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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속의 사나이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48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박현섭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6월
평점 :
현존하는 영어권 최고의 단편소설 작가, 영미 문학계의 천재라 불리는 조지 손더스는 25년간의 강의를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라는 한 권의 책으로 갈무리했다. 그가 엄선한 19세기 러시아 단편 소설은 일곱 편이다. 그중에서 체호프 작품이 세 편으로, 톨스토이(2편)를 능가한다. 체호프는 마흔넷에 세상을 떠나기 전, 작가 이반 부닌에게 “사람들은 앞으로 칠 년 더 내 작품을 읽을 겁니다. 그리고 나는 기껏해야 육 년쯤 더 살겠지요.”(p.331, 해설)라고 말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단편 작가로 여전히, 아마도 영원히 건재할 것이다. 손더스는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에서 체호프의 <마차에서>, <사랑스러운 사람>, <구스베리>를 강독한다. 체호프 타계 120주년을 기념해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중단편 선집 <상자 속의 사나이>는 <마차에서>를 제외한 두 작품이 실렸다.
『상자 속의 사나이(박현섭 옮김, 문학동네, 2024, 348쪽 분량)』는 1884년부터 1903년에 발표된 체호프의 중단편 중에서 작품성이 뛰어난 13편을 발표순으로 담은 선집이다. 작가의 생몰년인 1860~1904년과 견줄 때 초기작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주요 저작을 살펴볼 수 있는 구성이다. 작가는 모스크바 대학교 의학부에 입학하면서부터 잡지 등에 글을 투고하기 시작하였고, 의사로 개업한 뒤에는 본격적으로 창작 활동에 매진하였다. 의사이면서 작가였고, 오랜 시간 병마와 싸운 환자이기도 했던 체호프는 자신을 불태우듯 집필에 전념하였다. 희곡 「갈매기」 「벚나무 동산」 등으로 셰익스피어 이래 가장 많이 공연되는 극작가이자 ‘모든 단편소설 작가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라고 레이먼드 카버가 언급했듯 탁월한 단편소설 작가다.
처음 실린 세 편은 안토샤 체혼테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던 작품으로 <굴>, <아뉴타>, <반카> 모두 가엾은 이들을 등장시킨다. 굶주리고 학대받는 아이와 착취당하면서도 저항하지 못하는 여인을 본다. 특히 신문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난에 개제되었다는 <반카>는 안타까움에 독자를 숨죽이게 만든다. 중편 <6호실>은 동시대 독자들에게 가장 열렬한 호응을 받았던 작품인데 레스코프는 ‘사방 천지가 6호실이며, 6호실은 러시아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소설은 줌 인하듯 병원의 별관을, 현관을, 바닥에 침대를 고정한 커다란 방을 묘사한다. 현관에는 질서를 사랑하며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구타를 자행하는 경비원 니키타가 있다. 소설은 방 안에 있는 다섯 명의 정신병자를 소개하는데 그 중 이반 드미트리치 그로모프의 사정과 그를 진료하게 된 의사 안드레이 예피미치 라긴의 만남은 결말에 더욱 비극적 색채를 덧입힌다. “안드레이 예피미치는 모든 걸 알아차렸다.”(p.125) 그는 6호실에서 환자들이 겪었을 고통을 이십여 년 넘게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음을 비로소 자각한다. 너무 늦은 깨우침이다.
아름답고 숭고한 감정에 함께 빠져들게 하는 <대학생>을 지나면 또 한 편의 문제작이자 표제작인 <상자 속의 사나이> 차례다. <상자 속의 사나이>,<구스베리>,<사랑에 관하여>는 ‘소小 삼부작’으로 묶인다. 교사 부르킨은 수의사 이반 이바니치에게 동료 교사였던 ‘상자 속의 사나이’, 벨리코프 이야기를 들려준다. 벨리코프는 소라게나 달팽이처럼 외부 영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겠다는 신념에 사로잡혔던 기인으로도 볼 수 있으나 화자는 상자 속의 사람이 비단 그뿐만은 아니라고 역설한다. 그가 ‘이건 상자 속 삶이 아닐까요?’(p.185)라고 반복할 때 독자를 향하는 작가의 목소리로 들리며 액자식 구조를 활용한 질문은 울림을 던진다.
<구스베리>는 부르킨과 이반 이바니치가 비를 피해 알료힌의 집으로 가서 묵으며 나누는 이야기다. 이반 이바니치가 친동생인 니콜라이에 대해 나머지 두 명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인간의 행복으로, 최면 상태와 각성의 중요성으로 화제를 옮겨간다. 그의 웅변조는 갸웃하게 만드는 결말에 이르는데 조지 손더스는 이 작품을 근사하게 채에 고르고, 숙고의 지점을 짚어낸다. 화자와 청자를 바꿔가며 이야기 속 이야기로 독자를 끌고 가는 세 편의 연작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사랑에 관하여>는 집주인인 알료힌이 들려주는 지나가버린 사랑 이야기다. 그녀는 지방 재판소 부소장인 루가노비치의 아내다. 말기작은 올렌카라는 불멸의 캐릭터를 탄생시킨 <귀염둥이>와 작가 후기작의 특징인 ‘열린 결말’의 전형을 확인할 수 있는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표한 <약혼녀>로 이어진다.
“내가 체호프에게서 가장 감탄하는 것은 그가 글에서 의제로부터 정말 자유로워 보인다는 점이다.(중략) 그는 의사였고, 그가 소설에 접근하는 방식은 애정어리면서도 진단적으로 느껴진다.”(p.529/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손더스는 자신의 책에서 꼽은 세 편 외에 이번 선집에 실린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과 <사랑에 관하여>와 몇 작품을 더 추천한다. 체호프가 정치적 또는 도덕적 입장이 결여된 것으로 보인다는 비판에 대해서 손더스는 “지금은 이런 특질 때문에 우리가 그를 사랑한다.”며 확실성이 종종 권력으로 오인되는 세상에서 불확실함을 유지할(즉, 계속 호기심을 가질)만큼 자신감을 가진 사람과 함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라고 덧붙인다. 모든 결론을 의심하며 재고하는 체호프를 고상하며 심지어 거룩하다고 쓰면서 나아가 체호프의 이야기를 ‘훌륭하고 간략한 재고 기계’라고 부연한다.
체호프의 인물들은 완벽하지 않다. 어리석고 극단적인 사람들, 편파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자들, 현실감각이 떨어지거나 속물근성에 깊이 물들었거나, 무감각자나 망상자도 전면에 나선다. 그러나 작가는 “예술가는 등장인물과 그의 말에 대한 재판관이 되어서는 안 되며, 편견 없는 증인이 되어야만 한다”는 견해를 실천한다. <6호실>에서, <로트실트의 바이올린>에서 그들은 너무 늦게 자각한다. <구스베리>, <귀염둥이>처럼 때론 늦게까지 깨닫지 못한다.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처럼 어떡하지 상태에서 이야기 바퀴는 멈추고 마저 굴리는 건 오롯이 독자의 몫으로 남기도 한다.
벨리코프만 상자 속에 살고 있는 게 아니고, 라긴만 6호실에 갇힌 게 아니라는 점을 독자는 금세 간파할 것이다. 체호프는 간결한 문장으로 생의 부조리와 타협하고, 결정을 보류하는 이들에게 노크한다. 그런 중에도 서정적인 풍경 묘사와 생생하게 포착한 분위기는 삶이라는 보편의 희비극을 도드라지게 만든다.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과 <귀염둥이>는 논제를 만들고 시립 도서관에서 토론하였던 작품이다. 올해 상반기에 토론할 체호프를 정하는 일이 즐거우면서도 어렵다. 모든 작품이 마스터피스 아닌가! 페이지터너 급으로 읽히지만 여운을 돌아보는데 훨씬 시간을 들이게 되는 고전 명작이다. 생기와 기쁨을 안고 우리 생의 6호실, 비좁아 지는 상자를 떠날 수 있길 바란다. 동시에 “예술은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없다. 정확히 정리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던 작가의 말대로 체호프가 선사하는 예술에 힘입어 생의 연약하고 위태로운 조건을 조명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겠다.

책 속에서>
그 혼돈 속에서도 문득 견디기 힘든 끔찍한 생각이 머릿속으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것은 지금 달빛 속에서 마치 시커먼 망령들처럼 보이는 이 사람들이 바로 이와 똑같은 고통을 날이면 날마다 몇 년이고 겪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어떻게 그는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런 것을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까? 그는 모르고 있었다. 그에게는 고통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죄가 없다. 하지만 니키타처럼 완고하고 거친 안드레이 예피미치의 양심은 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싸늘한 냉기로 감쌌다. 그는 박차고 일어나서 온 힘을 다해 소리치고 싶었다.(p.132, 6호실)
"우리는 남들이 거짓말하는 걸 보고 듣는 것도 모자라서,“ 반대편으로 자세를 바꿔 누우며 이반 이바니치가 말했다. ”그런 거짓말을 참는다는 이유로 바보라고 놀림을 당하지요. 모욕과 멸시를 참으면서, 자신이 정직하고 자유로운 사람들 편이라는 걸 대놓고 주장하지도 못하고, 그러다가 자기 스스로 거짓말하며 미소를 흘립니다. 이 모든 게 빵 한조각, 따뜻한 방 한 칸, 한푼 값어치도 없는 알량한 지위 때문이죠. 아니,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어요!“(p.186, 상자 속의 사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