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세사회로의 여행
E.O.라이샤워 / 한울(한울아카데미) / 199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에게 널리 가치가 인식된 보물은 보고 느끼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공인된 매력이 있지만, 숨겨진 보석을 우연찮게 찾아냈을때의 기쁨과 미안함은 그와는 비교할 수 없는 또다른 매력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숨겨진 작품이 주는 신선함과 이런 것을 외면해왔다는 미안함, 그리고 이와 같은 보물이 또 어딘가에 묻혀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독자를 들뜨게 만들기 때문이다.

너무나 유명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비해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소수만이 관심을 가졌던 일본 승려 엔닌의 중국여행기. 만약 엔닌이 승려로써 일본불교사에서 유명한 인물이 아니었다면 그 전승조차 불확실했을 문헌이다. 하지만 문맹이었고, 외국 상인으로써 특권층만 상대했던 마르코 폴로와는 달리 일본의 한 종파를 대표하는 승려로써 자신의 발로 중국을 여행했던 엔닌의 여행기는 동방견문록과는 비교되는 정확성과 당대인의 생생한 모습이 담겨 있다. 더구나 여행이나 장사가 아니라 승려로서의 학구열이 이루어낸 중국행, 그 중국행이 오늘날의 여행이 아닌 목숨을 걸어야 하는 '모험'이었다는 것, 고국과 연락이 끊긴 채 중국에 머물러야 했던 몇 년에 걸친 정주 기간은 요즘의 여행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성실함을 느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기라는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신변잡사보다는 그 시대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담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 매료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논픽션이 주는 생생함 때문이다. 픽션은 확실히 논픽션의 특징인 현실의 예측불가능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견당사 파견의 사건들을 누군가 '모험소설'류로 창작한다면 기승전결이나 반전의 구도에 따르려 할 것이며 아무리 재미있다 하더라도 실제 역사에서 보이는 긴박감과 유머가 없는 인위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천황이 참가한 대대적인 의식과 함께 배웅됐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오는지도 몰랐던 견당사. 그 견당사가 출발부터 침몰하게 된 경위와 그에 대한 고대인들의 순진한 반응, 두 번의 실패 후 좀 더 많고 강력한 신을 끌어들여서 올리는 제사 등은 기교 없는 드라마 그 자체이다.

그리고 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현대의 독자가 접할 수 있게 되기까지 한 서양학자가 쏟은 노력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라이샤워는 전혀 현대화되지 못하고 고문서 속에 묻혀 있던 엔닌의 여행기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의 축척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고전보다 매력적으로 소개한 그의 능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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