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가디언이 스웨덴 아카데미측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밥 딜런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실패하자 밥 딜런의 수상 거부를 염두에 두고 'Nobel panel gives up knockin’ on Dylan’s door'란 글을 실었네요. 딜런의 knocking on heaven's door란 곡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참 신선한 제목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나저나 저는 knocking on haven's door라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heaven과 haven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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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 그리스 신화로 보는 우리 내면의 은밀한 심리
김상준 지음 / 보아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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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은 영감을 주는 전형적 인물들이다. 오래 전 니체가 그리스 비극에 초점을 두고 비극의 탄생을 썼듯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은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을 통해 우리 내면의 은밀한 심리를 분석한 책을 썼다. 심리학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란 책이다. 이 책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열 명의 캐릭터를 소개한다. 판도라, 오이디푸스, 페르세포네, 아폴론, 에로스(with 프시케, 아프로디테), 테세우스, 메두사(with 페르세우스), 이아손 등이다.


이 책은 우리가 그리스 신화에 대해 알고 있던 오류를 교정해 주는 책이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을 처음 만든 신은 올림푸스의 주신(主神)인 제우스가 아니라 거인족인 신인 프로메테우스이다. 판도라는 제우스가 천상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 프로메테우스 대신 인간을 괴롭힐 생각으로 아들 헤파이스토스에게 시켜 만든 최초의 여자이다. 제우스는 자신의 왕위를 찬탈할까봐 자식들을 모두 배 속에 집어삼킨 자신의 아버지 크로노스를 물리치기 위해 티탄족과 10년 동안이나 전쟁을 치를 때 같은 티탄족으로서 제우스 자신을 도운 프로메테우스를 벌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물론 후에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 산에 묶어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뜯기는 고통을 당하게 한다. 이성(理性)을 신봉하는 가부장 사회였던 고대 그리스는 여성에 대한 경외심과 두려움을, 여성이 남성들을 유혹했다는 이야기로 극복하려 했다.(투사: 投射) 판도라를 팜므 파탈로 만든 것은 서사시인 헤시오도스이다. 아담의 또 다른 아내 이야기로 릴리스(lilith) 버전이 있듯 판도라 이야기도 다른 이야기가 있다. 아니 지금 알려진 이야기는 헤시오도스에 의해 날조된 것이다.


알려진 것과 달리 판도라는 호기심으로 항아리를 열어 인간 세계에 온갖 악과 고통, 질병을 가져다 준 존재가 아니다. 오이디푸스 이야기도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가정의 수호신인 헤라가 라이오스(오이디푸스의 아버지)에게 아들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이오카스테(오이디푸스의 어머니)는 아들(오이디푸스)의 아내가 될 것이란 저주를 내렸기에 오이디푸스는 무죄라는 내용이다. 저자는 신화를 심리학적으로 풀어내 설득력을 자랑한다. 특히 아폴론과 그의 아들 파에톤의 관계를 현재에 대입해 공감을 자아낸다.


그리스 신화가 지금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면 그것은 그 신화 속 인물들이 맺는 관계가 원형적으로 현대에도 재연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해석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 사회는 가부장 사회란 말을 했는데 라이오스도 그렇고 특히 제우스는 여성에 대한 과도한 욕망으로 온갖 문제를 일으킨다. 여성들이 남성들에 의해 왜곡된다는 점도 그렇다. 5장 에로스를 둘러싼 프시케와 아프로디테의 대결을 보자.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는 너무나 아름다운 프시케로 인해 자신의 입지가 흔들리자 사랑의 신인 아들 에로스를 시켜 프시케가 가장 추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하라고 지시한다.


그런데 에로스는 맞으면 누구나 제일 먼저 보는 대상을 사랑하고 마는, 자신이 지니고 다니는 화살에 실수로 맞는다.(그리스 신화의 에로스는 로마 신화의 큐피트, 라틴 시()의 아모르에 해당한다. 흥미로운 것은 큐피트의 화살이란 말을 많이 쓰고 에로틱하다는 말을 많이 쓴다는 점이다. 니체가 운명에 대한 사랑이란 말을 아모르 파티라 한 것도 그렇다.).. 이야기는 계속되는데... 저자는 프시케가 날개 달린 뱀과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신탁(神託)을 받는데 결국 날개 달린 뱀이 아니라 너무나 잘 생긴 에로스와 결혼하게 된 것을 미녀와 야수란 영화를 예로 들며 이렇게 설명한다. 이런 이야기는 부모가 결혼 상대를 지정해주는 옛날의 결혼풍습으로 인해 생겨난 이야기라고.


저자는 백설공주콩쥐팥쥐등에서 계모가 전처 소생의 딸이 남편의 사랑을 빼앗아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 딸을 박해하고 쫓아내고 죽이기까지 하는 것은 남성 중심의 권력 사회에서 여성 간에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구도(에 의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프시케, 그리고 에로스가 겪는 여정을 상세하게 심리학적으로 설명한다. 프시케가 아프로디테에게서 받은 험난하고 어려운 과제 세 가지를 각각 심리학적으로 설명한다. 그 과제들을 수행해야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시케가 맡은 일은 모두 다른 것들(개미, 갈대, 독수리, : ) 등의 전적인 도움으로 해결한 것이지 프시케의 힘으로 한 것은 아니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슬픈 사랑 이야기의 메시지를 저자는 이렇게 전한다. 망자를 위한 애도(哀悼)의 기간이 6개월을 넘어서면 병적인 것이라고. 망자도 유족이 절망 속에서 살아간다면 그가 불쌍해 편히 쉴 수 없고 구천을 떠돌게 된다고. 저자는 오르페우스가 지하세계로 내려간 것을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누구나 빠지는 우울한 감정으로 해석한다. 저자에 의하면 정상적인 애도 반응은 사랑하는 사람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대신 그 사람이 내 마음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란 사실로 그 슬픔을 대체한다.(161 페이지)


저자의 책에는 헤라의 저주를 받고 온갖 역경과 고난을 겪는 헤라클레스도 등장한다. 헤라가 헤라클레스를 저주한 것은 그가 남편인 제우스의 바람기로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는 상징으로 주요 인물, 사건의 전부를 해명한다는 점에서 일관성을 지닌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이 상징으로 해명되는 것은 어딘지 작위적인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친부 아이게우스를 찾아나선 테세우스 이야기에서 테세우스가 만난 마지막 악당은 프로크루스테스이다. 저자는 이를 무의식에 존재하는 광포한 아집과 독선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침대에 남들을 묶어 놓고 길면 자르고 짧으면 늘리는 방식으로 폭력을 행사한다. 물론 나의 경우 프로크루스테스가 상징(의미)하는 것보다 한국 사회에서 프로크루스테스의 폭력 즉 자신만이 옳고 상대방은 무조건 그르다는 생각으로 독선과 아집을 보이는 것을 설명한 것이 더 설득력 있고 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이게우스 왕은 크레타 섬으로 떠난 아들 테세우스의 안위가 걱정되어 매일 항구에서 기다리다 결국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해 바다로 몸을 던져 죽음을 택한 아버지이다.


에게해는 아이게우스의 바다라는 의미이다. 마지막(10) 장인 사랑과 증오의 서사시: 이아손과 메데이아편에서는 아폴론 이야기가 나온다. 이성(理性)과 태양의 신인 아폴론도 인간인 다프네에게 빠져 그녀를 쫓아다녔다는 이야기가 흥미를 끈다. 이런 점에서는 아폴론도 디오니소스적인 면모를 가졌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니체의 비극의 탄생으로 인한 것이다.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의 작품을 읽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으면 더 정교한 감수성으로 신화를 대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상징(의미) 부분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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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어제 저와 인연이 있는 출판사(서초구 강남대로)에 다녀왔습니다. 이 출판사 저 출판에서 소개해주기를 바라고 가져온 100권은 넘을 책들 가운데 마음대로 골라갈 수 있는 상황에서 저는 17권을 들고 왔습니다. 택배로라면 30권은 더 넘게 골랐을 텐데 무게감을 느끼고 싶어 들고 왔습니다. “내 청춘은 내 집 하나 넓히지 못하고 전투도 못 하고 몇 수레의 책들과 함께 지나갔다”는 강규 작가의 말을 떠올리며... 전철 안에서 70세 정도로 보이시는 분이 제가 들고 있는 니체 책을 보시더니 언제 나온 책이냐 물어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산에 다녀오시는 길이라는 그 분은 몇 년 전 등산 중 실족해 머리를 다쳐 혼수 상태로 며칠을 지내신 끝에 겨우 회복되어 지금은 약간의 후유증만이 있을 뿐 생활에 큰 무리는 없다고 하시더군요.

 

b) 제가 들고 있는 책이 50년 전 실존주의 철학과 니체, 하이데거 등을 읽느라 치른 그 분의 고투(苦鬪)와 환희(歡喜)를 추억하게 한 것 같습니다. 대화는 그분의 아직은 완전하지 않은(어쩌면 쇠퇴해가는 것이라 해야 옳을지도 모를) 기억 때문에 몇 군데 빈 곳이 있는 철학 개념들과 철학자들에 대한 말을 그 분이 던지고 제가 그것을 수리(修理)하듯 마무리하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분은 양재 시민의 숲 역에서 출발해 양재에서 환승한 저와 종로 3가까지 동행하며 대화를 나누다 정이 드셨는지 헤어지는 순간 성(姓)이라도 알고 싶다고 하시며 악수를 청하셨습니다. 답으로 건강하세요란 말씀을 드린 저는 그 분이 저에게 멋있다고 하시기에 제가 그런 면을 가지고 있어서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c) 하지만 그보다는 제가 대화 상대를 해드림으로써 그 연배로서는 드물게 철학 이야기를 하실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분 스스로 자긍심을 느끼셔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었을까, 란 생각을 했습니다. 실존주의에 카뮈를 포함시켜도 될까요? 란 제 말에 그 분은 그렇다고 답하셨습니다. “유명한 가난과 질병에의 위험”, “우아한 태도와 진지함, 자기의 속사정을 겉에 나타내지 않는 특징적인 수줍음과 어느 그룹에서나 어느새 자타가 공인하는 지도자로 군림하는 ‘대장기질'의 설득력”이란 김화영 교수의 카뮈론(論)을 기억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이 글을 다시 들추어 보며 어느 부분은 저와 비슷하고 어느 부분은 거리가 있고, 어느 부분은 닮고 싶고 어느 부분은 그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게는 특별한 시간인 2016년 10월 15일은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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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비탄, 환희, 고통을 알려면 니체를 읽을 필요가 있다. 그를 모르면 감동과 비탄, 환희, 고통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단정적인 만큼 오만하기에 그렇게 말하지 않기로 한다. 그런데 너바나의 보컬 커트 코베인이 천천히 사라지는 것보다 한 번에 불타 없어지는 것이 낫다("It's better to burn out than to fade away.")는 유서를 쓰고 자살(1994년)했다는 사실 앞에서는 니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니체에 꽂힌 사람들은 아마도 그의 첫 저서인 ‘비극의 탄생’에서부터 눈을 뗄 수 없을(can't take my eyes off you)지도 모르겠다.


니체는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의 긴장과 상호 도움이라는 묘한 만남으로 비극(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고 삶의 고통과 허무를 이기게 하는)이 탄생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비극이 몰락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니체는 몰락을 이끈 주범(主犯)으로 “마신(魔神)” 소크라테스를 든다. 니체는 소크라테스의 각본에 따라 비극 작가 에우리피데스가 사람들이 부르는 합창을 대체해 소크라테스의 변론술을 상연한 이래 다른 장르들과는 달리 비극은 단번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죽었다고 보았다. 이 부분에서 커트 코베인을 생각하게 된다. 그는 니체를 읽었다. 허무주의에 빠져.


물론 니체의 허무주의와 커트 코베인의 허무주의는 맥락이 다르다. 어떻든 커트 코베인의 유서(“천천히 사라지는 것보다 한 번에 불타 없어지는 것이 낫다.”)에서 니체가 슬퍼하고 안타까워한 비극의 죽음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커트 코베인이 ‘비극의 탄생‘을 통해 니체가 폭로한 ’단번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비극‘ 부분을 읽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읽었으리라고 본다. 니체 매니아라면 니체의 첫 저서이고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 읽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커트 코베인은 정말 비극처럼 단번에 사라진 것을 실천한 셈이 되는 것일까?(답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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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오래지 않지만 내 서울 나들이의 역사도 몇 개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90년대 중반 저가이면서 양질의 레퍼토리를 자랑하는 Naxos 레이블의 클래식 음반을 사기 위해 한동안 압구정의 신나라 레코드를 드나들었다. 당시는 프로그레시브 록도 함께 좋아하던 때여서 홍대 앞의 Mythos에도 자주 갔었다. 그 이후 2001년 논현동의 기수련 센터와 2002년 양재동의 초기 불교 명상 센터를 드나들던 시기를 거쳤다. 창덕궁 인근에 화실을 가지고 있던 도반(道伴) 덕에 궁궐문화와 불교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내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들 중 하나가 서점 순례이다. 어느 해에는 200번도 더 넘게 서울의 서점들을 드나들기도 했다. 2002년 폐업한 종로서적이 한창 영업중이던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내 서점 순례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 어느덧 3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올해 들어서는 문화, 역사, 글쓰기, 편집 등의 강의를 듣기 위해 종로(정독도서관, 궁궐문화원), 마포, 구로, 양재 등을 자주(또는 가끔) 방문했으니 특별한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좋을 만하다.

 


역사와 문화, 미술 등에 대한 관심의 일환으로 궁궐과 박물관, 미술관 등을 자주 찾은 것도 올해 자랑할 만한 개인사이다. 어제는 고궁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어둑해진 안국동 거리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정독 도서관에서 강의를 듣고 집에 오니 밤 11시가 넘어 있었다. 서울에 가면 걸으면서 책을 읽게 된다. 그 자유가 참 좋다. 이제 서울을 찾게 된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가장 먼저 해보고 싶은 것이 골목길 순방이다.

 

 

한양 도성이나 정동길 순례도 있고 경리단길, 가로수길 등도 좋지만 무엇보다 골목길이 마음을 끄는 것은 왜일까? 앞으로는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많이 궁궐과 박물관, 미술관 등을 찾아야 할 것이고,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면서도 음악회에 많이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부암아트홀 같은 소극장을 자주 찾고 싶다. “정오가 되면 성공회쪽 담을 넘어 종소리가 들린다”처럼 김용범 시인의 서정적인 시를 음미하며 조용히 걸어야 할 곳들이 이렇게나 많아 행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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