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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크리스토 백작 1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평점 :
허클베리핀의 모험, 보물선, 빨강머리 앤, 작은아씨들, 삼총사, 장발장과 함께 으레 어린시절을 사로잡는 책이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다. 정신없이 읽었지만 이상하게 결론은 잘 생각나지 않는 게 특징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의 이름들은 뇌리에 또렷이 각인되어 있다. 그 주인공들을 나로 착각하고 공상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책들이 사실은 원작을 줄인 축약본이었다는 사실도 오래 무시했고, 그 책들과의 관계는 어린시절에 헤어진 친구처럼 나의 기억속에만 완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친구는 다시 만나는 법. 그리고 다시 만난 친구는 실망스럽기는 커녕 너무나 멋진 모습으로 자라 악수한 손을 놓지도 못한 채 정신없이 그에게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친구는 나의 기억이 자라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새로운 매력을 펼쳐놓기 시작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던 에드몽 당테스의 탈출과 복수담이라고만 생각했던 '몬테크리스토 백작'에 이렇게 많은 인물들이 등장했었던가? 그리고 이렇게 오랜 시간을 다루고 있었던가? 이렇게 넓은 세계를, 정교한 플롯을, 정직한 세계관을 펼쳐놨었던가? 하는 순간순간 느껴지는 놀라움에 다섯권이란 분량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권의 마지막 장을 닫을 때는 떠나가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행복을 빌어줄 겨를도 없을만큼 안타까움을 털어버리지 못할 정도였다.
서문에 빅토르 위고가 말한 그대로 이 책은 '읽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이 책은 과거와 현대의 독자, 어린 독자와 성인 독자를 모두 사로잡는 위대한 대중문화였던 것이다. 확실히 그의 문체가 그와 명성을 겨뤘던 다른 프랑스 최고의 작가들보다 허술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탈출해야 할 때와 복수해야 할 때, 용서하고 떠나야 할 때를 방대한 스토리 속에 녹여놓아 독자를 사로잡는 작가 뒤마의 힘은 누구도 넘보지 못할 것이다.
권선징악.
그것은 재미없는 전래동화의 성격을 지칭한 대명사였다. 하지만 권선징악이란 단순한 말 속에 갈등, 질투, 야심으로 비롯된 음모와 지하감옥 속의 두 죄수의 만남, 젊은 죄수의 탈옥, 변신, 복수의 극적인 상황, 그리고 지옥에서 부활한 백작과 아들을 그리워하며 굶어죽은 아버지, 두 인물을 매장하고 출세한 군인귀족, 냉혈 검사, 속물 은행가, 그들의 아들 딸들인 젊고 매력적인 귀족들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인물들을 병풍처럼 펼친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권선징악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소설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소설이 가장 재미있고 위대할 때는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실제 실존하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이다. 내게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인물들이 그렇다. 마치 지중해에 가면 그들 중 한 명과 마주치기라도 할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