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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더 바이블 - 모세오경의 길을 따라 사막을 걷다
브루스 페일러 지음, 이종인 옮김 / 서울문화사 / 2001년 12월
평점 :
품절
종교를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방법으로 탐구하려는 시도는 많은 성과를 낳았다. 무조건적인 믿음보다는 검증된 사실이 존중되었고 검증된 사실은 나의 종교와 나의 민족만이 신에게 선택되었다는 아집을 버리게 했다. 하지만 그런 객관성은 필연적으로 종교의 성역, 즉 '신이란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많은 사람이 회의적으로 답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런 위기는 신의 존재에 제일의 가치를 두는 일신교(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를 위태롭게 만들기도 했다.
'신이란 존재하는가?'에 대한 부정적인 대답은 또 하나의 손실을 가져왔는데, 사람들은 신의 존재와 함께 영혼의 불멸, 신의 심판, 천국의 안식과 같은 종교적 구원마저도 포기해야 했던 것이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이다. 그는 자기를 기독교의 교리와 분위기에 익숙했으나 커감에 따라 자연히 교회에도 발길이 멀어진 미국 남부의 보통 사람으로 소개한다. 하지만 그는 친인척의 결혼식과 장례식, 삶의 크고작은 의식들을 통해 인간의 생활에 종교와 성서의 흔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에 의문을 느끼고 다시 성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어떤 계기든 간에 그 후 성서에 대한 저자의 탐구와 집념은 친구와 가족을 놀라게 할 정도였다. 그는 엄청난 양의 자료를 수집하고, 읽다가, 결국은 성서의 구약, 그중에서도 모세오경의 배경이 되는 중동지역을 향해 떠나게 된다. 하지만 떠나던 순간까지도 신과 성서에 대해서 오랜세월 품고 있었던 현대인으로서의 회의는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는 결국 신을 발견했을까? 부분적으로는 옳다. 그가 발견한 것은 사막이었고, 사막이 품고 있는 인간, 영혼, 그리고 신성과 인성이 모두 있었던 그 안에서의 삶이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모래밖에 없을 것 같은 사막에서 인간의 영혼을 발견했다면 사막에 가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상상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더구나 저자의 사려깊고 숙련된 글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는 사막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설픈 지식과 선입관은 점점 씻겨나갔다고 기록한다. 한가득 지고 갔던 음식물들이 곧 사라지고 뜨거운 모래에 구워먹는 빵만이 남았을때, 그때부터 사막은 황무지 혹은 성서의 배경이 아니라 성서가 사막의 삶을 묘사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인간의 번뇌를 시험하고 씻어낼 수 있는 곳이었으며(그래서 모세는 사람들과 사막의 광야를 헤맨다), 영혼을 정화하고 순수한 삶을 꾸릴 수 있는 곳이었다(사람들이 사막을 떠나지 않으며 끊임없이 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막에서 물질은 거추장스러웠고 지혜가 가장 소중한 것이 되었다.
사막으로 떠나는 인간이란 어느 순간에도 고달픈 것일 수밖에 없다. 인성이란 모든 걸 잃고 떠나야 했을때도 남아있는 인간의 마지막 가치이다. 신성이란 그런 인간만이 얻을 수 있었던 보상이자 정화가 아니었을까. 저자의 말대로 인성과 신성은 하나였으며 신을 발견하려던 노력이 수천년간 사막에서 살아온 인간을 발견한 것은 필연이었을 것이다. 성서는 그런 사람들과 역사에 대한 묘사이며 신은 그런 사람들이 지향했던 궁극의 동경이자 위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