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복과 상담 동양상담학 시리즈 17
나예원.박성희 지음 / 학지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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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 이항복은 익살과 재치의 주인공으로만 너무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지혜와 결단력으로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을 극복하게 한 일등 공신이었다. 더욱 그는 풍자와 해학의 주인공임은 물론 고위(高位)에 있었지만 귄위주의적이지 않았던 바람직한 사람이었다. 본문에 의하면 풍자는 부정한 인물이나 시대상을 비판하는 데서 비롯되는 행위이고 해학은 억압받고 고통받는 대상에 대해 애처로움과 동정의 시선을 보내는 데서 비롯되는 행위이다.

 

명종 말년인 1556년에 태어나 광해군 초기인 1618년에 사망했다. 선조 13년인 1580년 문과에 급제해 호조참의, 도승지 등을 역임했고 선조 25년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금을 호종(扈從)해 의주까지 가 명나라에 대해 지원병을 요청할 것을 주장했다.

 

1589년 정여립 반란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항복은 심문 내용을 받아적는 기록관 역할을 담당했다. 이항복은 정여립의 모반사건을 다스린 공로로 정3품 벼슬에 올랐다. 당시 동인은 기축옥사가 반란이기는 하지만 너무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희생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선조는 모든 책임을 송강 정철에게 씌워 그를 축출했다. 정철은 너무도 가혹하게 정여립과 관련된 동인을 싹쓸이하다시피 한 문제적 인물이다.

 

정철은 강계로 귀양을 갔다. 이때 유일하게 귀양 가는 정철을 배웅해준 사람이 이항복이었다. 감동을 받은 정철은 유배지 강계에서 “내 생애는 설새령에 놓였지만 마음은 필운산에 가 있네“라는 시를 썼다. 이러자 동인은 이항복과 정철이 짜고 사건을 일으켰다고 공격했다. 이에 이항복은 필운 대신 백사라는 호를 썼다. 이항복은 광해군의 인목대비 폐위에 반대해 함경북도 북청에 유배된 지 5개월만에 병사했다.

 

한 마디로 그는 기축옥사, 임진왜란, 계축옥사 등 조선 중기 격동의 사건을 정면으로 관통한 인물이었다.(32 페이지) ‘이항복과 상담’은 학지사의 동양상담학 시리즈의 한 권이다. 지은이는 교육상담학 전문가 나예원과 박성희다. 박성희는 ‘고전에서 상담 지식 추출하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박성희는 서양 사람들에게서 뽑아낸 상담 지식을 한국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것의 문제를 직시했고, 나예원은 장난기 넘치는 용감하고 지혜로운 소년, 당쟁과 임진왜란이라는 격동기를 정면으로 맞서 살았던 인물이라는 이항복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 지식에 이항복은 긍정적인 삶의 실천가이자 상담자라는 정의(定義)를 추가하려 한다고 말한다.

 

‘이항복과 상담’은 바로 이런 두 사람의 사상적 공명(共鳴)의 결과물이다. 이항복은 자기연민의 승화(昇華), 수용과 성찰, 자애, 개방성의 주인공이었다. 특히 그는 아들에게 과거 급제를 해라, 출세하여 집안의 명성을 드높여라 등의 주문을 하지 않았다. 임진왜란 당시 이항복은 선조가 명으로 피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유성룡은 선조의 명 피난에 반대했다.

 

이항복의 주장대로 명으로의 피난이 결정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항복은 유성룡이 머무는 숙소를 직접 찾아가 사죄했고 유성룡은 자기에게도 잘못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은 지난 앙금을 풀고 다시 좋은 결말을 맞이했다. 두 사람이 만일 소유적인 관계였다면 상대를 자신의 뜻에 맞지 않게 행동한 괘씸한 인물로 낙인찍었겠지만 두 사람은 서로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했다.

 

이항복은 역적으로 몰릴 위험이 있다 해도 상대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언행으로 보여주었다. 이덕형이 왕의 미움을 받아 쫓겨나자 자신의 의견은 이덕형과 다를 바 없다며 그를 두둔하고 벼슬을 거절했다. 1602년 우계 성혼과 송강 정철을 구하려다가 축출 위기를 맞았고 1612년 권필이 구속되었을 때 울음으로 그의 억울함을 간언했다.

 

저자는 이항복처럼 위험한 상황에서 목숨을 걸어가며 상대를 구해야만 의미 있는 관계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 교훈이라고 말한다.

 

‘이항복과 상담’은 이항복을 모신 포천 화산서원(花山書院) 해설을 의뢰받고 읽게 된 책이다. 필운대(弼雲臺)가 포함된 서촌 해설에서도 이항복에 대해 잘 다루지 않았던 미흡함을 반성하며 뒤늦게 이항복의 진수를 알게 해준 책이다.

 

관계를 맺는 것은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뜻하고 특히 서로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며 성장시키는 것이라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이항복 개인에 대해 배운 것도 의미 있지만 관계의 진수에 대해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다. 개인적으로는 이항복을 다룬 책이 별로 없는 것이 아쉽다. 시리즈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미수 허목과 상담’이란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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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박물관을 자주 드나들다 보니 1만년전쯤 멸종했다는 매머드에 정(情)이 들었다. 몸집이 크기 때문인지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닌데 멸종되었다는 사실에 슬픈 감정이 든다. 일본인이 만든 오리가미(おりがみ; 종이접기) 매머드를 보고 나니 그러함이 조금 줄었다. 아니 매머드만이 아니다. 박물관이 있는 2층에 오르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고인류들의 추정 모형도도 그런 듯 하다.

 

특히 네안데르탈인이 그렇다. 사피엔스보다 몸집이 크고 머리도 컸다는 그들이 멸종한 이유가 궁금하다. 돌이나 모래, 흙 같은 지질의 대상들을 공부할 때 느끼지 못했던 감정 이입(移入)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무생물인 그들에게도 정이 들었다. 맨틀 대류로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지구는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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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환경과학과가 아닌 지구과학교육학과 학생들에게 선사박물관 해설을 했다. 과학대학의 한 학과와 사범대학의 한 학과라는 차이 외에도 지질학과에서 배우는 과목과 지구과학교육학과에서 배우는 과목의 차이도 유의미하다. 과학교육학 박사 윤은정 교수의 ‘차근차근 과학 용어’란 책이 새로 나왔다. 저자는 독자들의 수준에 맞는 과학 용어를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독자들이 어떤 용어를 아는지 모르는지 확인하고 싶을 때도 유용한 책이라고 한다. ‘생물과 무생물 사이‘, ’동적 평형‘, ’모자란 남자들‘ 등을 쓴 후쿠오카 신이치의 신간 ’생명 해류‘도 나왔다. ’진화의 최전선 갈라파고스에서 발견한 생명의 경이‘란 부제를 가진 이 책에서 ’안산암과 현무암‘, ’동적 평형 바위‘란 챕터가 눈길을 끈다. 저자에 의하면 갈라파고스 섬은 현무암으로 뒤덮인 섬이다. 읽을 책이 쉼없이 쏟아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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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에서 말하는 층(formation)은 다른 것과 위, 아래로 구별되며 일정 규모 이상이어서 지질도에 표시되는 암석의 집합체를 말한다. 층을 영어 자판으로 치면 cmd가 된다. catholic medical center도 cmd로 줄여 쓴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실수로 그렇게 된 것이다.

 

연천의 주요 층은 미산층, 궁평층, 백의리층, 대광리층 등이다. 2008년 완성된 지질도를 통해 알 수 있다. 2008년은 가장 늦은 해다. 비무장지대와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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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億)이란 숫자를 어디서 들었을까?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멸종 이야기에서. 그리고 분리된 상태였던 한반도가 2억년 전에 충돌해 하나가 되었다는 말에서. 연천에서 각섬암과 석류석이 발견되는 것은 대륙 충돌의 한 증거. 각섬석은 각섬암의 구성 광물. 모(某) 사이트에서 각섬암 속의 석류석이란 말과 각섬석 화강암이란 말을 만났다. 정확한 용례다. 그나저나 상당한 흥미를 자극하는 곳이 연천이다. 주먹도끼, 물거미, 용암강, 석류석과 남정석과 각섬암 등으로 인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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