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사랑하기 어려운 시대이다. 사회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정신분석학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르네 지라르의 분석이다. 그는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에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욕망을 모방한다는 주장을 했다. 지라르에 의하면 거짓이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함에도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욕망한다고 믿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라깡이 지라르에게서 영향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그 역시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란 말을 했다. 이는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욕망한다‘는 의미와 ‘다른 사람의 욕망을 욕망한다‘(다른 사람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다른 사람의 욕망을 모방한다)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어제 마포의 한 주민센터에서 정지은 선생님의 ‘왜 사랑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질까?‘ 강의를 들었다. 최근 나온 ‘헬조선에는 정신분석‘의 공동 필자로 참여한 분으로 정신분석에 기반을 둔 사랑론을 주로 펼치는 필자이다. 결론은 성을 사랑을 위해 사용하는 것, 사랑의 욕망을 위해 사용하는 것, 그럼으로써 욕망의 주체, 결여의 주체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인격 전체가 아닌 대상(부분)에 집착하는 충동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욕망은 만족할 줄 모른다. 스스로를 결핍의 주체로 만들어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욕망이다. 물론 일반적 의미의 욕망과는 구분해야 하는 용어이다.)
일본의 경우 사토리(득도得道)세대가 있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에 태어나 현재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까지의 나이에 이른 사람들인 사토리 세대는 현실적 출세와 사랑 등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득도한 것처럼 욕망을 억제하며 살고 있다.
만족하며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안과 우울에 휩싸이기도 하는 그들은 정신분석적으로는 죽음 충동에 근접한 사람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절멸(絶滅)이다. 절멸은 피해야 할 것이다. 정 선생님도 사회적 차원을 언급했다.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어 사랑에 적극적인 프랑스 젊은이들을 예로 든 것이다. 그런데 헬조선인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