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김영민 교수가 말한 ‘예열 없는 공부‘란 말의 의미는 다소 아니 많이 어렵다.
그에 의하면 ‘예열 없는 공부‘란 신체와 정신, 무의식과 지성, 의욕과 욕심의 근대적 분화(分化)와 물화(物化)를 깨고 새로운 몸(삶의 양식과 버릇)을 얻고 길러 인간의 통전적 성숙을 위해 그 몸을 경첩으로 삼아 갖은 이치들을 융통케 하는 것이다.
내가 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김 교수가 설명한 공부는 분열 없는 공부, 소외 없는 공부라 불러야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는 것이다.
어떻든 나는 ‘예열 없는 공부‘보다 ‘지체 없는 공부‘ 즉 뜸 들이지 않는 공부를 말하고 싶다.
‘지체 없는 공부‘란 불필요한 예비 동작 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의미한다.
남양주 실학 박물관 가는 길에 들고 나온 제임스 글릭의 ‘인포메이션‘도 바로 본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의 사이트를 찾고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의 감수(監修)의 글을 읽고 글릭의 전작인 ‘카오스‘에 관한 내용을 검색하고 심호흡을 하고..등등의 동작을 하고 책을 본격적으로 읽고 있으니 영락 없이 지체하고 우회하고 허송하는 공부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것도 공부를 방해하는 것이다. ‘무슨 무슨 책을 읽기 전에‘나 ‘무슨 무슨 책을 읽으며‘보다 ‘무슨 무슨 책을 읽고‘ 형태의 글을 써야겠다.
어떻든 정말 문제인 것은 지금 필요한 것과 당장 필요한 것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다.
많은 지체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시간은 부족하고 읽을 책은 많음을 늘 유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