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소요산(逍遙山)에 다녀왔다. 단풍 축제가 끝난 11월의 산이지만 그런대로 좋았다.

원효(元曉) 대사와 요석(瑤石) 공주의 사연으로 물든 이 산을 찾은 것은 10여년 만의 일이다.

오늘 일정은 등산(登山)이 아닌 산문(山門)에 잠시 머문 시간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간 수없이 많이 이 산이 있는 도시를 지났으면서도 제대로 마음 내지 못한 산만(散漫)함을 돌아본 일정이기도 했다.

빠른 걸음으로였지만 산을 오르는 중간 중간 산문(山門)이라는 단어를 음미했다.

그렇게 한 것은 산문이란 단어가 나희덕 시인의 ‘시월’이란 시를 통해 만난 서정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산에 와 생각합니다/ 바위가 山門을 여는 여기/ 언젠가 당신이 왔던 건 아닐까 하고,...”

덧붙인다면 산 중턱의 자재암(自在庵)이라는 작은 암자 때문이기도 하다.(山門은 산의 어귀, 산사의 바깥 문을 함께 의미한다.)

물론 이 암자는 문수전(文殊殿)과 대웅전(大雄殿), 보타전(寶陀殿) 등을 갖추었다.

어렵게 산에 든 김에 자재암이 주관하는 연(年) 단위의 토요 경전 공부(무료)를 화제로 종무소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과연 꾸준히 이 산에, 그리고 암자에 드나들 수 있을까? 자신할 수도 없으면서 집 가까운 곳에 독서 모임이나 불교 경전 공부 모임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성큼 다가온 추위가 본 모습을 보이면 산은 산대로 산사는 산사대로 분주할 것이다.

한겨울에도 궁궐을 찾는 사람이 있듯 한겨울에도 산사를 찾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가끔 그 대열에 합류하는 것도 좋으리란 생각이 든다. 거기서 새봄을 기다리는 것도 좋을 것이다.

˝...봄이 올 때까지 주먹을 펴지 않을 겁니다 내 주먹 안에/ 당신에게 줄 밥이 그릇그릇 가득합니다 뜸이 잘 들고 있/ 습니다 새봄에 새 밥상을 차리겠습니다 마디마디 열리는/ 따뜻한 밥을 당신은 다아 받아먹으세요”(김소연 시 ‘목련나무가 있던 골목’ 마지막 연)

‘당신‘이란 말을 슬며시 ’나‘로 바꾸어 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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