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cture of Dorian Gray
오스카 와일드 지음 / 와이비엠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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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의 영국. 근대 문명의 난숙함이 절정에 달하던 런던에는 유미주의자들과 향락주의자들이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그들은 돈과 게으름을 사랑했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움을 사랑했다. 그런 인물들의 화신이랄 수 있는 헨리 워튼 경은 오스카 와일드 자신의 모습이라 한다. 그는 독설과 매력적인 언변을 갖춘 사내로 가장 흥미롭고 가치있는 일은 아름다운 젊은이를 관찰하는 것이라 공언하고 다녔다. 그런 그가 도리언 그레이라는 미청년을 만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젊음의 가치와 늙음의 추악함을 대비시켜 도리언을 혹하게 하는 것이었다.

아름다웠지만 순수하고 선량했던 도리언 그레이는 왜 그렇게 헨리 경의 말에 쉽게 빠져 들었을까? 도리언 그레이의 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지체에 어울리지 않는 애인과 도주, 도리언을 낳은 후 금방 사망했다고 한다. 그 극단적인 피가 도리언에게도 흐르고 있었을까? 천친난만하고 부족함 없었던 도리언에게 욕망과 열등감이 싹든 것은 도리언을 숭배하던 화가 배질 호울워드가 도리언의 초상화를 완성하고 난 후였다. 도리언은 그때부터 초상화의 자신을 영원히 늙거나 퇴색하지 않는 이상 속의 인물로, 현실의 자신을 '20분'마다 늙어가는 보잘 것 없는 인간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런 그를 배질 호울워드는 걱정하고 염려하지만 헨리 경은 부추길 뿐이었고, 도리언은 헨리 경에게 경도되면서 더욱 잔인해지고 매정해지고 향락적이 된다. 도리언은 어느날부터 자신이 염원하던대로 초상화가 현실의 자신 대신 늙어가고 추해진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도 도리언의 아름다운 얼굴은 싱싱함을 유지했고 골방에 숨겨둔 초상화의 얼굴은 추해졌다. 도리언이 약혼자 시빌 베인의 자살을 방관하고, 배질 호울워드를 살해하고, 그로 인해 타락한 앨런 캠브펠의 죽음을 조장한 후 이미 추하게 되어버린 초상화에는 선혈마저 흐르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흥미로우며 끔찍하고 매혹적이다. 누가 아름다움을 내 것으로 만들기를 거부하겠는가? 이 이야기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전설과 같은 종류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19세기 영국만의 것이겠는가? 자신의 초상화가 자신의 늙음과 행실로 인한 과오를 모두 짊어지고 현실의 자신은 항상 아름다운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하지만 도리언은 자신의 영혼의 타락을 증거하고 있는 그 초상화에 항상 짓눌려 살아야 했다. 그것이 영원한 아름다움의 대가였던 것이다. 도리언의 아름다움이 현실이라면 초상화라는 물질로 존재하는 도리언의 영혼 또한 현실이었다. 누군가에게 들킬지도 모른다는 위험속에서, 그 끔찍한 모습을 두려워하면서도 항상 동반자처럼 살아야만 했다. 두 배의 어둠과 타락을 짊어져야 간직할 수 있었던 도리를 거스른 아름다움, 도리언 그레이가 초상화를 파괴한 순간 일어났던 변화는, 덧없음과 위험이 공존하는 '미'라는 것의 운명과 그 영원성에 대한 오스카 와일드의 통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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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문학의 길잡이 1 - 영국문학
영미문학연구회 엮음 / 창비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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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학중에서 영국문학은 관심도가 높은 편에 속하고, 대학의 어문학과 중에서도 영문학과가 가장 분포도가 넓은데도 불구하고 전공자들과 독자들을 만족 시킬만한 개괄서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나 또한 토마스 하디나 브론테 자매의 작품을 좋아함에도 그 외에 어떤 작가들이 영국문학사의 줄기를 이루고 있는지에 대해선 몰랐다. 그러던 중 나온 이 책은 영국문학사 전체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일단 빵빵하고, 한 사람의 저작이 아니라 69명 필진의 공동 작업이라는 점에서 객관성과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 69명의 개인 논문을 실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책을 위해 수차례의 토론을 거치면서 통일성을 살렸기 때문이다.

영국문학은 18, 19세기가 전성기라고 하고 유명한 작가들 또한 그 시대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중세의 베어울프와 초서부터 현대의 식민지 출신 작가 아체베와 샐먼 루시디에 대한 소개도 접할 수 있다. 식민지 출신의 작가에 대한 부분은 '순수 혈통'이었던 영국문학이 문학의 전성기와 식민지 권력을 모두 잃은 다음에 출현한 새로운 경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과연 아체베와 루시디는 영문학(영국문학이 아니라 영어 문학)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음과 동시에 서구인들의 동양에 대한 오만과 오해를 벗겨내고 동서문화의 소통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나라가 서양 문화를 받아들인 역사를 볼 때 이러한 책이 훨씬 더 많이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독자에게 이 책을 소개해준 학자들이 고맙고, 물론 앞으로는 더욱 많아지길 바란다. 영어 문학이 문학 기법의 정도를 무시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 신선한 충격의 페미니즘 극, 식민지 출신 작가에 의한 완전히 다른 경향의 소설을 발표하는 시점에 우리가 그들에 대해 무지한 상태를 더 끌고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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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세사회로의 여행
E.O.라이샤워 / 한울(한울아카데미) / 199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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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널리 가치가 인식된 보물은 보고 느끼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공인된 매력이 있지만, 숨겨진 보석을 우연찮게 찾아냈을때의 기쁨과 미안함은 그와는 비교할 수 없는 또다른 매력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숨겨진 작품이 주는 신선함과 이런 것을 외면해왔다는 미안함, 그리고 이와 같은 보물이 또 어딘가에 묻혀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독자를 들뜨게 만들기 때문이다.

너무나 유명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비해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소수만이 관심을 가졌던 일본 승려 엔닌의 중국여행기. 만약 엔닌이 승려로써 일본불교사에서 유명한 인물이 아니었다면 그 전승조차 불확실했을 문헌이다. 하지만 문맹이었고, 외국 상인으로써 특권층만 상대했던 마르코 폴로와는 달리 일본의 한 종파를 대표하는 승려로써 자신의 발로 중국을 여행했던 엔닌의 여행기는 동방견문록과는 비교되는 정확성과 당대인의 생생한 모습이 담겨 있다. 더구나 여행이나 장사가 아니라 승려로서의 학구열이 이루어낸 중국행, 그 중국행이 오늘날의 여행이 아닌 목숨을 걸어야 하는 '모험'이었다는 것, 고국과 연락이 끊긴 채 중국에 머물러야 했던 몇 년에 걸친 정주 기간은 요즘의 여행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성실함을 느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기라는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신변잡사보다는 그 시대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담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 매료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논픽션이 주는 생생함 때문이다. 픽션은 확실히 논픽션의 특징인 현실의 예측불가능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견당사 파견의 사건들을 누군가 '모험소설'류로 창작한다면 기승전결이나 반전의 구도에 따르려 할 것이며 아무리 재미있다 하더라도 실제 역사에서 보이는 긴박감과 유머가 없는 인위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천황이 참가한 대대적인 의식과 함께 배웅됐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오는지도 몰랐던 견당사. 그 견당사가 출발부터 침몰하게 된 경위와 그에 대한 고대인들의 순진한 반응, 두 번의 실패 후 좀 더 많고 강력한 신을 끌어들여서 올리는 제사 등은 기교 없는 드라마 그 자체이다.

그리고 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현대의 독자가 접할 수 있게 되기까지 한 서양학자가 쏟은 노력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라이샤워는 전혀 현대화되지 못하고 고문서 속에 묻혀 있던 엔닌의 여행기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의 축척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고전보다 매력적으로 소개한 그의 능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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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의 시인 랭보와 짐 모리슨
윌리스 파울리 지음, 이양준 옮김 / 어진소리(민미디어)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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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를 사랑한다. 우리는 록을 사랑한다. 이 둘이 하나가 될 수 없다고 흔히 생각돼왔지만 짐 모리슨은 점점 외면받아가던 시를 록이라는 장르에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랭보와 그룹 도어즈의 짐 모리슨. 이 둘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 월리스 파울리는 불문학 교수이자 랭보 학자였다. 그가 불문학자로서 노인이 다 되어 랭보 전집을 발간했을 무렵 편지 하나가 그에게 전해졌다. 편지에는 랭보 전집을 번역해주어 고맙다, 나같이 불어가 시원찮은 사람에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씌여 있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자기를 록 가수라고 소개했다. 다음날 강의실에 들어간 교수는 학생들에게 짐 모리슨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학생들은 그런 유명한 가수를 모를 수 있느냐고 항의했고 노교수는 자기에게 짧은 감사편지를 쓴 사람이 희대의 록가수임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가 랭보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록커라는 것 또한. 은퇴를 앞둔 불문학 교수와 록 가수 짐 모리슨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때부터 짐 모리슨을 연구한 교수는 랭보와 그의 관계, 시의 계승자로서의 록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기 시작했고 우리가 지금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굉장히 신선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랭보를 아는 사람은 짐 모리슨을 모르고, 짐 모리슨의 팬은 랭보에 대해서 무지한 동서를 불문한 현실에 파울리 교수는 훌륭한 문화의 가교 역할을 한 것이다. 그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 있자면

'내 갔지, 터진 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양복 저고리는 관념적이 되었어.'
라고 읊은 랭보나
'나는 성인이고
나는 학자이며
나는 한길을 걷는 보행자라네.'
라고 읊은 짐 모리슨이 정신적인 형제임을 의심하는 이는 없으리라. 그 둘은 안타깝게 모두 죽었다. 하지만
'의도한 바대로 불 속에서 춤을 춘다
끝에 다다를 때까지 음악은 너의 유일한 친구'
라고 노래된 음악은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 우리는 풍부한 유산을 받은 셈이다. 시는 영원하다. 록 다음엔 어떤 곳에서 어떤 천재가 우리의 마음을 읊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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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야마부시꼬 - 일본 시나리오 걸작선 2
이마무라 쇼헤이 외 지음 / 시나리오친구들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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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야마는 산의 이름, 즉 자연이다. 그리고 그 자연은 피크닉의 장소가 아닌 생명이 생명을 지키고 이어나가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비정한 자연이다. 우리가 과연 신석기 혁명으로 농경사회에 진입한 것만으로 문명인이 되었던 것일까? 이 책에서 접할 이야기는 길어봤자 몇백년 전밖에 되지 않는 한 마을에 대한 것이다. 나라야마부시꼬는 어떠한 철학도 없는, 생명을 유지하고 이어나가는 것만이 삶의 형태를 지배하는 사람들에 대한 밀착 르포라 할 만하다.

그곳에서 인간은 당연하다는 듯이 동물과 동격으로 묘사된다. 시궁쥐가 동면중인 뱀을 물어뜯고, 산무애뱀의 암수가 교미를 하고, 구렁이가 쥐를 삼키고 있는 중간 중간에 마을 사람들은 갓난아기를 남의 논에 내다버리고, 다른 집의 양곡을 훔친 사람의 식구 전체를 생매장하며, 아무런 절차도 없이 '우리 집에 와서 밥먹어'라는 말로 결혼을 대신하여 부부가 된다. 그리고 그들은 갓난아기를 버렸다는 것에 화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논이 더러워졌다는 것에 화를 내며, 팔수도 있고 죽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딸을 낳기를 바라기도 한다.

과연 끔직하다. 하지만 그 끔직함 가운에 묘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그 이야기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것은 수만년동안 인간은 그렇게 살아왔다고, 인간이란 생각하는 건설자들이 아닌, 자연과 짐승들과 한 피를 나누며 한 부족처럼 살아왔다는 것을 거리낌없이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세계 안에서의 '휴머니즘'이란 현대적 인권개념이 아니다. 자신을 낳고 사랑하는 이들을 빼앗고 기꺼이 바치기도 하며 결국은 그 속에 들어가야 하는 '자연'에 대한 도리일 뿐이다. '자연'이란 그들에게 가족과 마을 사람, 짐승, 일찍 죽은 이들, 팔아버린 딸들에 다름아닌 것이다. 나라야마 산은 그들을 모두 조우시켜 주는 신으로 믿어진다.

그리고 결국 내년이면 70세가 되는 할머니 오린이 나라야마 산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이 '휴머니즘'에 또 한명의 몸이 묻히게 된다. 아들은 어머니를 나라야마산으로 데려가는 것을 미루고 미루려 했지만 할머니의 재촉과 마을 사람들의 동의로 겨울이 시작되는 새벽에 할머니를 지게에 얹고 나라야마산으로 들어간다. 한 생명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한 생명은 겨울이 되기 전에 죽어야 했던 것이다.

할머니 오린처럼 그것을 원했던 사람도 있을 것이고 두려워하며 거부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태도에 대해 칭찬과 비난을 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자연'에 대해 칭찬과 비난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에서일 것이다. 다만 할머니를 산속에 내려놓은 후 서로에게 주먹밥을 주기 위해 짧은 다툼을 하고, 나라야마로 들어가는 날 눈이 내리는 '좋은 징조'에 그나마 행복해하는 모자의 모습과, 할머니가 산으로 들어가는 날 각자의 이부자리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던 가족들의 얼굴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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