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고전/ 낭만 음악의 엄격과 무게감에서 자유롭고 싶은 때가 있다. 이럴 때 사티, 포레, 라벨, 드뷔스 등의 프랑스 근대 음악들을 듣는다. 올리비에 메시앙, 클로드 볼링, 피에르 불레즈 등의 현대 프랑스 곡들을 듣곤 하지만 아직은 익숙하지 않다.
미국의 작곡가 애런 코플런드(1900 – 1990)는 ˝진정한 음악 애호가는 옛날 것이건 요즘 것이건 가리지 않고 예술의 모든 형태에 친숙해지고자 하는 압도적인 열망을 가진 사람인 경우가 많다.“는 말을 한다.(‘음악에서 무엇을 들어낼 것인가‘ 41 페이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바흐, 베토벤, 브람스 등 3B로 대표되는 시대의 음악을 닳고 닳은 음악이라 칭하는 코플런드의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사티, 포레, 라벨, 드뷔스 가운데 내가 가장 친근감을 느끼는 작곡가는 포레이다. 나는 그의 곡들이 대체로 맑고 곱다고 생각한다.
오래 전 그의 ‘녹턴’을 선물하며 맑은 차를 마시며 나누는 고요한 대화 같다는 설명을 부가했었다. 진노의 날이 없는 ’레퀴엠‘도 좋다. 철학자 김형효 교수가 베르그손의 철학을 굵고 육중한 베토벤의 음악이 아닌 미묘하고 대단히 섬세한 드뷔시나 라벨의 음악에 비유한 것을 기억한다.
포레를 좋아하는 입장으로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나는 그 분의 비유를 이해한다. 인상주의 그림에 어울리는 곡은 포레보다 라벨, 드뷔시이기 때문이다.(김 교수는 베르그손의 철학을 물체의 무게를 느끼지 않게 하는 화법을 구사하는 마티스의 그림에 비유하기도 했다.)
빔 벤더스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 나오는 아프고 슬픈 천사에 공감하는 것도 좋지만 포레나 사티의 가벼운 음악, 마티스의 ‘춤’처럼 가벼운 비상(飛上)의 그림을 보며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도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