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은 “죽은 건축 유형”(조재모 지음 ‘궁궐, 조선을 말하다’ 4 페이지)이다. 너무 앞서 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건축물들 중 대표적인 경복궁이 몇 번의 방문과 공부로 인해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간 단발적이나마 건축 관련 책들을 10여 권 읽었지만 문제의식 없이 읽었기에 공부가 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지금은 궁궐을 건축적 안목으로 보려 하고, 분석도 하고 종합도 하겠다는 마음으로 대하기에 예전에 생각하지 못한 생각들이 떠오른다.
경복궁의 왕의 침전(寢殿)인 강녕전(康寧殿)에 용마루가 없는 것에 대해 말하고 싶다. 이에 대해 한 논자는 “확실한 근거는 없지만”이란 단서를 단 뒤 용을 상징하는 왕이 잠자는 곳에 또 용을 둘 수 없어 그렇게 된 것이라는 말을 한다. 물론 경복궁의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과 창경궁의 전각인 통명전, 창덕궁의 침전인 대조전 주변의 집상전에도 용마루가 없다는 말을 하며 왕이 잠자는 곳에 또 용을 둘 수 없어 그렇게 되었다는 말의 오류를 지적하는 필자(김동욱 지음 ‘한국 건축 중국 건축 일본 건축’ 119, 120 페이지)도 있고, 용으로 비유되는 무소불위의 왕이 머무는 공간인 침전에 용마루를 두는 것은 용이 용을 누르는 형국이기에 용마루를 설치하지 않았다는 말은 그야말로 속설일 뿐이라 지적하는 필자(이향우 지음 ‘궁궐로 떠나는 힐링 여행 경복궁’ 166, 167 페이지)도 있다.
이 분은 중국의 경우 왕의 권위와는 상관 없이 용마루 없는 무량각 지붕으로 지어진 일반 집들이 아주 흔하다는 말을 하며 차라리 음양오행의 상징적 개념으로 볼 때 자연의 기(氣)를 차단하는 용마루라는 무거운 인공 시설물을 설치하지 않고 곡와(曲瓦: 안장 기와)를 써서 무량각 지붕으로 처리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이치에 맞을 수도 있다고 덧붙인다.(같은 책 167, 168 페이지) 전자(前者)가 왕의 침전 외에 용마루가 없는 일반 건물도 있다는 말을 함으로써 무량각(無梁閣: 용마루 없는 건물) 관련 속설이 잘못된 것임을 일깨운 것이라면, 후자(後者) 역시 같은 차원의 말을 했으나 음양오행 차원의 이야기를 더한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후자의 두 번째 말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다른 곳은 왜 하중을 견디는 부담이 덜 가는 가벼운 건물인 무량각을 설치하지 않았는지, 하는 물음이다. 그리고 임금이 관료들과 정사를 토론하고 (성리)학자들로부터 경서(經書)와 역사서를 배운 편전(便殿)은 또 어떤가. 그곳에는 용마루가 있는데 임금 홀로 지내는 것이 아니라 관료들이나 학자들과 함께 하는 공간이기 때문인가? 용이 용을 누르는 것이든 무리한 하중을 가하는 것이든 타인들과 함께라면 견딜 만하다는 것인가?
단청의 녹색 안료(顔料)인 뇌록이 경상도 장기현 뇌성산에서만 나기에 다양성이 줄어들고 획일화된 것처럼, 안료가 비싸 소박하고 절제된 단청 채색이 된 것에서 보듯 물리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건축과 교수인 조재모 교수는 역사 전공자들은 궁궐을 둘러싼 사건 및 인물에 관심을 두고 건축 전공자들은 건물의 형태에 초점을 맞추고 대중적인 저술을 쓰는 사람들은 문양과 상징을 이야기한다는 말을 한다.(같은 책 6 페이지)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자신의 갈증은 그 사이 어느 지점에 존재하는 듯 하나는 말을 한다. 이 말을 접하며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단청을 궁궐과 임금의 중용을 상징하는 차원으로 보고 자료를 찾다 지친 나는 생태적 지위라는 뜻의 니치(niche)란 말을 생각하게 된다. 벽감(壁龕)이란 의미도 있고 틈새 시장이란 의미도 있지만 생태적 지위란 말을 선호하는 것은 무릇 모든 글은 지위(地位)를 얻기 위한 투쟁이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물론 틈새시장도 유사한 차원의 말이지만 즉물적이어서 싫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지 걱정이 큰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