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소크라테스 - 철학자의 탄생
아먼드 단거 지음, 장미성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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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소크라테스(Socrates In Love, 장미성 옮김, 글항아리),2022』는 고전학자 아먼드 단거가 복원해낸 젊은 시절의 소크라테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소크라테스를 소개한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방점은 사랑에 찍혀있고 이 사랑이 부제인 “철학자의 탄생 The Making of a Philosopher”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사랑에 빠진 소크라테스』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의 상징처럼 단단히 고착된 소크라테스의 이미지를 저자가 수집한 자료들을 도구 삼아 흔들어 대는 책이다. 뿌옇게 이는 먼지 틈새에서 저자는 교정해야 할 부분을 짚어내고 합리적 근거와 설득적 추론으로 오류를 바로잡고자 한다. 인류 최고의 철학자에 대해서 지금껏 베일에 가려져 있었지만 만일 이를 걷어내고 조명을 드리울 방법이 있다면 기꺼이 확인하고 싶을 것이다. 분명 호기심과 매혹으로 가득 찰 이 여정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서둘러 동참토록 이끌기 때문이다.

저자는 소크라테스 전기의 주된 출처인 플라톤과 크세노폰 뿐만 아니라 후대의 전기 작가들 역시 동일한 시각으로 소크라테스의 젊은 시절을 간과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소크라테스를 소크라테스로 만든 것이 무엇인지 밝히기 위해 이미 알려진 연대기와 여러 문헌을 참고해 중년기 이전 어린 시절까지 철학자의 삶을 재구성한다. 책은 지도와 연표를 첨부하고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구름>에서 그려진 과장되고 희화화된 소크라테스를 선보이며 시작한다. 저자는 플라톤이 자신이 사랑하는 스승의 삶과 활동에 대해 독자들이 취하기를 바랐던 어떤 시각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가정하며 희곡이건 저작들이건 그 안에 잠재해 있을지 모르는 “왜곡”을 넘어서고자 한다.(p.40) 키케로의 말처럼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하늘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린 철학자이기 때문이다.(p.41)

책은 소크라테스가 스승부터 동시대인들, 제자들과 맺었던 관계를 다각도로 살피며 아테네 전성기와 굴곡의 장면들을 보여준다. 주요하게 다루어지는 인물은 아르켈라오스, 알키비아데스, 아스파시아다. 아르켈라오스는 사모스의 철학자 멜리소스의 사상을 배우기 위한 교육적 목적으로 10대 소크라테스와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멘토와 함께 했던 이 방문에서 소크라테스는 당대 고귀한 지혜에 온전히 동의할 수 없다는 불편함을 가지고 돌아온다. 곧 “인간의 일상적 경험에 대한 절박한 질문에 답해줄 수 없다면 이런 종류의 철학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p.146)라는 질문들을 간직하게 된다. 소크라테스가 어려서부터 아꼈던 알키비아데스를 저자는 ‘젊은 소크라테스의 또 다른 자아’로 여겼으리라고 보는데 결국 '폭주하는 젊은이'에서 반역자가 되고 비극적 종말을 맞는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부정적 여론의 단초를 만든다. 아스파시아는 『향연』에 나오는 ‘디오티마’ 의 실제 모델로 본다. 책 속에서 “그녀 나이대의 여성 중 가장 특출나고, 유창하며, 문제적이었고, 아마도 모든 고전고대를 통틀어 가장 특별한 여성일 것이다.”(p.209)라는 어마어마한 찬사를 받으며 철학자의 탄생을 이끈 장본인으로 자리매김한다.

사실만 제대로 이해하기에도 나의 뇌는 용적이 부족한 형편인데 가능성의 영역까지 굳이 추론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도 부정할 수 없다. 동시에, 이 가정이 사실이라면, 소크라테스가 가엾은 처지로 물질적으로 어려웠던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했다는 주장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진다. 철학자로서의 삶을 시작하기 이전에 경험했던 숙련되고 헌신적인 군인을 비롯한 다양한 행동가적 시간도 필요해 보인다. 시민으로서 누렸던 정서들이, 그리고 아스파시아라는 사랑이 일으킨 변화나 크산티페라는 악명 높은 상징의 온건한 수정까지도 만족스럽다.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공인받지 못한 가설일지라도 말이다. 저자는 본문 이후 지금껏 다루었던 논의를 기반으로 ‘상상력을 동원한 재창조’라는 단서를 달면서 “소크라테스의 인생”이라는 15쪽 분량의 새로운 전기를 완성한다. 이제 독자는 플라톤에 의존하는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사랑의 현현 아스파시아로 인해 서양철학에 방향 전환을 가져온 소크라테스를 만나게 된다. 채워진 빈틈에 동의되는 폭은 각자 다르겠지만 대화편을 다시 읽을 때 또 하나의 지도, 또 다른 각주가 될 것이다.

책 속에서>

소크라테스의 젊은 시절에 관한 증거가 왜 중요한가? 그의 젊을 적 경험과 지인들과의 관계는 소크라테스가 중년의 어느 순간 서양철학의 방향을 결정한 철학 활동의 창시자로 변한 이유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의 웅변가이자 정치가인 키케로가 말했듯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하늘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렸다.’(p.41)

고전학자 메리 레프코위츠의 예리한 지적처럼 그 역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영웅적인 죽음이 그에게 불멸을 가져다줄 것이다. 어떤 그리스인도 파트로클로스와 헥토르, 아킬레우스의 이름이나 행동을 잊을 수 없다.(···) 소크라테스는 사형 집행을 스스로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일대기를 통제할 수 있었다.(p.132)

소크라테스 이전의 시인과 사상가도 윤리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그들과 다른 점은 그 자신을 개별자로부터 보편적 정의로 나아가게 만든 그 발견의 과정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런 중요한 생각의 진보가 없었다면 플라톤은 결코 그의 이데아 이론을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에 관한 작품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p.219, 메리 레프코위츠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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