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는 그 존재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백성들의 삶에 인위적인 수단을 가하지 않고 통치하는 왕이 제일이라고 했고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치적을 쌓음으로써 모든 백성이 존경하는 왕이 두번째라고 했다. 강희제는 첫번째는 아니더라도 두번째에는 해당될 것 같다. 요, 순의 이상시대가 아닌 다음에야 존재가 없는 듯 하면서도 모든 이치를 통하게 하는 왕이 있을리 없으니 강희제는 황제로써 할 수 있는 모든 의무를 다 한 셈이다.남다른 의무감과 성실성이 강희제의 특징인데, 강희제를 모범군주로 만든 것 또한 태평성대를 이루는 황제가 되겠다는 평생을 걸쳐 지속된 목표의식에서 비롯됐다. 혼란기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선대에 의해 왕조의 권력이 안정권에 도달한 때 강희제같은 황제를 만난다는 것은 한 나라의 행운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왕과 황제들이 거칠고 무절제한 성벽으로 나라의 기둥뿌리를 흔들었음을 생각한다면! 책 앞에 꼿꼿하게 정좌한 초상화와 신하에게 보내는 침착한 편지를 보고 있으면 황제라는 무제한의 권력도 강희제라는 모범인간에게는 독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하지만 강희제도 운이 좋지만은 않았다. 역사를 열심히 공부해 나라를 망칠뻔한 황제들의 예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을 강희제가 자신의 적자인 인걸이 바로 그러한 혼군과 폭군의 될 전형의 인간이란 걸 깨달아야 했으니까. 황제라면 요즘 사람들처럼 적나라하게 감정표현을 하지 않으니 남겨진 기록만으로 강희제의 절망을 느낄 수는 없다. 어쨌든 그는 황제로서 다음 황제가 될 황태자를 폐해야 했던 정치적인 실패와 아버지로서 인간말종의 아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가정의 실패, 항상 모범적이고 부지런한 사람으로써 음란하고 음모를 일삼았던 게으른 인간을 보아야 하는 불쾌함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강희제는 곧 침착함을 되찾고 변함없는 정무수행을 계속했다. 그는 오랫동안 장수했지만 황제라는 의무를 끝까지 즐겁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인걸을 폐하고 다른 아들을 태자로 삼은 강희제의 선택도 그 태자가 영명한 군주인 옹정제가 됨으로써 현명한 판단이었음을 증명받기도 했다.강희제는 분명 재미있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리고 그보다는 존경스러운 인물에 가깝다. 유년시절에 아동용 위인전들의 위인을 접했을 때의 단순한 존경심을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았다. 관찰하는 것보다는 실제로 접했을 때 더 가치있게 느껴질 사람, 이 책대로라면 동시대인들은 강희제와 같은 황제밑에서 살았다는 것을 만족스러워 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