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석(武人石)이 아닌 무석인(武石人)이라고, 문인석(文人石)이 아닌 문석인(文石人)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인석이나 문인석이라 하지 않고 무석인이나 문석인이라 말하는 것은 그들을 돌이 아닌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전대호의 '철학은 뿔이다'를 읽다가 노예적 정신들이란 표현을 보고 무석인, 문석인이란 표현을 생각했다.

 

무인석(또는 문인석)이란 표현과 무석인(또는 문석인)이란 표현은 너무 다르다. 하지만 노예적 정신들이란 표현과 정신적 노예들이란 표현은 다를 바 없다. 우리에게 노예적 정신이든 정신적 노예이든 예속적이고 피학적인 사람들이 많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노예적 정신으로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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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100% 활용법
요한 이데마 지음, 손희경 옮김 / 아트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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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100% 활용법의 저자 요한 이데마의 다음의 글이 주의를 끈다. 교향곡 감상은 40, 영화 관람은 두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미술관에서는 미술작품과 얼마나 시간을 보낼지 당신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문화유산 해설 공부를 함께 하는 공대(工大) 출신의 한 선배는 자신이 받았던 공대 수업과 너무 다르게 문화유산 해설은 창의적이고 자유롭다는 말을 했다. 맞지만 덧붙여야 할 것이 있다. 문화유산 해설 수업이 무조건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즉 우리가 지금 받는 수업이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진행되기에 그 분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어떻든 나는 요한 이데마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 선사 시대 사람들이 동굴에 벽화를 그린 이유를 추론하는 글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그들이 동굴에 벽화를 그린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1) 미술을 위한 미술 즉 즐기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 2) 영적 차원이라는 것, 3) 기후 변화로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 등이다.


나는 이 가운데 1번을 지지하고 2번이라도 괜찮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미술관을 찾아 미술 작품을 즐기고 미술 책을 열람하지만 때로 낯설고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나를 설득하기 위해서이다. 즉 원시인들도 미술을 즐겼는데 미술 작품과 관련 책들을 불편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내 양가감정과 통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저자는 미술과의 만남은 기대한 것처럼 언제나 잘 되지는 않는다.는 알랭 드 보통의 말을 인용하며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에서 흥미를 나타내지만 동시에 권태감을 드러낸다는 말을 던진다.


미술관 100% 활용법은 미술관 방문을 뜻깊은 기억으로 바꾸려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어쩌면 내가 미술관에서 양가감정을 느끼곤 하는 것은 작품을 이해하거나 그것에 감동받음으로써 미술과 개인적인 연결고리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기대가 좌절로 변한 것이 누적되다 보면 새 기대를 갖는 한편 축적된 기억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불편감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의미이다.


미술관 다리(museum legs)는 미술관에서 가만히 서 있는 사이사이 오랫동안 천천히 걸은 후 생기는 다리의 통증을 말한다. 어제 나는 조선왕릉 다리(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legs)를 겪었다. 선정릉에서. 성종의 무덤에서 정현왕후의 무덤으로, 다시 중종의 무덤으로 순례를 했는데 드넓은 공간 때문이기보다 불규칙적인 걷기와, 생각을 하며 오래 서 있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이제 자주 겪어야 할 일...


저자는 미술은 굉장한 자극이라서 회복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최고의 풍경화는 멜랑콜리, 자부심 또는 노스탤지어 같은 정제된 감정을 전달하고 그런 감정들이 반대로 삶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들에 영감을 불어넣어줄 수 있으니 그저 풍경을 즐기는 데 그치지 말고 그 풍경에 당신의 내면에 불꽃을 일으키는 감정을 느껴보도록 하라는 말을 한다. 이는 미술은 벽에 걸려 있는 사물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사람과 만날 때에만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말과 들어맞는다.


반 고흐는 액자 없는 그림은 영혼 없는 육체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전하며 저자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면 당신은 미술관 전체를 당신의 경험을 틀짓는 액자로서 여길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미술은 정의되는 것을 거부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태를 굳이 애매하게 만들어버리고 마는 셈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의 옳은 방법이 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고 가능한 최선의 방법으로 미술을 정의하는 것이다.


저자는 미술을 즐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약간의 맥락과 올바른 마음가짐이라 말한다. 저자는 미술관이 다른 어떤 곳보다 서로 대화를 나누는 데 열린 마음을 갖게 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게 될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명작을 발견하고 나면 꼬리표 따위는 잊어버리고 미술을 즐기라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아이들은 미술관에 따라다니기 마련인 모든 걸 다 아는 듯한 태도에 대한 가장 완벽한 해독제이다.


저자는 효과적인 설명에 대해 거론한다. 이는 간결하고 특징적이며 당신이 미술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에 집중하는 것이다.(53 페이지) 저자는 형태 있는 모든 것은 오로지 촉감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고트프리트 헤르더의 말을 인용하며 손을 대서는 안 되는 미술관 세계에서 어떻게 직접 선을 대볼 수 있는지 가르쳐준다. (만질 수 있는지) 물어보라는 것이다. 일부 미술관은 만질 수 있거나 원래 만지게 되어 있는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미술관은 무엇일까? 비관론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미술관은 미술의 묘지라는 말이 그것이다. 저자는 미술관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확장하거나 재고하라고 말한다. 이는 미술관의 의미를 찾는 내 상황에 잘 맞는다. 저자는 갤러리 가이드를 만나라고 말한다. 그들은 놀라운 배경 지식을 가진 존재들이다. 다만 우리가 편한 마음으로 나름의 의미를 구축하도록 격려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가이드들이 필요하다.(75 페이지) 이는 문화유산 해설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저자는 속도를 늦춰달라고 말한다. 우리는 예술가들이 몇 주, 몇 달, 심지어 몇 년이 걸려 만든 작품을 너무 빨리 지나친다.(평균 9. 모나리자의 경우 평균 15.) 저자는 미술관을 체크리스트라 생각하지 말고 메뉴라 생각하라고 말한다. 모든 작품을 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필요한 것은 스스로에 대해 말하는 미술작품은 존재하지 않기에 탐구하고 자신과 연결짓는 것이다.


효과적인 가이드들은 사려 깊고 도전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의견을 전한다.(88 페이지) 어느 유명 정치인이 이 드로잉을 아주 좋아했다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비디오가 우리 개개인의 일상에서 겪는 싸움에 관해 무엇을 가르쳐줄까?...한편 관람객으로서 가이드 투어에 기여하려면 무엇보다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 질문하기를 두려워 하지 말고 특히 같이 간 사람들이 묻기 무서워 하는 것들을 질문하라....


날카롭고 예상치 못한 질문은 가이드에게 그리고 동료들에게 경각심을 갖게 할 수 있으며 재치와 독창성 있는 대답을 이끌어낼 수 있다.(89 페이지) 미술관 관람객의 다섯 유형이 흥미를 끈다. 1) 경험 추구형, 2) 조력자형, 3) 재충전형, 4) 전문가형, 5) 탐험가형... 나는 탐험가형이다. 특정 전시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일반적으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를 바라는 유형이다. 그들은 자기 의견이 확고하며 스스로의 방식을 찾는 데 익숙하다.(102 페이지)


더 읽을거리로 제시된 책들은 대개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들이 아니다. 몇 권의 책이 눈에 띄는데 나에게는 미리엄 엘리아의 우리는 갤러리에 간다가 마음에 든다. 부모와 아이들이 동시대 미술을 이해하기 쉽도록 통속 소설에 버금갈 만큼 재미 있고 다채로운 책을 쓴 저자이다. 미술관 100% 활용법은 미술을 보는 눈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책이다. 자기만의 고유한 생각과 안목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하는 책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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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D 2016-11-01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술관 다리는 느껴봤지만 조선왕릉 다리를 아직 느껴보지 못한 것이 개인적으로 부끄럽네요.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

벤투의스케치북 2016-11-01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반갑습니다. 조선왕릉도 시간나면 한 번 가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내가 남자 시인들의 작품을 잘 안 읽는 것은 도덕성이나 심성 면에서 남자 시인들보다 여자 시인들을 더 믿기 때문이다. 시 역시 심성과 다르게 작품으로 표현될 수 있지만 몇몇 남자 시인들의 시는 괴리(乖離)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내가 그 시인들의 삶을 알지 못하기에 무리한 말일 수 있지만 시를 보는 것만으로 즉 직관으로 판단하건대 심성과 꽤 다르게 표현된 시들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남자 시인들이 연이어 성(性)과 관련한 추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시를 읽지 않기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만일 그렇게 추문을 일으킨 시인들의 시를 읽었다면 참 황망할 것이며, 그런 시인들의 시집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지불한 돈이 아깝다는 마음이 드는 것을 억누르고 시집을 버려야 하는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 다행이다. 그렇다고 내가 남자 시인들의 시를 전혀 읽지 않은 것은 아니다. 황동규, 마종기, 고진하, 송재학, 박남준, 성윤석, 서동욱, 장석남, 송찬호, 엄원태 등의 시인들의 작품은 자주 읽는다.  


거론되지 않은 분들은 내가 미처 눈길을 주지 못한 분들이다. 정확히 이런 경우를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은 아니겠지만 문학은 혼자 하는 것이라는 성윤석 시인의 혜안이 반갑다. 아울러 시를 기법이나 수사(修辭)적 장치로 환원한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되었으면 좋겠다. 기법과 수사가 무용하다는 말이 아니라 마음은 돌아보지 않고 작품성만을 추구하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쓰는 사람은 물론 읽는 사람도 다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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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10-28 0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인이라는 말을 생략시켜 보면, 도덕성이나 심성 면에서 남자들보다 여자들을 더 믿기 때문이다, 일단 뛰어난 비교 구문에 밑줄긋고요, 현재 대한민국 정치,사회가 내홍을 겪고 있는 이유이기도 한 표리부동과 파렴치에서 괴리가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6-10-28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공감 감사드립니다. 달아주신 댓글에 공감합니다... 바르고 책임질 줄 아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의 '오래된 미래'는 제목이 역설적이다. 오늘 아침 경향신문에 피아니스트, 교수인 조은아 님의 관련 글이 실렸다. 호지가 공동체적 삶과 자연의 조화를 오래된 삶으로부터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글이다. 사실 오래된 미래란 개념은 느낌 또는 직관으로 포용할 수 있는 개념이지만 설명하는 것은 까다롭다고 할 수 있다. 철학자 베르그손이 한 말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과거는 기억에 의하여 부단히 현실화하고, 현재는 부단히 과거가 된다고 말했다. 이를 노르베르 호지의 개념에 적용하면 우리는 과거 즉 우리가 살았던 조화로운 공동체적 삶을 (미래의 어느 시점에) (재) 현실화해야 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과거를 바로잡거나 현실화하는 것도 미래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중요하다.(Ancient Fu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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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李箱과 도마복음예수
청가인 지음 / 도꼬마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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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 관심을 두던 때 외경(外經)의 존재를 알고 기독교가 거대한 신비 또는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외경이란 저자 불명, 권위 의심 등의 이유로 정경(正經)으로 인정받지 못한 경전을 말한다. 도마복음은 대표적 외경이다.(도마복음은 아타나시우스 신조 즉 지금의 정통 기독교의 교리에 대응해 쓰인 문서이다.)


청가인의 ‘이상(李箱)과 도마복음 예수’는 이상의 문학작품이 도마복음에서 언급된 예수의 가르침과 일치한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도마복음에서 묘사된 예수는 정경의 예수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우선 말할 것은 종교와 문학, 유대와 한국, 2000년의 격차 등을 감안했을 때 일치란 의외라는 점이다. 저자는 이상이 자아수행에 매진한 사람임을 주장한다.


개체유지본능과 종족유지본능을 포기하는 수행을 한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저자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소설 ’날개‘의 구절을 실제 이상이 박제가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라 해석한다. 이상은 이 세상을 구원적거(久遠謫居) 즉 깨닫지 못하면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유배지로 생각했다. 저자는 이상이 그 치열한 극단의 수행 사실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난해한 글을 썼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상을 육신으로 태어나서 신이 되어 돌아간 인간으로 정의한다. 이상은 기독교를 몹시 혐오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상은 기독교가 도마복음 예수를 무단 도용, 조작해 자신들의 목적에 합당한 복음으로 둔갑시켰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제국의 이익과 기독교의 이익이 만나는 곳에서 야합이 이루어졌을 것이라 말한다. 제국이 기독교로부터 원한 것은 (통합을 위한) 사상이었고, 기독교가 제국으로부터 원한 것은 힘이었다.


이상이 조작되었다고 생각한 성경 부분은 창세, 예수의 탄생과 죽음, 부활 등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생각하듯 이상은 폐인이 되어 주지육림을 헤매면서 대충 살다 간 사람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육신의 세상이 온통 허위라는 진실은 도마복음과 이상이 함께 생각한 부분이라 말한다. 저자는 도마복음은 조작되지 않은 순수한 것이라는 생각을 표한다. 이상은 남자와 여자를 서로 육신의 생활에 붙들어매어 자아수행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생각했다.


저자는 이상을 위고(프랑스), 세익스피어(영국)를 모두 합한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이며 도마복음 예수의 가치와 동등하거나 어쩌면 능가하는 작품을 쓴 존재로 본다. 예수는 먹고 마신 존재, 이상은 그와 반대되는 모습을 보이다가 간 존재라는 것도 이상이 도마복음 예수를 능가하는 이유들 중 하나이다. 저자는 도마복음의 핵심이 자아수행을 지금 당장 시작하라는 주장이고 자아를 체득한 후에는 이 세상이 허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내용이라 설명한다.


도마복음이 주장하는 것은 사람으로 태어나 음식을 먹는 것은 수행을 하기 위한 방편인데 음식에 매여 사는 것은 동물적이라는 것이 저자의 해설이다.(저자는 도마복음 전체를 상세 해설한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국문학 박사들 중 이상의 작품으로 논문을 쓴 사람들이 가장 많은 현실을 상기시키며 자신들도 잘 모르는 내용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제공하며 철밥통을 지키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말한다.(201, 202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도마복음 예수와 마찬가지로 이상은 인생을 여행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육신의 일들을 버리고 자아수행에 매진할 것을 강조했다. 이상은 도마복음을 접하지도 않은 채 오감(烏瞰)을 통해 바이블이 허구라는 사실을 알았다.(216 페이지) 도마복음과 지금의 성경이 보이는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이블에는 믿음에 대한 강조가 넘치는 데 비해 도마복음에는 믿음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219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기독교에서는 믿음을 강조할 수 밖에 없다. 수익 사업이기 때문이다. 도마복음 50장에는 예수가 우리는 빛에서 왔고 우리가 바로 그 빛의 아이들이며 우리는 살아 있는 아버지의 선택된 자들이라고 가르치는 구절이 있다. 특히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예수가 사람들이 너희 안에 있는 너희 아버지의 증거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그들에게 그것은 운동과 머무름이라고 답하라고 말한 구절이다.


저자는 이 구절을 읽고 가장 크게 놀랐다고 말한다.(222 페이지) 이상은 ’선에 관한 각서 1‘에서 운동에의 절망에 의한 탄생이라는 표현을 했다. 저자에 의하면 이는 ’운동과 머무름‘에 정확히 대응한다. 운동은 설명이 필요 없고, 절망(이상의 표현)은 머무름(예수의 표현)에 상응한다는 것이다. 도마복음에도 그 유명한 “복되도다 가난한 자여. 천국이 너희의 것임이라.”는 구절이 있다. 저자는 이를 자아수행으로 인하여 육신(마음이나 심령이 아닌)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너희의 것이기에 복되도다란 의미로 풀고 있다.


자아수행을 거듭 강조하는 도마복음의 논리를 따르면 수행을 하면 육신은 가난해질 수 밖에 없다는 말이 가능하다. 자아수행을 강조한 장은 여럿이지만 특히 2장이 주목된다. “추구하는 자들은 찾을 때까지 멈추지 말라. 찾고 나면 고난 받을 것이요. 고난 받으면 놀라워할 것이며 모든 것을 다스릴 것이니라.”(109 페이지) 이상은 육신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벗어나기 어려운 본능을 기독교가 설치한 덫 즉 일요일의 붉은 빛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인간을 기독교의 신이 아니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속임으로써(믿음을 강조함으로써) 자아수행에 매진해야 할 시간을 송두리째 빼앗아 갔다고 생각했다.(231 페이지) 이를 보면 불교의 경우가 생각난다. 기복 불교가 결국 수행 시간을 빼앗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예수가 너의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알지 못하게 하라는 말을 했음을 설명하며 이상이 남몰래 자아수행을 한 사실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은 이상하다고 마무리짓는다.(241 페이지)


예수는 십자가를 고난의 상징으로 보았고 이상은 이단(異端)의 상징으로 보았다. 이 차이 말고는 양자의 차이는 없다. 예수는 모든 것을 아는 자라도 자신을 온전히 알지 못하는 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자라는 말을 했다.(도마복음 67장) 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한 말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결국 니체의 말을 도마복음에 적용하면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자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틈나는 대로 반복해 읽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공감한다. 난해하고 비밀스런 두 텍스트를 비교 분석한 책을 읽는 것은 쉽지 않다. 덧붙여 다른 도마복음 해설서를 읽을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상은 육신을 벽으로 상정했다. 자아합일을 위한 수행에 가장 큰 걸림돌은 인간의 육신이기 때문이다. 이상은 ‘지도의 암실’이란 작품에 나오는 바 ‘발간 몸뚱이를 가지고 다니는 무거운 노역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갈망‘대로 자신의 몸을 박제로 만들었다.(280 페이지)


참 의미심장한 구절이고 해설이다. 도마복음의 의도는 우리 몸이 육신의 부모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모르고 육신의 것들에 매몰되어 자아수행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데 있다.(289 페이지) 예수는 ”영혼에 의지하는 자는 육신은 비참하리라. 육신에 의지하는 영혼 또한 비참하리라.“란 말을 했다.(112 장: 본문 299 페이지)


주류로부터 인정받지 못하지만 설득력을 지닌 책 또는 저자들이 꽤 있다. 김환희의 ’국화꽃의 비밀‘이 대표적이다. 문학평론가 반경환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나는 ’이상과 도마복음 예수‘를 읽으며 김환희의 책을 읽을 때 맛본 종류의 짜릿함을 느꼈다. 두 책은 모두 주류의 해석에 반(反)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두 저자의 설득력은 충분한데 말하고 싶은 것은 주류의 완고함이다. ’이상과 도마 복음 예수‘는 힘 있는 좋은 책이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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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하늘 2018-04-22 0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책 이상과 도마복음예수에 대한
훌륭한 서평 감사합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책을 힘있는 좋은 책으로 써주신
마지막 부분에 대해 특히 더 감사드립니다. ㅎㅎㅎ...

좋아요를 누른 분 중에
늘 보고싶은 동쪽숲 님도 보여
마음이 따스해집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8-04-23 04:22   좋아요 0 | URL
네.. 감사드립니다...반갑습니다.. 다음 행보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