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오래지 않지만 내 서울 나들이의 역사도 몇 개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90년대 중반 저가이면서 양질의 레퍼토리를 자랑하는 Naxos 레이블의 클래식 음반을 사기 위해 한동안 압구정의 신나라 레코드를 드나들었다. 당시는 프로그레시브 록도 함께 좋아하던 때여서 홍대 앞의 Mythos에도 자주 갔었다. 그 이후 2001년 논현동의 기수련 센터와 2002년 양재동의 초기 불교 명상 센터를 드나들던 시기를 거쳤다. 창덕궁 인근에 화실을 가지고 있던 도반(道伴) 덕에 궁궐문화와 불교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내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들 중 하나가 서점 순례이다. 어느 해에는 200번도 더 넘게 서울의 서점들을 드나들기도 했다. 2002년 폐업한 종로서적이 한창 영업중이던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내 서점 순례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 어느덧 3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올해 들어서는 문화, 역사, 글쓰기, 편집 등의 강의를 듣기 위해 종로(정독도서관, 궁궐문화원), 마포, 구로, 양재 등을 자주(또는 가끔) 방문했으니 특별한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좋을 만하다.
역사와 문화, 미술 등에 대한 관심의 일환으로 궁궐과 박물관, 미술관 등을 자주 찾은 것도 올해 자랑할 만한 개인사이다. 어제는 고궁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어둑해진 안국동 거리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정독 도서관에서 강의를 듣고 집에 오니 밤 11시가 넘어 있었다. 서울에 가면 걸으면서 책을 읽게 된다. 그 자유가 참 좋다. 이제 서울을 찾게 된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가장 먼저 해보고 싶은 것이 골목길 순방이다.
한양 도성이나 정동길 순례도 있고 경리단길, 가로수길 등도 좋지만 무엇보다 골목길이 마음을 끄는 것은 왜일까? 앞으로는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많이 궁궐과 박물관, 미술관 등을 찾아야 할 것이고,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면서도 음악회에 많이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부암아트홀 같은 소극장을 자주 찾고 싶다. “정오가 되면 성공회쪽 담을 넘어 종소리가 들린다”처럼 김용범 시인의 서정적인 시를 음미하며 조용히 걸어야 할 곳들이 이렇게나 많아 행복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