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풀랑, 자크 이베르, 올리비에 메시앙, 프랑크 마르탱 등의 곡들을 즐겨 듣던 때가 있었다. 독일어권의 고전과 낭만 음악을 위주로 한 감상 습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다.

결국 그 낯선 세계에 안착하지 못했지만 클라리넷과 플룻, 바순(파곳), 오보에 등의 목관 악기(woodwind instruments)를 중심으로 새로운 세계에 귀의(歸依)하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가장 세련되고 현대적인 목관악기는 무엇일까? 어떤 곡에 쓰이는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클라리넷이 아닐까 생각한다.

모차르트 협주곡, 퀸텟, 브람스 소나타, 트리오, 퀸텟 등을 주로 들어왔지만 현대 작곡가들의 repertoire도 많다.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quartet에 클라리넷 파트가 인상적이고 현대 음악은 아니지만 라벨의 볼레로에서도 클라리넷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 피아노 협주곡 2번, 슈베르트의 교향곡 8, 9번에서도 클라리넷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드뷔시의 프리미어 랩소디, 영국 작곡가 말콤 아놀드(Malcolm Arnold: 1921 - 2006)의 소나타, 프랑스 작곡가 프란시스 풀랑(Francis Poulenc: 1899 - 1963)의 소나타도 좋다. 윤이상 님의 퀸텟은 공부하듯 아니면 명상하듯 들을 곡이다.

음악적 공간에는 원근법도 중력도 없다. ˝일상의 속박을 무효화시킨 자유의 공간˝(서우석 지음 ‘물결 높던 날들의 연가‘ 118 페이지)인 음악적 공간에서 유영(遊泳)할 수 있어 다행이다.

나는 지금 슈베르트 교향곡 9번 2악장 도입부의 높이 나는 경쾌함을 감상한다.

˝봄날엔 모두/ 하늘로 오른다/ 땅속 깊은 곳에서 쭈욱 물 빨아올리고/ 새싹 틔우는 나무들/ 그 나무들 위로 아지랑이 비행기 새들이/ 가뿐하게 두 팔을 들고 비상하고...˝(염명순 시인의 ‘봄날엔‘ 중 일부)란 시와 함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서울, 성 밖을 나서다 역사지리학자와 함께 떠나는 걷기여행 특강 2
이현군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리학자 이현군의 '서울, 성 밖을 나서다'는 지금의 서울은 도성 안이 아니라 성 밖에 새로 만들어진 도시라는 의미를 지닌 제목의 책이다. 가령 서초, 송파, 강남 3구와 여의도는 조선 시대 한양이 아니었다. 서초구는 경기도 과천이었고 강남, 송파, 강동은 경기도 광주였다.

 

지난 문화해설사 수업 시간(20161027) 서울 강남의 선정릉(宣靖陵)을 보며 강남 도심에 왕릉이 있다니, 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사실은 강남에 봉은사와 선정릉이 들어선 것이 아니라 사찰과 왕릉이 있는 한강 남쪽의 옛 경기도가 서울에 편입된 것이다.(207 페이지)

 

저자는 서울 변화사를 공부하기 전에는 강남을 서울로 알았었다고 한다. 현재 서울은 강북 14, 강남 11구 등 총 25구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시대 한성부의 핵심은 도성 안이다. 북의 백악, 서의 인왕, 남의 목멱, 동의 타락산으로 둘러싸인 곳이 도성이다.

 

나도 착각을 하고 있었다. 강남, 서초, 송파의 강남 3구라는 말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관악, 영등포, 금천, 구로 등의 구가 강남이라는 말에 의아함을 느꼈던 것이다. 착각할 만한 것은 또 있다. 대개 북쪽이 위가 되게 지도를 그리고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에 한강 남쪽의 하천이 한강으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안양천과 탄천이 남쪽에서 발원하여 한강으로 들어가는 하천이다.

 

저자는 지리학의 관점, 공간과 장소의 맥락에서 서울을 넷으로 나눈다. 사대문을 기준으로 한 도성 안, 한성부에 포함되었지만 도성 밖에 해당하는 지역, 한강, 현재 서울에 포함되는 조선시대 경기도 지역 등이다.

 

한강은 강원도에서 발원한 북한강과 충청도에서 시작된 남한강이 양수리에서 만나 한성부 남쪽을 흘러 서해에서 임진강 및 예성강과 만나는 강이다. 강남 지역은 조선시대에는 경기도였던 곳이다. 1943년은 구() 제도가 시행된 해이다. 우리나라는 원래 섬나라(반도?)가 아니었다. 분단이 되면서 남한은 섬이 되었다.

 

무슨 무슨 로()라는 말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서 따온 말이다. 성 밖을 나가면 어느 고을에 도착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름이다. 조선 시대 성곽은 일제 강점기 전후로 계속 파괴되었다. 주로 파괴된 지역은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 주요 교통로였다. 광무 3(1899) 5월 서대문과 청량이 사이에 전차가 개통되던 때 동대문과 서대문 부분의 성곽 일부가 철거되었다.

 

광무 4(1900) 종로와 용산을 연결하는 전차 궤도가 부설되면서 남대문 부근의 성곽 일부가 철거되었다. 남대문 부근의 성곽이 대대적으로 철거된 것은 융희 원년(1907)이다. 1907년 일본 왕의 아들이 한국을 방문했는데 이때 성벽처리위원회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성벽을 파괴해 나갔다.

 

도성의 성곽이 사라지면서 성문을 여닫는 것이 의미가 없어져 인정(人定), 파루(罷漏) 제도도 사라졌다. 인정(人定)은 조선시대 치안 유지를 위해 실시한 통행 금지 제도로 매일 밤 10시경에 28번의 종을 쳐 성문을 닫고 통행 금지를 알린 것이다. 파루(罷漏)는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기 위하여 새벽 4시경에 종을 33번 친 것이다.

 

전농(典農)은 조선 시대 왕이 농사 시범을 보이던 곳이다. 친경(親耕)은 왕이 농사를 직접 짓던 일이다. 적전(籍田)은 왕이 농사를 짓던 밭이다. 전농동의 전농이 典農인데 궁의 후원에 친경지(親耕地)나 친잠지(親蠶地)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궁 밖의 특정 지역에서도 왕이 농사 시범을 보인 것이니 낯설게 느껴진다.

 

동헌(東軒)과 객사(客舍) 중 중요한 것은 객사(客舍)이다. 객사는 여관이 아니다. 살아 있는 임금의 신위가 모셔져 있던 곳이다.(75 페이지) 사찰은 종교 시설이기도 했지만 지역의 거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조선 시대 태조는 새 도읍지를 찾는 과정에서 회암사에 머물기도 했다.(78 페이지)

 

광진구는 경기도 구리시와 경계가 되는 곳이다. 수락산, 불암산, 용마산, 아차산이 중랑천 동쪽의 맥을 형성하고 있다.(86 페이지) 아차산(峨嵯山)에 올라가면 경기도까지 가본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전망이 좋다. 한강도 잘 보이고 강남도 보이고 경기도도 보인다. 전철을 타고 오지만 멀리 온 것처럼 느껴진다. 아차산은 봉수대가 있던 곳이다.(87 페이지)

 

도성 안의 대로는 궁궐에서 시작한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에 있는 세종로가 가장 큰 길이다. 종로는 동대문과 서대문을 연결하는 큰 길이다.(110 페이지) 남산은 서울의 남산이 아니라 한양 도성의 남산이다. 서울의 남산은 관악산이다.(112 페이지)

 

현대 도시 서울을 이해하려면 밤에 답사를 다녀야 한다. 남산에서 내려다 본 야경 속에 서울의 숨겨진 도시 질서가 보인다. 낮에는 모든 것이 다 보이기에 오히려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할 수 있다. 어둠 속에서 별이 더 빛나듯 자본주의 도시 서울은 밤에 더 잘 보인다.(113 페이지)

 

현재 서울시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향교가 양천향교(강서구 가양동 234 번지) 조선 태종 때 창건된 것인데 지금 우리가 보는 향교는 새로 복원한 것이다.(133 페이지) 양천향교 역 근처에 겸재 정선 기념관이 있다.(136 페이지)

 

정조가 수원 화성으로 가던 길은 두 갈래였다. 남태령을 넘어 과천을 지나 수원으로 가는 길과 시흥을 지나는 길이다. 정조는 과천에 사도세자를 죽게 한 김약로의 형 김상로의 무덤이 있어서 그 꼴을 보기 싫어 시흥을 통하는 길을 이용했다고 한다.(151 페이지)

 

저자는 전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다음이 낙성대역인데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낙성대도 대학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낙성대는 하늘에서 별이 떨어진 터 즉 낙성대(落星垈)이다. 한 사신이 있어 밤에 시흥군에 들어오다가 큰 별이 인가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아전을 보내 보게 했는데 마침 그 집 며느리가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가 강감찬이다.(160, 161 페이지)

 

서울 특별시 기념물 1호가 잠원동의 뽕나무였다. 남산이 누에머리 모양을 닮았고 누에 먹이가 되는 뽕이 많아야 하기에 잠원과 잠실에 뽕나무를 심은 것으로 서초구청 자료집인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서초전은 말한다.

 

한양 도성에서 남한산성으로 가려면 송파진과 광진을 건너야 한다. 송파진 옆에 송파창이 보이고 그 남쪽에 삼전야(三田野)가 표시되어 있다. 송파창과 삼전야 사이에 삼전도비가 있다. 정식 명칭은 대청황제 공덕비이다. 청태종에게 인조가 세 번 절하고 땅에 이마가 닿도록 아홉 번 고개 숙이는 치욕(삼배구고두례: 三拜九叩頭禮)을 당했다. 비석에 새겨진 글자는 여진(청나라) 문자, 몽골문자, 한자 등이다.(189 페이지)

 

잠실(蠶室)은 뽕나무 밭, 누에치기, 양잠 등에서 유래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지금은 휘황찬란한 도시가 되었다.(199 페이지) 석촌호수에서 좀 더 동북쪽으로 가면 올림픽 공원이 나온다. 86 아시안 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이 유치되면서 조성되었다. 원래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동네였는데 그들을 내보내고 공원으로 만들어졌다. 조성 당시 발굴단 총지휘자가 군인이었다고 한다.(201 페이지)

 

앞서 선정릉 이야기를 했지만 그 능이 있는 곳은 삼릉공원이라 불린다. 성종과 정현왕후 윤씨의 무덤인 선릉, 성종의 아들이 중종의 무덤인 정릉이 있기 때문이다.(204 페이지) 서울의 중심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려면 고등학교의 이전을 살펴보면 좋다. 현재 강남의 서울고, 휘문고, 경기고, 숙명여고, 동덕여고, 경기여고, 정신여고 등은 강북에 있던 학교였다. 옛 서울의 중심은 강북 그 중에서도 도성 안이었다. 종로의 정독도서관 입구에 중등교육발상지라는 표지석이 있다. 이곳에 경기고등학교가 있었다.

 

서울고등학교는 경희궁()에 있었다. 일제가 옛 궁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고등학교를 세웠다.(210 페이지) 서초, 강남, 송파구의 도로망은 격자형이다. 지역을 개발할 때 인공적으로 도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211 페이지)

 

앞에서 강남, 서초, 송파의 강남 3구라는 말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관악, 영등포, 금천, 구로 등의 구가 강남이라는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고 말했는데 저자 역시 서울에서 강남 중의 강남은 그 세 구로 서울시민마저 소외시킨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1963년 이전에는 서울도 아니었던 곳, 영등포 동쪽이었던 곳이 진짜 강남이다. 이제 어느 지역에 사는가가 경제적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었다.(212 페이지) 저자는 집은 투자 대상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 말한다.(222 페이지)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말이 기억난다. 저자는 이러다가 서울에 아파트(a part - ment: 분리된 개인 주택)만 들어서는 것은 아닌지 우려한다.

 

현재 서울의 의미는 역사성이나 문화중심지라기보다 아파트가 비싼 곳으로 인식된다. 이제 생각의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224 페이지) 회복이 필요하다.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어도 되살릴 수 있는 것은 다시 살려야 한다. 저자는 말한다. 앞에서 말한 산과 하천을 다 외울필요는 없다고. 그리고 집 근처에 있는 산을 먼저 올라가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말한다.

 

강도 마찬가지이다. 강은 흐르고 연결된다. 이 하천을 따라 걸으면 한강을 만나고 한강을 따라 걸으면 또 다른 하천을 만난다. 조금씩 산, 계곡, 하천을 따라 걷는다면 어느 순간 서울의 자연이 머릿 속에 그려질 것이다.(229 페이지)

 

서울, 성 밖을 나서다를 읽음으로써 올해 뒤늦게 알게 된 이현군의 책을 두 권째 읽게 된 것이다.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는 다소 생소했지만 서울, 성 밖을 나서다는 저자의 논지에 내가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에 비해 쉬워서인지 구체적이고 생동감이 느껴졌다. 서울을 더 많이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음을 말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무산되었다. 다른 나라의 도시 성벽에 비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유산 자체가 큰 몫을 차지하겠지만 관계자들의 노력도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주민들의 보존 노력이 중요한 관건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지자체마다 자기 지역의 문화유산을 등재시키려고 애쓰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관광 수입 증대만 생각하고 있다고 우려하는 소리도 함께 들리고 있다.

서울시사편찬위원회가 편저한 ‘서울육백년사‘3권을 참고한 지리학자 이현군에 의하면 조선 시대의 성곽은 일제 강점기 전후로 계속 파괴되어 왔다.

주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과 주요 교통로가 주로 파괴되었다.1899년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에 전차가 개통될 때 동대문과 서대문 부근의 성곽 일부가 철거되었다.

1900년 종로와 용산을 연결하는 전차 궤도가 부설 되었을 때 남대문 부근의 성곽 일부가 철거되었다.

또한1907년 일본 황태자가 한국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만들어진 성벽처리위원회에 의해 조직적으로 파괴되었다.(‘서울, 성밖을 나서다‘ 49 페이지)

이현군은 도시의 성곽이 사라지면서 성문을 여닫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게 되었고 이로써 인정(人定)과 파루(罷漏) 제도도 사라졌다고 말한다.(인정과 파루는 종을 쳐서 야간 통행금지를 알리는 것이다.)

성곽 복원 사업은 시작된1975년에 시작되었다. 그해에 광희문, 다음해인 1976년에 숙정문, 1994년에 혜화문이 새로 만들어져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지난 해 말 문화해설사 수업 시간에 한양도성을 찾았다. 한겨울 추위 속에 참 좋았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문화해설사 공부를 함께 한 분이 찍어 단톡방에 올린 혜화문 사진을 보며 그때의 추억을 떠올렸었다.

그 성(城)과 문(門)들을 다시 찾는다면 당시보다 조금은 나아진 시각으로 새로운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비틀어 모든 표준어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하나의 조건(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하나이고 비표준어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상황입니다.

정확한 꽃 이름들, 잘 알았습니다... 프리지어, 튤립, 아네모네, 히아신스, 라벤더, 재스민...

고맙습니다... 꽃물결 꽃사태 꽃천지 속 꽃가마 타고 꽃구경이나 가고 말겠습니다 꽃의 몸으로 환생하고 말겠습니다란 말을 한 시인의 얼굴이 떠오르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이코의 섬‘(1994년 민음사 출간)에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한 시도라 고백함으로써 묘한 감동을 준 정신과 의사 한스 요하임 마츠의 후속작인 ’릴리스(Lilith) 콤플렉스‘가 나온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4년이다.

이 책에 ’내적인 부모‘라는 말이 나온다. 저자는 자신에게 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그들의 부모가 범한 잘못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고 증오와 실망, 고통과 비애 등을 털어놓는데 그렇게 해야만 정신적인 고통이 치료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가 분석하는 부모는 지금의 부모가 아니라 내적인 부모이다. 즉 환자가 기억하는 부모이자 환자의 마음 속에 저장된 부모인 것이다.

릴리스는 아담과 같은 방식으로 신에 의해 창조된 여자를 말한다. 둘은 평화롭게 살 수 없었는데 그것은 릴리스가 자신과 아담은 모두 흙으로 빚어진 존재이기에 서로 동등하다고 주장하며 아담에게 복종하지 않아서이다.

저자는 자신의 책 내용이 비록 환자들의 마음을 분석한 데서 나온 것이지만 소수의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내용은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심리 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유년 시절의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이를 사회에서 해소하기에 여러 병적인 징후(나치즘, 사회주의, 극좌파와 극우파, 테러, 근본주의, 소비지상주의 등)가 생겨난다고 설명한다.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참고점이 될 만하다. 물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부분이 아니다. 내적인 부모라는 개념과 비교할 만한 것을 한 행동약리학자의 책(’중독의 모든 것‘: 2016년 출간)에서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 내적인 부모라는 개념에 견줄 것은 심리적 부모라는 개념이다. 실제(實際)의 부모가 아니라 아이의 마음 속에 살고 있는 부모 같은 존재를 말한다.

저자 히로나카 나오유키는 훌륭한 부모 밑에서 잘 자란 자녀 중에도 망가질 사람은 망가지고, 형편 없는 부모가 멋대로 키워도 잘 자라는 사람도 있다고 말한다.

한스 요하임 마즈가 말한 내적인 부모는 지금의 부모가 아니라 한 사람의 어린 시절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부모를 말한다.

한편 히로나카 나오유키가 말한 심리적 부모는 실제하는 부모가 아니라 이상적인 부모의 의미로 읽히는 존재이다.

부모 특히 아이 시절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내 궁금증 중 하나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애정 결핍은 예외 없이 어머니 같은 여자를 마음에 두는지 아닌지, 애정 결핍이 어머니 같은 여자를 마음에 두게 한다면 그것이 유일한 원인인지 아닌지 등이다.

한스 요하임 마즈가 그렇듯 자본주의 사회를 병든 사회로 규정하는 “싸우는 심리학자” 김태형은 모성 신화의 허구를 말한다.(’부모 – 나 관계의 비밀‘ 참고)

저자는 어머니들에게는 타고난 모성 본능이 있다는 의미를 가진 모성 신화는 진실이어서가 아니라 이용가치가 있어서 만들어지고 유포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남자들은 모성신화를 긍정함으로써 양육문제를 여성에게 떠넘기려 하고, 여자들은 이를 이용해 “내 아이는 내가 잘 알아요“라는 말로 자녀 양육의 잘못을 방어하려 하고, 자녀들은 모성신화를 내세워 자신의 어머니의 문제를 직면하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마즈의 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마즈는 어머니 없는 동독 사람은 초기 결핍이라는 무의식적 위기 상황을 보완할 수 있는 사회적인 친밀함과 연대를 만들었고, 어머니 없는 서독 사람은 개인주의와 나르시스적인 만족(소비, 명예욕, 오락)을 통해 결핍을 보상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릴리스 콤플렉스‘ 234 페이지)

동독과 서독을 대비해 설명하는 것은 ’사이코의 섬‘에서도 시도된 것이다. 마즈의 말에 애정 결핍을 겪은 사람이 후에 모성적인 여성을 원한다는 말은 없다.

물론 마즈의 초점은 병리적 행동에 있기에 어머니 같은 여성을 마음에 두는 것에 대해서까지 논의를 한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다른 전문가의 말을 참고해 넓게 볼 필요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