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아나두라 대논쟁 - 기독교인가 불교인가?
석오진 엮어 옮김 / 운주사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19세기 스리랑카 파아나두라에서 벌어졌던 목사와 승려와의 논쟁을 기록한 책이다. 하지만 형식은 종교논쟁이었으되 실제는 정치논쟁에 가까웠다. 스리랑카는 오랫동안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식민지였다. 서구의 침략자들은 다른데서도 그랬다시피 스리랑카를 무력과 함께 종교적으로도 지배하려고 했다. 성직자와 정치가의 협력은 긴밀했고 비기독교는 온갖 사회적인 차별을 감수해야 했으며 기본권마저 보장받기 어려웠다. 하지만 기독교로 개종하면 불평등을 얼마간 불식시킬 수 있었다.

이때의 기독교란 종교라기보다는 통치계급의 지배이데올로기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 목사와 불교 승려의 종교논쟁은 권력자와 저항자의 구도가 될 수밖에 없었다. 목사는 서구 문명의 우월성과 그 문명의 우월을 가능하게 해 준 기독교의 대변자였고, 승려는 스리랑카의 전통문명이자 서구 침략에 맞서 싸울 민중의 힘으로서의 불교의 대변자였다.

19세기란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들의 논쟁이 상대의 교리를 깎아내리기에 머물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논쟁은, 종교는 우월함을 가리는 논쟁의 소재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미 이율배반적이었다. 서로의 종교를 이해해보려는 노력이나 가치를 인정하려는 시도는 없었고 내용은 문자주의자들의 편협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 논쟁에서 불교측이 판정승을 거뒀고 불교도들에게 자부심을 주었다는 결말은 식민지하에 머물렀던 저항자 스리랑카를 위해서 좋은 결과였을 것이다. 지배자들이 종교를 무기로 원주민들을 괴롭히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게 됐다는 것에 대해서도.

하지만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것 외에 종교서로서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없어보인다. 현대는 논쟁의 시대가 아니라 대화의 시대이며 파아나두라 논쟁을 기록한 이 책에서 그런 가치를 발견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후기에서 저자가 지적하고 있다시피 오늘날에도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우리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답하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그들같이 논쟁을 할 것인가? 종교를 사상적인 무기로 삼아 원주민의 문명을 무시하고, 침략과 지배를 위한 수단으로 종교와 사상을 강요한다면 그 저항방법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대화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타 문명에 대해 무지하고 편견을 갖고 있는 현대인들을 위한 화두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