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 독점계약 번역 개정판
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 까치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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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김택현 옮김/까치)2015, What Is History(1961)』는 질문하고 치열하게 답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를 자극하고 깨어있게 만드는 E.H.카의 주요 저서다. 러시아 주재 외교관이기도 했던 카의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저작은 14권 분량의 소련사인 『소비에트 러시아의 역사』로 이 책은 “탁월한 역사적 업적”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69세였던 카가 1961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여섯 차례에 걸쳐 진행한 강연을 묶은 책이다. 강연의 이유를 제 2판을 위한 서문에서 “진보에 대한 모든 신념과 인류의 더 나은 진보에 대한 모든 전망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배제해버리는 오늘날의 회의주의와 절망의 조류가 엘리트 주의의 한 형태”(p.12)라 진단하고 이에 대항하기 위함임을 밝힌다. 전쟁과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던 20세기 전반기, 진영 간 갈등이 두드러졌던 냉전기를 몸소 경험했던 저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긴밀히 연결함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총 여섯 장으로 구성된 『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로 시작한다. 사실은 역사가가 허락할 때에만 이야기하며 어떤 사실에 발언권을 주고 순서나 전후관계를 결정하는 사람 역시 역사가(p.21)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여러 학자가 갖고 있는 견해를 소급해 그들이 놓치고 있는 면을 짚기도 한다. 결국 인간과 그의 환경의 관계를 역사가와 그의 연구주제의 관계와 동일하게 보고 “평등한 관계, 주고받는 관계”로 역사가는 자신의 해석에 맞추어 사실을 만들고 동시에 이와 반대로 사실에 맞추어 해석을 만드는 끊임없는 과정에 종사한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카의 유명한 명제인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2장 “사회와 개인”에서는 역사는 하나의 사회적 과정이며, 개인은 그 과정에 사회적인 존재로서 참여하므로 사회와 개인의 대립을 가정하는 일 자체가 우리의 사고를 혼란시키는 미끼일 뿐이라고 말한다.(p.79) 이를 위해 살펴보는 가정들과 역사 위인설 등 여러 사례는 무척 흥미롭다. 


3장 “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에서는 역사가를 역사적 사실의 수집가와 구별해주는 것을 일반화로 본다. 일반화의 진정한 핵심은 이를 통해 역사로부터 가르침을 얻고자 하는데 있다. 즉. 사건에서 얻은 교훈을 다른 사건들에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또한 현재에 비추어 과거를 배운다는 것을 의미한다.”(p.96)는 인상 깊은 주장은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해를 진전시키며 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미래를 조망하게끔 이끈다. 역사가와 자연과학자가 동일 선상에 있는 이유와 근거들을 제시하기도 한다. 4장 “역사에서의 인과관계”에서는 역사에서의 우연의 문제를 다루는데 저자의 선명한 주장을 볼 수 있다. 5장 “진보로서의 역사”를 넘어 마지막으로 “지평선의 확대”에서는 세계 중심의 이동을 확인한다. 그는 “나 자신으로 말하면, 나는 여전히 낙관론자이다.”라고 전하며 앞서 살폈던 이론가들의 동의하기 어려운 역사관을 소환하고 결론 내린다. 


부록으로 실린 제 ‘2판을 위한 노트’는 방대하고 꼼꼼하게 모은 자료철을 통해 세상에 나오지 못한 판본을 잠시 상상하게 만든다. ‘역사이론에 공헌한 가장 소중한 인물들 중 한 명’이라고 일컬어지는 카는 묻기를 멈추지 않은 학자였고 자신이 먼저 답하고자 한계를 두지 않고 시간의 밀도를 높였음을 알 수 있다. 오래 전 읽었을 때 지적 거인의 논리에 감탄해마지 않았는데 마치 초독 같은 재독을 했던 이번에는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었다. 강연이었던 만큼 더욱 자신의 뜻을 오해 없이 명확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는 두드러졌다. 즉, 논지를 요약하기 위해 거듭 서수를 사용하면서 사례를 대고 다양한 예시로 설명을 보충하기에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다만, 엄청난 분량의 인용이 미덕이자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걸림돌이기도 했다. 계속되는 인용이 매끄러운 자갈길을 걷는 느낌을 주었다. 돌 하나하나를 주워들고 들여다 보아야 할 것 같았지만 그러다가는 너무 지체되고 혹시 들어섰던 이 길이 애초에 어디를 향했었는지 놓칠 것 같아 일단은 계속 통과하는 여정이었다. 시대와 조류에 대한 이해를 더한다면 책은 다르게 다가올 것이고 이는 독자의 몫인 것 같다. 용이한 독서는 아닐지라도 『역사란 무엇인가』 읽기는 선택보다 필수에 가깝다. 곱씹어 반복해 읽을 필요도 있겠다. 그렇다면 나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나는 역사를 어떻게 정의내리고 시선을 거두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나? 역사의 범위와 초점을 조정했을 때 답은 달라질 것이고 정해진 정답 또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묻는 일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또렷한 자극으로서도 카의 저서는 멈추지 않고 미래를 변화시킬 것이다.

책 속에서>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p.46)

역사에서 배운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방적인 과정이 아니다.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또한 현재에 비추어 과거를 배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그 두 가지 모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진전시키는 데에 있다.(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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