 네 팀과 네 번의 수업을 진행했다. 활동지도 발문도 독후활동도 회를 거듭할수록 풍성해졌다. 친구들의 호응도 서로에게 즐거운 기운을 나누어 줬다. 과도해진 열정으로 전문 낭독을 녹음했는데 동화구연을 목표했으나 가족으로부터 “왜 할아버지랑 어린이 고양이 목소리가 똑같아?”라는 천연덕스러운 반문을 듣고는 폭발하기도 했다. 한 호흡으로 낭독하기에 만만치 않은 분량이라는 것을 읽어본 독자라면 이해할 것이다. 한 번의 버벅거림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낭패를 부른다. 몇 번의 실수는 과장해서 목소리 상실을 초래할지 모른다. 인어공주도 아닌데 말이다.

글도 그림도 완벽에 가까운 그림책으로 그림은 돋보기를 들고 봐야 한다. 급한 마음에 여전히 눈에 비친 것만 포착했을 뿐 제대로 보지 못했고 생기 넘치는 미지의 세계로 남겨진 채다. 페트손 할아버지가 아직 가보지 못한 피옐산 대목에서 오르고 싶었지만 오르지 못했던 나의 피옐산을 떠올렸다. 여전히 피옐산은 그 자리에 있다. 발에 차이는 무수한 걸림돌과 함께. 하지만 마지막 장면, 광 뒤의 피옐산에서 아침을 나누는 페트손 할아버지와 핀두스는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한 것 아닐까. 깊은 울림을 여유로운 위트로 장식하는 장인의 작품, 내 사랑 핀두스 시리즈는 역시 최고다!

책 속에서>

할아버지는 뜰에다 불을 피우고 커피를 끓였어. 그러고는 농어를 구웠지. 마치 피옐산에 온 것처럼 말야. 할아버지는 사과나무에 기대앉아 깊은 한숨을 쉬었어.

“흐유, 아마 피옐산에서 먹는 농어구이와 커피 한잔과는 비교가 안 되겠지. 아무튼 내 생각엔 그래.”

“아니, 그럼 할아버지도잘 모르신단 말이에요?”

“그래, 사실 난 아직 피옐산에 가 본 적이 없단다. 그럴 형편이 안 되었거든. 그럴 시간도 없었고, 돈도 없었지. 하지만 틀림없이 멋있는 곳일 거야.”(p.125)



<서평단/ 출판사 도서제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럼 - 시로 만나는 윤동주
김응교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응교의 『처럼』은 윤동주의 시와 삶을 온전히 엮어낸 ‘윤동주 전문가’의 평전으로 부제로 “시로 만나는 윤동주”를 택한다. 저자에 앞서 “요절한 천재 평론가”로 불리는 고석규가 윤동주 시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비평 “윤동주의 정신적 소묘”로 주목받기도 했으며 윤동주 평전은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이 기본서로 알려져 있다. 저자가 “평생 잊지 못할 은사”(p.514)라며 감사를 표한 오무라 마스오는 2016년 출간 당시 『처럼』에 대해 “여기 보란 듯한 각주 하나 없이, 읽기 쉬운 표현을 쓰고 있지만 ‘윤동주’에 깊이 박혀 있지 않고서는 결코 쓸 수 없는 책”이라 평했다. 친근하게 많이 읽히는 시와 시인 윤동주의 삶에 독자는 어느 만큼 닿고 있는지 자문케 하는 책이다. 기획을 달리하는 시집과 필사집을 비롯해 유행하는 문화상품만큼이나 풍성한 윤동주 관련서 읽기를 잠시 멈추고 『처럼』을 펴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저자는 차례에 앞서 ‘제사’격으로 책의 제목을 언급한다. “‘처럼’이란 조사만 한 행으로 쓰여있는 시를 본 적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은 후, ‘처럼’의 의미는 책장을 넘길수록 인장을 남긴다. 시인을 만나기 위해 먼저 들를 곳은 백여 년 전 만주 땅이다. 윤동주가 태어나고 자란 광활한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가족의 이주배경, 교육공동체로서의 하나 된 마음, 김약연 이라는 스승이자 외삼촌인 어른인 존재, 벗들과 어린 시절을 따라간다. 윤동주에 대한 소개가 편중되어 있다는 지적은 저자의 집필 동기이기도 한데 1941년 대학 사학년 때 쓴 시(십자가, 서시, 별 헤는 밤, 간 등)에 조명이 집중되는 현실과 대비해 “윤동주 시의 광맥은 초기 시에 있”(p.66)음을 말한다. 숭실 중학교 시절에는 약 칠개월 동안 17편의 시를 써낸다. 저자가 제목과 날짜, 장소를 나열할 때 그 자체로 윤동주의 시간이 물리적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이입된다. 고흐, 릴케 등을 비롯해 그에게 영향을 끼친 예술가들 중에서도 백석과 정지용은 중요하며 저자의 시 해설은 시험 없는 국어시간 같아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또한 정몽규와 동주 곁 소중한 인물들을 글로나마 만날 수 있으니 감사하다.

“윤동주가 남긴 시 119편을 구분하면, 운문시 74편, 산문시 8편, 동시 30여 편입니다.(중략) 화려한 수식이 없고 토속적인 느낌이 드는 윤동주의 동시는 그가 쓴 모든 작품 중 30퍼센트에 이르고 있습니다.”(p.153) 『처럼』은 윤동주 동시를 발견케 하지만 정감어린 동시를 더 이상 쓸 수 없는 상황은 곧 다가온다. 연희전문에서 쓴 첫 시 “새로운 길”은 설렘과 희망이 가득하다. 하지만 한 편의 글도 남기지 않는 침묵기를 거쳐 사학년때 쓴 “길”은 “좌절과 제약의 나날”(p.180)을 암시한다. 저자는 윤동주의 삶과 시가 맺는 긴밀한 연결, 마치 일대일 조응과도 같은 순수하고 정직한 살아내기와 그 결과로써의 쓰기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익히 알려진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이름 윤동주는 마치 처음 본 이름처럼 새로이 각인된다. “윤동주의 시 세계는 동시에서 시작해 동시로 끝납니다. 그의 삶과 시는 마치 누군가 짜놓은 듯 신화적입니다. ‘봄’으로 자신의 시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까지도.”(p.431)

『처럼』은 덜 알려진 시의 전문을 읽을 수 있고 친필 원고를 곁들여 볼 수 있다는 점, 세심하고 친절한 해설로 독자가 최대한 시와 시가 쓰여진 배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점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직강을 듣는 듯한 구어체 글은 독자를 더 집중케 하고 다양한 도표 활용은 직관적으로 핵심을 이해시킨다. 다양한 문헌 인용과 예시도 풍성하고 첫째, 둘째 순서를 명하며 근거를 정리함으로 필요한 내용을 한 번 더 기억하게 해준다. “누군가의 시를 읽을 대 되도록 그 시를 썼던 시기에 쓰인 다른 시와 함께 이해하면 좋습니다. 시집을 만들 때 어느 시인이든 시의 흐름을 생각하면서 목차를 구성하기 때문입니다. 시집이 없다면 그 시가 탄생한 무렵의 다른 시와 함께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가장 좋은 시 분석은 독자의 의식으로 시를 재단하기보다는 시인의 시가 스스로 말하도록 시의 혼잣말을 경청하는 태도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팔복』에 숨겨진 거대한 슬픔을 단순한 냉소적 패러디로 볼 수는 없습니다.”(p.268), “모든 시는 정전을 통해 읽어야 합니다.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에 실린 원래 원고대로 정확히 읽으면, 시인이 한 편의 시를 어떤 과정을 통해 완성했는지 알 수 있지요.”(p.314) 와 같이 곳곳에서 시를 읽는 방법론을 전하기도 한다. “일본인이 기억하는 윤동주”는 또 다른 생각의 장으로 독자를 이끈다. 어제 『시인 동주』(안소영/창비)로 만났던 저녁 토론에서 여섯 분 중 네 분이 별점 만점을 주었다. 동주의 때로부터 지나오는 동안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시간이다. “큰 고요 곁으로”(p.502)에 담긴 윤동주 시의 다섯 가지 특징을 옮기며 많이, 깊이 읽고 기억하겠다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윤동주와 그의 시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보물이 될 책으로 일독을 권한다.

사실 ‘처럼’만 이렇게 한 행으로 써 있는 시를 보기는 어렵습니다. 한국 시가 아니더라도 영어 시, 일어 시, 중국어 시에서 ‘처럼’만 한 행으로 된 시를 본 적이 있나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윤동주는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길이 ‘행복한’ 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타인의 괴로움을 외면하지 않고 그의 고통을 나누는 순간, 개인은 ‘행복한’ 하나의 주체가 됩니다. 그러나 ‘처럼’이라는 직유법처럼 그 길은 도달하기 힘든 삶이지요. 그것을 짊어지고 가는 삶, 윤동주는 그 길을 선택합니다.(p.305)

이제까지 만난 윤동주의 시에는 어떤 매혹이 있기에 이렇게 독자들 마음에서 회감되고 있는지요.

첫째, 윤동주의 시는 자기와 존재를 투시하는 ‘성찰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p.503)

둘째, 윤동주의 시는 기억해야 할 것을 ‘한글’로 기록한 ‘기억의 집’이라는 사실입니다.(p.504)

셋째, 윤동주가 슬픔을 외면하지 않는 ‘곁의 시인’이었기 때문입니다.(p.505)

넷째, 윤동주의 사랑은 낮지만 ‘거대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p.506)

다섯째, 윤동주의 시는 실천을 자극하는 ‘다짐의 시’이기 때문입니다.(p.5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퀴벌레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언 매큐언의 『바퀴벌레THE COCKROACH(민승남 옮김/문학동네)』는 카프카의 “변신” 모티프를 새롭게 변주한 작품으로 2021년 출간되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과정을 지켜보던 작가는 자국의 “우스꽝스러운 포퓰리즘 정치”에 절망을 표하며 “『바퀴벌레』를 쓰는 동안 대단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라고 전한다.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앞에서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유머와 풍자라고 여긴 그는 글로 구축한 세계에서 답답한 호흡을 풀고 독자를 초대한다. 1975년 소설집 “첫사랑, 마지막 의식”으로 데뷔, 수상한 이언 매큐언은 “어톤먼트”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 베스트셀러 “속죄”를 비롯해 “넛셀”, “솔라”, “칠드런 액트”등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현대 영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가 환기하는 카프카의 『변신』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철갑처럼 단단한 등껍질을 대고 누워 있었다.”(p.7 문학동네) 매큐언이 차린 무대도 막이 오른다.

“그날 아침 영리하지만 전혀 심오하지는 않은 짐 샘스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거대 생물체로 변신해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바닥에 등을 댄 자세(좋아하는 자세는 아니었다.)를 유지하며 아연실색하여 멀리 있는 발들과 부족한 다리들을 바라보았다.”(p.13) 인간 본성을 간직한 채 완결된 탈바꿈 현장에서 눈 뜬 “변신”과 달리 총리 짐 샘스의 본체는 인간이 아니다. 그를 장악한 바퀴벌레는 인간 육신을 “거대 생물체”로 인식한다. 끔찍하지만 빨리 배우는 그는 몸을 조정하는 요령을 익히고 기억을 더듬는다. 어젯 밤 기억과 오늘 아침 현실 사이를 오가며 입장을 분명히 깨닫기 시작한다. 각료회의에 참석한 짐 샘스는 랭커스터 공국 장관, 내무장관, 법무장관, 원내대표, 통상부장관, 교통부장관, 정무장관의 시선을 마주한 순간 그들이 모두 한편, 같은 ‘종’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단 하나 “망막이라는 철벽”을 치고 있는 외무장관만 제외하면 그들은 이미 목표 달성에 일치단결 상태다.

돈의 방향을 돌리라는 슬로건 아래 역방향주의는 새로운 노선이다. 외무장관 베네딕트가 우려섞인 반론을 제시하지만 총리는 웃음으로 응대한다. “외무장관의 불가해한 죽음뿐 아니라 장례식까지 내다본 진짜 웃음”(p.54)은 섬뜩한데 그는 일관되게 지금은 소심한 시계방향주의적 사고를 할 때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시계방향주의와 대척점에 있으며 브렉시트를 상징하는 역방향주의는 사례와 효과를 나열하며 디스토피아 적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책 속 갈등은 낯설지 않은 현대사회의 얼굴을 그려낸다. 이는 소설의 본래 시공간적 배경에 제한받지 않고 ‘지금, 여기’라는 거의 모든 조건에 들어맞는 보편성을 띤다. 정치적 계산, 목적을 가진 설계, 정체 숨기기, “신문 지면이라는 틀에 갇혀 진실을 생성”(p.100) 해내는 언론의 작동 메커니즘을 간단 요약하고 원칙과 불법의 줄타기를 거침없이 드러낸다. 작가가 벼려낸 단어, 감탄사나 리드미컬한 호흡을 보이는 문장은 은유와 상징을 압축함으로 독자의 상상을 자극하고 여러 층위에서 풍성하게 읽힌다. “하나하나의 글자를 통제해 창조해낸 작고 정밀한 걸작이 언어적 기량을 맛보는 기쁨을 안긴다.”(오프라 매거진)는 평에 백번 공감한다. 삼 억년 역사를 가진 ‘빛을 피하는 생물’인 그들은 결국 목표를 이룬다.

본문에 앞서 작가는 이 소설이 허구임을 굳이 밝힌다. 등장인물들은 상상의 결과물이고 “현존하거나 세상을 떠난 실제 바퀴벌레와 유사점이 있다면 전적으로 우연”이라는 첨언이 역설적이게도 그는 ‘그’이리라는 확신을 부추긴다. 경쾌한 톤과 속도감 있는 전개가 몰입을 높이는 중에도 많은 밑줄을 뚫고 웅변처럼 별을 다는 주제문들은 여기저기서 빛을 낸다. “베를린에는 독특한 회색이 있었다.”(p.111)로 시작하며 짐 샘스가 생각을 좇는 부분은 자기 확신에 안착하는 사고과정을 서술하는데 서정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작가가 되는 것이다.”(p.92)라든지 단연 압권인 “다리가 여섯?"(p.82) 등 장면은 감탄을 유발한다. 우연히 대선 다음날 읽은 “바퀴벌레”는 묘하게도 현실을 복기하고 요약하고 증폭시킨다. 완전체인 바퀴벌레 시점에서 보는 인간은 욕망이 빈번히 지성과 충돌하는 구제 못할 하등 종이다. 전 세계적 행복의 총량은 줄지 않는다, 정의는 불변한다고 합리화하며 자신들의 번성을 위해 “역방향주의라는 광기”(p.123)를 실현시킴으로 이언 매큐언 표 블랙 코미디는 막을 내린다. 그렇다면 지금, 누가 역방향주의자인가? 누군가는 자신의 방향을 애초에 잘못 인식하고 있거나 방향을 잃었거나 방향이라는 개념 자체와 무관한 무지 또는 무관심에 닻을 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방향, 색, 상식, 가치, 선 등 여러 기준을 들어 이분법적 잣대를 공고히 하는 일은 위험하다. 만만한 분량이지만 만만치 않은 의미를 전하는 작품으로 자발적 재독 굴레로 독자를 이끈다.

책속에서>

그는 두 시간을 들여 아마도 <가디언>에 실리게 될 기사를 썼는데, 글쓴이에게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재주(그의 성격엔 도무지 맞지 않는)가 필요한 종류의 고백이었다. 끈기 있게 버텼지만 세 단락을 쓰기도 전에 이미 자신이, 꼬드기거나 협박해야 하는 자신이 애처로워지기 시작했다. 결말이 열려 있는 계획이었다. 글로 써야만 발견할 수 있었다. 다 쓰고 나서, 그는 환희에 차 좁은 다락방 안을 서성였다. 촘촘히 짜인 연속적인 거짓말보다 더 큰 해방감을 주는 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작가가 되는 것이다 .(p.92)

하지만 어둠이 그들을 지배할 때마다 우리는 번성했습니다. 그들이 가난, 오물, 불결함을 포용하는 곳에서 우리는 힘을 키웠습니다. 우리는 우회적인 수단을 통해, 그리고 많은 실험과 실패 끝에, 인간의 파멸에 필요한 전제조건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전쟁과 지구온난화는 확실한 전제조건이고, 평화로운 시기에는 고착화된 계급, 부의 집중, 뿌리 깊은 미신, 루머, 분열, 과학과 지성과 낯선 이들과 사회적 협력에 대한 불신을 꼽을 수 있지요. 그 목록은 여러분도 알 것입니다.(p.1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