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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와 그 적들 - 콤플렉스 덩어리 한국 사회에서 상처받지 않고 사는 법
이나미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 받을 용기‘는 진정한 행복은 미움 받을 용기를 갖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진정 행복해지기 위한 필요 조건은 되지 싶은데 어떻든 이 가르침의 핵심은 타인으로부터 미움 받을 것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행복해질 여건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융 심리학자 이나미 박사의 ’한국 사회와 그 적들‘에서도 이런 가르침이 있다. 저자는 급작스런 성장의 그림자들 중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남과 비교하면서 만들어가는 병적 질투심을 들었다.
’한국 사회와 그 적들‘은 한국인들을 힘들게 하는 콤플렉스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극복할 대안을 제시한 책이다. 저자는 분석심리학(융 심리학)에서 말하는 콤플렉스는 열등감과 다른 개념이라 말한다. 그것은 무엇이 모자라거나 넘치는 외적 조건보다 더 깊숙하게,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을 휘두르는 것이다.
콤플렉스는 양면적이다. 병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융 심리학에서 지향하는 궁극의 목적은 내면의 참 자기를 찾는 개성화이다. 개성화란 주변 상황이나 집단적인 흐름 또는 대세에 동조하기보다 참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관심을 갖고 자기 내부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가치대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의 책은 전부 다섯 파트로 구성되었다. Part 1 ’물(物)에 빠진 사람들‘, 2 ’통(通)하지 못하는 사람들‘, 3 ’화(火)난 사람들‘, 4 ’독(毒)해진 사람들‘, 5 ’복(福) 받을 사람들‘ 등이다.
’물(物)에 빠진 사람들‘의 부제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덫에 빠진 한국인들‘이다. ’통(通)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부제는 ’그 누구와도 관계 맺기에 서툰 한국인들‘이다. ’화(火)난 사람들‘의 부제는 ’분노의 시대, 화낼 줄밖에 모르는 한국인들‘이다. ’독(毒)해진 사람들‘의 부제는 ’어디에서도 위안을 찾지 못하는 외로운 한국인들‘이다. ’복(福) 받을 사람들‘의 부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이 행복할 수 있는가?‘이다.
저자는 이제는 한(恨)을 마음 속에 품어 두지도 말고 그런 한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남들이 나 대신 한을 품게 하지도 말며 좀 더 성숙하게 남을 배려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의 콤플렉스 뿐 아니라 내 안의 콤플렉스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21 페이지)
그런데 약간 이상한 것은 저자가 우리 사회가 한의 사회에서 욕망의 사회로 변했다고 진단한다는 점이다. 한(恨)을 마음 속에 품어 두지도 말고 그런 한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남들이 나 대신 한을 품게 하지도 말며 좀 더 성숙하게 남을 배려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은 대세는 그렇지만 그와 다르게 한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보고 하는 말일까?
그런 것 같다. 불과 한 세대 만에 한국인의 정서는 180도 달라졌(19 페이지)지만 여전히 드라마에나 현실에나 눈물짓고 울부짖는 불쌍하고 가련한 주인공들은 있다(19, 20 페이지)는 말을 보면 말이다. 저자는 자신이 의식하는 남들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62 페이지)
흥미로운 점은 사람은 창조성이 고갈되면 그것을 보상하기 위해 무언가 구매해 텅 빈 마음을 메우려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63 페이지) 저자가 제시하는 한국인의 콤플렉스들은 물질, 허식, 교육, 집단, 불신, 세대, 분노, 폭력, 고독, 가족, 중독, 약한 자아 등이다.
이 가운데 교육에 가장 많이 주목하게 된다. 교육은 한국 사회의 모순과 갈등, 불합리를 확대 재생산하는 근거지이다. 우리 사회의 성적 지상주의는 공부를 마음껏 받지 못한 부모 세대들의 좌절감이 관계한다.
부모가 재산을 많이 가진 경우 자식들은 영원한 새끼 캥거루로 남으려는 경향을 갖게 된다. 반면 그렇지 못한 부모를 둔 경우 냉소와 무력감, 우울감에 쉽게 빠진다.(71 페이지) 교육에 대한 투자가 모두 병적인 것은 아니지만 과연 어떤 교육을 하는지, 그런 교육을 하는 데 근간이 되는 철학은 건강한지 등을 꼼꼼하게 짚어 보아야 하겠다.(73 페이지)
저자는 융 심리학자답게 심리적인 면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준다. 매스 미디어가 아이의 성적을 어머니의 능력과 연결시키고 정보 제공이라며 은근히 사교육을 부추기는 것은 자기 실현이 차단된 어머니들의 좌절감과 소외감을 더 아프게 자극(73 페이지)하며 청소년들이나 성인 존속살해범들의 경우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함으로써 갈등 관계를 맺고 병적인 공생 관계를 유지한다고 보는 것이 그것이다.(75 페이지)
저자의 글을 읽으면 자녀 교육은 노후 보장을 위한 보험의 성격을 지님을 알 수 있다. 물론 학력 사회, 학벌 사회에서 대학을 나와야 불이익을 받지 않는 구조도 문제이다. 교육 제도가 합리적인 선진 외국의 한 학생이 어른이 되어 벽돌공을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는 그 일이 고위 공무원과 급여 면에서 별 차이가 없기에 그럴 수 있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자식 사랑은 엄밀히 따지면 이기심에 불과하다(78 페이지)고 말하는 저자는 부모의 책임, 바람직한 양식을 주문한다. 발달 심리학적 입장에서 보면 아이들의 도덕 관념은 학교에 들어갈 나이 이전의 양육자의 태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81 페이지) 배려와 도덕심은 부모가 길러줘야 한다.(83 페이지)
저자는 투사(投射)를 거론한다. 투사란 상대방에게 자신의 심리적 갈등을 덮어씌우고 자신의 문제는 덮어 버린 채 모든 잘못과 책임을 상대방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서로 남의 잘못만 찾으니 잔인한 적의 공격에 개죽음당하지 않으려면 일단 자기 죄와 잘못을 감추는 것이 상책인 원시 부족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104 페이지)
냉철한 이성과 합리적인 분석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에 비판의 화살을 대면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매장당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다.(105 페이지) 저자는 청와대의 비극(대통령들의 비운)을 풍수 때문이 아니라 권력 콤플렉스 탓으로 본다.(110 페이지)
권력 콤플렉스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방해하는 콤플렉스로 다른 사람들을 지배해서 내 소유물로 만들기 위해 어떤 폭력적인 방법도 불사하는 것을 말한다.(107 페이지) 물론 청와대가 들어선 주변은 위압적이고 고립감을 갖게 한다. 개인주의적인 서구에 비해 한국인의 거짓말은 주로 불특정 다수에 의해 더 확대 재생산된다는 특징이 있다. 그 만큼 남의 인생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128 페이지)
한국인들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 벌어 남한테 과시하고 자식 인생에 일일이 간섭하며 문제가 생기면 소리 지르고 폭력을 휘두르며 절대 양보하지 않는 이미지로 요약된다.(143 페이지) 한국인의 그런 점은 전쟁과 군사 독재, 무한 경쟁 등으로 정서가 피폐해진 것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탓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화를 낼 때도 이성적으로 자기를 표현하고 불필요한 분노는 잘 걷어낼 줄 아는 사회(144 페이지)가 되기를 바란다. 저자는 부모 또는 아버지가 자식들을 죽이고 죽는 사건을 동반 자살이 아닌 동반 살인이라 부른다.
저자는 가족이라는 조직에도 역지사지의 덕목은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165 페이지) 이를 보며 하게 되는 생각은 가정이 사회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점점 거칠어져 속수무책을 실감하게 하는 아이들의 문제를 가정 교육의 부재에서 찾는다.(169 페이지)
최근 더욱 그악해지는 청소년 폭력의 뒤에는 어차피 노력해 보았자 인생에 역전은 없다는 자포자기, 하기 싫은 공부를 노예 부리듯 억지로 시키는 부모나 교사에 대한 분노, 돌봐 주고 이끌어 주는 믿을 만한 어른이 없는 세상에 대한 실망감 등이 복합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문제는 교육 제도가 아니라 한국 학부모들의 심성이다.(171 페이지) 한국 사회가 한(恨)의 사회에서 욕망의 사회로 변한 것이 맞듯 한(恨)의 사회에서 분노의 사회로 바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171 페이지)
독(毒)해 빠진 한국 사회라는 말을 들으니 최근 들은 독친(毒親)이란 말이 떠오른다. 독친이란 자식의 학교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자식을 들들 볶는 부모를 말한다. 저자는 중요한 것은 공간이 아니라 마음이라 말한다.(199 페이지) 교육 제도가 아니라 한국 학부모들의 심성이라는 말과 상통하는 말이다.
저자는 알콜에 대한 집착은 어머니의 젖을 빨 듯 술잔에 탐닉하는 퇴행적 모습일 수 있다고 말한다.(207 페이지) 저자는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에 다가섰지만 무의식 속에는 여전히 저개발 국가의 추억과 습관이 남아 있어 누군가 교주가 되어 광기 어린 질주를 하면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와 같은 혼란과 폭력적 상황에 빠질 수도 있으니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224 페이지)
무속과 점술에 의지하는 사람들편에서 저자는 점복(占卜)을 구체적으로 믿고 우왕좌왕하는 것은 문제지만 미래를 상상해 보고 지금 상황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갈지 고민하는 미래 지향적 사고 방식 자체가 모두 나쁜 것은 아니라 말한다.(231 페이지)
“꼭 특정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불안한 미래를 한정된 자기의 이성과 개인적 능력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유일신이나 도(道), 우주의 원리와 조응하면서 보다 의식을 확장시키려는 의도로 여긴다면 그것 또한 종교성일 수 있다.”(231, 232 페이지)
마음이 불안하고 허랑(虛浪)해질수록 자신의 무의식이 보내는 메시지를 잘 들아 보라는 분석심리학의 메시지와 ’주역‘의 기본 철학(지금 승승장구하면 잘 나간다 해도 그만큼 떨어질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잊지 말고, 지금 바닥에서 헤매고 있다면 앞으로 올라갈 일만 남은 것이니 희망을 잃지 말라는 것)은 일맥상통한다.(233 페이지)
확실한 것은 귀신과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은 인류가 죽음을 의식한 이후 시공간에 관계 없이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마음의 원형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235 페이지) 저자는 귀신을 자기 마음이 외부로 투사된 존재로 본다.
저자는 유연하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 중에 귀신과 대화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일반인들이 혼령을 만났다고 해서 꼭 비정상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238 페이지)는 말을 보라.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말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시작(始作)에 약한 사람들(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좀처럼 시동이 걸리지 않아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우선 강박적이고 완벽주의적인 경향을 자주 보인다(253 페이지)는 말이다.
남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실현 가능한 목표부터 실천하고 낯선 상황일수록 만나는 모든 이가 내 스승이라고 생각하라는 가르침에 유의하자. 아주 작은 변화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실천하면 한 땀 한 땀이 모여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개인이 변하면 사회도 변한다.(254 페이지)
저자는 ’남들처럼’의 덫에서 벗어나라며 창조적 재능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고 성공한 사람들이 반드시 굉장히 창조적인 것도 아니라 말한다.(262 페이지) 저자는 수십 년 된 옷과 머플러를 복고 패션이라며 자랑스럽게 입고 다닌다고 말한다.(264 페이지) 자신이 좋으면 그 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분노와 억울함, 용서는 감정 반응이지만 그 반응을 해결하는 몫은 많은 부분 이성이다. 감정만 과잉되고 이성이 작동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저지른 잘못에 더해 자기 자신을 더 못 살게 구는 경우도 생긴다. 용서하는 것은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 속의 독소를 빼고 더 행복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한 나만의 작업이다.(270 페이지)
저자는 한국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국인에게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면 이런 책도 쓰지 않았을 것이라 말한다.(303 페이지) ‘한국 사회와 그 적들’은 갑질에 대한 관심으로 읽은 책이지만 그보다는 한국인들을 괴롭히는 12 가지 콤플렉스를 다룬 책이어서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