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과 비탄, 환희, 고통을 알려면 니체를 읽을 필요가 있다. 그를 모르면 감동과 비탄, 환희, 고통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단정적인 만큼 오만하기에 그렇게 말하지 않기로 한다. 그런데 너바나의 보컬 커트 코베인이 천천히 사라지는 것보다 한 번에 불타 없어지는 것이 낫다("It's better to burn out than to fade away.")는 유서를 쓰고 자살(1994년)했다는 사실 앞에서는 니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니체에 꽂힌 사람들은 아마도 그의 첫 저서인 ‘비극의 탄생’에서부터 눈을 뗄 수 없을(can't take my eyes off you)지도 모르겠다.


니체는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의 긴장과 상호 도움이라는 묘한 만남으로 비극(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고 삶의 고통과 허무를 이기게 하는)이 탄생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비극이 몰락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니체는 몰락을 이끈 주범(主犯)으로 “마신(魔神)” 소크라테스를 든다. 니체는 소크라테스의 각본에 따라 비극 작가 에우리피데스가 사람들이 부르는 합창을 대체해 소크라테스의 변론술을 상연한 이래 다른 장르들과는 달리 비극은 단번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죽었다고 보았다. 이 부분에서 커트 코베인을 생각하게 된다. 그는 니체를 읽었다. 허무주의에 빠져.


물론 니체의 허무주의와 커트 코베인의 허무주의는 맥락이 다르다. 어떻든 커트 코베인의 유서(“천천히 사라지는 것보다 한 번에 불타 없어지는 것이 낫다.”)에서 니체가 슬퍼하고 안타까워한 비극의 죽음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커트 코베인이 ‘비극의 탄생‘을 통해 니체가 폭로한 ’단번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비극‘ 부분을 읽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읽었으리라고 본다. 니체 매니아라면 니체의 첫 저서이고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 읽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커트 코베인은 정말 비극처럼 단번에 사라진 것을 실천한 셈이 되는 것일까?(답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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