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金洙映; 1921 - 1968) 시인도 있지만 김수영(1967 - ) 시인도 있다. 이 시인은 '영취사 홍련을 보았느냐고'란 시가 좋아 4년 전 블로그에 포스팅했었던 시인이다. 당연한지 모르겠지만 검색을 하면 거의 김수영(1921 - 1968) 시인에 대한 자료만 뜬다.

 

1992(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마산 출신의 김수영 시인에 대해 알고 싶어(우선 한자만이라도) 조선일보에 가서 1992년 신춘문예라 치니 반칠환 시인(1964 - ) 이야기가 나온다.(이 분은 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이다.) 시인이고 동화작가이고 숲해설가인 이 분은 "감수성 짙은 문학적 해설"을 하는 분으로 알려졌다.

 

숲해설사 교육기관인 숲연구소에서 숲해설 강의를 한다고 한다.(20161123일 월간 산 수록 글 '시인의 감성으로 들려주는 나무 이야기' 참고) 반경환(1954 - ) 문학평론가가 형이다. 이 분의 숲해설을 꼭 듣고 싶다. 반경환 평론가는 지난 1994년 나온 '한국문연''행복의 깊이'의 저자이다.

 

'행복의 깊이', 대단히 독특하고 도발적이고 신성모독적인 책이다. "나에게 지적인 통찰력과 섬세한 감수성과 예술가의 정신을 가르쳐준 니체와 바슐라르와 김수영 시인에게 이 부끄러운 책을 바칩니다. - 반경환"이란 헌사부터 눈길을 끄는 책이다.

 

"거친 문장과 멋진 미사여구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감을 가지고 실제비평에 있어서도 완벽하게 김현(1942 - 1990)을 극복하고 뛰어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자부한다."는 서문도 그렇다.

 

반칠환 시인은 "나무를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숲해설사가 되었다. 숲해설가 공부를 하면서 무척 행복했는데 결핍이 없어졌기 때문에 시가 안 나온다."는 말을 했다.

 

김수영(1967 - ) 시인을 오랜만에 생각하게 된 것은 김수영(1921 - 1968) 시인론(전병준 지음 '김수영과 김춘수, 적극적 수동성의 시학')을 읽다가 만난 ''라는 시 때문이다.

 

..명령하고 결의하고

<평범하게 되려는 일> 가운데에

해초처럼 움직이는

바람에 나부끼는 밤을 모르고

언제나 새벽만을 향하고 있는

투명한 움직임의 비애를 알고 있느냐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 일부)

 

이 시를 읽고 생각한 시가 김수영(1967 - ) 시인의 '영취사 홍련을 보았느냐고'이다.

    

누가 묻는다

..지나간 발자국에서도 향기가 날까?

 

붉은 꽃도 지고 푸른 잎도 지고

흐린 물 속에는 탁발을 나가는 검은 발목뼈들

 

영취사 홍련을 보았느냐고

바람이 불 때마다 살강살강 찰강찰강

물 밖으로 걸어나가는 젖은 발을 보았느냐고

('영취사 홍련을 보았느냐고' 일부)

 

''에서는 시인이 아내에게 묻고 '영취사 홍련을 보았느냐고'에서는 누군가가 시인에게 묻는다. ''를 통해 드러난 김수영(1921 - 1968) 시인과 아내 김현경 여사의 사연(사랑의 우여곡절)은 쇼팽과 조르주 상드의 사연('빗방울' 전주곡은 마요르카 섬에 머물던 쇼팽이 외출한 연인 조르주 상드를 기다리며 지었다는..)을 생각하게 한다.

 

'김수영과 김춘수, 적극적 수동성의 시학'을 읽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읽게 된 김현경 여사의 '김수영의 연인'은 화려한 등장 인물들이 자꾸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리게 하는 책이다.

 

김현경 여사의 5촌 당숙 김순남(1917 - 1983?; 김소월의 '산유화'에 곡을 붙인.. 성우 김세원의 부친), 김현경 여사가 읽었다는 보들레르, 발레리, 김현경 여사의 이화여대 시절 교수였던 정지용, 김순남의 집에 가서 자연스럽게 어울렸다는 임화(1903 - 1953), 오장환(1918 - 1951) ..

 

이 부분에서 윤동주 시인을 떠올리는 것은 발레리, 오장환, 정지용 등과의 공통 인연 때문이다. 윤동주 시인도 발레리와 오장환의 시를 읽었고 정지용 시인을 스승처럼 여겼다.

 

('김수영과 김춘수, 적극적 수동성의 시학')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히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름다울 미(美), 아름다울 휘(徽), 아름다울 의(懿), 아름다울 가(嘉), 아름다울 가(佳)..모두 아름다움을 뜻하는 한자들이다.

이 다섯 글자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뜻하는 글자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양(羊)과 대(大)를 합한 미(美)는 아주 먼 옛날 한자가 만들어질 때 인류의 주요 행사 가운데 하나였던 신에게 제사를 드리던 관습과 관계된 글자이다.

[미(美)가 양과 관계된 글자라면 생(牲)은 소와 관계된 글자이다.]

미(美)는 가장 크고 살찐 양 즉 가장 실용적인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인식한데서 비롯된 글자이다.

그런데 휘(徽), 의(懿), 가(嘉), 가(佳) 등 미(美) 외의 글자들의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다. 알려졌지만 내가 모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휘(徽)와 의(懿)는 조선 왕릉 이름에서 볼 수 있다.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조씨의 휘릉(徽陵), 정조의 후궁 수빈(綏嬪) 박씨(순조의 생모)의 무덤인 휘경원(徽慶園; 동대문구 휘경동은 휘경원에서 유래),

경종과 그의 두 번째 비인 선의왕후(宣懿王后) 어씨의 의릉(懿陵)..

경종(景宗)은 懿자와 인연이 깊다. 첫 번째 비는 단의왕후(端懿王后) 심씨이고, 자신과 懿자를 쓰는 선의왕후가 의릉(懿陵)에 묻혔기 때문이다.

가(嘉)는 가례(嘉禮)라는 말에서 만날 수 있다. 왕실의 혼인(婚姻), 책봉(冊封), 진연(進宴) 등을 가례라 한다.

물건이나 충고 등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는 가납(嘉納)이란 글자에서 가(嘉)를 만날 수 있다.

그럼 가(佳)는? 가인(佳人)이 있다. 아름다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 등을 뜻한다.

이 글자들을 보며 문자에 능한 사람들은 위계(位階)와 세분(細分)에 밝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의미와 흥미를 두루 담고 있는 글자들의 향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김수영(金洙映; 1921 - 1968) 시인은 포로 수용소 체험을 다룬 시를 발표하지 않았다. 무엇 때문일까?

당연히 부끄러움 또는 수치심 때문이다. 초기의 김수영 시인은 설움이라는 말을 많이 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부끄러움이나 수치 등의 말도 많이 했다.
김수영 시인과 대비되는 사례가 이탈리아의 화학자, 소설가 프리모 레비(1919 - 1987)이다.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인 레비는 수용소 체험을 글로 많이 남겼다.

여기서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나라면 어땠을까? 나는 아마도 레비에 가까웠을 것이다.

다만 수용소의 참담한 현실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La vita è bella)’란 영화가 있다.

“유태계 이탈리아인인 귀도 오라피체가 풍부한 상상력으로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에서 아들과 아내를 구하는 이야기”인 ‘인생은 아름다워’는 마음 먹기에 따라 삶은 유쾌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듯하다.

김수영 시인은 자조(自嘲)의 웃음 즉 부끄러움의 웃음을 짓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을 극복하겠다는 의지(意志)를 드러내는 웃음이었다.
김수영 시인의 경우처럼 나에게도 부끄러움은 극복의 의지를 다지게 하는 동력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최근 내가 문화 관련 기사에서 접한 용어 가운데 가압장(加壓場)이란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이 인지도 등에서 어느 정도 시의적절한지 잘 모르겠다. ‘영혼의 가압장 윤동주 문학관‘이라는 구체적 사용 예로 거론할 수 있는 가압장은 수압을 높여 높은 곳에 수도물을 공급하는 시설을 말한다.

‘영혼의 가압장 윤동주 문학관‘이란 윤동주 문학관이 영혼을 고양(高揚)시키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왜 가압장이란 용어를 썼을까? 그것은 윤동주 문학관이 수도 가압시설이 있던 곳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윤동주 문학관은 산기슭의 아파트로 인해 설치되었다가 아파트가 헐림에 따라 의미 없이 홀로 남겨진 가압장을 개조해 만든 문학관이다.

종로구의 의뢰를 받아 윤동주 문학관을 설계한 분은 아뜰리에 리옹 서울 대표인 건축가 이소진이란 분이다.

궁금한 것은 윤동주 문학관에 영혼의 가압장이라는 은유를 부여한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나라면 ‘시의 지성소(至聖所) 윤동주 문학관‘이라 이름했을 것이다. 관련 시설을 활용해 이름을 짓는 것이 순리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 ()는 한 맛이라는 말은 다성(茶聖)으로 일컬어지는 초의 선사의 말이다. 이 말을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의 저자 호이징하의 시를 짓는 것은 사실상 놀이 기능이라는 말과 연결지으면 어떻게 될까?

 

호이징하의 저 말은 시와 사물은 논리와 인과라는 유대와는 다른 유대로 상호 연관된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그렇다면 시와 놀이의 관계를 차와 놀이의 관계로 확장시킬 수 있겠다. 하지만 잘못이 아닌가 싶다.

 

초의선사는 선과 시와 차는 진지하다는 점에서 하나라 말한 것인 데 비해 호이징하는 시는 진지함 너머에 즉 어린이, 동물, 미개인, 예언자가 속하는 보다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수준, , 매혹, 엑스터시, 웃음의 영역에 존재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호모 루덴스놀이와 시참고)

 

호이징하는 원초적 문화 창조 능력에서 볼 때 시는 놀이 속에서, 놀이로서 탄생한다고 말한다. 그럼 차()는 어떤가? 차는 9년 면벽(面壁) 수행으로 유명한 (선불교의 초대 교조) 달마(達摩) 대사가 좌선 수행의 최대 장애인 혼침(昏沈: 졸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달마가 수행 중 쏟아지는 잠을 해결하기 위해 눈썹을 잘라 던진 것이 차나무가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박동춘 지음 맑은 차 적멸을 깨우네’ 108 페이지)

 

요즘 일 때문에 서울에 자주 가는 내게 눈에 많이 띄는 것은 궁궐, 박물관, 도서관, 기념관, 서점 등이 아닌 커피숍이다. 포화 상태가 아닌가 싶은 곳이 커피숍이다. ()은 자연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는 지리학자 조엘 코트킨의 말(‘도시, 역사를 바꾸다참고)과 포화 상태에 이른 커피숍의 현실을 연결해 신은 자연을 만들었고 커피숍은 도시를 만들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원불교 여의도 교당에 'coffee 9 sel'(커피 나인 쉘)이 있었다. 아홉 번 구운 죽염(sel은 프랑스어로 소금을 뜻함)을 넣은 커피를 파는 집이라는 의미이다. 원래 커피는 독성 중화를 위해 소금을 넣어 마시던 음료이다.

 

오늘 원불교 여의도 교당에 확인해 보니 영업을 접었다고 한다.(왜 접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내게 나인 쉘이 있으니 다른 커피 숍에 가서 타 마시면 된다. 아메리카노보다 라떼를 더 맛있어 하는 사람들은 결코 가지 않을 곳이 커피 나인 쉘일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이지만 나는 필요에 의해 나인 쉘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커피 나인 쉘은 내게 (다른 영업점이 개점하거나 여의도 교당점이 재개업하지 않는 한) 기호(記號)로 남을 곳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7-12-23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3 0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