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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는 나무
장세이 글.사진 / 목수책방 / 2015년 5월
평점 :
문화 해설 공부를 하다 보면 3이란 숫자를 자주 접하게 된다. 궁궐의 3문 3조(三門 三朝: 경복궁의 경우 광화문, 흥례문, 근정문/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3재(才: 천지인), 3도(道: 신향로, 어로, 세자로), 3간택(揀擇), 주역의 3효(爻) 등이다.
장세이의 ‘서울 사는 나무’를 접하고 저자가 한 이야기는 나무 이야기이지만 결국 이는 집, 나무, 사람이라는 (변형된) 3재(才)를 이야기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 전문서는 3재를 가치를 의미하는 천(天), 법칙을 의미하는 지(地), 주체를 의미하는 인(人)으로 풀었다.(송희식 지음 ‘존재로부터의 해방’ 163 페이지)
3이란 숫자에 눈길이 가서인지 ‘서울 사는 나무’ 역시 서울의 세 곳(길가, 공원, 궁궐)에 사는 나무들을 이야기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물론 앞에서 말했듯 나무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집(길가, 공원, 궁궐), 그리고 사람까지 함께 어우러진 드라마이다.
역시 3이란 숫자로 볼 것이 하나 더 있다. 하수(下手)는 꽃을 보고, 중수(中手)는 잎을 보고, 고수(高手)는 잎도 꽃도 없는 한 겨울 줄기를 보고 나무를 구분한다고 한다는 이야기이다.
‘논어’ 자한(子罕)편에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 것을 알게 된다“는 구절이 있지만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나무를 잘 아는 사람이 누구인지 드러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숲 해설사인 저자는 ”고백하건대 벚나무를 제대로 모르고 살았다. 이제라고 잘 아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살아남으려 꿀샘을 만들고 꽃만큼 단풍이 고운 나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안다.“고 말한다.(33 페이지)
길가와 공원의 나무들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시민들이고 궁궐의 나무들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왕 또는 왕족들이다. 물론 ‘서울 사는 나무’는 길가, 공원, 궁궐 등을 두루 돌아다닌 저자의 관점에 따라 엮인 이야기 모음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헌법재판소에 백송(白松)이 유명하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수많은 이를 죽여 온 동네가 피바다가 되자 이를 덮으려 재를 뿌려 잿골로 불리다가 지금은 재동(齋洞)으로 불린다.(재를 뿌려 덮은 것과 목욕재계의 재의 차이는 무엇일까?)
지난 5월 27일 미래 유산 해설대회 시나리오 작성을 위해 바로 그 재동 백송을 찾았다. 역사/ 문화, 시민 생활, 나무가 결합된 해설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제시된 대회이다. 이 역시 3재(才)라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백송 말고 가문비 나무도 유명하다. 나무 껍질이 검어 검은피 나무 즉 흑피목(黑皮木)으로 불리다가 가문비 나무가 된 것에서 알 수 있듯 가문비 나무는 검다. 저자는 헌재가 하는 일을 두 나무가 희고 검고로 차이나듯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것이라 말한다.(76 페이지)
저자가 다닌 다양한 명소들을 보면 체험이 많은 것을 말해줌을 알 수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수업을 받은 것이 지난 해 12월 두 차례였다. 경희궁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저자에 의하면 경복궁은 문화재청에서 관리하고, 전각이 여기저기 팔려나가고 정전인 숭정전(崇政殿)마저 옮겨진 경희궁은 공원으로 분류되어 서울시의 관리를 받는다.(153 페이지)
숭정전은 경희궁에서 즉위한 정조가 즉위 일성으로 ”나는 사도 세자의 아들“이라 선언한 곳이다. 슈베르트의 ‘보리수(菩提樹)’에 나오는 보리수의 정확한 이름은 피나무라고 한다. 저자에 의하면 ”식물학자가 아니라면 피나무 종류는 매우 비슷하여 거의 구분하기 어렵다.“고 한다.(204 페이지)
저자는 삼청공원의 나무 지도를 만들기도 했다.(224 페이지) 나무 이름을 모르니 부를 수 없고 그래서 아쉬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감한다. 49만여 제곱미터의 거대한 창덕궁은 절반 이상이 후원 곧 숲이며 무려 16,000여 그루의 나무가 살아간다. 그런데 회화나무는 후원이 아닌 대문 앞에 심어져 있다. 중국에서처럼 삼정승(三政丞)을 상징하는 나무이기에 그렇다.(289 페이지)
괴(槐)는 느티나무일 때는 괴, 회화나무일 때는 회로 읽는다. 정조 이야기를 했지만 창덕궁 낙선재(樂善齋)는 정조의 증손자 헌종의 사랑채이다. 낙선재는 단청을 하지 않은 백골(白骨)집이다. 연경당(演慶堂)도 그렇다. 단(丹)/ 청(靑) vs 백(白)의 대비는 이해하려만 골(骨)이라니...연경당은 계동마님댁의 모델이다.
저자의 행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종묘(宗廟)행이다. 저자는 종묘도 궁궐이라 말한다. 신들의 궁궐인 신궁(神宮)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종묘는 망묘루(望廟樓)만 팔작지붕이고 정전(正殿), 영녕전(永寧殿), 전사청(典祀廳), 향대청(香大廳), 재궁(齋宮) 등이 모두 맞배지붕이라는 점이다. 맞배지붕은 소박미가 있다.
궁궐은 왕이 살아 있을 때 살던 곳이고 종묘는 사후 영혼이, 능은 몸이 사는(묻힌) 곳이다. 이 역시 3재(才)라 할 수 있다. 종묘 정전은 건물 색이 밝았다가 진했다가 한다. 처음 짓고 난 이후 계속 덧지은 결과다.(368 페이지) 저자는 언제부터인가 종묘에 들면 재궁 앞 물박달나무를 찾는다고 한다.
저자는 기품도 없고 단정치 못한 물박달나무가 어떻게 종묘에 살게 되었는가를 묻는다. 나는 비무장 지대에 사는 나무들 특히 북의 화공(火攻)에 타는 나무들을 보며 참 기구(崎嶇)한 나무들이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험할 기, 험할 구) 종묘 연못에는 향나무가 있다. 초혼(招魂)의 나무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제사 공간의 상징성을 고려한 결과라는 말도 있다.
저자는 “백성 없는 왕이 어디 있던가. 민초의 신산한 삶을 대변하는 물박달나무는 꿋꿋이 신들의 정원에 살며 ‘우리도 기억하라’고 외친다.”고 말한다.(375 페이지) 빵으로 치면 페스트리, 사무용품으로 치면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은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나무가 물박달나무이다. 나무 이야기는 결국 삶의 이야기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