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일직선으로 흘러 대해에 이르는 강물이라기보다는 울퉁불퉁한 단층에 가깝지 않을까. 일방적으로 진보한다거나 퇴보한다거나 하는 기준으로는 역사를 바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고대에 현대 뺨치는 문명을 일궈낸 로마도 그 하나의 실례가 될 것인데, 시오노 나나미가 그런 로마 문명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 것이 인프라다.이번 10권은 시오노 나나미가 그토록 높이 평가했고 매력을 느꼈던 로마의 인프라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 일관했다. 읽고보니 과연 왜 한 권을 모두 할애하고 싶어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었는데, 전에 군데군데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장장 15권 예정인 로마인 이야기에서 그녀가 가장 말하고 싶어했을 주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놨기 때문이다.로마의 인프라는 고대인에 대해 화려하고 고색창연한 문화나 미개하고 미숙한 생활환경만을 떠올리는 사람에겐 '현대성'이란 시공을 초월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로마인과 시오노 나나미에게 '문명'이란 '인간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고 그것은 '편리'와 '안전'이었다. 가도와 다리, 수도를 대표로 하는 방대하고 오랜 세월에 걸친 인프라의 구축은 그런 세계관에서 나온 것이다. 사람과 물건의 신속하고 안전한 이동을 보장하는 가도, 배 없이 강을 건널 수 있게 해주고 지역과 지역의 단절을 잇는 다리, 식생활과 위생, 공업에 필수적인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가도는 문명생활의 기본이었다.다리와 수도도 대단하지만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을 그물망처럼 뻗어나간 가도의 모습은 확실히 질릴 정도로 장관이다. 그에 비하면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인공위성에 잡힐 정도로 긴 만리장성을 쌓은 중국인의 심리는 그런대로 이해가 간다.하지만 외부의 침입을 받을 것을 각오하면서도 장벽과 문턱을 없애고 그들의 '세계'에 도로망을 깐 로마인의 사업과 사고방식은 개방적이라는 면에서 세계 역사의 전례로 남을 만하다. 높은 성벽안에 거주했던 중국인이 안일과 긴장의 균형을 잡지 못해 수없는 전란을 겪은 것과 달리, 개방된 세계에 살았던 로마인은 그만큼 단련과 방비를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1200여년이나 장수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로마인이 시오노 나나미의 호감과는 달리 무자비한 정복민족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뒤로 로마인을 흉내낸 영국이나 파시스트 하의 이탈리아, 미국이 로마 제국의 무력만을 배웠지 그들의 철저한 개방성과 융통성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것은 시사적이다. 역사의 의미가 시간을 초월하지 못한다면 역사를 배울 가치는 없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또 한 권의 신선한 저작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