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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ㅣ 문학의 이해와 감상 47
김혜순 / 건국대학교출판부 / 1995년 10월
평점 :
품절
김수영론을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김혜순 시인의 김수영론은 다른 김수영론들과는 차별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혜순 시인의 '김수영 - 세계의 개진과 자유의 여행'(건국대학교 출판부)은 단호한 문체가 눈에 띈다.
'윤동주 - 신념의 길과 수난의 인간상'을 읽으며 느낀 바이지만 건국대학교 출판부의 문학의 이해와 감상 시리즈는 꽤 알차다. 우리 나라 문인들과 외국 문인들이, 시인과 소설가가 함께 포함된 것이 이 시리즈의 특징이다.
도스토예프스키로부터 괴테에 이르기까지 100 권 이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110 페이지 내외의 분량으로 이루어진 이 시리즈물들은 얇은 지면에 많은 내용을 담은 까닭에 글자 크기가 작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즉 출간 당시인 1990년대의 시대적 조류를 그대로 따른 것이라고. 글자 크기를 작게 한 것이 당시의 대세였다. '윤동주 - 신념의 길과 수난의 인간상'도 그렇지만 생애와 작품, 문학세계, 작품 해설, 문학적 평가, 참고문헌, 작가 및 작품 연보 등의 구성이 기본 틀인 듯 하다.
저자인 김혜순 시인은 김수영에 관한 논문을 많이 썼다. 박사 논문에서는 김수영의 시들이 어떻게 서로 기대고 교통하고 있는지에 대해, 그리고 텍스트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해 썼다.
저자는 김수영의 시를 읽을 때마다 그의 새로운 사상을 발견하는 기쁨을 느낀다는 말을, 김수영 만큼 자신의 시업에 영향을 끼친 시인은 없었다는 말을 한다.
생애와 작품편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김수영이 신문사를 그만 두고 택한 양계가 출판사나 신문사, 통역 등의 일보다 "아주 크나큰 일이었는지" 그 시기에 '눈', '폭포', '꽃', '봄밤', '초봄의 뜰 안에', '비', '사치(奢侈)', '밤', '동맥(冬麥)' 등의 많은 시를 발표했고 시인협회가 주는 제1회 시협상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아주 크나큰 일이었는지"란 표현이 흥미로운 것이다. 김혜순 시인의 김수영론 특히 생애와 작품론의 특징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체계적이다. 눈여겨볼 사항은 김수영이 48세의 나이로 교통사고사를 당한 안타까움에 '북간도'의 안수길(1911 - 1977) 작가가 애도사를 썼다는 점이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안수길 작가에게 '동맥(冬麥)'이라는 미완성 소설이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애도사 가운데서는 "수영은 아직 더 살았어야 할 시인이다. 그것은 수영의 일은 이제부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쓴다고 해서 그의 지금까지의 업적을 과소평가하는 뜻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높이 평가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기를 바란다."는 글과 "이제 울적하면 전화라도 걸어 보고 싶은 친구 하나가 없어진 것이 나로선 더욱 슬프다."는 글이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그것대로'란 표현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것대로에 이어 그러기를(높이 평가되기를) 바란다는 말이 생각을 유도한다. 바람이 실현되지 못하는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세상에 대처하는, 그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눈에 선하다.
이를 두고 김혜순은 안수길이 김수영의 삶 속에서 귀족적인 풍모와 시 속에서의 전위적 자세에 대해 애도했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지어 말할 부분이 김수영의 주위에 있었던 두 명의 박씨에 대한 이야기이다.
김수영은 화가 박일영을 존경한 반면 시인 박인환을 가장 경멸했다. 김수영은 '박인환'이란 글에서 그처럼 재주가 없고 그처럼 시인으로서의 소양이 없고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다는 말을 했다. 그 때문에 김수영은 박인환을 가장 경멸했다.
김현경 여사도 박인환을 철저하게 무시했다는 말을 했다. 일본 시인 무라노 시로의 시를 박인환이 일본어로 낭송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음독이 너무 많이 틀려서였다고 한다.('김수영의 연인' 158 페이지.)
지난 2005년 계간 '시인세계'에서 조사된 바 김수영 시인은 과대평가된 시인 가운데 한 명으로, 박인환은 과소평가된 시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이 밖에 과대평가된 시인은 기형도, 서정주, 윤동주 등이고 과소평가된 시인은 박목월, 김종삼, 전봉건 등이다. 김수영이 박인환을 경멸한 것은 시샘의 왜곡된 표현이다. 그런 한편 김수영은 '마리서사(茉莉書舍)'란 글에서 박인환이 자신이 가장 좋아한 박일영에게서 시를 얻지 못하고 코스츔만 얻었다고 말했다.(말리茉莉는 목서과의 늘푸른 떨기나무이다.)
그런데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김수영은 자신이 박인환처럼 철저한 은자(隱者)가 되지 못한 점에서는 인환과 마찬가지로 박일영의 부실한 제자에 불과하다고 말한 부분이다.
김수영의 시는 세 시기로 나뉜다. 모더니즘적 세계관으로 출발하여 6.25를 거치며 인간의 삶의 문제와 그에 대응하는 개인적 정서에 초점을 맞춘 시기, 4.19 기간의 감격과 좌절을 표현한 시기, 소시민적 삶의 비애와 존재의 문제를 탐구하면서 사회적 삶의 조건을 내면화한 시기..(31 페이지)
김수영 뿐 아니겠지만 관념적, 추상적 세계 인식이 물질적, 구체적 인식으로 전이할 때 난해함 또는 생경함의 시어들이 많이 완화된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하겠다. 김수영은 모더니즘의 시세계를 보였는데 모더니즘의 시세계에 대해서 우리는 도시인, 소시민 등의 삶의 자리를 지키는 태도라 말할 수 있다. 김수영의 설움은 귀족적, 우월적 태도의 산물이다.(38 페이지)
김수영이 일상어와 비속어 등으로 시를 쓴 것은 혁명적인 일이었다. 김수영의 시에서 말해진 자유는 4.19 직후의 시를 빼면 모두 정신적 지향에 관한 것이다.(50 페이지) 김수영이 생각한 자유는 진보적, 낭만적, 정치적 자유이기보다 실존적 의미의 자유이다.(56 페이지)
김수영에게 자유는 환희어(歡喜語)가 아닌 피가 묻어 있는 공포어(恐怖語)로 체험되는 것이다.
김수영 시의 핵심 어휘소는 자유이다.(66 페이지) '풀'은 여러 논자들에 의해 김수영 문학의 극점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런 평가를 내린 이유는 제각각이다.(70 페이지)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인간 군상의 생명력, 존재의 자유(김종철), 어둠 속에 자신을 열어 놓고 흔들리고 있는 풀잎의 부드러운 힘, 마음의 기운, 내적 자유에 이른 공간(정현종), 행복한 시간의 우연(유종호), 시인 자신을 표현한 것(김주연), 정신 편력의 한 극점(김현), 민중을 감춘 실존적 성장의 의미(김준오), 김수영 생애의 한 귀결이었으며 새로운 삶을 위한 절대적 긴장(정과리)...
김수영은 ‘풀’을 쓰기 전 ‘해동(解凍)’이란 수필을 썼다. 이 수필 안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이 봄의 과제 앞에서 나는 나를 잊어버린다. 제일 먼저 녹는 얼음이고 싶고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철이고 싶다. 제일 먼저 녹는 철이고 싶고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얼음이고 싶다.”(73 페이지)
저자는 ‘해동(解凍)’에 의거해 ‘풀’을 시간 변화에 기대지 않는(“바람보다 먼저”, “바람보다 늦게”) 자의적 존재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구현한 것이라 풀이한다. 즉 스스로의 변화성(울고, 일어나고, 울고, 웃는)으로 타물(他物: ‘풀’이란 시에서는 바람)에 의존하지 않고 존재성을 발현한 존재자의 모습이라는 것이다.(‘바람보다 먼저‘, ‘바람보다 늦게‘는 시적 언어이고 ’바람과 상관 없이‘는 일상어이다.)
저자는 ‘풀’을 장자(莊子)에 기대어 자화(自化)하는 존재, 독화(獨化)하는 존재로 풀이한다. 설득력 높은 해석이다. 선입관을 배제한 채 이뤄낸 성과라 할 수 있다. 저자는 ‘폭포(瀑布)’는 다른 시를 통해 해석하는데 이를 보면 여러 시를 충분히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해동(解凍)’이란 산문을 통해 ‘풀’이란 시를 풀이한 것을 통해 알 수 있듯 시인의 다른 장르의 글들을 다양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저자는 김수영 시가 사후 몇 십년간 독자를 잃지 않는 것을, 그의 시적 담론 구조가 남달리 열린 구조를 가지고 독자와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으로 풀이한다.(106 페이지) 저자는 많은 평자들이 김수영 시 세계의 핵심적 주제를 자유로 파악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김수영 시의 텍스트 연구 안에서 이끌어낸 결론이기보다 자유의 이행(현실 참여)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진 결과라고 지적한다.(107 페이지)
김수영 연구에서 눈에 띄는 글은 서우석 교수가 ‘시와 리듬’에서 개진한 김수영 시의 규칙적 운율 구조 분석이다. 이 책에서 서우석 교수는 김수영 뿐 아니라 김소월, 김영랑, 윤동주, 한용운, 이상, 유치환, 서정주, 김춘수, 박재삼, 김종삼, 황동규, 정현종 등의 시를 리듬에 초점을 두고 분석했다.
저자는 김수영 시인을 시어의 혁명성을 이룬 시인으로 파악한다. 이는 김수영 시인이 일상어투와 비속어를 시에 포함시킨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한편 저자는 김수영 시인을 산문을 통하여 시의 이론과 시의 실천이 하나임을 개진한 시인으로 파악한다. 김수영은 시의 사상성과 예술성을 하나로 결합한 시인이기도 하다. 얇지만 포스가 강한 책, ‘김수영 – 세계의 개진과 자유의 이행’을 추천한다.