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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 그리스 신화로 보는 우리 내면의 은밀한 심리
김상준 지음 / 보아스 / 2016년 3월
평점 :
그리스 신화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은 영감을 주는 전형적 인물들이다. 오래 전 니체가 그리스 비극에 초점을 두고 ‘비극의 탄생’을 썼듯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은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을 통해 우리 내면의 은밀한 심리를 분석한 책을 썼다. ‘심리학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란 책이다. 이 책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열 명의 캐릭터를 소개한다. 판도라, 오이디푸스, 페르세포네, 아폴론, 에로스(with 프시케, 아프로디테), 테세우스, 메두사(with 페르세우스), 이아손 등이다.
이 책은 우리가 그리스 신화에 대해 알고 있던 오류를 교정해 주는 책이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을 처음 만든 신은 올림푸스의 주신(主神)인 제우스가 아니라 거인족인 신인 프로메테우스이다. 판도라는 제우스가 천상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 프로메테우스 대신 인간을 괴롭힐 생각으로 아들 헤파이스토스에게 시켜 만든 최초의 여자이다. 제우스는 자신의 왕위를 찬탈할까봐 자식들을 모두 배 속에 집어삼킨 자신의 아버지 크로노스를 물리치기 위해 티탄족과 10년 동안이나 전쟁을 치를 때 같은 티탄족으로서 제우스 자신을 도운 프로메테우스를 벌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물론 후에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 산에 묶어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뜯기는 고통을 당하게 한다. 이성(理性)을 신봉하는 가부장 사회였던 고대 그리스는 여성에 대한 경외심과 두려움을, 여성이 남성들을 유혹했다는 이야기로 극복하려 했다.(투사: 投射) 판도라를 팜므 파탈로 만든 것은 서사시인 헤시오도스이다. 아담의 또 다른 아내 이야기로 릴리스(lilith) 버전이 있듯 판도라 이야기도 다른 이야기가 있다. 아니 지금 알려진 이야기는 헤시오도스에 의해 날조된 것이다.
알려진 것과 달리 판도라는 호기심으로 항아리를 열어 인간 세계에 온갖 악과 고통, 질병을 가져다 준 존재가 아니다. 오이디푸스 이야기도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가정의 수호신인 헤라가 라이오스(오이디푸스의 아버지)에게 아들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이오카스테(오이디푸스의 어머니)는 아들(오이디푸스)의 아내가 될 것이란 저주를 내렸기에 오이디푸스는 무죄라는 내용이다. 저자는 신화를 심리학적으로 풀어내 설득력을 자랑한다. 특히 아폴론과 그의 아들 파에톤의 관계를 현재에 대입해 공감을 자아낸다.
그리스 신화가 지금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면 그것은 그 신화 속 인물들이 맺는 관계가 원형적으로 현대에도 재연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해석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 사회는 가부장 사회란 말을 했는데 라이오스도 그렇고 특히 제우스는 여성에 대한 과도한 욕망으로 온갖 문제를 일으킨다. 여성들이 남성들에 의해 왜곡된다는 점도 그렇다. 제5장 에로스를 둘러싼 프시케와 아프로디테의 대결을 보자.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는 너무나 아름다운 프시케로 인해 자신의 입지가 흔들리자 사랑의 신인 아들 에로스를 시켜 프시케가 가장 추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하라고 지시한다.
그런데 에로스는 맞으면 누구나 제일 먼저 보는 대상을 사랑하고 마는, 자신이 지니고 다니는 화살에 실수로 맞는다.(그리스 신화의 에로스는 로마 신화의 큐피트, 라틴 시(詩)의 아모르에 해당한다. 흥미로운 것은 큐피트의 화살이란 말을 많이 쓰고 에로틱하다는 말을 많이 쓴다는 점이다. 니체가 운명에 대한 사랑이란 말을 아모르 파티라 한 것도 그렇다.).. 이야기는 계속되는데... 저자는 프시케가 날개 달린 뱀과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신탁(神託)을 받는데 결국 날개 달린 뱀이 아니라 너무나 잘 생긴 에로스와 결혼하게 된 것을 ‘미녀와 야수‘란 영화를 예로 들며 이렇게 설명한다. 이런 이야기는 부모가 결혼 상대를 지정해주는 옛날의 결혼풍습으로 인해 생겨난 이야기라고.
저자는 ’백설공주‘나 ’콩쥐팥쥐‘ 등에서 계모가 전처 소생의 딸이 남편의 사랑을 빼앗아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 딸을 박해하고 쫓아내고 죽이기까지 하는 것은 남성 중심의 권력 사회에서 여성 간에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구도(에 의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프시케, 그리고 에로스가 겪는 여정을 상세하게 심리학적으로 설명한다. 프시케가 아프로디테에게서 받은 험난하고 어려운 과제 세 가지를 각각 심리학적으로 설명한다. 그 과제들을 수행해야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시케가 맡은 일은 모두 다른 것들(개미, 갈대, 독수리, 탑: 塔) 등의 전적인 도움으로 해결한 것이지 프시케의 힘으로 한 것은 아니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슬픈 사랑 이야기의 메시지를 저자는 이렇게 전한다. 망자를 위한 애도(哀悼)의 기간이 6개월을 넘어서면 병적인 것이라고. 망자도 유족이 절망 속에서 살아간다면 그가 불쌍해 편히 쉴 수 없고 구천을 떠돌게 된다고. 저자는 오르페우스가 지하세계로 내려간 것을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누구나 빠지는 우울한 감정으로 해석한다. 저자에 의하면 정상적인 애도 반응은 사랑하는 사람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대신 그 사람이 내 마음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란 사실로 그 슬픔을 대체한다.(161 페이지)
저자의 책에는 헤라의 저주를 받고 온갖 역경과 고난을 겪는 헤라클레스도 등장한다. 헤라가 헤라클레스를 저주한 것은 그가 남편인 제우스의 바람기로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는 상징으로 주요 인물, 사건의 전부를 해명한다는 점에서 일관성을 지닌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이 상징으로 해명되는 것은 어딘지 작위적인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친부 아이게우스를 찾아나선 테세우스 이야기에서 테세우스가 만난 마지막 악당은 프로크루스테스이다. 저자는 이를 무의식에 존재하는 광포한 아집과 독선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침대에 남들을 묶어 놓고 길면 자르고 짧으면 늘리는 방식으로 폭력을 행사한다. 물론 나의 경우 프로크루스테스가 상징(의미)하는 것보다 한국 사회에서 프로크루스테스의 폭력 즉 자신만이 옳고 상대방은 무조건 그르다는 생각으로 독선과 아집을 보이는 것을 설명한 것이 더 설득력 있고 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이게우스 왕은 크레타 섬으로 떠난 아들 테세우스의 안위가 걱정되어 매일 항구에서 기다리다 결국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해 바다로 몸을 던져 죽음을 택한 아버지이다.
에게해는 아이게우스의 바다라는 의미이다. 마지막(10) 장인 사랑과 증오의 서사시: 이아손과 메데이아편에서는 아폴론 이야기가 나온다. 이성(理性)과 태양의 신인 아폴론도 인간인 다프네에게 빠져 그녀를 쫓아다녔다는 이야기가 흥미를 끈다. 이런 점에서는 아폴론도 디오니소스적인 면모를 가졌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니체의 ’비극의 탄생’으로 인한 것이다.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의 작품을 읽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으면 더 정교한 감수성으로 신화를 대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상징(의미) 부분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