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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거듭나기
David H. Rosen 지음, 이도희 옮김 / 학지사 / 2009년 1월
평점 :
융(C. G Jung) 학파의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데이비드 로젠(David Rosen)의 '우울증 거듭나기'는 병리적 우울증 환자들이 저자의 인도를 따라 자아 죽이기를 통한 상징적 죽음을 경험함으로써 자살 위험에서 벗어난 과정을 담은 인상적인 치료 사례집이다.
저자 데이빗 로젠은 우울증을 앓았던 남다른 이력을 가진 분이어서 주목을 받는다. 저자의 우울증은 부모의 이혼과 낯설기만 한 곳으로의 이사 등 급격한 외적 사건이 겹친 결과였다. 그런 저자에게 빛처럼 다가온 분이 있었다. 새 친구 댄의 아버지 밀트였다.
밀트는 로젠을 각별히 보살피는 것은 물론 지지를 보내지만 충격적이게도 로젠에게 자살 소식을 안겨주는 존재가 되고 만다. 로젠은 이 사건은 물론 그 후 겪게 된 아내의 외도로 인한 충격으로부터 생각의 전환점을 얻는다.
전자는 로젠에게 누구든 자살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고, 후자는 로젠으로 하여금 떠나라는 내면의 소리를 듣게 한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이것만으로 사태가 준 충격과 증상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정신과 상담이 필요했음은 물론이다.
로젠은 정신과 의사로부터 결정적인 말을 듣는다. 당신은 인생에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결혼 생활에서 실패한 것이라는 말이다. 부분의 실패나 좌절을 전체의 실패나 좌절로 확대해 좌절하고 실의에 빠지기를 잘 하는 우리 모두에 대한 맞춤 처방이 아닐 수 없는 말이다.
중요한 점은 자살은 가해자와 희생자가 같은 존재인 사건이고 계획된 살인이라는 진단이다. 저자는 상징적인 죽음을 결정적 처방으로 제시한다. 이는 우울증 환자들이 상징적으로 자신 및 생에 대해 가지고 있던 부정적 생각을 죽이고 내면의 죽음과 생명력, 부정적인 자아와 자기 사이의 분열을 초월하게 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저자가 제시한 처방은 자아 죽이기와 거듭나기를 활성화시킴으로써 부정적이기만 한 우울증을 극복하고 우울증이 촉발하는 자살을 줄이는 데 합당하다. 그리고 그런 처방들이 집대성된 ‘우울증 거듭나기’는 우울증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확보할 여지를 주는 책이다.
여기서 주의할 개념은 자아와 자기라는 개념이다. 자아와 자기는 융 학파의 고유 개념이다. 자아는 의식의 주체이고, 자기는 무의식과 전 인격의 주체이다. 물론 자기도 양면성을 지닌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는 것이다. 모든 원형이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상징적인 차원의 자아 죽이기가 가진 의미를 헤아릴 수 있다. 그런데 상징은 다각도로 궁구할 필요가 있는 개념이다. 잠시 이 글을 읽어보자. “..상징제의는 현실을 개조하지 않고도 무언가 중요한 개조가 이루어진 듯한 만족감을 공급하고 불안을 일시적으로 해소하며 현실모순의 현실적 해결을 연기할 수 있게 한다.(도정일 지음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279 페이지)
상징이 가진 다양한 함의를 볼 필요가 있다. 융 학파의 관념성이 자주 지적된다는 사실을 환기할 여지는 충분하다. 자살은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지만 사회적인 차원으로 인한 그것과 개인적인 차원으로 인한 그것으로 볼 수 있다.
사회와 개인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의 자살 위험도는 아주 높다. 이러한 때에 자살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나 새 삶을 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우울증 거듭나기'의 출간은 의미가 깊다.
한 문학평론가의 말을 들어보자. "한 개인의 내적 심리도 개별 현상에 그치지 않으며 시대적 징후로 분석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강계숙 지음 '우울의 빛' 9 페이지)
'우울증 거듭나기'를 통해 우울증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기회를 얻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돋보이는 점은 치료자와 내담자가 신뢰하고 지지하는 가운데 오랜 기간을 통해 희망적인 사례를 만들었다는 사실이고 저자를 융의 개념인 상처받은 치유자(wound ed healer)로 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